2025.7.1
핵심 구절 25: “그들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면 장가도 들지 않고 시집도 가지 않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을 것이다.”
유대인의 지도층에 속한 사람들이 예수님께 와서 현생의 정치 문제와 사후의 세계에 대해 질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에 대한 분명한 답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현세의 문제에 관한 질문과 사후에 관한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을 알아보고자 합니다.
1. 정치적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 (13-17)
유대인의 영적 지도자들은 예수를 잡아 죽이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사람들이 두려워서 주저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를 제거할 이유를 찾고 있었습니다.
이 구절은 다음과 같이 시작됩니다.
"바리새인과 헤롯당원 중 몇 사람을 예수께 보내어 말로 덫을 놓았습니다. 그들이 와서 그에게 말하되, ‘선생님('랍비’, 즉 교사 또는 스승), 우리는 당신이 참되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당신은 사람의 평판을 고려하지 않고 하나님의 길을 가르치므로 누구에게도 묻지 않습니다. 황제에게 세금을 내는 것이 옳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세금을 내야 합니까, 내지 말아야 합니까?" (13-14절).
바리새인과 헤롯당의 사람들은 예수의 말씀에 트집을 잡으려고 이 질문을 던졌습니다.
사실 두 집단은 서로 적대적이었습니다. 헤롯당의 사람들은 쾌락을 추구하고 로마인들과 협력했습니다. 반면 바리새인들은 금욕적으로 살았고 로마인들과 어떤 식으로든 협력하기를 거부했습니다.
그러나 모두에게 잘 알려진 전술, 어느 한 그룹에 적대적인 두 그룹이 있을 때 우선 다른 한 그룹과 연합하여 다른 그룹을 물리친 다음, 연합했던 그룹도 제거하는 전술에 익숙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교묘한 질문을 통해 예수님을 유대인 신앙의 적으로 몰아 가고자 했습니다. 헤롯당원들은 이 질문을 통해 예수님을 로마의 적이라는 올가미를 씌워 제거하려고 했습니다.
두 그룹의 사자들은 “선생님이시여, 우리는 당신이 참되시고 아무라도 꺼리는 일이 없으시니, 이는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않고 오직 참으로써 하나님의 진리를 가르치신다는 것을 압니다.”(14)라고 아첨하는 말로 예수님을 시험하기 시작했습니다.
대부분의 제사장들은 사두개파에 속해 있었습니다. 그들은 부유하고 세속적인 상류층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로마인들의 협력자였습니다.
반면 바리새인들은 구약의 율법을 준수하는 데 전념하는 엄격한 종교인이었습니다.
여기서 언급된 세금을 “인두세”라고 불렀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에게 세금, 특히 인두세 납부는 민감한 문제였습니다. 모든 사람이 이 세금을 납부해야 했고 세금으로 거둔 돈은 로마 황제의 재산으로 여겼습니다.
유대인들 사이에서도 이 인두세을 내야 하는가에 관한 의견이 분분했습니다. 헤롯 사람들은 로마인이 그들 군대로 평화와 질서를 보장하기 때문에 로마에 세금을 내는 것이 정당하다고 주장했습니다. 반면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께 십일조를 바침으로써 모든 의무를 다했으므로 로마 점령군에게 세금을 낼 필요가 없다고 믿었습니다.
이제 두 그룹의 사람들은 예수님께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습니까?”라는 함정이 있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15).
예수님이 “예”라고 대답하면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로마 황제에게 세금을 내도 된다고 하는 것을 꼬투리 잡아 그를 조국과 하나님에 대한 배신자로 낙인찍으려 했습니다.
예수님이 “아니오”라고 대답하면 헤롯당의 사람들은 즉시 그를 로마 점령 당국에 신고할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어떤 대답을 하든 그들의 올무에 빠졌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뭐라고 대답하셨습니까?
예수님은 그들의 의도를 알아차리고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왜 나를 시험하느냐? 은 한 닢을 내게 가져와서 내가 그것을 내가 보도록 하라!" (15).
서기 15~37년에 통치한 로마 황제 티베리우스의 데나리우스의 앞면과 뒷면[1].
데나리온(달란트)은 라틴어로 “데나리우스”라고 불리는 로마 동전입니다. 그 가치는 노동자의 하루 임금에 해당했습니다.
유혹자들이 예수님께 제시한 데나리온은 아마도 서기 15~37년에 통치한 티베리우스 황제의 데나리온이었을 것입니다.
티베리우스 데나리온의 앞면에는 황제의 머리 형상이, 뒷면에는 나뭇가지와 홀을 들고 평화(팍스)의 여신 역할을 하며 왕좌에 앉은 황제의 어머니 리비아의 형상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앞면에 새겨진 글귀는 “폰티펙스 막시무스”, 즉 “최고 사제” 또는 “대제사장”입니다.
고대의 동전은 보통 한 면에는 당시 통치하는 황제의 머리 형상이, 뒷면에는 그의 명칭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동전은 황제의 재산으로 간주되었습니다. 당시 황제는 신으로 숭배되었기 때문에 바리새인들은 그러한 동전을 하나님께 바치는 것을 거부했습니다.
예수님은 헤롯당과 바리새인들에게 “이는 누구의 형상과 설명이냐?”라고 물으셨습니다.
그들은 “가이사”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가이사에게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대답은 우리가 가이사, 즉 오늘날 국가에 대한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교훈을 줍니다. 예를 들어, 세금을 납부하고, 법을 준수해야 합니다.
이에 덧붙여 예수님은 하나님께 속한 것, 예를 들어 영광과 경배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가르치십니다.
우리는 무엇이 국가에 속한 것이고 무엇이 하나님께 속한 것인지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는 국가에 세금을 납부하고 법을 지키는 등 의무를 이행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을 경배하고 그분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2. 우리 미래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18-23)
미래에 있어서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요?
결혼, 건강, 가족의 평화 등등? 물론 이런 것들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죽은 후의 미래입니다.
헤롯의 사람들에 이어 사두개인들은 부활에 관한 질문으로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릴려고 질문했습니다.
당시 대부분의 제사장과 부유한 상류층은 사두개파에 속해 있었습니다. 많은 사두개인들은 그리스 철학에 정통했습니다. 이들에게는 눈에 보이는 세상이 전부였고,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것만 받아들였습니다. 그들은 실용주의자였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내일 우리는 죽을 것이니 오늘 즐기자!”라는 신조로 지상의 삶을 최대한 즐기고자 했습니다.
사두개인들은 먼저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 슬픈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18-23장):
일곱 형제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맏형이 결혼했지만 자식 없이 죽었습니다. 유대인들은 남자가 자식 없이 죽으면 형제 중 한 명이 고인에게 자손을 남기기 위해 그가 남긴 과부와 결혼하는, 이른바 과부 결혼 관습을 가지고 있었습니다(신명기 25:5, 6). 이 관습에 따라 둘째 형제는 과부인 형의 부인(형수)과 결혼했습니다. 그러나 그 역시 자식 없이 죽었습니다. 그래서 일곱 형제는 모두 차례로 맏형의 부인과 결혼했지만 모두 자식 없이 죽었습니다. 마침내 그 부인도 죽었습니다.
그렇게 그들의 이야기는 끝이 났습니다.
이것이 신명기 25장 5절에 나오는 레비라테 결혼(라틴어: 레비르: '처형'이라는 뜻, 한국어로 <수혼제>)의 의미입니다:
형제가 함께 살다가 한 형제가 아들 없이 죽으면, 그의 과부는 다른 사람 남자의 아내가 되어서는 안 되고, 죽은 자의 남동생이 그를 아내로 맞이하여 자손을 낳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슬람에서는 이런 결혼이 규정되어 있지는 않지만 금지되어 있지도 않습니다.
사두개인들은 예수님께 “일곱 사람이 모두 그녀를 아내로 삼았으니 이제 부활하면 누구의 아내가 되겠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들의 논리에 따르면 천국은 모순과 분쟁으로 가득 찬 곳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뭐라고 대답하셨습니까?
24절과 25절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당신들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착각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면 결혼하지도 않고 장가도 가지지 않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전능하심에 대한 불신과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무지가 그들의 어리석은 질문을 하게 한 원인이었습니다. 그들은 죽은 자를 살리시고 천사처럼 변화시키시는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어야 합니다.
오늘날 사람들도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지 않기 때문에 예수님과 그분의 말씀을 믿는 데 어려움을 겪습니다. 예를 들어, 그들은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부활과 천국을 믿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그분의 말씀을 믿는다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하나님의 복음을 어려움 없이 믿고 천국의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즐거운 삶을 누리며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26-27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죽은 자들이 다시 살아나는 것에 관하여,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습니까?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 자의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은 크게 착각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부활하지 않았다면 하나님은 “나는 죽은 아브라함의 하나님, 죽은 이삭의 하나님, 그리고 죽은 야곱의 하나님이다”라고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는 (살아있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다...”라고 현재 살아있는 아브라함, 이삭 그리고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이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났다는 것을 설명하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기독교는 죽은 자의 종교가 아니라 산 자의 종교입니다.
저도 죽은 자의 부활을 믿습니다. 잠든 아내 에스더가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나서 항상 저와 함께한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저는 에스더의 묘비에 요한복음 11장 25절에 나오는 예수님의 말씀을 새겼습니다:
"예수께서 그녀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나를 믿는 사람은 죽어도 살 것이다."
하나님은 항상 에스더가 나와 동행하도록 허락하셔서 내가 항상 에스더의 동행을 느끼고 기쁨과 감사로 살 수 있게 하십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산 증인이 되어 부활의 믿음을 증거해야 합니다. 그럴 때 죽음과 마귀의 권세는 우리에게서 물러가고 우리에게 하나님 나라의 밝은 빛이 비추게 될 것입니다. 아멘!
[1] https://www.mdm.de/original-silbermuenze-des-roemischen-kaisers-tiberi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