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심: 마음대로 안 됨. *희작: 장난삼아 지음. *양주가학: 여러 가지 좋은 일이 겹침.
고려시대의 걸출한 문인 백운거사(白雲居士) 이규보(李奎報, 1168~1241)가 ‘장난삼아’ 지었다는 작품이다. 하지만 작품 속의 상황을 보면 장난 치고 있을 상황이 아니다. 엎친 데 덮친 데다, 앞앞이 한숨이요 구석구석이 죄다 눈물이다.
한창 젊어서 정력이 불끈불끈 넘쳐날 때는 너무 가난하여 아내에게조차도 남자 대접을 받지 못했다. 돈을 좀 벌고 나니 기생들이 앞에 줄을 죽 섰지만, 이미 늙고 힘이 없다 보니 그림 속의 떡이나 다름이 없다. 어디 야유회라도 가려고 하면 갑자기 장대비가 마구 쏟아지고, 집에서 탱자탱자 지내는 날엔 하늘이 쓸데없이 시퍼렇게 맑다. 배가 터지도록 먹고 나면 느닷없이 제비초리에다 곰발바닥이 쏟아져 나오고, 목구멍에 종기가 나면 팔자에도 없는 죽엽청주(竹葉淸酒)가 밀어닥친다. 보물을 헐값으로 팔고나면 시세가 갑자기 뛰어오르고, 고질병을 가까스로 고치고 나면 이웃집에 명의가 이사를 온다.
세상만사가 다 그런 것! 도대체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 하지만 장난삼아 시를 지으면서 이렇게 놀 수가 있었으니, 되는 게 아무 것도 없는 것은 아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