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시편 32:1–11
[서론] 거룩함 뒤의 허물의 가면
오늘날을 살아가는 수많은 현대인과 성도들은 '완벽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 하는 강렬한 욕망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사회적 평판, 체면, 혹은 교회 안에서의 직분이라는 거룩한 가면(Persona)을 쓴 채, 내면의 허물과 상처는 은밀하게 숨겨둡니다.
미국의 문호 나다니엘 호손의 대표작 《주홍글씨》(The Scarlet Letter)에 등장하는 아서 딤즈데일(Arthur Dimmesdale) 목사가 바로 그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그는 모든 교인의 존경을 받는 거룩한 성직자였지만, 내면에는 아무도 모르는 간통의 죄를 숨기고 있었습니다. 7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가식의 마스크 뒤에 죄를 은폐한 결과, 그는 밤마다 심장을 쥐어짜는 통증을 겪었고 체중이 빠져나가 뼈가 드러나는 신체적 장애를 겪었습니다.
본문은 바로 이 딤즈데일 목사처럼 죄를 은폐함으로 스스로 영적·신체적 감옥에 갇혔던 다윗 왕이, 마침내 위선의 가면을 벗어던지고 하나님의 완벽한 용서를 경험한 후 터뜨린 은혜의 환호성입니다.
본문을 통해 성도가 죄를 어떻게 마주해야 하며,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서 어떤 참된 복을 누려야 하는지를 명확히 제시합니다.
첫째, 죄를 가리는 인생에는 뼈가 마르는 실존적 병리가 임한다
본문 5절은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페샤)을 여호와께 자백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하타아)를 아뢰고 내 허물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악(아본)을 사하셨나이다"라고 합니다. 인간의 죄는 본문에 세 가지 단어로 다각적으로 묘사됩니다. 페샤 (פֶּשַׁע, 허물/반역)는 정당한 왕의 권위에 고의로 반역하고 선을 넘어서는 행위를 뜻합니다. 하나님과의 계약을 깨뜨린 반역의 죄입니다. 하타아 (חֲטָאָה, 죄)는 과녁을 벗어나 마땅히 도달해야 할 기준에 미달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창조 목적에 벗어난 모든 왜곡된 행위입니다. 아본 (עָוֺן, 죄악/죄책)은 내면의 도덕적 구부러짐과 마음의 부패, 그리고 그로 인해 따라오는 '형벌과 무거운 죄책의 빚'을 포괄하는 단어입니다. 이러한 죄로 인하여 다윗은 3-4절에서 "내가 입을 열지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빠져서 여름 가뭄에 마름 같이 되었나이다"라고 합니다.
신약의 관점에서 죄의 은폐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빛을 거부하고 어둠 속에 거하려는 상태(요 3:19–20)입니다. 죄를 고백하지 않는 자는 단번에 주어지는 구원의 칭의를 누리지 못할 뿐만 아니라, 성령께서 죄를 깨닫게 하실 때 느끼는 '거룩한 근심(고후 7:10)'을 거부함으로 영적 마비와 관계의 단절이라는 신약적 실존의 절망을 경험하게 됩니다.
철학적으로 죄를 지은 인간은 자아를 지키기 위해 '자기 은폐(Self-Concealment)'를 시도합니다. 그러나 진실을 거부하는 가식의 삶은 정직한 자아와 거짓된 자아를 분열시킵니다. 철학자 키에르케고르가 말한 '죽음에 이르는 병(절망)'처럼, 내면의 도덕적 부패(아본)를 외면할 때 영혼은 스스로 쇠락하고 마침내 "진액이 말라붙는" 신체적·심리적 실존의 파멸을 맞이하게 됩니다.
딤즈데일 목사가 가슴을 쥐어짜며 사위어가듯, 죄를 은폐하는 성도는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통이 끊어진 채 영적 고사 상태에 빠집니다. 위장은 결코 영혼을 보호하는 방어기제가 될 수 없으며, 자아를 말려 죽이는 실존적 감옥일 뿐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둘째, 정직한 자백(탈마스크)을 통해 하나님이 직접 덮어주시는 '칭의'의 은혜가 임한다.
본문 1~2절은 "허물의 사함을 받고(나사) 자신의 죄가 가려진(카사) 자는 복이 있도다 마음에 간사함이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하지 아니하는(하시브)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합니다. 시인이 정직하게 아뢸 때, 하나님은 세 가지 완벽한 용서의 역사를 베푸십니다. 나사 (נָשָׂא, 사함을 받고/짐을 들어 올리다)는 무거운 짐을 옮기거나 제거한다는 뜻입니다.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죄짐을 하나님께서 직접 들어 옮기셨음을 의미합니다. 카사 (כָּסָה, 가리어진)는 은혜로써 덮어 은폐함을 뜻합니다. 속죄소(Mercy Seat)의 피로 인간의 허물을 가려주시는 하나님의 속죄 사역입니다. 하시브 (חָשַׁב, 정죄하지/계산하지 아니하시고)는 장부에 죄의 빚을 기록하지 않고 계산에서 제하여 준다는 법정·회계적 용어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4장 6-8절에서 시편 32편을 직접 인용하며, 행위나 공로가 없는 중죄인 다윗이 오직 은혜로 의롭다 함을 받은 이신칭의(Justification by Faith)를 증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죄짐을 '나사(대속)'하셨기에, 그 피를 믿고 고백하는 성도(요일 1:9)의 죄를 '카사(덮어주심)'하시고, 우리를 결코 죄인으로 '하시브(셈하지 않으심)'하시는 은혜가 완성됩니다.
철학적으로 자백은 가식적 마스크(Persona)를 벗어던지고 절대자 앞에 정직한 자아로 서는 하이데거적 '본래적 실존(Authenticity)'으로의 회복입니다. 또한 용서는 한나 아렌트(H. Arendt)의 사유처럼 과거의 행위가 가져올 당연한 인과응보적 결과(정죄, 절망)를 끊어내는 유일한 영적 파괴력이자 존재론적 해방입니다.
딤즈데일 목사가 마지막 순간 처형대 위로 올라가 가슴을 파헤치고 자백했을 때 그를 옥죄던 악마적 사슬이 깨졌듯이, 성도가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으로 나가 자신의 죄를 정직히 자백할 때 모든 기만과 죄책의 사슬이 끊어집니다.
셋째, 용서받은 자는 억지의 재갈을 벗고 성령의 인도에 따라 자발적으로 순종한다
본문 8-9절은 "내가 네 갈 길을 가르쳐 보이고 너를 주목하여 훈계하리로다 너희는 무지한 말이나 노새 같이 되지 말지어다 그것들은 재갈과 굴레로 단속하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가까이 가지 아니하리로다"라고 합니다.
신약의 성도는 두려워하는 종의 영이 아니라 자녀의 영을 받았습니다(롬 8:15). 억지로 메어야 하는 율법의 멍에나 재갈이 아니라, 내주하시는 성령의 감화와 가르침(8절)에 따라 인격적으로 응답하며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성령 안에서의 자발적 순종을 드리게 됩니다.
철학적으로 미련한 말이나 노새는 외부의 강제적 '재갈과 굴레'가 물려져야만 겨우 움직입니다. 이는 두려움이나 율법의 의무에 얽매여 억지로 순종하는 칸트적 '타율성(Heteronomy)'의 상태입니다. 그러나 용서를 경험한 인간의 순종은 두려움 때문이 아니라, 나를 인격적으로 주목하시는 사랑에 반응하는 최고의 '자율적 선택(Autonomy)'이 됩니다.
본문을 서두1-2절에 두번 반복된 아쉬레(אַשְׁרֵי, 복이 있도다!/오 얼마나 행복한가!)는 또한 본문의 마침표로서 세상의 성공이나 평판이 아닌, 죄를 용서받아 하나님과 인격적 관계를 회복한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진정한 행복입니다.
[결론] 재갈과 굴레를 벗어던지고 기뻐 줄거워 하는 주인공이 되라
호손의 소설 속 딤즈데일 목사는 7년 동안 죄를 숨기며 사형수와 같은 나날을 보냈지만, 처형대 위에서 자신의 참모습을 고백했을 때 비로소 진정한 평안과 자유를 얻었습니다.
본문은 우리에게 선언합니다. 우리가 스스로 죄를 가리려(은폐) 하면 뼈가 마르는 고통이 오지만, 우리가 하나님 앞에 죄를 정직히 내어놓으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보혈로 우리의 죄를 완벽히 가리워 주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는 스스로 만든 거룩의 가면 뒤에 어떤 허물과 죄와 죄악을 숨기고 있지는 않습니까?
ㆍ허물(페샤, פֶּשַׁע)의 짐을 스스로 지지 마십시오. 주님께서 들어 옮기십니다(나사, נָשָׂא).
ㆍ죄(하타아, חֲטָאָה)를 정직히 내어놓으십시오. 그리스도의 보혈로 완벽히 가리워(카사, כָּסָה) 주십니다.
ㆍ죄악(아본, עָוֺן)을 당신의 장부에 기록하지 않으시는(하시브, חָשַׁב) 은혜가 십자가에서 완성되었습니다.
오늘 이 시간, 위선의 가면을 벗고 주님 앞으로 나아옵시다. 억지로 물려진 재갈과 굴레를 벗어던지고, 나를 용서하신 주님의 은혜 안에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소리칠"(11절) 참된 '아쉬레(복)'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