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엄경론 제24권
26) 십지품③
(1) 환희지③ 여섯째,1)“또 대원을 발해서” 이하 “휴식함이 없다”에 이르기까지 5행 반의경문은 바라건대, 일체 삼계의 4생(生) 중생을 교화해서 모두 다 일체지지(一切智智)에 안주케 하여 광대하고 휴식이 없음을 밝힌 분(分)이다. 이 한 단락은 삼계의 4생을 교화하는 법을 밝힌 것이다. 즉 욕계의 마음이 많은 자를 권유해서 모든 법의 고(苦)ㆍ공(空)ㆍ무상(無常)을 관해 악을 행하고자 하는 마음을 대치하고, 모든 선법(善法)을 닦아서 청정한 정(定)을 즐기고, 마음의 더러움을 청정히 다스려서 탐냄ㆍ성냄ㆍ어리석음ㆍ오만을 여의고, 욕계의 업을 타파해서 적정(寂靜)의 즐거움을 얻게 한다. 또 색계의 마음이 많은 자는 식상선(息想禪)에 거주하여 유루(有漏)의 선계(善界)에 태어나니, 방편으로 10바라밀과 자(慈)ㆍ비(悲)ㆍ희(喜)ㆍ사(捨)를 닦기를 권해서 방편으로 자체의 작위 없는 대적정문(大寂定門)을 성취케 하고, 식(息)을 여의고 상(想)을 조복해서 일체지를 나타내고, 한량없는 교묘한 방편지(方便智)를 성취하여 중생을 교화케 한다. 만약 무색계의 마음이 많은 자라면 방편으로 교화해서 광다문혜(廣多聞慧)를 닦게 하고, 세간의 일체 사업을 분별하여 미혹이나 걸림이 없게 하고, 고요함이나 흐트러짐이 없는 체(體)로 대원력을 일으키고, 신통을 성취해서불ㆍ법ㆍ승에게 공양하고, 일체의 종(種)과 일체지지(一切智智)를 닦아서 일체의 다함 없는 중생을 교화해 모두 성불케 하는 것이니, 이처럼 근기에 의거해 발기하고 조복해서 모두 다 일체지지에 이르게 한다. 일체지지는 근본지 중 차별지를 닦는 것이니, 근본지는 작위 없는 정(定)에 의거해 나타나고, 차별지는 근본지에 의거해 가행(加行)해서 관(觀)을 일으켜야 비로소 성취하는 것이며, 혹은 자력으로 종결치 않고 먼저 도달한 불보살을 배워서 얻는 것이다. 일곱째, “또 대원을 발해서” 이하 “휴식함이 없다”에 이르기까지 4행의 경문은 바라건대, 지혜로써 거칠고 미세한〔麁細〕 세계의 광대하고 한량없음을 분명히 요달함을 밝힌 분(分)이니, 형상(形狀)이 있는 세계를 추(麤)라 칭하고 형상이 없는 세계를 세(細)라 칭한다. 난주(亂住)라는 것은 다양한 유(類)가 섞여서 거주하는 것이니, 이 같은 염부제의 모든 잡거(雜居) 세계가 이에 해당된다. 측주(側住)는 예컨대 4천왕의 거처가 해당되며, 도주라는 것은 호봉소(胡蜂巢) 같은 것이 이에 해당되며, 정주(正住)는 알 수 있을 것이다. 약입(若入)이라는 것은 가령 땅에 거주하는 중생이 다만 들어가고자 하고 나가고자 하지 않는 것이며, 약행(若行)이라는 것은 가령 사람 등의 몸 속에 8만 4천의 미물이 거주하는데도 사람이 다니거나 머물거나 앉거나 서는 것이 이에 해당된다. 약거(若去)라는 것은 가령 흐르는 물에 거주하는 중생이 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이 해당된다. 제망차별(帝網差別)이라는 것은 천제의 그물 같은 중중(重重)한 빛과 그림자가 서로서로 용납하는 것이니, 이처럼 세계가 겹겹이 함께 머무는 것은 바로 화장장엄세계가 해당되는데, 모든 중생 세계의 바다와 더불어 함께 머물면서 업이 서로 방해하지 않는 것이 마치 제망(帝網)이 서로서로 용납하여 머무는 것과 같아서 각기 자기 업에 의거해 서로 보는 것이다. 가령 경문에서 “일체종(一切種)과 일체지지(一切智智)”라는 것은 보살의 대가비 종자가 대원력을 말미암아 조성(助成)되고, 일체지는 정(定)을 말미암아 나타나고, 차별지는 관(觀)을 말미암아 조성됨을 밝힌 것이니, 총체적으로는 이렇게 알라. 모두 다 근본지에 의거해 일어나는 것이니, 무한한 지혜문은 모두 이를 말미암는 것이다. 여덟째, “또 대원을 발해서” 이하 “휴식이 없다”에 이르기까지 6행의 경문은 바라건대, 불국(佛國)이 상호간에 사무쳐 들어가서 장엄함을 밝힌 분(分)이니, 이 1단락은 지혜 경계에 들어가매 불찰이 빛과 그림자 같아서 서로 참여하여 나타남을 밝힌 것이다. 아홉째, “또 대원을 발해서” 이하 “휴식함이 없다”에 이르기까지 7행의 경문은 바라건대, 모든 보살의 지(志)와 행이 똑같아서 원한이나 질시가 없음을 밝힌 분이다. 열째, “또 대원을 발해서” 이하 “휴식함이 없다”에 이르기까지 5행 반의 경문은 바라건대, 퇴보함이 없는 윤(輪)을 타고 보살행을 행해서 신(身)ㆍ어(語)ㆍ의(意)의 업으로 보고 듣는 자가 헛되이 지냄이 없음을 밝힌 분이다. 열한째, “또 대원을 발해서” 이하 “휴식함이 없다”에 이르기까지 10행의 경문은 바라건대, 일체 세계에 중생의 욕망을 따라서 성불과 열반에 들어감을 나타내 보임을 밝힌 분이다. 열두째, “불자야” 이하 2행의 경문은 열 가지 대원(大願)으로 다함 없는 원(願)을 원만케 함을 모두 매듭지음을 밝힌 분이다. 제5, “불자야, 이 대원은” 이하 7행 반의 경문은 앞서의 열 가지 다함 없는 원을 10진구(盡口)로써 능히 성취함을 밝힌 분이다.2)이 단락을 두 단락으로 나누리니, 첫째 “불자야” 이하 “중생계가 다하면 나의 원(願)도 곧 다한다”에 이르기까지 5행 반의 경문은 10진구를 밝힌 분이며, 둘째 “그리하여 중생계가 다하질 못한다” 이하 “궁진(窮盡)함이 없다”에 이르기까지 2행의 경문은 원의 다함 없음을 밝힌 분이다. 세간이 구르고 법이 구르고 지혜가 구르는 계(界)라고 말한 것은 중생의 삼계 유전(流轉)과 법의 유전과 지혜의 유전을 밝힌 것이니, 중생계가 다하면 보살의 원행(願行)도 비로소 다하겠지만 이같이 다함이 없기 때문에 원행도 다함이 없는 것이다. 제6, “불자야” 이하 한 단락의 8행 경문을 세 단락으로 나누리니, 첫째 10진(盡)의 대원을 발해서 마치니, 열 가지 유연한 마음을 얻음을 밝힌 것이며, 둘째 열 가지 믿음을 얻는 것이며, 셋째 “요점을 들어 말한다면” 이후 1행은 한꺼번에 매듭지은 것이니, 경문대로 이해할 수 있다. 제7, 한 단락의 18행3)의 경문을 다섯 단락으로 나누리니, 이 1단락은 횐희지 중의 제7지상(地相)에서 고(苦)를 관해 자비를 성취하는데 해당되는 문(門)이다. 첫째, “불자야” 이하 “이같이 광대하다”에 이르기까지 3행의 경문은 부처의 정법이 매우 광대함을 우선 들은 분이다. 둘째, “모든 범부의 마음이 사견(邪見)에 떨어진다” 이하 “삼계의 밭에서 다시 고(苦)의 싹이 튼다”에 이르기까지 6행의 경문은 범부가 마음이 사견에 떨어지매 고취(苦趣)에 태어나 상속(相續)이 끊이지 않음을 밝힌 분이다. 셋째, “이른바” 이하 “이 같은 중생이 고취(苦聚)를 생장한다”에 이르기까지 4행의 경문은 12인연의 갈래가 있는 것이 태어남의 인(因)이 됨을 밝힌 분이다. 넷째, “이 속이 다 공(空)해서” 이하 “깨닫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한다”에 이르기까지 2행의 경문은 중생이 몸이 공해서 내가 없음〔身空無我〕을 알지 못함을 밝힌 분이다. 다섯째, “보살아” 이하 “대자비의 광명 지혜”에 이르기까지 3행의 경문은 중생의 고통을 보고 자비와 연민을 발함을 밝힌 분이다. 이 한 단락의 18행의 경문에 대략 4문(門)의 분별을 세우리니, 첫째 체(體)를 들어 미혹을 나타내는 문이며, 둘째 범부가 체를 미혹해 고(苦)를 이루는 문이며, 셋째 연생(緣生)의 체가 없음을 요달치 못해서 유전(流轉)하는 문이며, 넷째 보살이 진(眞)을 요달하매 고통을 불쌍히 여겨 중생을 제접하는 문이다. 첫째, 체(體)를 들어 미혹을 제시하는 문이라는 것은 바로 첫 3행이 이에 해당된다. 모든 부처의 정법이 이같이 깊고 깊으며, 이같이 적정(寂靜)하며, 이같이 적멸하며, 이같이 무상(無相) 등인 것을 들고 있는데, 범부가 깨닫지 못해서 사견(邪見)의 무명(無明)이 긴 밤에 걸쳐 덮고 가려서 고통의 흐름에 전전함을 불쌍히 여긴 것이다. 【문】일체 중생이 체가 스스로 진리라서 지혜가 여래와 같거늘 무슨 이유로 미혹을 따라 모든 고업(苦業)을 성취합니까? 【답】진여(眞如)의 이지(理智)는 체가 다 자체성이 없기 때문에 자체성 없는 이지가 능히 스스로 알지 못한다. 만약 스스로 안다면 자체성 없는 것이라 이름붙이지 못할 것이니, 다만 중생의 연(緣)이 경계를 따라 유전하면서 선악을 알지 못하고, 경계를 따라 변함이 되면서 업의 차이가 있다. 그래서 어떤 경우에 불보살이 고(苦)의 원인을 설하게 됨을 말미암고, 어떤 경우는 스스로 고를 말미암아 염리(厭離:싫어해서 여읨)를 내서 비로소 정견불고(正見不苦:정견의 고통스럽지 않음)의 도를 구하는 것이니, 만약 고의 과(果)를 싫어해 여의지 않으면 마침내 성인의 말씀을 믿지 못해서 스스로 진(眞)이다, 가(假)이다, 고(苦)이다, 낙(樂)이다를 알 수 없고, 다만 그 생(生)을 받게 되어도 도무지 근심 걱정이 없어서 놀라움과 두려움, 치열한 번뇌를 전혀 깨달아 알지 못하는 것이다. 만약 스스로 깊이 부지런히 닦아서 몸을 질책해 나태하지 않고, 모든 정관(定觀)을 지어서 법계의 참다운 문에 들어간 자가 아니면, 마침내 그 고(苦)의 근원을 멸진할 수 없는 것이다. 둘째, 범부가 체를 미혹해 고를 이루는 문이라는 것은 나중의 “범부의 마음이 사견에 떨어진다” 이하 “삼계의 밭에서 다시 고의 싹을 틔운다”에 이르기까지 6행의 경문이 이에 해당된다. 이 단락에서 고(苦)의 생(生)을 받는 것에 열여덟 가지 번뇌가 있는데, 모두 두 가지 번뇌에 의거해 일어나는 것이니, 무엇이 둘인가? 하나는 근본 무명이 긴 밤에 걸쳐 가리우는 것이며, 둘은 사견(邪見)이 경계를 좇아서 늘 유전하면서 쉬지 않는 것이다. 이 두 가지 무명은 만약 근본지를 얻으면 지혜의 작용을 이루게 되니, 3승의 공관(空觀)으로 능히 끊어 얻는 것이 아니다. 이 때문에 「승만경」에서 “성문과 연각과 정토의 보살은 다만 능히 현행의 번뇌를 절복(折伏)시키기 때문에 번뇌를 끊는다고 칭하지 못한다”고 하였다. 절복이 되기 때문에 변역생사(變易生死)를 얻고 보살은 수의락생신(隨意樂生身)을 얻어서 다 자타(自他)의 불찰을 좋아하고 싫어함이 있기 때문에 전부 법계의 보광명지를 얻지 못하는 것이며, 그래서 아직은 시방 모든 부처와 더불어 지혜의 바다가 동일해서 사견(邪見)과 자타(自他)를 취하고 버리는 일체의 견류(見流:소견의 흐름)를 영원히 끊지 못하는 것이니, 앞서의 두 가지 무명을 미혹하여 망령되게 염사(厭捨:싫어하며 버림)를 내고 따로 진여와 공상(空相)을 중명하느라 대지혜를 미혹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정명경』에서 “일체 번뇌의 모든 진로문(塵勞門)을 부처의 종자로 삼는다”고 한 것이니, 이 무명의 사견을 1승 보살은 요달해서 지혜를 성취하지만 3승은 현행(現行)만을 절복시키므로 또한 미혹을 남겨 중생을 윤택케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3승의 설은 모두 지혜에 부합해서 설한 것이 아니며, 1승의 부동지에 의거해서 스스로 가없는 대자재용문(大自在用門)이 있는 것과도 같지 않은 것이니, 10신위(信位) 중 열 개의 지불(智佛)이 이에 해당되며 부동지불로 첫머리를 삼는다. 이 같은 무명과 사견이 일체 번뇌와 더불어서 근본을 짓고, 그 나머지 이하의 일체 모든 번뇌가 다 이로부터 생기는 것을 총체적으로 수번뇌(隨煩惱)라 칭하니, 근본에 의거해서 있기 때문이다. 가령 무명은 총체적으로 칭한 것이며, 사견은 경계로 인해 식을 일으킨 것이니, 6근(根)에 말미암아 명색(名色) 등을 보게 되고, 명색이 6근을 대해 경계를 짓게 되서 경계를 말미암아 식의 종자를 취해 집착함을 사견이라 칭하고, 참다운 이지(理智)를 미혹하는 것을 무명이라 호칭한다. 명색과 식(識)의 종자로 사견을 일으키게 되면, 세 가지가 6근에 대하여 근마다 다 세 가지를 갖추게 된다. 가령 이근(耳根)이 소리를 들으면 이 같은 소리를 알아서 모두 명색과 식의 일어남과 사견 등 세 가지가 있으며, 안근(眼根)과 비(鼻)ㆍ설(舌)ㆍ신(身)ㆍ의(意)도 모두 이 셋을 갖춰서 명색과 식과 6근이 명색으로 경계를 삼고 근(根)으로 주(主)를 삼고 식으로 취함을 삼으니, 생각하면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경전에서 “이 명색을 여의지 않고 증장(增長)해서 6처(處)의 취락(聚落)을 낳고, 그 가운데 상대해서 촉(觸)을 낳고, 촉이 수(受)를 낳고, 수가 애(愛)를 낳고, 애가 취(取)를 낳고, 취가 유(有)를 낳고, 유가 노사(老死) 등을 낳는다”고 한 것이 이에 해당된다. 그리고 교(憍)와 만(慢) 두 가지는 증장무명(增長無明)이 되니, 능히 고(苦)의 종자를 증장함을 이룸으로써 꺾거나 파괴하지 못하도록 하기 때문에 경문에서 “교만당(憍慢幢)을 세운다”고 한 것이다. 갈애(渴愛)의 그물 속에 들어간다는 것은 애착이 진윤무명(津潤無明)이 되는 것이니, 이는 능히 생사를 윤택하게 해서 늘 유전하기 때문이니 애착이 아니면 몸을 받지 못하는 것이다. 첨광(諂誑)은 조림무명(稠林無明)이니 스스로 미혹의 가리움이 넓고 많기 때문이며, 범부의 평상시 소행이 잠시도 끊임이 없기 때문이니, 이는 정해진 업을 닦지 않으면 다스릴 수 없다. 간(慳)과 질(嫉) 두 가지는 상계무명(常計無明)이니 악도의 생사와 함께 하면서 다시 승인(勝因)을 더하기 때문에 경문에서도 “마음이 간과 질과 상응하면서 버리질 않기에 늘 모든 취(趣)의 생(生)을 받는 인연을 짓는다”고 한 것이다. 탐애우치는 집업무명(集業無明)이니, 이 때문에 경문에서도 “탐에우치(貪恚愚痴)로 모든 업을 쌓아서 밤낮으로 증장한다”고 한 것이다. 분한무명(忿恨無明)은 성냄과 더불어 인(因)을 지으니, 이 때문에 경문에서도 “분한(忿恨)의 바람으로 심식(心識)의 불을 불어서 치열히 타올라 쉬지 않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욕류(欲流)ㆍ유류(有流)ㆍ무명류(無明流)ㆍ견류(見流)는 상류무명(常流無明)으로 늘 유전하면서 쉬지 않으니, 이 네 가지 흐름의 대하(大河)가 항상 쉬지 않고 흘러서 거대한 고해(苦海)를 이룸을 밝힌 것이다. 만약 마음이 무념(無念)이면 모든 흐름이 단박에 고갈되고, 만약 지혜가 나타나면 문득 법의 흐름을 이루니, 이 같은 12유지(有支)가 서로 주(主)와 반(伴)이 되기에 1지(支) 위에 12유지가 있어서 모두 144유지가 가없는 생사를 성취하는 것이다. 이상 열여덟 가지 번뇌무명이 모두 12유지에 의거하는 것을 근본으로 삼고 12유지는 명색과 사견을 의거해 근본으로 삼으니, 만약 작위 없는 정문(定門)으로 인(印)을 치면 8만 4천의 진로(塵勞)가 모두 법류(法流)의 지해(智海)가 된다. 이 같은 무명의 명색이 5근을 대하자 촉(觸)ㆍ수(受)ㆍ상(想)ㆍ행(行)이 있어서 모두가 마음을 낳고 뜻을 취하는 것으로 주(主)를 삼으며, 이 같은 9연(緣)4)이 똑같이 일어나서 경계를 요별(了別)함을 식(識)이라 이름을 붙인다. 그리하여 이 10사(事)를 모두 무명이라 이름붙이고 모두 사견(邪見)이라 이름붙이는 것이니, 일체 번뇌를 지어서 마음과 경계를 미혹함을 무명이라 칭하는 것이며, 경계란 것은 명색이 이에 해당되니, 6근이 경계를 대하면 사견이 따라 생기한다. 셋째, 연생(緣生)이 체(體)가 없음을 요달치 못해서 유전하는 문이라는 것은 다음과 같다. 이 한 단락은 진(眞)을 미혹하고 망(妄)을 좇아가는 낳는 바의 인(因)을 밝힌 것이니, “이른바” 이하 “고취(苦聚)를 생장한다”에 이르기까지 4행의경문이 이에 해당된다. 이른바 인이 명색에 의거해서 6근의 소연(所緣)을 대해 촉(觸)을 낳고, 촉 때문에 6근이 수(受)를 치하고, 수를 인해 애(愛)를 낳고, 애를 인해 취(取)를 낳고, 취를 인해 유(有)를 낳고, 유가생기하기 때문에 노사(老死)와 우비고뇌(憂悲苦腦)가 있다. 그리하여 명(名) 중에 색(色)을 갖추고 색 중에 명을 갖춰서 명과 색 두 가지가 존재하니, 성(聲)ㆍ향(香)ㆍ미(味)ㆍ촉(觸)도 모두 그 안에 존재하여 유표색(有表色)과 무표색(無表色)이 있기 때문에 다만 심의(心意)와 안(眼)ㆍ이(耳)ㆍ비(卑)ㆍ설(舌)ㆍ신(身)ㆍ의(意)의 소연(所緣)으로 격발해서 미혹을 이루는 것이 다 촉이 된다. 오직 여래만이 무위(無爲)로서 순수히 지혜와 더불어 함께 하기에 법의 촉이 없지만, 중생이 촉수(觸受:촉의 수용)는 삼계의 번뇌를 이루며, 성문은 생사를 싫어하고 열반을 증득하는 촉수가 있으며, 정토 보살은 청정과 더러움의 두 가지 촉이 있으며, 1승 보살은 지혜와 자비를 원만히 융화하는 데 자재롭지 못한 촉이 있으니, 이 같은 모든 촉(觸)을 지혜로 밝게 관해서 지용(智用)을 성취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명경(淨名經)』에서 “모든 촉을 수용하여 여여한 지혜로 증명한다”고 한 것이며, 또 “법은 본래 나지 않았으며 지금 멸하는 것도 아니다”라고 한 것이니, 이는 연생(緣生)의 체(體)가 자성(自性)의 성품이 없어서 생멸법이 아닌데도 범부가 요달치 못하기 때문에 무명이라 칭한다는 걸 밝힌 것이다. 다만 마음과 경계가 본래 없음을 알면 곧 일어남(起)이 오직 법의 일어남일 뿐이라서 늘 지혜의 경계이지 생멸의 연(緣)이 아니니, 선정과 지혜로 관조하면 곧 자연히 열리면서 이해하리라. 넷째, 보살이 진(眞)을 요달해서 고(苦)를 불쌍히 여겨 중생을 제접하는 문이라는 것은 바로 “이 안이 모두 공(空)하여서 아(我)와 아소(我所)를 여의었다”로부터 “대자비의 광명 지혜”에 이르기까지 5행의 경문이 이에 해당된다. 이 같은 12유지(有支)는 일체 중생이 이로부터 앞서의 열여덟 가지 번뇌를 일으켜 생사에 유전하면서 고(苦)를 받지 않음이 없으며, 성문과 연각과 정토 보살은 염리(厭離)하고 절복(折伏)해서 현행(現行)이 일어나지 않지만, 1승 보살은 이 12유지를 통해 근본지를 성취하고 차별지를 일으켜 중생을 교화함으로써 선법(善法)을 주지(住持)하고 아울러 보리심을 성취하니, 그 뜻은 비록 미혹과 깨달음이 같지는 않지만 12유지가 지혜와 더불어 다르지 않음을 밝힌 것이다. 예컨대 『승만경』에서도 이와 똑같이 설하고 있다. 이상 열여덟 가지 번뇌에서 무명과 사견은 10주의 초발심주(初發心住) 위에서 처음으로 여래 지혜의 집안에 태어날 때 정사(正使:근본 번뇌)로 능히 악도를 짓는 사견이 이미 제거됐기 때문에 습기(習氣)가 희미하고 엷어졌으나 교만(憍慢) 등이 열여덟 가지를 다 멸진하지 못한 것이니, 총체적으로는 이렇게 열 가지로써 한다. 이 때문에 10행과 10회향 법 속에서는 열 가지 법의 가행(加行)으로 다스려 점점 희미하고 엷어지는 것이며, 10지에 이르면 바른 지혜를 통해 더욱 밝아져서 오직 견도(見道)의 행을 따른 법집(法執)만 있고 삼계를 따르는 현행의 습기인 불선(不善)의 업이 없는 것이다. 가령 간(慳)ㆍ질(嫉)ㆍ분(忿)ㆍ한(恨)ㆍ진(瞋)의 다섯 가지는 10지에 들어가면 습기가 이미 없고, 그 나머지는 7지의 자비가 종결되고 지혜가 원만해짐에 이르러야 비로소 원(願)에 따른 지용(智用)을 성취하는 것이니, 다만 번뇌를 요달해 지용을 성취한다고 칭할지언정 번뇌를 끊는다고 칭하지는 못하는 것이다. 법집현행(法執現行)은 7지에 이르기 때문에 법집의 습기는 10지라야 비로소 없어지며, 수를 헤아리는 광대한 어리석음〔算數廣大愚〕과 호(好)를 따른 공덕의 어리석음〔隨好功德愚〕의 두 가지 어리석음은 불과의 행이 종결됨에 이르러야 비로소 보아서 멸진하는 것이니, 예컨대 「아승기품」과 「수호광명공덕품」이 이에 해당된다. 그러므로 여래가 스스로 2품의 경문을 설해서 불과의 두 가지 어리석음을 밝히고 있기 때문에 12유지의 미세한 습기가 바로 불과에 이르러야 비로소 다함을 밝힌 것이다. 그리하여 5위의 10바라밀을 안립해서 십십(十十)으로 다스리기 때문에 10주ㆍ10행ㆍ10회향ㆍ10지ㆍ11지의 모든 법칙이 다 체(體)가 서로 같음으로써 습기를 다스리는 계급이 같지 않음을 밝힌 것이다. 이 같은 5위의 10바라밀에서 처음 3바라밀은 속박으로부터 세간을 벗어나는 도를 다스리기 때문에 선재동자의 10주 중 첫째ㆍ둘째ㆍ셋째 지식(知識)인 세 비구로써 나타내고, 다음 3바라밀은 출세간과 세간의 미혹을 다스리기 때문에 곧 미가(彌伽)장자와 해탈(解脫)장자와 해당(海幢)비구로써 나타내고, 다음 방편바라밀 이하 원력(願力) 등 3바라밀문은 세간 속에 들어가는 출세간을 다스려서 지혜와 자비를 자재롭게 하기 때문에 곧 휴사 우바이와 선인(仙人)과 고행(苦行) 바라문으로써 나타낸다. 다음은 세간과 출세간에 지혜와 자비가 자재롭기에 지바라밀(智波羅蜜)을 쓰는 것이니, 지혜로 자비를 낳아서 자재롭게 되기 때문에 곧 자행(慈行)이라는 이름의 사자당왕녀(師子幢王女)로써 나타낸 것이다. 이는 지혜가 자재롭기가 왕과 같은 것인데, 7주 중에선 자비를 닦아 지혜를 낳지만 이 제10주에선 지혜로 자비를 낳기 때문에 왕녀가 된 것이니, 지바라밀로써 지혜를 통해 자비를 성취해서 자재로움을 밝힌 것이다. 이것은 5위를 닦아 나가는 것이 각 지위마다 네 가지 세분(勢分)의 차별동이(差別同異)가 있음을 밝힌 것이니, 선재동자의 지식(知識)에 이르러서 하나하나의 차별동이를 거듭 밝혀야 비로소 그 5위를 이해하고〔解〕실천하는〔行〕 동이(同異)를 요달하게 될 것이다. 이로부터 10지 법문도 역시 위와 같은 네 가지 미혹을 다스리는 차별동이가 있다. 즉 초지부터 제3지에 이르기까지는 세간 속의 오염을 다스려서 출세간을 습기를 성취하는 것이며, 4ㆍ5ㆍ6지는 출세간 중 세간 지혜의 자재롭지 못한 습기를 다스리는 것이며, 7ㆍ8ㆍ9지는 세간 속에 들어가는 자비와 지혜의 자재롭지 못한 습기를 다스리는 것이니, 이 때문에 8지위(地位) 중에서 모든 부처가 3가7종(三加七種)의 권발(勸發:권유해 발함)을 지음으로써 방어한 것이니, 8지위에서 자세히 밝힌 것과 같다. 제9지와 제10지의 지바라밀은 세간의 지혜와 자비를 다스려서 자재로움을 얻기 때문이며, 이 때문에 여래가 태자였을 때 셋째 부인인 구파(瞿波)로써 나타낸 것이니, 이는 대자대비가 이미 원만한 것이 바로 자비 법열(法悅)의 뜻을 나타냄을 밝힌 것이다. 가령 선재동자의 10지 중 법을 나타냄 중에서 아홉 개의 여천(女天)과 하나의 부처님의 아내가 있는 것은 이 10지 법문이 대자비문을 길이 양육함으로써 원만하고 자재롭도록 함을 밝힌 것이기 때문에 여천으로 나타낸 것이니, 그 지위에 이르면 자세히 밝히겠다. 그리고 보현의 이타행이 자재롭지 못함을 말미암아 대략 5위 승진의 대의(大意) 여섯 가지를 간략히 서술하겠다. 첫째, 10중서 처음 부처 집안에 태어나고 또한 정사(正使)로 번뇌를 없앰을 밝힌 것이다. 둘째, 10행에서 세간을 따르는 현행의 습혹(習惑)을 다스림을 밝힌 것이다. 셋째, 10회향에서 대원력을 일으켜 자비와 지혜를 융화함으로써 세간과 출세간으로 하여금 걸림 없이 사물을 이롭게 함을 밝힌 것이다. 넷째, 10지에서 오래 기르고 쌓아 익혀서 자비와 지혜의 공(功)이 원만함을 밝힌 것이다. 다섯째, 11지에서 보현행의 원만함을 밝힌 것이니, 곧 「보현행품」과 「십정품」 이후가 이에 해당된다. 여섯째, 성불의 지위가 종결됨을 밝힌 것이니, 「여래출현품」이 이에 해당된다. 「이세간품」은 불과를 닦아 나간 이후에 보현행이 영원함을 밝힌 것이며, 「법계품」은 전후의 일부(一部) 경전이 모두 법계를 체(體)로 삼음을 밝힌 것이니, 이처럼 법계의 대지혜로써 원만히 통하여 총체적으로 일법(一法)과 일시(一時)도 전후의 차별이 없는 것이니, 지혜로 비추면 볼 수 있다. 이 같은 5위 중 차별행의 지위가 모두 초발심주 중 원행(願行)과 지혜와 자비로써 널리 인(印)을 쳐서 원만케 하기 때문에 가르침은 비록 먼저와 나중이 있지만 원행의 지혜와 자비는 법이 일시(一時)라서 때〔時〕도 또한 다르지 않고 법도 또한 차이가 없는 것이니, 이 때문에 발심한 선비는 반드시 이같이 닦고 이같이 원만해서 여래부동지의 체(體)의 원만함을 여의지 않기 때문에 하나의 불과에 지혜와 자비의 시종(始終)이 사무치는 것이며, 일체 중생이 불국토라서 출입이 없음을 널리 보기 때문에 여래 지혜를 미혹한 중생을 교화해서 근본을 의지(依止)하게 하는 것이며,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자기 지혜 속에서 모든 부처가 동일한 지혜임을 널리 보기 때문에 자기 지혜에 따로 부처가 있다는 상념을 내지 않게 하는 것이며,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자기 자신에 대해 안팎이나 멀고 가까움의 견해를 일으키지 않게 하기 때문에 하나의 지인(智印)으로 인(印)을 쳐서 정(情)의 크고 작고 길고 짧은 양(量)이 있음을 타파시키는 것이니, 이같이 수행하는 것이 바로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부처 종자를 끊이지 않게 하는 것이며, 모든 중생을 위해 이 같은 법을 설하기 때문에 능히 법의 종자를 끊이지 않게 하며,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자신이 부처의 지해(智海)와 같아서 부처 지견에 들어감을 널리 보게 하기 때문에 능히 승가(僧伽)의 종자를 끊이지 않게 하는 것이니, 하나하나를 이렇게 관찰함으로써 마음과 경계로 하여금 이같이 상응케 하는 것이다. 제8, 한 단락 21행 반의 경문을 세 단락으로 나누리니, 이는 초지 중 제8지의 상(相)이다. 첫째, “불자야” 이하 “무릇 있는 바 일체를 능히 베풀면서도”에 이르기까지 2행 반의 경문은 일체를 능히 버림을 밝힌 분(分)이며, “이른바” 이하 “이 명칭이 보살이 초지에 머물면서 대보시를 성취함이다”에 이르기까지 6행의 경문은 이 지위에서 부처지혜를 구하기 때문에 신명(身命)과 재물에 아낌이 없음을 밝힌 분(分)이다. 이 단락 속의 보시로 세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재보(財寶)의 보시이며, 둘째는 코끼리나 말, 아내와 자식의 보시이며, 셋째는 머리ㆍ눈ㆍ귀ㆍ몸의 보시이다. 둘째, “불자야, 보살이 이 같은 자비로써” 이하 “부처의 교법(敎法)에서 능히 설한 대로 행한다”에 이르기까지 10행의 경문은 이 지위의 보살이 앞서의 보시를 성취하고 나니 열 가지 이익을 얻음을 밝힌 분이니, 첫째는 대자비로 크게 베푸는 인연을 밝힌 것이며, 둘째는 베푸는 바가 설법을 구하기 위한 것이며, 하는 바가 중생을 구하는 것임을 밝힌 것이며, 셋째는 세간을 벗어난 지혜를 구하는데 피로한 마음이 없는 것이며, 넷째는 일체의 경론에 겁을 먹거나 나약한 마음이 없는 것이며, 다섯째는 상ㆍ중ㆍ하의 중생을 잘 헤아려서 능력을 따라 행하여 세간의 지혜를 성취하는 분이며, 여섯째는 참괴(慙愧)의 장엄으로 자리이타(自利利他)의 도를 닦는 것이며, 일곱째는 부지런히 닦아서 물러남이 없는 것이며, 여덟째는 견고한 힘을 성취하는 것이며, 아홉째는 모든 부처에게 공양하는 것이며, 일체는 부처의 교법에서 말씀을 따라 능히 행하는 것이다. 셋째, “불자야” 이하 “가르침에 의거해 수행한다”에 이르기까지 2행 반의 경문은 모든 지(地)를 청정케 하는 열 가지 법을 성취함을 모두 매듭지음을 밝힌 분(分)이니, 경문에서 자세히 설한 대로이다. 이 단락 속에서 이미 위와 같은 신(信)ㆍ자(慈)ㆍ비(悲)ㆍ희(喜)ㆍ사(捨)와 피로나 싫어함이 없는 것과 모든 경론을 아는 것과 세간법을 잘 이해하는 것과 참괴(慙愧)와 견고한 힘과 모든 부처에게 공양하여 가르침을 통해 수행함을 법문으로 삼아서 정치행지(淨治行地)에선 단바라밀로 체(體)를 삼고 나머지 아홉으로 짝을 삼는다. 제9 단락 속의 18행 반의 경문을 대략 세 단락으로 나누겠다. 첫째, “불자야” 이하 “무상보리(無上菩提)로 회향한다”에 이르기까지 7행 반의 경문은 원력으로 다백천불(多百千佛)을 보게 되고 아울러 모두 다 섬기고 공양함을 밝힌 분(分)이다. 둘째, “불자야” 이하 “뜻을 따라 감당해서 쓴다”에 이르기까지 7행의 경문은 부처에게 공양함을 말미암아 뛰어난 이익을 얻음을 밝힌 분이다. 셋째, “불자야” 이하 “뜻을 따라 감당해서 쓴다”에 이르기까지 4행의 경문은 연금술사가 금을 제련하는데 자주자주 불에 넣듯이 보살의 수행이 더욱더 발전함을 비유함을 밝힌 분이니, 이 1단락은 경문에 스스로 갖추어져 있다. 제10 단락의 28행5)경문을 대략 세 단락으로 나누겠다. 첫째, “불자야” 이하 “여래의 지혜 광명을 성취한다”에 이르기까지 14행의 경문은 보살이 초지에 들어가고 나서 다시 이 지(地)와 10지의 여래지상(如來地相)에 들어가는 인과를 구함을 밝힌 분(分)이다. 둘째, “불자야” 이하 “다 근심 걱정을 벗어난다”에 이르기까지 6행 반의 경문은 상주(相主)가 간 대성(大城)을 통해 보살이 모든 지(地)의행과 상(相)의 안위를 물어서 일시에 가지런히 자량해 갖출 바를 구비하는 것에 비유함을 밝힌 분이다. 셋째, “불자야” 이하 “백천(百千) 아승기의 차별사(差別事)”에 이르기까지 7행 반의 경문은 보살이 수행할 때 지상(地相)의 인위를 잘 알아서 중생을 주도하여 걸림 없는 해탈을 얻게 함이 상주와 같음을 밝힌 분이다. 제11 단락 중 20행 반의 경문은 앞서 물은 불보살과 선지식의 초지와 10지의 인과를 올바르게 답한 분(分)이니, 이 단락을 다시 두 단락으로 나누겠다. 첫째, 처음 “불자야” 이하 “일체지지”에 이르기까지 8행의 경문은 그 가운데 다섯 가지 대의(大意)가 있다. 첫째 초지의 과(果)를 올바르게 들은 것이며, 둘째 능히 정법을 호지(護持)함을 밝힌 것이며, 셋째 행할 바 4설법의 행을 밝힌 것이며, 넷째 일체의 짓는 바가 불ㆍ법ㆍ승을 염(念)하는 걸 여의지 않음을 밝힌 것이며, 다섯째 일체지지를 갖춤을 염하는 걸 여의지 않음을 밝힌 것이다. 가령 일체의 종(種)이라는 것은 가행(加行)과 대원(大願)으로 대자비의 종(種)을 도와서 성취하는 것이며, 일체지지는 앞에서 이미 밝힌 대로이다. 또 커다란 지락(志樂)을 일으켜 일체지와 차별지를 닦아서 널리 대자비의 종(種)을 행하는 것이 훈수(熏修)를 말미암아 낳는 것이니, 가령 일체지는 정(定)을 말미암아 현발(顯發)하는 것이고 차별지는 스승의 가르침과 먼저 요달한 자에 의거해 수학함을 말미암아서 성취하는 것이다. 이 모두는 근본지에 과거해서 없는 것이며, 혹은 자기 근력(根力)의 상상관(上上觀)을 인해서 터득하는 것이니, 밝게 이해하는 무리들은 반드시 스승의 가르침을 빌린다. 둘째, “다시 이렇게 생각했다” 이하 “그리고 게송을 설했다”에 이르기까지 12행의 경문은 이 지위의 보살이 능히 집과 처자를 버리고 출가의 법을 닦아서 백불(百佛)의 경계를 보게 되는 법문을 밝힌 것이다. 이 12행 반의 경문 속에 여덟 가지 대의가 있다. 첫째 중생과 더불어 첫머리가 됨을 감당하는 것이며, 둘째 일체지와 차별지를 구하는 자와 더불어 의지(依止)가 됨을 감당하는 것이며, 셋째 버리기 어려운 것을 능히 버림을 밝힌 것이며, 넷째 출가해서 정진을 부지런히 행함을 밝힌 것이며, 다섯째 터득한 삼매가 백(百)이 있음을 밝힌 것이며, 여섯째 과보에 의거해 부처를 보는 수(數)를 밝힌 것이며, 일곱째 원력을 통해 부처를 보는 것이 증광(增廣)함을 밝힌 것이며, 여덟째 그 게송을 거듭 설함을 밝힌 것이다. 위와 같이 다백불(多百佛)을 본다는 것은 바로 화장(華藏)의 지혜 경계에서 1불찰해(佛刹海)가 시방 모든 불찰해를 융통하면서 서로 참여하고 두루 사무치는 다백(多百)이라서 삼천대천세계 부처 경계의 한도가 있는 백불(百佛)과는 같지 않은 것이며, 나아가 몸의 티끌과 털구멍이 법계와 허공계에 두루 동등한 백(百)이라서 정(情)으로 알 수 있는 백불과는 같지 않은 것이니, 이는 지혜 경계가 무한할 가운데의 다백(多百)이다. 다만 정(定)으로 지위를 따라 승진하는 법을 안립해서 그 승진을 밝혔지만 하나하나의 부처 경계에서는 그 중변량견(中邊量見)을 둘 수 없는 것이니, 다만 스스로 몸의 지혜 경계를 관하는 데 중변견(中邊見)이 없게 된다면 어찌 부처경계에 변량견(變量見)이 있음을 논하겠는가? 이는 초지와 중간과 10지와 여래지법(如來地法)이 하나의 지가 되어 10지와 불지법(佛地法)을 통틀어 닦기 때문에 이 중의 인과는 10회향 중의 불과를 의거해서 묘(妙)라 이름붙이는 것이니, 그리하여 10지가 다만 10회향 중의 대원해(大願海)를 성취해서 저 대원의 행을 원만케 하는 것이다. 또 첫 신심 중 금색세계와 부동지불과 문수사리와 보현 등의 행을 여의지 않는 것이니, 가령 경문의 게송에서 “불사가 비로소 이 같은 묘보심(妙寶心)을 발생하면 범부의 지위를 초월해서 부처가 행하는 곳에 들어간다”고 한 것이다. 제12 게송을 설한 것 중에 46행 반의 게송은 앞서의 법을 거듭 읊음을 밝힌 것이니, 경문에 스스로 갖추어져 있다. 무릇 경문에서 설하고 있는 이 초지에 들어가는 법을 살피건대, 처음부터 구족범부(具足凡夫)가 능히 광대한 원행(願行)을 발해서 능히 취입(趣入)하기 때문에 지(地) 이전의 행해(行解)를 인해서 오는 것이 아닌 것이니, 뜻은 가르침을 시설해 갖춤으로써 수행을 장애하는 절급(節級)의 안위를 밝힌 것이지만, 그러나 발심한 자는 일시에 모두 단박에 닦아서 일시(一時)와 일행(一行) 안에 있지 이 절급(節級)의 단계로부터 와서 닦음을 요한 것이 아님을 밝힌 것이니, 총별동이성괴(總別同異成壞)의 6상법(相法)으로 원융하면 알 수 있다. 이 6자(字) 3대법(對法)6)속에 한 자(字)에 여섯이 있으니 우선 사람에게 유비(類比)하면 나머지는 이에 준해서 알 수 있다. 가령 한 사람의 몸에 6상(相)이 구족하니, 머리ㆍ몸ㆍ손ㆍ발ㆍ눈ㆍ귀ㆍ코ㆍ혀 등의 작용이 각기 다른 것은 별상(別相)이며, 전체가 하나의 몸이자 하나의 4대(大)인 것은 총상(總相)이며, 한결같이 공(空)해서 체(體)가 없는 것은 동상(同相)이라 칭하며, 이처럼 동일해서 차이가 없는 성품을 폐기하지 않으면서도 머리ㆍ몸ㆍ손ㆍ발ㆍ눈ㆍ귀ㆍ코ㆍ혀 등의 작용이 다른 것은 이상(異相)이 되며, 머리ㆍ몸ㆍ손ㆍ발ㆍ눈ㆍ귀ㆍ코ㆍ혀 등이 다 함께 하나의 몸을 이루는 것은 성상(成相)이라 칭하며, 다만 작위 없는 연(緣)을 따라서 있기 때문에 저마다 자성도 없고 체도 없고 상도 없고 낳음도 없고 멸함도 없고 성취함도 없고 무너짐도 없는 것은 그 명칭이 괴상(壞相)이 된다. 또 일체 중생은 총상이라 칭하고, 어리석음과 지혜로움의 구분은 별상이라 칭하고, 모두가 부처 지혜와 똑같이 있는 것은 동상이라 칭하고, 집착을 따라 업이 다른 것은 이상이라 칭하고, 인(因)으로 업을 지어서 과보를 받아 태어나는 것은 성상이라 칭하고, 마음이 의지한 바가 없어서 업의 체가 낳음이 없는 것은 괴상이라 칭한다. 또 시방의 보불(寶佛)은 총상이라 칭하고, 온갖 보배로 장엄한 몸과 국토의 차별은 별상이라 칭하고, 동일한 법신이 이지(理智)가 둘이 없는 것은 동상이라 칭하고, 지혜가 행을 따라 다른 것은 이상이라 칭하고, 중생을 성취시키는 것은 성상이라 칭하고, 능소(能所)가 모두 없어서 얻음도 없고 증명함도 없는 것은 괴상이라 칭한다. 또 하나의 지혜로써 5위를 총괄적으로 거두는 것은 총상이라 칭하고, 행과 해(解)의 승진은 별상이라 칭하고, 부처의 근본지와 같음은 동상이라 칭하고, 차별지를 닦는 것은 이상이라 칭하고, 대보리를 성취하여 보현행을 갖추는 것은 성상이라 칭하고, 지혜의 체가 의지함이 없어서 작용하면서도 작위가 없는 것은 괴상이라 칭한다. 또 3세의 장구한 겁의 차별은 별상이라 칭하고, 지혜로 널리 관(觀)하매 1찰나에 존재하는 것은 총상이라 칭하고, 업을 따라 길고 짧은 것은 이상이라 칭하고, 정(情)이 없어지고 견(見)이 멸진하니 길고 짧은 때가 없는 것은 동상이라 칭하고, 지혜가 의지해 머무름이 없는 것은 괴상이라 칭하고, 근기에 감응해 법을 일으키는 것은 성상이라 칭한다. 간략하게 다섯 가지로 번역된 6상(相)의 동이(同異)를 들었으니, 그 나머지 일체법은 이를 준거해서 알라. 또 한 글자 속에 6상의 뜻이 있어서 서로 주(主)와 반(伴)이 됨을 밝히겠는데, 10현의(玄義)도 또한 여기에 있으면서 통하는 것이니, 첫째 동시구족상응문(同時具足相應門)이며, 둘째 일다상용부동문(一多相容不同門)이며, 셋째 제법상즉자재문(諸法相卽自在門)이 그 뜻이다.
이(異) 6상(相)의 의미: 동(同) 총(摠) 성(成) 별(別) 괴(壞)
이 한 글자 속에 6상이 있고 일체의 글자와 일체의 법이 다 이 6상에 있다. 만약 훌륭히 보는 자는 지혜가 걸림이 없는 총지문〔智無礙總持門〕을 얻어서 모든 법에 대해 유(有)나 무(無), 단(斷)이나 상(常) 등의 장애에 걸리지 않으니, 정(情)을 여의고서 비출 수 있다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여섯 글자의 뜻이 하나라도 빠지면 곧 이지(理智)가 원만치 못한 것이니, 이것이 초지 속에서 세간의 일체 법문을 관하여 통하기 때문이다.
(2) 이구지(離垢地)7) 앞으로 이 지(地)를 해석하는 데 간략히 다섯 가지 문으로 나누겠다. 첫째 지의 명목을 해석하는 것이며, 둘째 이 지가 어떤 행문(行門)을 닦는가를 밝히는 것이며, 셋째 선재동자가 법을 나타냄을 밝히는 것이며, 넷째 이 지가 삼계 중 어떤 계(界)의 해탈을 얻는가를 밝히는 것이며, 다섯째 경문에 따라 뜻을 해석하는 것이다. 첫째, 지(地)의 명목을 해석한다는 것은 다음과 같다. 어째서 이구지라고 이름붙였는가? 이 지위가 상상(上上)의 10선계(善戒)를 다스리기 때문이니, 상상의 10선계는 곧 법신의 성계(性戒)라서 능히 자체에 더러움이 없기 때문에 그 명칭이 이구지이다. 둘째, 이 지(地)가 어떤 행문을 닦는가를 밝힌다는 것은 계바라밀을 주(主)로 삼고 나머지 아홉 바라밀을 반(伴)으로 삼는 것이다. 셋째, 선재동자가 법을 나타냄을 밝힌다는 것은 다음과 같다. 선재동자의 이 지위 중 지식(知識)이 명호가 보덕정광아신(普德淨光夜神)인데, 이는 여천(女天)으로서 보리장 안에서 선재동자가 보살적정선정락보유보해탈문(菩薩寂靜禪定樂普遊步解脫門)을 얻은 것이다. 무릇 이 야신(夜神)과 하신(河神)과 해신(海神)과 지신(地神)이 모두 여신인 것은 자비의 지위를 나타낸 것이니, 이 10지가 대자비를 쌓아서 10회향 중 보현의 원(願)을 만족시킴을 밝힌 것이다. 이 때문에 천녀(天女)로 나타낸 것이니, 보덕정광야신이라 이름붙인 것은 보현의 원행을 원만하게 하기 때문이다. 야신이라는 것은 늘 생사의 거대한 밤에 거처하면서 일체 중생의 기나긴 미혹의 어둠을 타파하는 것이니, 신(神)이란 것은 그 지혜가 진(眞)에 응하는 것을 신이라 칭한 것이다. 이 여천이 보리장 안에 있는 것은 법신의 묘리(妙理)를 계의 체(體)로 삼음을 밝힌 것이며, 선재동자가 보살적정선정락보유보해탈문을 얻은 것은 성계(性戒)가 두루 하여 행이 법계와 제등(齊等)하매 작위 없이 적용하여 색신을 대현(對現)함으로써 늘 세간에 처하면서도 티끌의 더러움에 물들지 않기 때문에 명칭으로 삼음을 밝힌 것이다. 그리하여 체용이 늘 공적한 것이니, 선정은 체이고 유보(遊步)는 용(用)이며 낙(樂)은 법락(法樂)이다. 이 신이 보리장 안에 머문 것은 상상(上上)의 10선이 바로 전체 보리의 법신 묘리(妙理)가 되고 또 처음 환희지의 파산파연저야신(婆珊婆演底夜神)이 본래 발심한 스승이니, 이는 일체의 발심이 보리의 묘리를 체로 삼음을 밝힌 것이다. 넷째, 이 지(地)가 삼계 중 어떤 계(界)의 해탈을 얻는가를 밝힌다는 것은 만약 보리의 작위 없는 체를 통한다면 곧 삼계와 6도(道)가 모두 통틀어서 해탈이다. 이는 총상(總相)의 뜻이다. 만약 별상(別相)으로 논해서 삼계법의 차별을 잘 안다는 것은 바로 계의 체로써 능히 욕계의 번뇌를 다스리는 것이니, 보리의 묘리가 현전하매 또한 욕계의 번뇌 행상(行相)을 능히 관해서 보리의 묘리로 욕계의 혹습(惑習)을 다스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색계와 무색계 2계(界)는 3지위(地位) 중 8선정(禪定)을 닦아야 비로소 이 색계와 무색계의 행문을 밝히는 것이니, 만약 이렇게 따로따로 수행치 않고 다만 보리의 작용 없는 것으로만 한다면 능히 삼계의 오염된 행법을 가려내 알지 못하고 삼계법에대해 능히 요달치 못해서 문득 대지혜가 없는 성문이나 외도와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이 지(地)는 계를 닦아서 욕계의 번뇌를 다스리고, 3지에선 8선(禪)을 닦아서 색계와 무색계의 번뇌를 다스리는 것이니, 초지는 범부의 발심이 다만 커다란 지락(志樂)만이 있어서 대법을 기꺼이 구함을 밝힌 것이며, 3지에서 8선을 닦는 것은 상계(上界)의 선(禪)이 모두 상념을 쉰 안정된 마음으로 선정에 머물지만 보살은 쉼 없이 체(體)의 자적(自寂)에 맡긴 선으로 저 식심(息心)을 버리기 때문에 이(理)가 스스로 공적한 데 맡겨서 보리에 부합함을 밝힌 것이다. 무릇 상계 2계(界)의 선(禪)은 그 깊고 얕음을 따라 모두 심상(心想)을 쉬어 조복함으로써 적정(寂靜)을 따라 머무는데, 제4선 중에선 들어오고 나가는 숨이 없고 오직 순백 청정한 묘색이 현전해서 물ㆍ불ㆍ바람의 3재(災)가 이르지 않으니, 염(念)이 없어지고 상(想)이 소멸해서 이 업이 없기 때문에 오직 색계의 업만 있는 것이다. 다섯째, 경문에 따라 뜻을 해석한다는 것은 다시 둘로 나누겠다. 하나는 경문의 뜻을 장과하는 것이며, 둘은 경문에 따라 뜻을 해석하는 것이다. 첫 번째로 경문의 뜻을 따라 장과한다는 것은 제2지 가운데 장과(長科)하면 여섯 단락이 된다. 첫째, “모든 보살이 이를 들었다” 이하 5행의 게송은 모든 보살이 법을 듣고 환희함을 밝힌 분(分)이다. 둘째, “이 때” 이하 1단락에 있는 43행의 경문은 이미 초지를 닦고 제2지를 향하고자 하면서 악을 버리고 선을 따름을 밝힌 분이다. 셋째, “불자야” 이하 1단락에 있는 39행 반의 경문은 제2지 중에서 상상(上上)의 10선을 훌륭히 지님을 밝힌 분이다. 넷째, “불자야” 이하 39행 반의 경문은 제2지 중에서 중생에게 자비를 일으킴을 밝힌 분이다. 다섯째, “불자야” 이하 1단락에 있는 31행 반의 경문은 제2 이구지에 올바로 들어가서 많은 부처를 보게 됨을 밝힌 분이다. 여섯째, “게송을 설하다” 이하 42행의 게송은 앞서의 법을 거듭 읊는 것과 아울러 제3지를 설해주길 청함을 밝힌 분이다. 두 번째로 경문을 따라 뜻을 해석한다는 것 중에서 첫 5행의 게송 가운데는 대의(大意)가 세 가지 있다. 첫째 보살이 초지의 법을 설함을 듣고 환희하는 것이며, 둘째 꽃을 흩어 칭찬하는 것이며, 셋째 해탈월이 중생의 마음을 알아서 제2지를 설해주길 청하는 것이니, 경문에 스스로 갖추어져 있다. 두 번째의 악을 버리고 선을 따르는 단락 중 43행의 경문을 다시 두 단락으로 나누겠다. 첫째, “이 때 금강장” 이하부터 “이열 가지 마음으로 이구지에 들어가게 된다”에 이르기까지 4행 반의 경문은 열 가지 마음으로 제2지의 방향을 닦음을 밝힌 것이다. 둘째, “불자야, 보살이 이구지에 머물러서” 이하 “남으로 하여금 닦게 하는 것은 옳지 않다”에 이르기까지 38행의 경문은 제2지 보살의 종성(種性)이 스스로의 신업(身業)ㆍ구업(口業)ㆍ의업(意業)이 조화롭고 훌륭하매 열 가지 선한 마음을 따라 자비를 갖춤을 밝힌 분(分)이다. 10선(善)이란 것은 몸에 살(殺)ㆍ도(盜)ㆍ음(淫)이 없고, 뜻에 탐(貪)ㆍ진(瞋)ㆍ치(癡)가 없고, 입에 망언(妄言)ㆍ기어(綺語)ㆍ악구(惡口)ㆍ양설(兩舌)이 없는 것이니, 가령 욕계의 10선은 산선(散善)으로 닦지만 색계와 무색계의 10선은 정업(定業)을 아울러 닦으니 상념이 쉬어야 비로소 이르는 것이다. 세 번째의 “불자야” 이하 39행 반의 경문은 상(上)의 10선을 훌륭히 지님을 밝힌 분(分)인데, 다시 세 단락으로 나누겠다. 첫째, “불자야” 이하 “이 같은 방편을 보살은 반드시 배워야 한다”에 이르기 까지 14행의 경문은 이 지위의 보살이 10선도(善道)를 가짐을 밝힌 분(分)이다. 이 단락에 여섯 가지 뜻이 있으니, 첫째 열 가지 불선(不善)이 지옥ㆍ축생임을 염하는 것이며, 둘째 10선업(善業)의 도로 삼계에 태어나게 되서 유정천(有頂天)에 이르기를 염(念)하는 것이나, 이 10선이 비상정(非想頂)을 통틀어 닦아서 총체적으로 유정(有頂)이라 이름붙이는 것이며, 셋째 상품(上品)의 10선에서 고(苦)를 두려워해 진(眞)을 닦아서 성문승을 얻으니, 삼계를 벗어나게 되서 유위(有爲)의 마음이 조복되고 삼계의 번뇌가 다하여 변화생사(變化生死)에 들어가고 멸정(滅定)에 들어가는 데도 겁이 지나도록 깨닫지 못하는 것이며, 넷째 상품의 10선에서 연생(緣生)을 자각하면서도 자비를 갖추지 못해 독각승을 성취하고 또한 변화생사를 얻으니, 근기가 날카롭기 때문에 대보리로 회향하면서도 쉽게 십천(十千) 겁을 지내는 것이며, 다섯째 상품의 10선에서 광대한 원(願)을 닦아 중생을 버리지 않고, 부처의 대지혜를 구해서 보살행을 성취하는 것이며, 여섯째 상상(上上)의 10선에서 일체종지(一切種智)를 닦아 청정한 것이며, 10덕과 4무외를 성취하기 때문에 그 명칭이 최상승이 되는 것이다. 이상 천(天)에 태어나는 것과 세간을 벗어나는 것에 이 다섯 가지 10선업(先業)의 도(道)가 있는 것이다. 둘째, “불자야, 이 보살마하살” 이하 “가없는 무리의 대고취(大苦聚)”에 이르기까지 23행의 경문은 10불선업을 행하는 데에 각각 두 가지 인과가 있음을 밝힌 것이니 경문에 갖추어 밝히고 있으며, 또 10불선(不善) 중에도 상ㆍ중ㆍ하 3품 인연의 고(苦)를 받는 것이 같지 않으니 경문에 스스로 갖추어져 있다. 셋째, “이 때문에 보살은 이렇게 생각했다” 이하 “그 가운데 머물게 한다”에 이르기까지 2행의 경문은 보살이 스스로 10선을 행하고, 또 남으로 하여금 10선을 행하게 함을 밝힌 분(分)이다. 가령 상상(上上)의 10선이란 것은 지혜를 의지해 발심함을 밝힌 것이며, 그 나머지 3품은 비록 모두가 삼계의 업을 여의어서 삼계를 벗어나는 과(果)를 얻긴 했지만 다 공(空)을 의지해 발심한 것이기 때문에 점점 부처 지혜를 구해야 비로소 보현의 원행에 들어가는 것이니, 3승 중의 보살은 원행이 비록 넓지만 부처 지혜를 아직 다하지 못하기 때문에 모두 한량이 있는 것이니, 예컨대 삼천대천의 국토를 부처의 과보 경계로 삼는 것이다. 이런 뜻 때문에 부처 지혜 속에서 보현행을 행하는 자와는 전혀 다른 것이다. 삼승은 공을 관하는 것과 5위 행문의 이(理)를 기뻐하는 것으로 이(理)에 이르러야 비로소 여래종지(如來種智)의 문을 기뻐한다. 그러나 다시 보현의 원행에 들어가면 곧 불과가 10신과 5위의 뒤에 있어서 3기(三祇)를 채워야 비로소 이른다고 말하니, 만약 마음을 돌이키지 못한 자라면 모두 문 밖의 초암(草庵)에 있다. 하지만 상상(上上)의 10선인 1승의 문은 곧 여래의 일체처 부동지불을 신심(信心)으로 삼고 10주위에서 곧바로 여래 지혜의 과(果)에 들어가서 10신과 5위가 다 불과의 대지혜로써 행문을 성취하기 때문에 곧 여래의 보광명지로써 10주ㆍ10행ㆍ10회향ㆍ10지ㆍ11지를 성취해 체(體)를 삼으니, 불과와 보현행이 똑같이 자량해서 지혜의 체가 뚜렷이 밝고 정견을 벗어나기 때문에 3세에 포섭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법화경』에서는 3승을 돌이켜 지혜의 바다로 돌아가도록 하기 위해 곧 용녀로써 나타내고, 이 경전에선 단박에 불문(佛門)을 보이니 곧 선재동자가 나타낸 것과 같다. 선재동자는 비록 모든 벗을 두루 순례했지만, 그러나 발을 각모(覺母:문수를 뜻함)의 앞에서 움직이지 않고, 자씨(慈氏)는 비록 일생성불(一生成佛)의 공(功)을 주었지만, 그러나 일념의 전후가 없는 무생지해(無生智海:낳음이 없는 지혜의 바다)를 여의지 않으니, 이는 일체지승을 타고서 고금의 견(見)이 멸진한 것이다. 만약 정(情)에 전후를 두면 부처 지혜의 문에 들어가지 못하고, 또 초암(草庵)에 머물면서 문 밖에서 그치게 된다. 논주(論主)가 게송으로 말한다.
일체 중생의 금색계(金色界)는 희고 깨끗하여 더러움이 없으며 지혜는 무너짐이 없다. 지혜의 구슬이 스스로 내의(內衣) 속에 있지만 다만 길이 가난코자 하여 문 밖에서 머문다.
광대한 보배 승(乘)이 네거리에 머물러서 문수가 인도하고 보현이 붙들어 주시며 건장하고 살찐 흰 소는 매우 힘이 세서 일념에 두루 노닐면서 나아가고 물러섬〔卷舒〕이 없도다.
이 같은 보배 승(乘)에 능히 들어가지 못하고 단지 근고(勤苦)함을 좋아하여 문 앞에 서서 자신이 늘 그 속에 머무름을 깨닫지 못하고 상승(上乘)을 버리고 늘 “난 미치지 못해”라고 말한다.
네 번째 단락 중 40행의 경문은 제2지에서 자비를 일으킴을 밝힌 분(分)인데, 다시 열 단락으로 나누겠다. 첫째, “불자야” 이하 40행의 경문은 모두 열 가지의 중생을 자비롭게 생각하는 마음과 열 가지의 중생의 고도(苦道)를 생각해서 열 가지 즐거움에 안주시키는 것이니, 경문에서 스스로 단계적으로 열 가지의 “다시 이렇게 생각했다”를 갖추고 있다. 이처럼 신변(身邊)의 두 견해와 견취(見取)가 모두 사견(邪見)을 의거해서 일어나기 때문에 그 첫머리에 있다고 표시하고, “6도와 삼계의 무명이 모두 명색의 사견과 악한 슬기의 악한 욕망에 의거해서 부처의 뜻은 멀리 여읜다”는 것은 근(根)이 경계에 따라 변하면서 스스로의 부처 지혜를 미혹함을 밝힌 것이며, “내가 이 같은 험난함을 뽑아내서 두려움 없는 일체지혜의 성(城)에 머물게 한다”는 것은 고(苦)를 염(念)하고 자비를 일으켜서 근본 지혜를 요달케 함을 밝힌 것이다. 또 이렇게 생각했다. “일체 중생이 커다란 폭포수의 물결에 빠지게 되어서”란 것은 애욕의 물로 인해서 빠지게 됨을 밝힌 것이며, “욕류(欲流)와 유류(有流)와 무명류(無明流)와 견류(見流)에 들어가 생사의 소용돌이에서”란 것은 모두 애욕이 강물로 인해 소용돌이 속에 표류하면서 전전함을 밝힌 것이며, “굽이쳐 달려가고 격심하게 날뛰어서 관찰할 틈이 없다”는 것은 앞서 말한 네 가지 흐름이 험준하고 신속하게 경계를 좇고 견(見)을 따라 모든 망업(妄業)을 일으키기 때문에 관(觀)을 일으켜서 조복할 겨를이 없음을 밝힌 것이며, 욕각(欲覺)ㆍ에각(恚覺)ㆍ해각(害覺)을 좇으면서 버리지 않는 것은 이 세 가지 악작(惡作)의 흐름이 신견나찰(身見羅刹)에 의거해 그 가운데서 집착함으로써 영원히 애욕의 조림(稠林)에 들어감을 밝힌 것이니, 이는 신(身) 등의 5견(見)이 함께 생기함을 말미암아서 62견(見)이 가지런히 일어남을 밝힌 것이다. 62견이란 비바사(毘婆沙)의 설명에 의거하면, 5온 중에서 각각 4견을 일으켜서 4 곱하기 5는 20이 되고, 3세에 각각 20이니 통틀어서 60이 되고, 몸이 바로 신(神)이며 몸은 신과 다르다는 두 가지 견해를 합쳐서 모두 62견이 된다. 또 색온(色蘊) 중에서 색(色)이 바로 나이고〔卽色是我〕, 색을 여읜 것이 나이고〔離色是我〕, 나 속에 색이 있고〔我中有色〕, 색 속에 내가 있는〔色中有我〕 것이 스스로 부처 지혜를 타고서 5위를 거칠 때, 제(諦)를 보는 것이 점점 밝아지면서 다시 5인(因)이 있고 다섯 개의 과(果)가 있으니, 이는 근본 5위를 잡아서 세운 것으로서 모두 10이 된다. 그리하여 도합 110 법문이 있어서 모두 미혹의 장애나 어리석음 등의 법이 있는 것이 한결같이 선재동자의 행을 들어 밝힌 바와 같으니, 그 지위에 도달함을 기다려 자세히 밝히겠다. 이같이 그 명칭을 지위를 따라 닦아 나가는 데 자재로움을 얻지 못하는 어리석음이라 한 것은 곧바로 불과에까지 이르나니, 이른바 산수광대우(算數廣大愚)와 수호광명공덕분량광대우(隨好光明功德分量廣大愚)는 오로지 부처의 궁극적인 과(果)라야 비로소 요달해 아는 것이다. 가령 「아승기품」과 「수호광명공덕품」 등 여래가 스스로 설한 것이 이에 해당되니, 이처럼 지위에 따라 닦아 나가는 미혹의 장애는 선재동자의 법을 나타난 지식(知識)에 이르러야 하나하나 행을 대(對)에 자세히 밝힘으로써 이해하기 쉽게 한 것이다. 사도(邪道)를 뒤따라 다니는 까닭에 또한 일체 중생과 인(人)ㆍ천(天)ㆍ마(魔)ㆍ범(梵)과 성문ㆍ연각과 정토 보살이 모두 사견(邪見)이면서도 다만 고(苦)와 낙(樂)이 같지 않으니 다 정견(正見)이 아니다. 전도행(顚倒行)을 행한다는 것은 4도(倒)와 8전도(顚倒) 등이 이에 해당된다. 마치 장님과 같아서 이끄는 스승이 없다는 것은 보살이 미혹을 관하고 자비를 일으켜서 출요(出要)의 도를 구해 군품(群品)을 슬기롭게 제도함을 밝힌 것이며, 이하는 알 수 있을 것이다. 마(魔)의 경계에 들어간다는 것은 5온마와 번뇌마와 사마(死魔)가 이에 해당되며, 악한 도적이 다스리는 바란 것은 6근이 경계를 좇아 모든 사견(邪見)을 일으킴이 이에 해당되며, 마심(魔心)을 따라가고 진(眞)을 미혹하매 명색을 망령되이 취하여 신견(身見)ㆍ변견(邊見)ㆍ계취(戒取)ㆍ견취(見取)ㆍ사견(邪見)이 늘 스스로 올가미가 되어 고(苦)의 흐름에 윤회함을 밝힌 것이다. 우치조림(愚痴稠林)의 미혹한 바란 것은 일체 중생의 우치조림이 미혹한 바가 대략 8만 4천이 있는데 그 대체(大體)를 총론하면, 하나를 미혹하면 허공과 동등하게 미혹하는 것이라서 자신의 여래 보광본지혜해(普光本智慧海)를 미혹하면 곧 법계와 허공계와 동등하게 총체적으로 미혹하는 것이니, 이처럼 어리석음이 광대하고 많아서 근본 지혜를 가리기 때문에 조림(稠林)이라 호칭한 것이다. 지위에 들어가는 보살의 도(道)를 미혹한 어리석음은 5위를 따라 닦아 나가는 인과가 100이 있으니, 5위 중 제각기 있는 열 가지 바라밀을 승진하는 행의 체(體)로 삼는다. 가령 10주 중에서 10신 이후부터 방편삼매를 닦는 것은 이 10주 중 초발심주의 방향을 닦는 것이며, 초발심주의 과에 바로 들어간다는 것은 이른바 모든 부처의 지혜 광명을 억념함을 얻는다는 것이 이것이며, 해문국에 들어가서 관(觀)하는 것은 치지주(治地住)의 방향을 닦는 것이며, 일체 중생의 바다가 바로 청정 법계의 바다인 줄 관찰하여 보안(普眼)의 법문을 얻는 것은 치지주의 과(果)에 올바르게 들어가는 것이니, 이처럼 5위의 50개 법문이 다 두 가지 인과가 있어서 모두 백 개의 승진하는 법문이 있고, 또 초발심주로부터 생사의 조림(稠林)을 낳기 때문에 첫머리가 된다고 표시한 것이다. 만약 이 모든 견(見)이 체가 없음을 밝힌다면, 모든 견(見)이 곧 법계의 연생(緣生)이기에 기(起)는 오직 법기(法起)요 견은 오직 법견(法見)이라서 지혜를 따라 구르는 것이다. 반연된 바인 3계 6도의 모든 착하지 못한 도(道)가 모두 이 다섯 가지를 말미암아 생기는데, 만약 요달하면 곧 부처 지견에 들어가기 때문에 이후엔 모든 번뇌가 총체적으로 생기지 않을 것이니, 이렇게 5견상(見相)을 파괴하는 자는 세간의 업을 여의는 것이다. 이 5견을 인(因)해서 투쟁과 성냄과 원한을 낳는 것이니, 가령 탐냄으로 인해서 문득 사명(使命)을 일으키고, 3독(毒)이 탐냄ㆍ성냄ㆍ어리석음의 업을 일으킴으로 인해서 악업이 더욱 융성하는 것을 치연(熾然:치열하게 탐)이라 칭하는 것이다. 청량열반(淸凉涅槃)이란 것은 업이 없어지고 지혜가 나타나는 것이 곧 wmf거움인 것이다. 또 어리석음의 무거운 어둠과 망령된 견해의 막(膜)을 들은 것은 총체적으로 미혹된 장애의 업이 많음을 밝힌 것이니, 명색(名色)을 미혹함으로써 바른 지혜를 가로막게 되는 것이다. 또 지옥과 축생과 아귀에 떨어짐을 든다는 것은 앞서의 미혹된 장애를 말미암아 지옥에 망령되어 떨어짐을 밝힌 것이니, 이는 18지옥을 일컫는 것이다. 18이란 것은 확탕(鑊湯)과 회하(灰河) 등이다. 이상 열여덟 가지 지옥은 마음이 짓는 악업의 처소에서 즉각 받는 것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악견(惡見)의 그물 속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중생이 5온 중에도 각각 이 네 가지가 갖추어 있으며, 이 같은 모든 견(見)이 다 신(身)에 의거해서 일어나는 바이기 때문에 이 경전에서 “신(身)도 없고 또한 견(見)도 없으면 부처의 무상신(無上身)을 얻는다”고 한 것이다. 장차 애욕의 조림(稠林)에 들어간다는 것은 일체의 생사가 모두 애욕으로부터 생기는 바임을 밝힌 것이니, 생사가 많기 때문에 조림과 같은 것이다. 1찰나 간에 8백의 생멸심이 일제히 일어나서 유주(流主:흘러 들어감)가 끊이질 않으니, 찰나의 때가 멸진하면 생멸이 나란히 생겨난다. 탐내고 애착하는 것에 깊이 오염된 집착을 낳는다는 것은 깊이 생사의 업을 지어서 전전(轉轉)하기를 쉬지 않음을 밝힌 것이다. 아만원부(我慢原阜)란 것에서 만(慢)은 일곱 가지가 있는데, 만만(慢慢)과 교만(憍慢)과 과만(過慢)과 비만(卑慢)과 아만(我慢)과 증상만(增上慢)과 사만(邪慢)이며, 원부(原阜)란 것은 만(慢) 위에 다시 만이나 과만(過慢) 등을 더하는 것을 부(阜)라 칭함을 밝힌 것이다. 예컨대 세간의 평지 위에 다시 고지(高地)가 있어서 그 위가 평탄한 것을 원(原)이라 말하며, 원 위에 다시 높은 것을 퇴(堆)라 하고, 퇴 위에 다시 높은 것을 부(阜)라 하니, 이는 아만 위에 여섯 가지 만을 더하는 것이 부가 됨을 밝힌 것이다. 6처(處)의 취락(聚落)에 안주한다는 것은 교만원부(憍慢原阜) 위에 다시 눈ㆍ귀ㆍ코ㆍ혀ㆍ몸ㆍ뜻을 더해 명색(名色)의 경계를 취착(取着)해서 고(苦)의 인(因)을 증장하는 것이다. 이하 14행의 경문은 문장대로 이해할 수 있다. 이 열 단락의 경문은 이 지(地) 중의 고(苦)를 관하고 자비를 일으켜서 구호(救護)함을 밝힌 분이다. 다섯 번째, “불자야” 이하 31행 반의 경문은 이 지위의 보살이 원력으로 다백천(多百千)의 부처를 보게 됨을 밝힌 분(分)인데, 이 단락을 다시 열 단락으로 나누겠다. 첫째, “불자야” 이하 “나유타 부처”에 이르기까지 3행 반의 경문은 이 지위의 보살이 원력으로 많은 부처를 보게 됨을 밝힌 분이다. 둘째, “모든 부처의 처소에서” 이하 “또한 일체의 온갖 승가를 공양한다”에 이르기까지 2행 반의 경문은 2심(心)의 5사(事)로써 부처와 승가에게 공양함을 밝힌 분이다. 이 가운데 불ㆍ법ㆍ승이란 것은 비로자나를 불보(佛寶)로 삼고, 문수사리를 법보(法寶)로 삼고, 보현행을 승보(僧寶)로 삼기 때문에 3승과 인천(人天)과 6도(道)와 삼보가 모두 총체적으로 이 삼보 안에 있으니, 다 보현으로부터 행을 따라서 가르침을 성취하는 것이다. 셋째, “이 선근” 이하 “보시와 계율을 지님이 청정하고 만족스럽다”에 이르기 까지 4행의 경문은 10선(善)의 계율을 거듭 받음을 밝힌 분이니, 이는 초지에서 또한 상상(上上)의 10선을 받음을 밝혔기 때문에 여기서는 다시 연마함을 거듭 밝힌 것이다. 넷째, “비유하자면 진금(眞金)” 이하 “계율을 지남이 청정하고 만족스럽다”에 이르기까지 3행 반의 경문은 진금을 연마하는데 다시 반석(礬石)을 더해서 다시 밝고 청정한 비유를 듦을 밝힌 것이다. 다섯째, “불자야” 이하 “다만 힘을 따르고 분을 따라서”에 이르기까지 2행 반의 경문은 이 지위의 보살이 행한 바의 행을 밝힌 분이다. 여섯째, “불자야” 이하 “일체 종(種)의 일체지지(一切智智)”에 이르기까지 6행 반의 경문은 이 지위의 보살이 직분을 받음을 밝힌 분이다. 일곱째, “또 이렇게 생각했다” 이하 “일체지지가 의지한다”에 이르기까지 2행 반의 경문은 이 지위의 보살이 스스로 도가(道家)의 뛰어남을 얻었음을 앎을 밝힌 분이다. 여덟째, “이 보살” 이하 “권속을 삼는다”에 이르기까지 4행 반의 경문은 이 보살이 능히 집과 처자를 버리고 출가해서 천 가지의 삼매를 얻고 천 분의 부처님을 보게 됨을 밝힌 분이다. 아홉째, “만약 보살의 뛰어난 원력으로” 이하 “능히 헤아려서 알 수 없다”에 이르기까지는 뛰어난 원력으로 부처를 보는 것이 이전 의보(依報)의 업력을 지나침을 밝힌 분이다. 열째, “이 때” 이하는 금강상이 게송을 설함을 밝힌 분이다. 여섯 번째, “게송을 설하다” 이하 42행의 게송을 다시 다섯 단락으로 나누겠다. 첫째, “질직(質直)과 유연(柔軟)과 감능(堪能)” 이하 “모든 불자를 위해 이미 개연(開演)했다”에 이르기까지 30행의 게송은 앞서의 열 단락 법문을 읊음을 밝힌 것이니, 2행이 하나의 게송이며 경문에 스스로 갖추어져 있다. 둘째, “불자야” 이하 “제2지 중의 행상(行相)”에 이르기까지 4행의 게송은 대중이 법을 듣고 공양을 일으킴을 밝힌 분이다. 셋째, “이 모든 보살” 이하 “바라건대 제3지를 연설한다”에 이르기까지 3행의 게송은 모든 보살이 제2지를 듣고 다시 제3지법을 설해 주길 칭함을 밝힌 분이다. 넷째, “법과 더불어 상응하는 모든 지혜의 업” 이하 “부처의 청정한 행원을 다 설해주소서”에 이르기까지 3행의 게송은 모든 보살이 다 같이 설해 주길 청함을 밝힌 분이다. 다섯째, “그 때 해탈월이 다시 청하여 말하기를” 이하 2행의 게송은 해탈월이 거듭 제3지를 설해 주길 청함을 밝힌 분이다. 앞에서 일체의 종(種)이라 말한 것은 가행(加行)으로 훈수(熏手)하는 종(種)이며, 일체지는 곧 근본지이며, 또 지(智)라는 것은 근본지로 가행해서 차별지를 성취함을 밝힌 것이니, 가령 근본지는 삼매를 인(因)해 나타나는 것이고, 차별지는 근본지를 통해 관찰하는 가행력을 말미암아 닦아서 성취하는 것이다. 만약 하나하나를 가행의 관찰력인 대원력으로써 하지 않으면, 곧 근본지가 공적에 걸려서 성문과 승(乘)을 같이 하기 때문에 쓰임새〔用〕가 없는 것이다.
(3) 발광지(發光地)① 앞으로 이 지(地)를 해석할 때의 다섯 가지 문(門)은 앞서와 같다. 첫째, 지의 명목을 해석한다는 것은 다음과 같다. 어째서 그 명칭이 발광지인가? 이 지가 색계와 무색계의 8선정(禪定)을 닦기 때문에 색계와 무색계의 세간의 선체(禪體)를 훌륭히 요달해서 상(相)을 인식해 대치함을 밝힌 것이니, 이는 삼계의 장애와 미혹을 요달함이 분명해서 더욱 지혜를 밝고 청정하게 함을 밝힌 것이기 때문에 그 명칭이 발광지이다. 초지ㆍ2지부터 욕계 중의 수전법(隨纏法:속박을 따르는 법)을 잘 요달하고, 3지에서 색계와 무색계의 4선(禪) 8정(定) 법문을 잘 요달해서 삼계를 벗어나는 지혜 광명이 현전하게 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그 명칭이 발광지인 것이니, 만약 단지 욕계의 번뇌만 다스리고 8정(定)으로 색계와 무색계를 요달치 못하면 오히려 이 두 계(界)의 장애가 있어서 발광이라 칭하지 못하지만, 이 지(地)는 삼계의 업을 닦아서 장애가 멸진하기 때문에 그 명칭이 발광지이니, 정(定)이 능히 슬기의 광명을 발하기 때문이다. 둘째, 이 지(地)가 어떤 행문을 닦는가를 밝힌다는 것은 인바라밀(忍波羅蜜)을 체(體)로 삼고 나머지 아홉으로 짝을 삼는 것이니, 이는 삼계의 업장이 멸진하기 때문에 이 인(忍)의 명칭이 순무생인(順無生忍)이 됨을 밝힌 것이다. 가령 초발심주에서 부처 지혜의 현전을 얻는 것은 그 명칭이 모든 부처의 지혜 집안에 처음으로 태어나는 것이며, 10주ㆍ10행ㆍ10회향에서 모두 무생인을 얻는 것은 바로 총체적인 뜻이다. 만약 조잡하거나〔麤〕 미세한〔細〕 닦아 나감으로 말한다면, 지(地) 이전의 3현(賢)은 부처 지혜로 조복함이라 칭하기에 그 명칭이 복인(伏忍)이 되고, 초지ㆍ2지ㆍ3지는 그 명칭이 무생인(無生忍)을 따름이며, 4ㆍ5ㆍ6지는 삼계를 벗어나고 아울러 세간의 장애가 없어짐을 얻기에 비로소 그 명칭이 무생인을 얻음이며, 7ㆍ8ㆍ9지는 그 명칭이 공용(功用)이 없는 적멸의 인(忍)이며, 10지는 자비와 지혜가 원만해서 그 지위가 모든 부처와 같다. 셋째, 선재동자가 법을 나타냄을 밝힌다는 것은 다음과 같다. 선재동자가 이 지위 안에서 희목관찰중생야천신(喜目觀察衆生夜天神:기쁜 눈으로 중생을 관찰하는 야천신)이 보리장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고 연화장 사자좌에 앉아 있음을 보게 되고 선제 동자가 대세력보희당해탈문(大勢力普喜幢解脫門)을 얻은 것은 초지는 처음으로 지위에 들어가는 초발심〔初發心〕이며, 제2 이구지(離垢地)는 첫 회상의 보리의 체(體)를 계의 체(體)로 삼는 것이며, 제3지는 이 보리의 이(理)에 의거해 수인(修忍)함을 나타낸 것이니, 인(忍)이 행의 첫머리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보리장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것이니 보리로써 인행(忍行)을 성취하기 때문이며, 연화장 사자좌에 앉았다는 것에서 연화는 행에 오염이 없음을 나타낸 것이고, 사자는 의주(依主)의 뜻을 밝힌 것이며, 희목관찰중생이라고 호칭한 것은 법인(法忍)으로 자비를 행함을 밝힌 것이며, 야천신이란 앞에서 해석한 것과 같다. 선재동자가 대세력보희당해탈을 얻었다는 것은 삼계를 벗어난 장애가 멸진하여 법인이 원만히 성취되면서 탐냄ㆍ성냄ㆍ분노ㆍ원한의 미혹이 능히 생기지 못하기 때문에 법인이 현전하여 대세력이 있음을 밝힌 것이며, 보희당해탈이란 것은 능히 자타(自他)의 번뇌를 꺾어버리는 것이며, 모든 경계에 쏠리지 않는 것이며, 모든 위순(違順:거스르는 경계와 순조로운 경계)에서 법락(法樂)을 성취함을 밝힌 것이다. 넷째, 삼계에서 이 지(地)가 어떤 계(界)의 해탈을 얻는가를 밝힌다는 것은 다음과 같다. 이는 삼계의 해탈을 얻으니, 앞의 초지와 2지는 욕계를 대치하고 이 3지는 단계적으로 위에 있는 2계의 8선(禪)을 대치하는 것이니, 총체적으로는 삼계의 장애를 멸진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4지는 37조도관(助道觀)을 닦고, 5지는 10제관(諦觀)을 닦고, 6지는 12연생관(緣生觀)을 닦아서 세간을 벗어난 가운데 세간의 지혜를 배우는 것이다. 다섯째, 경문에 따라 뜻을 해석한다는 것 중에서 두 가지 뜻은 앞서와 같으니, 첫 번째로 경문의 뜻을 장과한다는 것은 이 단락의 발광지 중에서 일곱 단락으로 장과하겠다. 첫째, “이 때 금강장보살” 이하 “제3지를 얻는다”에 이르기까지 5행의 경문은 제2지부터 제3지를 향해 닦으면서 열 가지 마음을 일으킴을 밝힌 분(分)이다. 둘째, “불자야” 이하 “비단 말로만 청정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에 이르기까지 52행 반의 경문은 제3지에 올바로 머물러서 모든 유위법을 관하는 것과 일체 중생에게 자비를 일으키는 것과 아울러 법을 귀하게 여기고 사람을 소중히 여겨 능히 불구덩이에 들어가 고(苦)를 받으면서도 법을 즐겨 들음을 밝힌 분이다. 셋째, “불자야” 이하 “즐김으로 집착하는 바가 없다”에 이르기까지 10행 반의 경문은 발광지에 머물러서 색계와 무색계의 4선(禪) 8정(定)을 닦으면서도 법성을 수순(隨順)해서 행에 집착하는 바가 없음을 밝힌 분이다. 넷째, “불자야” 이하 “또한 다시 이와 같다”에 이르기까지 2행의 경문은 이 지위가 자(慈)ㆍ비(悲)ㆍ희(喜)ㆍ사(捨)의 4무량심을 닦음을 밝힌 분이다. 다섯째, “불자야” 이하 “의원력(意願力)으로 그 가운데 태어난다”에 이르기까지 33행의 경문은 이 지(地)에 머물 때 선정을 닦아 신통력을 얻음으로써 6근이 청정함을 밝힌 분이다. 여섯째, “불자야” 이하 “게송을 설하여 말했다”에 이르기까지 30행의 경문은 이 지위의 보살이 부처를 보는 것이 넓고 좁음과 직분(職分)을 받음을 밝힌 분이다. 일곱째, “게송을 설하여 말했다”는 게송을 설한 분이다. 이 일을 단락 중에서 첫 번째 “이 때 금강장보살” 이하 5행의 경문은 제2지부터 제3지를 향해 닦으면서 열 가지 마음을 일으킴을 밝힌 분인데, 경문에 스스로 갖추어져 있다. 두 번째, “불자야” 이하 52행 반의 경문을 다시 다섯 단락으로 나눈다. 첫째, “불자야 보살마하살이 제3지에 머물러서” 이하 “이것이 10이 된다”에 이르기까지 19행의 경문은 유위의 고통이 무상함을 관하여 열 가지로 중생을 불행히 여김을 밝힌 분이다. 둘째, “보살이 이렇게 중생계를 보아서” 이하 “구경 열반의 즐거움”에 이르기까지 7행 반의 경문은 보살이 중생을 제도하길 염(念)하매 어떤 방편으로 어느 곳에 안치해서 구경열반의 즐거움을 얻게 하는 가를 밝힌 분이다. 셋째, “문득 이러한 생각을 했다” 이하 “이같이 관찰해서 다 요달해 알았다”에 이르기까지 5행의 경문은 보살의 염(念)한 바로 중생을 안치할 구경처(究竟處)를 앎을 밝힌 분이다. 넷째, “배(倍)나 정법에 대해” 이하 “관찰하여 수행한다”에 이르기까지 19행의 경문은 보살이 중생을 제도하고자 배(倍)나 부지런히 닦고 법을 구하는 것이니, 신명(身命)을 능히 버려서 큰 불구덩이에 들어가면서도 고통이 없음을 밝힌 분이다. 다섯째, “이 보살” 이하 2행의 경문은 결정한 수행이 단지 말에 불과한 것이 아님을 밝힌 분이다.
新華嚴經論卷第二十四 長者李 通玄 撰六又發大願已下,至無有休息,有五行半經,明願化一切三界四生衆生,皆安住一切智智廣大無休息分。此一段明教化三界四生法欲界心多者,勸令觀諸法苦空無常對治欲惡,修諸善法樂淸淨定,淨治心垢,離貪嗔癡慢,破欲界業得寂淨樂,色界心多者,住息想禪,生有漏善界方便,勸修十波羅蜜、慈悲喜捨,令方便成就自體無作大寂定門,離息伏想,現一切智,成就無量巧方便智,教化衆生,若無色界心多者,方便教化修廣多聞慧,分別世間一切事業令無迷滯,無定亂體起大願力,成就神通供佛法僧,修一切種、一切智智,教化一切無盡衆生皆成佛故,如是依根發起調伏,使令皆至一切智智者,根本智中修差別智也。如根本智,依無作定顯差、別智,依根本智加行起觀方成,或自力不終,佛菩薩先達之者,學而方得。七又發大願已下,至無有休息,可有四行經,明願以智明了麤細世界廣多無限分,有形世界名麤,無形世界名細,亂住者多類雜居,如此閻浮提諸雜居世界是也。側住如四天王居處是。倒住者,如胡蜂窠等是。正住可知。若入者,如土居衆生,只欲入不欲出,若行者,如人等身中八萬四千戶虫居而人或行住坐立者是也。若去者,如流水居衆生其一向流去是也。帝網差別者,如天帝網重重光影互相容也。如是世界重重共住,卽華藏莊嚴世界是。與衆生世界海共住,業不相妨,猶如帝網互相容而住,各依自業相見。如經云,一切種一切智智者,明菩薩大慈悲種,由大願力助成一切智,由定方現差別智,由觀助成,摠以此知之,皆依根本智起無限智門,摠由此也。八又發大願已下,至無有休息,有六行經,明願佛國互相參入莊嚴分。此一段明入智境界佛剎如光影互相參現故。九又發大願已下,至無有休息,有七行經,明願諸菩薩同志行無怨嫉分。十又發大願已下,至無有休息,有五行半經,明願乘不退輪行菩薩行身語意業見聞者無空過分十一又發大願已下,至無有休息,可十行經,明願於一切世界隨衆生欲示現成佛,入涅槃分。十二佛子已下,可有兩行經,明都結十種大願滿無盡願分。第五佛子已下,有七行半經,於此段中分爲兩段。一從佛子已下,至衆生界盡我願乃盡,有五行半經,明十盡句分。二而衆生界不可盡已下,至無有窮盡可有兩行經,明願不盡分。言世間轉法轉智轉界者,明衆生三界流轉法流轉智流轉衆生界盡菩薩願行方盡如是不盡願行不盡。第六佛子已下,一段有八行經,分爲三段。一明發十盡大願已得十種柔軟心,二得十種信,三擧要言之已後,一行都結,如文可解。第七一段十七行半經,分爲五段。此一段是當歡喜地中第七地相觀苦成悲門。一佛子已下,至如是廣大有三行經,先擧佛正法甚廣大分。二而凡夫心墮邪見已下,至於三界田中復生苦芽,有六行經,明凡夫心墮邪見而生苦趣相續不斷分。三所謂已下,至如是衆生生長苦聚,有四行經,明十二因緣有支爲生因分。四是中皆空已下,至不覺不知可,有兩行經,明衆生不知身空無我分。五菩薩已下,至大慈光明智,可有三行經,明見衆生苦發悲愍分。此一段十七行經,約立四門分別。一擧體示迷門,二凡夫迷體成苦門,三不了緣生無體流轉門,四菩薩達眞愍苦接生門。第一擧體示迷門者,卽如初三行,是擧諸佛正法如是甚深如是寂靜如是寂滅如是無相等,愍念凡夫不悟邪見無明長夜覆翳輪轉苦流。問曰:一切衆生體自眞理智等如來,何故從迷成諸苦業?荅曰:爲眞如理智體皆無性,無性理智不能自知。若也自知不名無性,但有衆生緣隨境流轉,不知善惡,爲隨境變,業有差殊。或因佛菩薩爲說苦因,或自因苦生厭,方求正見不苦之道。若也未厭苦果終不信聖言,未可自知是眞是假是苦是樂,但受得其生都無厭患,驚怖熱惱都不覺知。若不深自勤修責躬匪懈作諸定觀入法界之眞門者,終未可盡其苦源也。第二凡夫迷體成苦門者,如後凡夫心墮邪見已下,於三界田中復生苦芽,有六行經是。於此段中所受苦生有十八種煩惱,皆依二種煩惱起故。云何爲二?一根本無明爲長夜所覆,二邪見逐境常流轉不息。此二種無明,非達得成根本智,方成智用,非三乘空觀能斷得故。是故勝,鬘經云:聲聞緣覺及淨土菩薩,但能折伏現行煩惱,不名爲斷煩惱,爲折伏故,得變易生死,菩薩得隨意樂生身,皆有忻厭,自他佛剎,皆未得法界普光明智,未得與十方諸佛同一智海永絕邪見自他取捨一切見流,爲迷前二種無明妄生厭捨,別證眞如及空相,迷大智故。是故淨名經云:一切煩惱諸塵勞門,以爲佛種,此無明邪見一乘菩薩達而成智,三乘折伏現行,亦云留惑潤生,此乃皆非稱智而說,不同一乘依不動智上自有無邊大自在用門,如十信位中,十箇智佛,是以不動智佛爲首,如此無明及邪見,與一切煩惱而作根本,自餘已下,一切諸煩惱,皆從此生。摠名隨煩惱,爲依根本而有故,如無明通摠名邪見,因境起識爲因,六根中見名色等,爲名色對六根作境,因境識種取著名之邪見,爲迷眞理智號曰無明,以名色識種起邪見,三種對於六根,根根之上皆具有三。且如耳根聞聲,知如是聲,皆有名色識起邪見等三種,如眼根、鼻、舌、身、意,摠具此三名色識及六根,以名色爲境根爲主,識爲取思之可見。是故此經云:不離此名色增長生六處聚落,於中相對生觸觸生受受生愛愛生取取生有有生老死等是也。如憍慢,二種爲增長,無明能成增長苦種令不摧壞。是故經云:立憍慢幢入渴愛網中,如愛爲津潤無明能潤生死,常流轉故,爲非愛不受身,如諂誑,是稠林無明,爲自迷覆廣多故,爲凡夫常所行無蹔間斷故,此非修定業,不可制之,如慳嫉二種,是常計無明,與惡道生死更加勝因。是故經云:心與慳嫉相應不捨,恒造諸趣受生因緣,如貪恚愚癡,是集業無明。是故經云:貪恚愚癡積集諸業日夜增長,如忿恨無明,與嗔作因。是故經云:以忿恨風吹心識火熾然不息,欲流、有流、無明流、見流,此是常流無明恒流轉不息,明是四流大河常流不息成大苦海。若心無念諸流頓竭,若也智現便成法流。如是十二有支互爲主伴,則一支上有十二支,摠一百四十四有支,以成無邊生死,已上十八種煩惱無明,皆依十二有支以爲根本,十二有支依名色邪見爲本。若以無作定門印之,八萬四千塵勞,摠爲法流智海,如是無明名色,對五根,有觸受想行,摠以心生意取爲主。如是九緣同起了境名識。以此十事摠名無明,摠名邪見,作一切煩惱迷心及境,名曰無明,境者名色是也。六根對境邪見隨生。第三不了緣生無體流轉門者,此之一段明迷眞逐妄所生之因,從所謂已下,至生長苦聚,四行經是。所謂因依名色,對六根所緣,生觸以觸故,六根取受,因受生愛,因愛生取,因取生有,有生故有老死憂悲苦惱,以名中具色,色中具名,名色二存聲香味觸摠在其內,以有有表色無表色故,但心意眼耳鼻舌身意所緣擊發成惑者,皆爲觸,唯如來無爲純與智俱無法觸也。衆生觸受成三界之煩惱,聲聞有厭生死證涅槃觸受,淨土菩薩有淨穢二種觸。一乘菩薩有圓和智悲未自在觸,如是諸觸,以智明觀,以成智用。是故淨名經云:受諸觸如智證。又法本不生今則不滅,是明緣生體自性無性非生滅法。凡夫不了號曰無明,但知心境本無卽起唯法起,常是智境非生滅緣,以定慧觀照,卽自然開解。第四菩薩達眞愍苦接生門者,卽從是中,皆空離我我所,至大慈光明,智五行經是。如是十二有支一切衆生,從此而起前十八種煩惱,而流轉生死,無苦不受,聲聞、緣覺、淨土菩薩厭而伏之現行不起,一乘菩薩以此十二有支而成根本智,起差別智,教化衆生住持善法及成菩提心,意明迷悟不同非十二有支與智異故。如勝鬘經亦同此說,如上十八種煩惱,如邪見無明,十住初發心住上初生如來智慧家時,正使能作惡道,邪見以除故,習氣微薄,未盡憍慢等十八種摠爾。以十種故,十行、十廻向法中,有十法加行治之,漸漸微薄至十地,以正智增明,唯有見道隨行法執,無隨三界現行,習氣不善之業,如慳嫉忿恨嗔五種,入十地中習氣已無,自餘至七地悲終智滿方成隨願智用,只可名爲達煩惱而成智用,不可名爲斷煩惱故。法執現行至七地故法執習氣十地方無,如筭數廣大愚隨好功德愚,此二愚至佛果行終方見盡。如阿僧祇品隨好光明功德品是。是故如來自說二品,明經佛果二愚是故,明十二有支微習直至佛果方盡,以此安立五位十度,十十治之,皆十住、十行、十迴向、十地、十一地法則,皆體相似,以明治習階級不同。如是五位十波羅蜜,皆初三波羅蜜,以治從纏出世之道,如善財十住中初及二三知識,以三比丘表之,次後三波羅蜜,以治出世間世間之惑,卽以彌伽長者、解脫長者、海幢比丘表之,次以方便波羅蜜以下,願力等三波羅蜜門,以治入世間中出世間令悲智自在,卽以休捨優婆夷仙人苦行婆羅門表之,次以世間出世間智悲自在故,卽以智波羅蜜以智生悲得自在故,卽以師子幢王女名曰:慈行表之,智自在如王也。以七住中以修悲生智,以此第十住中以智生悲故,爲王女也。明以智波羅蜜以智成悲而自在故,此明五位進修,位位有此四種勢分差別同異,至善財知識,一一差別同異重明,方得了其五位解行同異,從此十地法門,亦如上有此四種治惑差別同異,一從初地至第三地,是治世閒中染成出世閒習,四五六地是治出世閒中世閒智慧不自在習,七八九地是治入世閒中悲智不自在習。是故八地位中諸佛以作三加七種勸發以用防之。如八地位中,具明第九第十地智波羅蜜治世閒悲智得自在故。是故以如來爲太子時,第三夫人瞿波表之,明大慈大悲已滿,是表慈悲法悅義,如善財於十地中表法,有九箇女天一箇佛妻,爲明此十地法門長養大慈悲門令圓滿自在故。故以女天表之,至彼位具明,仍普賢利他行未自在。大略約敍五位昇進,大意有六。一十住明創生佛家且除正使煩惱,二明十行治隨世現行習惑,三明十迴向起大願力和融智悲使世間出世閒無㝵利物,四明十地長養蘊習悲智功圓,五明十一地普賢行滿,卽普賢行品是,及十定品已後是,六明成佛位終卽如來出現品是,如離世閒品,明進修佛果以後普賢恒行,法界品卽前後一部之經皆是以法界爲體。如是以法界大智圓通,摠無一法一時有前後差別,以智照之可見。如是五位中差別行位,摠在初發心住中,以願行智悲普印令圓滿故,教雖前後,願行悲智法是一時,時亦不異,法亦不差。是故發心之士,應如是修,如是圓滿,不離如來不動智之體,圓滿故,於一佛果智悲始終徹故,普見一切衆生是佛國土無出入故,教化迷如來智中衆生令依本故,令諸衆生於自智中普見諸佛同一智故,不於自智生別有佛想故,令一切衆生不於自身起內外遠近見故,以一智印印之,破情有大小長短量故。如是修行,卽是令諸衆生佛種不斷故,爲諸衆生說如斯法。是故能令法種不斷,普令一切衆生普見自身同佛智海入佛知見。是故能令僧種不斷,一一如是觀察而令心境如是相應。第八一段二十一行半經,分爲三段。此是初地中第八地相。第一佛子已下,至凡是所有一切能施,有兩行半經,明一切能捨分。所謂已下,至是名菩薩住於初地大施成就,有六行經,明此位中爲求佛智故於身命財無悋惜分。於此段中,其施有三。一財寶施,二象馬、妻子施,三頭目、眼耳、身肉施。第二佛子菩薩以此慈悲已下,至於佛教法能說能行,有十行經,明此位菩薩成。前施已得十種利益分。一明大慈悲大施所緣,二明所施爲求正法所爲救衆生故,三求出世智無疲勞心,四於一切經論無怯弱心,五善籌量上中下衆生隨力而行成世閒智分,六慚愧莊嚴修自利利他之道,七勤修無退,八成堅固力,九供養諸佛,十於佛教法隨說能行。第三佛子已下,至依教修行有兩行半經,明摠結成就十種淨諸地法分,具如經說。如此段中,已如上信慈悲喜捨無有疲厭,知諸經論善解世法慚愧堅固力供養諸佛以教修行,以爲法門,淨治行地,以檀度爲體,餘九爲伴。第九段中,十八行半經,約分爲三段。一從佛子已下,至迴向無上菩提,有七行半經,明以願力得見多百千佛幷及悉承事供養分。二佛子已下,至隨意堪用,有七行經,明因供養佛獲勝益分。三佛子已下,至隨意堪用,有四行經,明金師鍊金數數入火喩,菩薩修行轉增上分,此一段如文自具。第十段有二十八行經,約分爲三段。一佛子已下,至成於如來智慧光明,有十四行經,明菩薩入初地已更求此地及十地入如來地相因果分。二佛子已下,至悉免憂患,有六行半經,明以商主所往大城,喩菩薩問於諸地行相安危一時齊備所資具分。三佛子已下,至百千阿僧祇差別事,有七行半經,明菩薩修行善知地相安危主道衆生令得無㝵解脫如商主分。第十一段中,有二十行半經,是正荅前所問,佛菩薩善知識初地及十地因果分,於此段中,復分爲二段,第一從初佛子已下,至一切智智,有八行經,於中大意有五。一正擧初地之果,二明能護持正法,三明所行四攝之行,四明一切所作不離念佛法僧,五明不離念具一切智智。如一切種者,是以加行大願助成大悲種故,一切智智如前已明。又起大志樂修一切智及差別智,廣行大悲種,由熏修所生,如一切智由定顯發故,差別智由依師教先達者修學方成,皆依根本智而有,或因自根力上上觀達得明解之徒必藉師教。第二復作是念已下,至而說頌曰有十二行經,明此位菩薩能捨家妻子修出家法,得見百佛境界法門分。於此十二行半經中,大意有八。一堪與衆生爲首,二堪與求一切智及差別智者爲依止,三明難捨能捨,四明出家勤行精進,五明所得三昧有百,六明依報見佛之數,七明以願力見佛增廣,八明重說。其頌如上,見多百佛者,卽是華藏智境,一佛剎海,融十方諸佛剎海,互參遍徹之多百,非如三千大千世界佛境限之百佛故,乃至身塵毛孔等周法界虛空界之百也。不可如情所知之百佛故,此是智境無限中多百,但以定安立隨位昇進之法,明其昇進,然其一一佛境不可存其中邊量見,但如自觀身智境無中邊見,何得論佛境有邊量見?此初地中間十地及如來地法爲一地,通修十地及佛地法故。此中因果依十迴向中佛果名妙,以十地但成就十廻向中大願海令滿彼大願行故,亦不離初信心中金色世界不動智佛文殊師利普賢等行,如經頌曰,佛子始發生,如是妙寶心,則超凡夫位,入佛所行處。第十二說頌中,有四十六行半頌,明重頌前法,如文自具。夫驗經所說入此初地法,乃至是創始具足凡夫,能發廣大願行能趣入故,非是由因地前行解而來者,意明設教備明修行滯障節級安危,然發心者一時摠頓修,居一時一行之內,非是要從節級次第來修,以摠別同異成壞六相法,圓融可見,於此六字三對法中,一字有六,且如人類之,餘可准知,如一人身具足是六相。頭、身、手、足、眼、耳、鼻、舌等,用各別是別相。全是一身一四大,是摠相,一空無體,是名同相。不廢如是同無異性,頭、身、手、足、眼、耳、鼻、舌等用有殊,是爲異相。頭、身、手、足、眼、耳、鼻、舌等共成一身,名爲成相,但隨無作緣有,各無自性,無體無相,無生無滅,無成無壞,名爲壞相。又一切衆生名爲摠相,愚智區分,名爲別相,皆同佛智而有名爲同相。隨執業異名爲異相,所因作業受報得生,名爲成相。心無所依業體無生,名爲壞相。又十方報佛,名爲摠相,衆寶所嚴身土差別,名爲別相。同一法身理智無二,名爲同相,智隨行異,名爲異相。成就衆生,名爲成相,能所皆無,無得無證,名爲壞相。又以一智慧該收五位,名爲摠相,行解昇進,名爲別相。同佛根本智,名爲同相,修差別智,名爲異相。成大菩提具普賢行,名爲成相,智體無依用而不作,名爲壞相。又三世久劫差別,名爲別相,以智普觀在一剎那,名爲摠相。隨業長短,名爲異相,情亡見盡,長短時無,名爲同相,智無依住,名爲壞相。應根與法,名爲成相,約擧五翻六相同異。自餘一切法准此例知。又明一字中有六相義互爲主伴,十玄義,亦在此通。一同時具足相應門,二一多相容不同門,三諸法相卽自在門,是其義也。六相義 、此一字中有六相一切字一切法皆有此六相若善見者,得智無㝵摠持門,於諸法不滯有無斷常等障,可以離情,照之可見,此六字義闕一,卽理智不圓,是此初地中觀,通世閒一切法門故。第二離垢地將釋此地,約作五門分別。一釋地名目,二明此地修何行門,三明善財表法,四明此地於三界中得何界解脫,五隨文釋義。一釋地名目者,何故名爲離垢地?爲此位治上上十善戒,上上十善戒卽法身性戒能自體無垢故,故名離垢地也。二明此地修何行門者,以戒波羅蜜爲主,餘九波羅蜜爲伴。三明善財表法者,善財此位中知識號普德淨光夜神,此是女天,在菩提場內,善財得菩薩寂靜禪定樂普遊步解脫門。凡是夜神、河神、海神、地神,摠是女神,表慈悲位,明此十地蘊積大悲滿淨光夜神者,爲滿普賢願行故,夜神者,常居生死大夜破一切衆生長迷暗故。神者,其智應眞,號之爲神。此女天在菩提場內者,明以法身妙理爲戒體故。善財得菩薩寂靜禪定樂普遊步解脫門者,明以性戒遍周行齊法界不爲而用對現色身常處世閒不染塵垢,故爲名也。以體用恒寂故,以禪定是體遊步是用樂是法樂,此神住菩提場內者,爲上上十善是全體菩提法身妙理。又是初歡喜地婆珊婆演底夜神本發心之師,明一切發心以菩提妙理爲體故。四明此地於三界中,得何界解脫者。若以菩提無作之體,卽三界六道摠通解脫,是摠相義。若也別相論之,善知三界法差別者,卽以戒體能治欲界煩惱,以菩提妙理現前,且能觀欲界煩惱行相,以菩提妙理且治欲界惑習故,色、無色二界,三地位中修八禪定,方明此色無色界行門。若不如是別別修行,但以菩提無作用,不能簡知三界所染行法,卽於三界法不能了達,便同聲聞外道,無大智故。是故此地修戒治欲界煩惱。三地修八禪,治色、無色界煩惱,初地明凡夫發心,但有大志樂忻求大法故。三地修八禪者,明上界禪,皆息想安定,心而住禪,菩薩不息,任體自寂禪,捨彼息心住理自寂,稱菩提故。凡上二界禪,隨其淺深,皆有息心想伏,隨寂靜住。第四禪中無出入息,唯白淨妙色現前,水火風三災不至,爲念亡想滅無此業故,唯有色界業在。五隨文釋義者,於中復分爲二,一長科經意,二隨文釋義。一長科經意者,於此第二地中,長科爲六段。一諸菩薩聞此已下,有五行頌,明諸菩薩聞法歡喜分。二爾時已下,一段有四十三行經,明已修初地欲向第二地捨惡從善分。三佛子已下,一段有三十九行半經,明第二地中善持上上十善分。四佛子已下,有三十九行半經,明第二地中起慈悲衆生分。五佛子已下,一段有三十一行半經,明正入第二離垢地得見多佛分。六說頌已下,有四十二行頌,明重頌前法及請說第三地分。二隨文釋義中,從初五行頌中,大意有三,一菩薩聞說初地法歡喜,二散華稱讚,三解脫月知衆心請說第二地,其義如文自具。第二於捨惡從善段中,四十三行經,復分爲兩段。一從爾時金剛藏已下,至以此十心得入離垢地,有四行半經,以十心,修第二地向。二佛子菩薩住離垢地已下,至令他修者無有是處,有三十八行經,明第二地菩薩種性自身口意業調善順十善心,具慈悲分。十善者,身無殺盜婬,意無貪嗔癡,口無妄言、綺語、惡口、兩舌,如欲界十善散善修,色界、無色界十善幷修定業以息想方至。第三佛子已下,三十九行半經,明善持上十善分中,復分爲三段。一佛子已下,至如是方便菩薩當學,有十四行經,明此位菩薩持十善道分,於此段其意有六。一念十不善是地獄畜生。二念十善業道得生,三界至有頂天,此十善通修非想頂,摠名有頂。三上品十善畏苦修眞得聲聞乘,得出三界有爲心,伏盡三界煩惱入變化生死,有入滅定經劫不覺。四上品十善自覺緣生不具慈悲成獨覺乘,亦得變化生死爲根利故,迴向大菩提,易經十千劫。五上品十善修廣大願不捨衆生求佛大智成菩薩行。六上上十善修一切種智淸淨故,成十力、四無畏故,名爲最上乘。以上生天及出世有此五種十善業道。二佛子此菩薩摩訶薩已下,至無邊大苦聚,有二十三行經,明行十不善業各有二種因果,如經具明。又十不善中,亦有上中下三品因緣,受苦不同,如經自具。三是故菩薩作如是念已下,至令住其中,有兩行經,明菩薩自行十善亦教化他行十善業分,如上上十善者,明依智發心,自餘三品雖皆離三界業得出三界果,皆依空發心,漸求佛智,方入普賢願行,爲三乘中,菩薩,願行雖廣,爲未盡佛智故皆有限量。如三千大千國土爲佛報境者。以是義故,與佛智中行普賢行者全別,三乘以觀空及五位行門忻理至理,方忻如來種智之門然,更須入普賢願行,卽佛果在十信五位後,云滿三祇方至。若不迴心者,俱在門外草庵,上上十善一乘之門,卽以如來一切處不動智佛,以爲信心,十住位中卽入如來智慧之果,十信五位皆以佛果大智,以成行門,卽以如來普光明智,以成十住、十行、十迴向、十地、十一地爲體,卽佛果與普賢行同資,以智體圓明出情見故,非三世攝。是以法華經爲迴三乘令歸智海,卽以龍女表之。此經頓示佛門,卽如善財所表,善財雖遍巡諸友,然不動足於覺海之前,慈氏雖受一生成佛之功,然不離一念無前後,無生智海。此是乘一切智乘,古今見盡,情存前後不入佛智之門,且住草庵,止於門外。論主頌曰:一切衆生金色界白淨無垢智無壞智珠自在內衣中只欲長貧住門外廣大寶乘住四衢文殊引導普賢扶肥壯白牛甚多力一念遍遊無卷舒如是寶乘不能入但樂勤苦門前立不覺自身常住中遣上恒言我不及第四段中四十行經,明第二地中,起慈悲分。復分爲十段。一佛子已下,有四十行經,摠有十種慈念衆生心,十種念衆生苦道,令安在十種樂中,如經自具。次第作十種復作是念:是如身邊二見見取、戒取,摠依邪見起故,標在其首。六道三界無明,摠依名色見惡慧惡欲,生離佛意者,明根隨境變,迷自佛智故,我拔出如是險難,令住無畏一切智城,明念苦興悲,令達本智故。又作是念:一切衆生爲大瀑水波浪所沒者,明因愛水所沒故,入欲流、有流、無明流、見流、生死迴澓者,明摠因愛河漩流漂轉故,湍馳奔激不暇觀察者,明前四流峻速逐境,從見起諸妄業,無暇起觀而調伏之故,爲欲覺恚覺害覺隨逐不捨者,明此三種惡作流依身見羅剎於中執將永入愛欲稠林故。明因身等五見俱生,五見俱生,六十二見齊起。六十二見者,依毘婆沙說,五蘊中各起四見,四五二十,三世各二十通爲六十,通身卽是神身異神二見,摠爲六十二見,且於色蘊中卽色是我,離色是我,我中有色,色中有我,乘自佛智經五位見諦漸明。復有五因,有五箇果,此約本五上立通爲十,都有百一十法門,皆有迷障愚癡等法,一如善財童子擧行所障待至彼位具明。如是名爲隨位進修未得自在愚癡直,至佛果,所謂筭數廣大愚,隨好光明功德分量廣大愚,唯佛窮果方始了知。如阿僧祇品、隨好光明功德品,如來自說者是。如是隨地位中進修迷障,至善財表法知識一一對行具明,令易解故,隨逐邪道故。又一切衆生人、天、魔、梵、聲聞、緣覺、淨土菩薩,皆是邪見,但爲苦樂不同,皆非正見行。顚倒行者,四倒八顚倒等是。猶如盲人無有導師者。明菩薩觀迷起悲求出要道慧濟群品,已下可知。入魔境界者,五蘊魔煩惱魔死魔天魔是也。惡賊所攝者,六根逐境起諸邪見是也。隨順魔心遠生迷眞妄取名色,身見、邊見、戒取見,取邪見,常自籠網輪轉苦流愚癡稠林所迷者,如一切衆生愚癡稠林所迷。大要約有八萬四千大體摠論,一迷等虛空迷,爲迷自身,如來普光明本智慧海,卽等法界虛空界摠迷如是愚癡廣多蔽障本智,故號稠林。如入位菩薩迷道愚癡,隨五位上進修因果有一百,以五位中,各有十種波羅蜜,以爲昇進之行體,如十住中,從十信以後修方便三昧,是修十住中初發心住向正入初發心住果。所謂得憶念諸佛智慧光明,是入海門國,觀修治地住向觀察一切衆生海是淸淨法界海,得普眼法門,是正入治地住果,如是五位五十箇法門,皆有二種因果,都有一百箇昇進法門。又從初發心生死稠林故,標之爲首。若明此諸見無體,諸見卽是法界緣生,起唯法起,見唯法見,隨智而轉所緣,三界六道諸不善道,摠由此五種生。若了卽入佛知見,已後諸煩惱摠無有生。如是五見相破壞者,是離世閒業,因此五見而生鬪諍嗔恨,如因貪便起邪命,如三毒因起貪嗔癡業,惡業增盛,名爲熾然,淸涼涅槃者,業亡智現卽樂。又擧愚癡重闇妄見膜者,摠明多迷障業爲迷名色以障正智。又擧墮地獄、畜生、餓鬼者,明由前迷障妄墮地獄,此謂十八地獄。十八者、鑊湯、鑪炭、刀山、釰樹、黑闇、寒冰、火車、火輪、鐵網、銅柱、沸屎、拔舌、釘身、吐火、飮銅、愚癡、火城、灰河等已上十八種地獄。約心所作惡業處卽受之。入惡見網中者,明衆我五蘊中各具有此四如是,諸見皆依身所起。是故此經云:無身亦無見,得佛無上身。將入愛欲稠林者,明一切生死皆從愛欲所生故,爲生死多故如稠林,一剎那閒八百生滅,心齊起流注不絕,剎那時盡生滅齊生,於所貪愛,深生染著者,明深作生死業轉轉不休故。我慢原阜者,慢有七慢,慢慢、憍慢、過慢、畀慢、我慢、增上慢、邪慢。原阜者,明慢上更加慢及過慢等,名之曰阜。如世平地更有高地,其上平坦曰原,原上更高爲堆,堆上更高爲阜,明我慢上加六重慢,此爲阜也。安六處聚落者,憍慢原阜上,更加眼耳鼻舌身意,取著名色境,增長苦因已下十四行經,如文可解。此十段經,明此地中觀苦起悲救護分。第五佛子已下,有三十一行半經,明此地菩薩以願力得見多百千佛分。於此段中復分爲十段。一佛子已下,至那由他佛,有三行半經,明此位菩薩以願力得見多佛分。二於諸佛所已下,至亦以供養一切衆僧,有兩行半經,明以二心五事之供佛及僧分。此中佛法僧者,以毘盧遮那爲佛寶,文殊師利爲法寶,以普賢行爲僧寶,摠攝三乘人天六道三寶,摠在此三寶中,皆從普賢隨行教成故。三善根已下,至布施持戒淸淨滿足,有四行經,明重受十善戒分。此明初地亦受上上十善,此更重明鍊磨。四譬如眞金已下,至持戒淸淨滿足,有三行半經,明擧鍊眞金更加礬石更明淨喩。五佛子已下,至但隨力隨分,有兩行半經,明此位菩薩所行之行分。六佛子已下,至一切智智,有六行半經,明此位菩薩受職分。七又作是念已下,至一切智智依止者,有兩行半經明此位菩薩自知道得殊勝分八是菩薩已下至以爲眷屬有四行半經,明此菩薩亦能捨家妻子出家得千三昧得見佛分。九若以菩薩殊勝願力已下,至不能數知明以勝願力見佛過前依報業力分。十爾時已下,明金剛藏說頌分。第六說頌已下,有四十二行頌,復分爲五段。一質直柔軟及堪能已下,至爲諸佛子已開演,有三十行頌,明頌前十段法門兩行一頌,如文自具。二佛子已下,至第二地中之行相,有四行頌,明大衆聞法興供分。三是諸菩薩已下,至願爲演說第三地,有三行頌,明諸菩薩聞第二地,又請說第三地法分。四與法相應諸智業已下,至佛淸淨行願皆說,有三行頌,明諸菩薩同請說分。五時解脫月復請言已下,有兩行頌,明解脫月重請說第三地分。如上云一切種者,以加行熏修種一切智,卽是根本智。又智者明以根本智加行成差別智,如根本智因三昧現故,差別智由以根本智觀察加行力修成。若不一一以加行觀察力大願力,卽根本智卽滯寂,聲聞同乘,故無有用也。第三發光地將釋此地,作五門如前地。一釋地名目者,何故名爲發光地?明此地修色、無色界八禪定,善達色無色界,世閒禪體識相對治,明達三界障惑分,明益令智慧明淨故。故名發光地。爲從初地二地以善達欲界中隨纏法,於三地善達色無色界四禪八定法門,得出三界,智慧光明現前故。故名發光地。若但修治欲界煩惱,不修八定達色、無色界,由有上二界障在,不名發光,爲此地修三界業障盡故。故名發光地,以定能發慧光故。二明此地修何行門者。以忍波羅蜜爲體,餘九爲伴。此明三界業障盡故。以此忍名爲順無生忍。若也初發心住得佛智慧現前,名初生諸佛智慧家,已十住、十行、十迴向,摠得無生忍,是摠義。若也麤細進修言之地前三賢,名爲以佛智慧調伏,名爲伏忍,初地二地三地名順無生忍,自四五六地得出三界及世閒障亡方名得無生忍,七八九地方名無功用寂滅忍,十地悲智圓該位同諸佛。三明善財表法者,善財於此位中得見喜目觀察衆生夜天神,在去菩提場不遠,坐蓮華藏師子之座,善財得大勢力普喜幢解脫門,表初地初入地位初發心,第二離垢地是初會菩提之體爲戒體,第三地是依菩提之理修忍,忍是行首故。故去菩提場不遠,以菩提成忍行故,坐蓮華藏師子之座,蓮華表在行無染,師子明依主義也。號喜目觀察衆生者,明法忍行慈也。夜天神者,如前釋也。善財得大勢力普喜幢解脫者,明出三界障盡法忍成滿貪嗔忿恨惑不能生故,法忍現前有大勢力故。普喜幢解脫者,明能摧壞自他煩惱故,於諸境界不傾動故,於諸違順成法樂故。四明此地於三界中得何界解脫者,此得三界解脫,爲前二地對治欲界,此三地次對治上二界,八禪摠是三界障盡故。以四地修三十七助道觀,五地修十諦觀,六地修十二緣生觀,學出世中世閒智慧故。五隨文釋義中,二義如前。第一長科經意者,於此段發光地中,長科爲七段。第一爾時金剛藏菩薩已下,至得第三地有五行經,明從二地修第三地向起十種心分。第二佛子已下,非但口言而可淸淨有五十二行半經,明正住第三地觀諸有爲法及於一切衆生起慈悲幷貴法重人能入火坑受苦樂聞法分。第三佛子已下,至而無所樂著有十行半經,明住發光地修色無色界四禪八定隨順法性而行無所著分。第四佛子已下,至亦復如是,有兩行經,明此位修慈悲喜捨四無量心分。第五佛子已下,至明以願力而生其中,有三十三行經,明住此地以修禪定獲通力六根淸淨分。第六佛子已下,至而說頌言,有三十行經,明此位菩薩見佛廣狹及受職分。第七而說頌言是說頌分,於此七段經中。第一爾時金剛藏菩薩已下,有五行經,明從第二地,修第三地向,起十種心,如經自具。第二佛子已下,有五十二行半經,於中復分五段。一從佛子菩薩摩訶薩住第三地已下,至是爲十,有十九行經,明觀有爲苦無常以十種哀愍衆生分。二菩薩如是見衆生界已下,至究竟涅槃之樂,有七行半經,明菩薩念度衆生以何方便安置何處令得究竟涅槃之樂分。三便作是念已下,至如是觀察了知已可,有五行經,明菩薩所念知安置衆生之究竟處分。四倍於正法已下,至觀察修行可,有十九行經,明菩薩欲度衆生倍勤修求法身命能捨入大火坑無苦分。五此菩薩已下,有兩行經,明決定修行非但口言分。新華嚴經論卷第二十四丙午歲分司大藏都監開板 1)23권 끝 부분에서 제4단락의 57행 반의 경문을 열두 단락으로 나눈 것 중 여섯째이다.
2)“앞서의 열 가지다함 없는 원을 10진구로써 성취함을 밝힌 분이다”라는 구절은 고려대장경 본에는 없으나 현토본의 내용을 따른 것이다. 3)이 부분은 고려대장경 원문에는 17행 반으로 되어 있으나 앞 권에서는 18행으로 이미 포기하였고, 각 단을 더해보아도 18행이 되므로 18행으로 고치는 게 옳을 듯하다. 4)5근과 촉(觸)ㆍ수(受)ㆍ상(想)ㆍ행(行)을 말한다. 5)앞 권에서는 이 부분을 28행 반이라고 하였으나 14행+6행 반+7행 반이면 28행이 맞는다고 보아야 한다. 6)총ㆍ별ㆍ동ㆍ이ㆍ성ㆍ괴가 여섯 글자이고, 총별ㆍ동이ㆍ성괴가 3대법이다. 7)22권의 제1 환희지(歡喜地) 다음으로 이어지는 과목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