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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16장 주석
예수의 부활 (마가복음 16:1-8)
아마도 안식일이 제정된 이래 이와 같은 의미심장한 안식일은 일찍이 없었을 것이다. 본 장(章)의 첫 마디에 "안식일이 지나매"라고 말씀하시었다. 이 안식일에 우리의 주 예수께서 무덤 속에 누워 계시었던 것이다. 그것은 예수께 편히 쉬실 수 있는 안식일이었고 침묵 속에서 보낸 안식일이었다. 그것은 그의 제자들에게는 눈물과 두려움 속에서 보낸 비참한 안식일이었다. 이때처럼 하나님께서 가증스럽게 보시는 안식일 성전 예배도 없었을 것이다. 전에도 그런 가증스런 예배를 드린 일이 있었지만 지금 그들이 드린 예배는 말할 수 없이 가증한 것이다. 성전에서 유대교인들을 위해 예배의 사회를 맡아 인도하는 대제사장들은 그들의 손에 피가, 그리스도의 피가 가득히 물들었다. 이러한 안식일이 지난 후 한 주간의 첫날은 지금 신세계의 장을 연 첫날이 된 것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다음의 사실들을 살펴보도록 한다.
Ⅰ. 그리스도를 섬겨왔던 선량한 여인들은 지금 미신을 섬기는 자로서가 아니고 경건한 자로서 그의 무덤을 찾아온 것이다. 그들은 "매우 일찍이 해 돋은 때에" 무덤으로 찾아 온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그렇게 새벽에 무덤을 찾은 것은 그들이 멀리서 걸어왔거나 도중에서 어떤 방해를 받을까봐였을 것이다. 그들은 "향품을 사다 두었다가" 예수의 무덤을 찾아온 것은 그의 시신을 그들의 눈물로 적시기 위함일 뿐만 아니라(아무것도 이보다 그들의 슬픔을 달래 줄 만한 것은 없는 것이다). 그 시신에 향유를 바르기 위해서였다(1절). 니고데모는 몰약과 침향 섞인 것을 많이 사가지고 와서 예수의 상처에 바르고 피를 닦았다(요 19:39). 그러나 선량한 여인들은 그것까지는 생각하지 못하였다. 그 여인들은 향품을 사가지고 왔는데 아마 그것은 종류가 다른 것이었을 것이고 주님의 시신에 바르기 위한 향유였을 것이다. 그리스도의 이름을 향하여 보여 주는 다른 사람들의 존경이 그 이름을 향하여 우리의 존경을 보이는데 장해를 받아서는 안 되는 것이다.
Ⅱ. 무덤 문의 돌을 굴릴 것에 대한 그들의 걱정과 그 걱정이 불필요하게 됨. 그들이 "서로 말하되 누가 우리를 위하여 무덤 문에서 돌을 굴러 주리요"하였다(3절). 그 돌은 큰 것이었기 때문에, 그들이 힘을 합해도 굴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들이 이 사실을 전에 알았어야 했다. 그렇다면 그들은 그 돌을 굴릴 사람을 누구라도 데리고 왔을 것이고 그들만이 오지를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 보다도 더 큰 문제가 그들에게 있었다. 그런데 그들은 전연 이것을 생각해 낼 수 없었던 것이다. 그것은 바로 무덤을 지키는 로마 군병들이었다. 만일 그들이 조금 일찍이 왔더라면 그들은 놀라 달아나고 말았을 것이다. 그리스도에게 대한 그들이 사랑이 그들로 하여금 이렇게 무덤을 찾아오게 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무덤을 찾아 왔던 시간에는 이 두 가지 난제들이 해소되었던 것이다. 그들이 알고 있던 무덤의 돌문과, 그들이 알지 못했던 파수병들이다. 옮겨진 것이다. 그들이 "눈을 들어본즉 돌이 벌써 굴려졌으니." 이것으로써 그들을 맨 먼저 놀라게 한 것이다. 거룩한 열심을 가지고 그리스도를 부지런히 찾는 자들은 그들의 길에 놓여있던 어려운 문제들이 이상하게 해소되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기대 이상으로 그들 스스로 도움을 받게 되는 것이다.
Ⅲ. 그들은 천사에 의하여 주 예수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아나시고 그의 무덤을 떠나셨다는 확증을 듣고 그를 떠나 예수를 찾아오는 자들에게 그 소식을 전하였다.
1. 그들은 "무덤에 들어가서" 전에 예수의 시신이 놓여 있던 곳에 없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죄 값을 치러 주셨고 그의 부활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유케 하시었다. 그것은 우리를 자유롭게 하시기 위함이었다. 그 일로 말미암아 그 의도했던 모든 목적들에 대하여 만족하시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논쟁의 여지가 없는 증거로 말미암아 의문은 풀린 것이다.
2. 그들은 "흰옷을 입은 한 청년이 우편에 앉은 것을 보았다." 천사가 젊은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났다. 천사들은 태초에 창조되었지만 늙는 법이 없고 항상 젊은 상태에서 아름답고 힘이 있는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영화된 성도들도 천사들과 같은 것이다. 그들이 무덤에 들어가자 이 "흰옷을 입은 청년이 우편에 앉은 것을 본"것이다. 그 사람을 보자 그들은 힘이 되었으나 두려워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여러 번 우리에게 위로의 문제들이 되었어야 할 것들이 우리의 실수와 오해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공포가 되는 것이다.
3. 천사는 그리스도의 부활의 승리를 기뻐해야 하고 두려워 떨 일이 아님을 믿게 함으로써 그들의 두려움을 해소시켰다(6절). "청년이 이르되 놀라지 말라." 죄인이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을 천사들이 기뻐하는 것처럼 그들은 또한 성도들로 인하여 위로를 받는 것이다. 천사는 다음과 같은 사실로 인해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였다.
(1)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진실하게 사랑하는 자들이므로 당황하는 대신에 위로함을 받으라고 말하였다.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6절). 그리스도를 추구하는 신자들은 그를 올바로 이해하고 그 고난에 동참하고자 특히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는 것이다"(고전 2:2). 그리스도께서 지상에서 위로 올리워 가신 것은 모든 사람들을 자기에게로 이끄시기 위함이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이방인들이 구하는 군기이다. 천사가 예수를 말하면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라고 한 것을 주목하라. 그 일은 지나갔다. 장면은 바뀌었다. 당신은 그리스도의 부활의 기쁜 소식은 믿을 수 없는 일처럼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슬픈 자리에서만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는 연약한 가운데 십자가를 지셨다. 그러나 그 일이 그로 하여금 능력 가운데 부활하도록 하는 장해가 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찾는 자들은 그를 놓칠까 염려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 그러나 그는 영광을 받으셨다. 그리고 그의 고난의 수욕은 그가 높임을 받은 영광을 감소시킬 수 없는 것이다. 그의 영광은 그의 고난에 대한 모든 비난을 씻어버리고도 남음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가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신 후 그는 결코 자기의 고난을 덮어씌운 세마포를 치우시지 않으시고 자기의 십자가를 말하기를 부끄러워 않으신 것이다. 여기 그리스도의 부활을 선포하는 천사는 그에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라고 하였다. 그리스도께서 자기 자신에 대하여 말하기를 "산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계 1:18)하였다. 그리고 그는 하늘의 천군 천사들의 찬송 가운데 "어린 양"으로 나타나시었다(계 5:6).
(2) 천사는 그 여인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면서 그의 몸에 향유를 부을 것이 아니고 다시 살아나신 그를 기뻐하라고 하였다.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6절). 그러면서 그를 그들에게 보여 줄 수 없지만 곧 그를 만나보게 될 것이라 하였다.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6절).
4. 천사는 그들에게 빨리 이 소식을 그의 제자들에게 전하라고 분부하였다. 그러므로 그들은 사도들 중에 사도들이 되었던 것이다. 그것은 그들이 십자가 위에 달리신 그리스도와, 무덤에 들어가신 그리스도와, 무덤 안에 계신 그리스도를 섬긴 그들의 사랑과 신앙에 대한 보상인 것이다. 그들은 첫 번째로 그리스도를 찾아왔으며 맨 먼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섬겼던 것이다. 제자들 중에 아무도 감히 그의 무덤에 가까이 오지를 않았으며 그를 찾지 않았던 것이다. 밤에 무덤에 와서 그의 시체를 훔쳐갈 위험이 있었으므로 몇 여인들 외에는 아무도 무덤에 가까이 할 수 없었다. 그 여인들은 "돌을 굴릴"만한 힘이 없음으로 가능했다.
(1) 그들은 달려가서 그의 제자들에게 "그가 살아나셨다"는 사실을 전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그 시간은 그들에게 있어서 침울한 시간이었다. 그들의 사랑하는 선생님은 돌아가시었고, 그들의 소망과 기쁨은 그의 무덤에다 장사지낸 바 되었던 것이다. 그들은 그들의 입장이 아주 절망적이고 그들 자신들이 그들의 원수들의 수중에 쉽게 희생될 제물임을 지각하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에게는 정신이 없었고 아주 막다른 골목에 이르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들 각자가 스스로 자기들의 일을 꾸려나가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천사는 그 여인들에게 "빨리 가서 그 제자들에게 선생님이 살아나셨다"고 전하라고 한 것이다. 그들을 절망 속에서 어서 속히 건져 주시려고 하신 것이다.
[1]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불쌍한 제자들을 인정하시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으셨다. 지금 그리스도께서 존귀케 된 상태에서도 그러시지 않으셨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그들에게 일찍이 이 모든 것이 알려지기를 원하셨던 때문이다.
[2]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제자들이 잘못한 것을 기억하시려 않으셨다. 그의 마음은 고결하신 것이다. 그의 제자들이 냉정히 그를 버리셨지만, 그는 그들에게 이 소식을 속히 전해 주고 싶었다.
[3] 주 예수를 위하여 슬퍼하는 그들에게 때에 알맞은 위로를 전달해 주신 것이다. 그리고 그는 그들에게 자기 자신을 나타내 보이시기를 원하신 것이다.
(2) 그 여인들은 베드로에게 이 소식을 전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 일에 대하여서는 특히 본 복음서의 기자가 주지시키고 있다. 그는 베드로에게 더 관심을 갖고 기록한 것 같이 보인다. 만일 이 소식을 제자들에게 전하려 하셨다면 특히 베드로에게 전하라는 것이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자기 선생님을 부인했던 죄를 회개한데 대한 표로서 그러했을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제자들과 아직도 관련을 가지고 계신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특히 베드로라는 이름을 가리키면서 그에게 전하라 하신 것은 특히 다음과 같은 사유 때문일 것이다.
[1] 그 소식은 그에게 기쁜 소식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다른 어느 제자보다도 그가 더 기뻐할 것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는 자기의 죄로 인해서 슬픔에 잠겨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기의 죄를 회개한 자에게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소식을 듣는 것보다 더 반가운 소식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의 의를 위해 부활하시었기 때문이다.
[2] 이 기쁜 소식이 그에게는 관계가 없는 것처럼 그가 두려워 할까봐였을 것이다. 만일 천사가 다만 "그의 제자들에게 전하라"고 하였다면 불쌍한 베드로는 탄식하면서 "그러나 나는 그의 제자들 중에 하나에 들 만한 자격이 없어. 내가 주를 부인하였으므로 주께서도 나를 부인하실 것이거든"하며 말하였을 것이다. 그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하여 베드로의 이름을 지목하면서 그에게 전하라고 하신 것이다. 그도 다른 나머지 제자들과 마찬가지로 갈릴리에서 그를 뵐 수 있도록 환영을 받을 것이라고 알려 주신 것이다. 참된 개심자에게 그리스도는 대 환영을 받게 될 것이며, 참된 개심자는 그리스도에게 대 환영을 받게 될 것이다. 하늘도 그런 사람으로 인해 기뻐하는 것이다.
(3) 전에 그들에게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대로 갈릴리에서 그를 만날 것에 대하여 모든 제자들에게와 베드로에게 전하여 주라고 분부하신 것이다. 그들이 갈릴리를 향하여 내려가면서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자주 그들에게 들려주시던 말씀 즉 자기가 고난을 당하고 죽임을 당한 후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리라는 말씀을 그들 각자가 회상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그들이 예루살렘에 낯선 사람들과 원수들 사이에 머물러 있는 동안에는 자신들이 처해 있는 불안에서 헤어나올 수 없을뿐더러 이 좋은 기쁜 소식에 대해서도 자유스럽게 즐거워하며 스스로를 위로할 수 없었을 것이다.
[1] 그리스도와 그의 제자들 사이의 만남은 그리스도의 약속에 의한 것이었다.
[2] 그리스도께서는 결코 그의 제자들과의 약속을 잊으시지 않으셨다. 그리고 어느 곳에서도 그가 그의 이름을 기록하는 곳에서는 약속한 축복을 가지고 그의 백성들을 만나 주시는 것이 틀림없는 것이다.
[3] 그리스도와 그의 제자들 사이의 모든 회합에 있어서 그는 언제나 먼저 찾아오시는 것이다. "예수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7절).
Ⅳ. 그 여인들이 이 소식을 그의 제자들에게 전해 준 사실에 관한 기사(8절). "여자들이 심히 놀라 떨며 나와 무덤에서 도망하여" 할 수 있는 대로 빨리 그의 제자들에게 이 소식을 전하려고 한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신 약속에 대하여 무관심하고 믿음을 가지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 자신들에게나 우리의 받을 위로에 대하여 얼마나 많이 우리 스스로가 원수가 되는지 모른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주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자기가 죽은 지 사흘만에 살아나시리라 하시었다. 만일에 그들이 그 말씀에 주의를 하고 믿음을 가졌더라면 그가 살아나신 것을 보리라는 기대와 이 즐거운 소식을 그들이 들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가지고 무덤으로 먼저 달려왔을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두려움과 놀람으로써 이 소식을 듣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제자들에게 이 소식을 전하라고 명령을 받은 것이다. 이 소식을 온 세상에 전파할 사람들은 그의 제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명령대로 아무에게도 이 소식을 전하지 않고 그들이 길에서 만나는 아무에게도 아무 일도 보이지 않았다. "무서워하여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 우리의 불안한 염려는 우리가 그리스도를 섬기고 다른 사람들의 영혼들을 위해 봉사하는 일을 자주 방해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만일 신앙과 신앙의 기쁨이 견고할 때에 우리는 요동하지 않고 봉사 할 수 있는 것이다.
믿지 않는 제자들 (마가복음 16:9-13)
여기에서 그리스도께서 일부 사람들에게 두 번 나타나신 사실에 대하여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제자들은 이 반가운 소식을 좀처럼 믿으려 하시지 않은 것이다.
Ⅰ. 그리스도께서 맨 먼저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나시었다. 막달라 마리아는 역시 맨 먼저 그리스도의 무덤을 찾아갔던 여인이다. 예수와 막달라 마리아 사이의 특별한 대화가 요한복음 20장 14-18절에 자세히 나와 있는 것이다. 이 여인은 "전에 일곱 귀신을 쫓아내어 주신 막달라 마리아"인 것이다. 그리스도에 의해서 그 여인은 크게 용서를 받았고, 많은 은혜를 받았으며, 그 여인도 그리스도를 심히 사랑한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부활하신 후 맨 먼저 자기를 보이신 이 영광마저 그녀에게 베풀어주신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에게 더욱 가까이 접근할 때에 우리는 더 빨리 그리스도를 그리고 그리스도에 관해서 볼 수 있는 기대를 갖게 되는 것이다.
1. 막달라 마리아는 그녀가 목도한 사실을 그의 제자들에게 전하였다. 열 한 제자들에게만이 아니고 그를 따르던 사람들에게 전하였다. "마리아가 가서 예수와 함께 하던 사람들의 슬퍼하며 울고 있는 중에 이 일을 고하매"(10절). 지금이야말로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들이 "곡하고 통회할" 때인 것이다(요 16:20). 그리고 이 사실이야말로 그리스도에게 대한 그들의 큰사랑의 증거였던 것이며 그리스도를 잃은 것에 대한 깊은 슬픔과 감정을 나타낸 증거이다. 그러나 그들이 한 이틀 밤을 "슬퍼하며 울고" 보냈을 때에 그리스도의 약속하신 대로 위로가 그들에게 임한 것이다. 슬픔 가운데 울고 있는 제자들에게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다는 사실보다 더 좋은 기쁜 소식은 전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도 울고 있는 제자들에게 우리가 체험한 사실이나 우리가 그리스도를 만난 사실들을 전해 줌으로써 그들을 위로할 수 있는 자들이 되도록 연구하자.
2. 그들은 그 여인이 전해 준 소식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살아나시고 그 여인에게 보이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이야기는 충분히 믿을 만한 것이었는데 그들은 "듣고도 믿지 아니하였다." 그들은 그 여인이 스스로 꾸며낸 이야기라고 말하거나 그들을 속이는 소리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그 여인이 잘못 보았으며 그 여인이 그를 본 것은 환상이라고 염려하였던 것이다. 만일에 그들이 그리스도께서 여러 번 친히 예언하신 말씀을 믿었다면 그 소식에 대해서 그렇게 불신적인 태도를 보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Ⅱ. 그리스도께서 "저희 중 두 사람이 걸어서 시골로 갈 때" 그 두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었다(12절). 이 기사는 틀림없이 그리스도와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들 사이에 있었던 사건에 대하여 요약하여 기록한 것일 것이다(눅 24:13). 여기에서 그리스도께서 "다른 모양으로 저희에게 나타나시었다고"하였다. 그가 평상시에 입으시던 옷이 아니고 여행자의 모양으로 나타나시었을 것이다. 마리아가 동산지기인 줄로 착각한 것처럼 동산지기의 옷차림으로 나타나셨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자기의 용모에는 변함없이 나타나시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자기의 용모에는 변함없이 나타나시는 것이다. "저희 눈이 가리워져서 그인 줄 알지 못하거늘, 저희와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저희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보았다"(눅 24:16-31).
1. 이 두 증인들은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이 증거를 전하였다. "두 사람이 가서 남은 제자들에게 고하였던" 것이다(13절). 그들은 스스로 만족하여 그들이 찾은 이 만족을 그들의 형제들에게 전하여 주기를 바랐고 그들이 받은 위로를 그들에게 전하여 주기를 바랐던 것이다.
2. 이 사실은 그들 모두에게 신임을 얻지 못했다. "두 사람이 고하였으되 역시 믿지 아니하니라"(13절). 그들은 그 두 사람이 잘못 보았다고 의심하고 믿지 않은 것이다.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증거가 점차적으로 주어졌고 신중하게 받아들여진 것도 거기에 하나님의 현명하신 섭리가 계셨던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제자들은 훗날에 더욱 확신을 가지고 담대히 이 부활을 전파할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더디 믿는 자들에 대해서도 믿어 줄 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곧 바로 믿는 자들은 믿음이 좋게 생각되지만 그들의 간증은 빈약할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이 처음에 믿지 않은 것이나 나중에는 더욱 회개하는 마음을 가지고 믿은 것이다.
파송을 받는 제자들 (마가복음 16:14-18)
여기서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살필 수 있다.
Ⅰ. 그리스도께서 자기의 부활의 진리를 믿지 않았음에 대하여 그의 사도들을 꾸짖으셨다. 그 제자들이 모두 모여서 "음식 먹을 때에 예수께서 저희에게 나타나사 저희의믿음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함을 꾸짖으시니 이는 자기의 살아난 것을 본 자들의 말을 믿지 아니함일러라"(14절). 여기에 대해서는 마태복음 28장 17절에서도 생각해 본 것이다. 복음의 진리의 증거는 완전하고 분명하기 때문에 그것을 받지 않는 자들은 그들의 불신앙에 대해서 그리스도에게서 책망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책임을 그 진리의 빈약함이나 부족함에 돌릴 수 없고 그들의 심령의 완악함이나 무감각이나 우둔함에 있는 것이다. 비록 그들이 아직 부활하신 예수를 직접 목도하지는 않았지만 그들은 "자기의 살아난 것을 본 자들의 말을 믿지 아니함"으로 책망을 받은 것이다. 아마도 이것은 그들의 마음이 교만한테 그 원인이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아마 생각하기를 만일에 그리스도가 살아나시었다면 자기들에게 먼저 이 영광의 사실을 보이고 같이 즐거워하실 것이 아니냐고 하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자기들을 제쳐두고 다른 사람들에게만 그렇게 보였다고 하는데 어떻게 그 사실을 믿겠냐고 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 날에 우리는 우리의 불신앙에 대하여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살아나신 후 그를 보지 못하였다"는 변명은 충분할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를 본 사람들의 증거를 믿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
Ⅱ. 그리스도께서 그의 제자들에게 중보자이신 자기를 통해서 하나님이 이루신 이 화해의 기쁜 복음을 사람들에게 전파하여 그의 나라를 수립하도록 그들에게 임명하시었다.
1. 그들이 누구에게 복음을 전하여야 했을까? 지금까지 그들은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들을 위해서 보내졌고" "이방인들"에게는 금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들이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임명을 받은 것이다. 그 복음을 받을 수 있는 자면 이방인들이나 유대인들이나 다 복음의 대상인 것이다. 그들에게 그리스도에 대해서 그의 생애의 역사와 죽음과 부활을 가르치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그의 생애의 의미와 뜻을, 그리고 이 사실들이 인간들에게 무슨 유익이 있나를 가르치라는 것이다. 그리고 예외 없이 누구나 오라고 초대하고 그들과 구원의 은혜를 나누라는 것이다. 이것이 복음인 것이다. 이 복음이 온 세상에 누구에게나 파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 일을 열 한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가 후에 세웠던 칠십 문도들과 더불어 이 복음의 사역을 분담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또 다른 사라들을 보내어 온 세상에 골고루 구석구석 빈틈없이 복음을 전하도록 하신 것이다. 그리고 오락이나 흥미로 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전달하시는 메시지임을 의식하고 위엄 있게 전하고 인간들이 참 구원과 행복을 얻을 수 있음을 전하라는 것이다. 할 수 있는 대로 많은 자들에게 전파하고 그들이 또 다른 자들에게 전파하게 하여 이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고 환영받는 우주적인 복음이 되게 하라는 것이다.
2. 그들이 전파하게 되는 복음의 요지는 무엇인가? 세상에 대하여 생과 사, 선과 악을 전개하여 모든 인간이 비참하고 위험한 상태에 있어 그들의 주권자들에게 정죄 되었고 그들의 원수들에게 정복을 당하고 노예가 되어 있음을 전하라는 것이다. 이것은 곧 그들이 구원을 얻게 하기 위함인데 인간들은 자기들이 잃어버려진 상태에 있음을 먼저 알아야 구원의 필요성을 절감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가서 전파하라는 것이다.
(1) 그들이 복음을 믿으면 그리고 자기들이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되기 위해 자신들을 포기할 수 있다면, 그리고 그들이 악마와 세상과 육신과 절교하고 그들의 선지자로서, 제사장으로서, 왕으로서 그리스도에게 헌신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 그들의 언약의 하나님으로서 공경하여 이 언약을 신실하게 믿고 순종하면 그들이 죄와 죄의 세력에서 구원받을 수 있으며 그들은 멸망을 당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진실한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한 사람들은 세례를 받도록 명령하시었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세례의 의미보다 구원받은 사람의 표로서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시몬은 믿고 세례를 받았지만 구원을 못 받았다(행 8:13).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고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라"(롬 10:9). 말씀은 여기에서도 같은 의미를 보이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복음의 진리를 승인하지 않으면 안 되며 복음의 요구에 동의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2)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16절). 만일에 하나님께서 자기의 아들에 대하여 기록하신 말씀을 믿지 않고 받지 않는다면 그들은 구원의 다른 길을 기대할 수 없고 불가피하게 멸망을 당하게 되는 것이다. 복음을 멸시한 죄의 선고는 율법을 파괴한 죄에 더욱 가중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복음 그 자체가 기쁜 소식인 것이다. 그리고 다른 무엇보다도 치료책에 대한 불신앙이 인간을 정죄하고 저주하는 것이다.
3. 그들이 전파하여야 할 복음 전도를 수행하려면 무슨 권세를 그들이 받아야 될까?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라 하였다(17절). 믿는 사람이면 누구나 다 이런 표적을 행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남에게 복음을 전해 그들을 그리스도에게 인도하는 복음의 일꾼들에게 표적이 따르는 것이다. 이런 표적은 믿지 않는 자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기 위해 나타나는 것이다(고전 14:22). 이 표적은 복음을 더욱 영화롭게 하고 더욱 분명하게 하는 것이다. 복음을 전하는 자들 자신들에게 이런 기적이 나타날 뿐더러 그들을 인해 다른 사람들에게 기적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적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 같은 이름으로 그들은 세례를 받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기도를 드리게 된다. 여기에 몇 가지 특이한 표적들이 언급되어 있다.
(1)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이 능력은 다른 어떤 것보다도 그리스도인들 중에 많이 나타났고, 오랜 후에까지 있었다. 저스틴 마터, 오리겐, 이레니우스, 터틀리안, 미니티우스 페릭스 등의 증언에서도 나오고 있다.
(2) "새 방언을 말하며." 그들이 배우지도 않고 알지도 못하는 방언을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입과 마음으로부터 나오는 기적이다. 복음을 듣지 못한 이방 지대에 복음을 전하면서 필요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이다.
(3) "뱀을 집으며." 이 기적은 사도 바울이 독사에게 물렸을 때에 나타난 바 있다. 그 사실은 그곳 원주민들에 의해 시인한 기적이다(행 28:5, 6).
(4)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이런 기적은 기독교 박해시에 강제로 독약을 마시게 할 때에 무사하였던 일들이 있었다. 이런 예는 교회사에 더러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5)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니라." 그들은 하나님의 보호로 말미암아 자신들이 해를 받게 될 때에 무사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다른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고 기도할 때에 병이 낫는 기적이 나타나는 것이다. 교회 장로들이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위하여 기도할 때에 병이 낫는 일이 많았던 것이다(약 5:14). 그들이 위임받은 그 사역을 수행하기 위해 확신과 용기를 가지고 나갈 때에 이러한 기적으로 복음을 더욱 확실하게 증거하고 효과적으로 열매를 맺게 하여 주신 것이다.
예수님의 승천 (마가복음 16:19, 20)
1. 그리스도께서 하늘로 올리워 가시었다. "주 예수께서 말씀을 마치신 후에"(19절)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전해 주어야 할 말씀을 다 마치신 후에 "하늘로 올리우사." 사도행전에는 그가 구름을 타고 승천하시었다고 기록되어 있다(행 1:9). 그는 중대한 구원의 사업을 완성하고 하늘의 영접을 받으며 하늘로 올리워가신 것이다. 그는 천군 천사들의 환호와 갈채 속에 영광스런 영접을 받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니라." 그것은 그의 위엄 있는 주권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에게 우주를 통치할 수 있는 권세가 부여된 것이다. 지금 그는 창세전부터 그에게 있었던 그 영광으로 영화롭게 된 것이다.
2. 그리스도께서는 이 낮은 세상에서도 환영을 받은 것이다. 그리스도의 이 세상에서 영접되고 믿게 다니 것과 영광으로 올리워가신 일은 동시에 나타난 사실이다(딤전 3:16).
(1) 우리는 여기에서 사도들이 부지런히 주를 위해 일한 것을 볼 수 있다.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쌔." 비록 그들이 전한 말씀이 신령한 것이고 하늘에 속한 것이며 이 세상의 정신과 풍조에 대조적인 것이라 하더라도 그리고 심한 반대에 부딪히게 되며 모든 안전한 보급과 유익이 결핍된다 하더라도 복음 전도자들은 두려워하지 말고 부끄러워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그들은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 열심을 다하였으므로 몇 년 안에 "땅 끝까지 복음이 전파되었다"고 할 수 있었던 것이다(롬 10:18).
(2) 우리는 여기에서 하나님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거하심으로써" 그들이 효과적으로 복음을 전할 수 있게 되었다. 어떤 기적은 사람들의 몸에 나타나게 하였는데 그것은 그리스도의 말씀에 대한 확증이요 어떤 기적은 사람들의 마음에 나타났는데 그것은 성령의 역사로 그들의 마음에 감동을 주시는 것이었다(히 2:4). 이런 것들이 말씀에 따르는 표적들이었다. 세상을 변화시키고 우상을 멸하고 죄인들이 회개하고 성도들을 위로하는 일들이 나타난 표적들이었다. 그리고 아직도 이런 표적들을 따르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그리스도의 영광과 인류의 선을 위해 더욱 더욱 열심히 일하는 것이다. 본 복음서의 기자는 우리를 위해 기도하고 우리가 아멘으로 긍정하도록 가르치고 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시여, 당신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옵시며 당신의 나가가 임하시옵소서 ! 아멘
첫댓글 25일 성탄절에는 기독교의 명절이라 도와주시는 분이 계실줄
알았는데 한분도 도움이 없어서 이대로 카페를 운영할 수 없을 지경입니다
연말인데도 후원이 없습니다 공과금과 지병에대한 약을 사야하고
인슐린을 사야합니다 모두 어려운 시기라고 하지만 통신료를 내야하고
치료를 받아야 카페도 운영 할 수 있습니다 작은 나눔으로 카페지기에게
용기를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평안하시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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