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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은 〈향좌측 천정 장엄〉.
고구려고분벽화, 고려불화의 문양세계를 닮았고, 붉은 주칠 바탕에 흐르는 호분 백묘의 선에 신령한 기운이
뻗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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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은 〈향우측 천정 장엄〉. 꽃의 자리에
새긴 육자진언과 부처님의 명호. 자연의 ‘형(形)’을 빌려 부처님의 ‘신(神)’을 드러내고 있다. 천정의 꽃은 여래이자, 진리의
묘법연화다. | ||
장엄은 ‘형(形) 빌려’신(神)’을 드러내는 것
지리산 화엄사 원통전 천정에 베푼 꽃 형식의 장엄세계는
자연의 패턴을 빌려 인간의 심미적 의식으로 변용한, ‘정화된 모방’을 잘 보여준다. 자연(自然)은 '스스로 그러함'이다. 자연은 스스로 그러한
미감과 도덕감을 갖추고 있으며, 동시에 불문율의 거룩한 법칙성을 갖추고 있다. 그것들은 인간의 심미적 의식에 의해 내적 덕성을 갖춘 고귀함,
고유함으로 정화되어 표현된다. 단순한 전이모사의 단계를 넘어, 형태의 ‘형(形)을 빌려 내재된 정신의 ’신(神)’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 때
이중섭의 소는 더 이상 밭을 가는 소가 아니며, 부처께서 영산회에서 들어 보이신 연꽃은 더 이상 자연의 연꽃이 아닌 것과 같은 이치다.
형이하학에서 형이상학적인 영혼의 힘을 갖추는 것이다.
원통전 천정장엄은 장엄예술에서 형신(形神)의 문제를 어떻게 표현하고 담아낼 것인가를 여여하게 보여준다. 그 연원을 거슬러 오르면, 고구려
고분벽화와 통일신라의 와당문양, 그리고 고려불화에 이를 것이다. 어제에 담긴 고전의 법도는 오늘의 빛이 되는 법이다. 그것이 전통과 고전의
힘이다.
화엄사 원통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 크기의 18세기 목조건축이다. 3×3칸의 장방형에서 중앙칸에 불단과 닫집을 마련해서
이근원통의 관세음보살을 모셨다. 천정도 내부기둥과 외부기둥의 축선에 따라 크게 3×3, 9칸으로 면분할 하였는데, 닫집을 마련한 중앙칸은 한 자
깊이로 더 높이 밀어올려 사각형 감실을 마련해서 위계를 높였다.
270칸 반자마다 진채와 영기문 베풀어
천정은 정(井)자 모양의 격자틀로 짠 우물천정이다. 천정에
마련한 반자틀의 칸수는 총 270칸이다. 칸칸마다 꽃과 구름모양의 영기문을 베풀었다. 달리 말하면, 신령의 기운이 흐르는 판벽벽화를 270본이나
조성하였다는 뜻이다. 부처님을 바라볼 때 향우측은 앞에서부터 6×4(前), 6×5(中), 6×4(後) 칸씩이고, 가운데 칸은 7×4(前),
7×6(中), 7×4(後) 칸씩이며, 향좌측은 6×4(前), 6×6(中), 6×4(後) 칸씩 해서 총 270칸이다. 정면 출입문과 불단이 있는
가운데 칸의 천정문양은 소위 ‘보상화’ 영기문을 진하게 색을 입힌 진채 채색화이고, 그 양쪽의 천정문양은 영기문 백묘화다.
| 원통전
천정장엄 | ||
천정반자 바탕엔 먼저 검붉은 빛의 석간주를 두터이 입혀 바탕을 가칠마감 했다. 그 위에다 꽃의 형식을 빌린 영기문을 채색화로 베풀거나 백묘로 풀었다. 특히 주목을 끄는 영기문양은 좌우 양쪽의 장엄문양과 채색기법이다. 검붉은 색 바탕에 하얀 호분의 백묘가 변화무쌍한 곡선을 그리며 돋아나 솟구쳤다가, 때론 아슴하게 잠기기를 거듭한다. 유영하는 고래를 보는 듯 하다. 이전에 경전 목판을 보관하던 창고칸 부분의 천정은 더욱 미묘하고 현묘하다. 은해사 거조암 영산전 후불벽에 내건 영산회상 후불탱화를 대하는 느낌이다. 붉은 색 바탕에 백묘의 흰선이 넘실되는 그 미묘함이 전해지는 것이다. 흰색 호분에 기름의 번짐이 느껴지는 색채의 여운감도 닮았다. 그 연유는 원통전 바로 옆의 각황전에 가보면 자연히 풀린다.
각황전은 숙종 28년(1702년) 완공되었고, 원통전은 1년 뒤 1703년 중건되었다. 각황전 천정에 베푼 문양과 원통전의 문양은 서로 닮았다. 그런데 각황전의 문양이 투박하고 대범하다면, 원통전의 문양은 현묘하면서 기예가 살아있다. 문제는 세 폭의 각황전 후불탱화다. 거조암 영산회상탱처럼 붉은 주칠바탕에 호분의 백묘를 입혔다. 그 채색의 붓질이 원통전 천정에도 이어졌음을 짐작할 수 있다.
원통전 천정은 붉은 주사와 흰색의 단조로운 색의 조합인데도 변화무쌍한 기운생동의 힘이 전해지는데, 그것은 문양의 선율이 지닌 리듬감에서 우러나온다. 곧 붓을 운용해간 골법용필의 운필에서 나오는 힘이다. 그 힘은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고려불화를 거쳐 조선에 이르는 조형문양의 면면한 전통에서 우러나온다. 힘은 물론 물리적인 힘의 차원을 넘어 선 신령의 힘이다.
원통전 천정의 문양을 보고 있으면, 고구려 고분벽화 강서중묘 널방 천정에 그려진 팔메트 영기문이나 안악 2호분 문양, 또는 경주 월지에서 출토된 넝쿨문, 보상화문의 와당들이 연상된다. 그와 동시에 고려불화 중에서 미국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일본 네즈미술관 등에서 소장한 지장보살도의 의습에 금니로 섬세하게 표현한 ‘당초원문’ 영기문양을 떠올리게 된다. 단지 그 문양들을 시대를 초월하여 진여법계인 사찰천정 반자틀 안에 세세생생 풀어 놓았을 따름이다.
시대와 공간만 다를 뿐 조형원리는 일맥상통하다. 가역적으로 말하면 원통전 천정의 영기문양을 낱낱의 단위로 해체하면 신라 와당문양이나 고구려고분벽화 천정에 새긴 영기문이 될 것이며, 금니의 원형에 돌돌 말아 넣으면 고려불화 의습의 문양으로 마치 제 집을 찾아가듯 자연히 자리를 잡을 것임에 분명하다. 고구려 고분벽화가 지닌 원형의 악보을 갖고 시대에 따라 다채로운 변주곡을 연주하고 있는 셈이다.
천정의 꽃은 삼회일귀의 묘법연화
몇 몇 반자틀 안에는 이 곳 천정장엄에 베푼 꽃의 본질을 각인시키고
있다. 바닷물을 맛보는데 모든 바닷물을 다 마실 필요는 없다. 태극기의 ‘건곤감리 청홍백’의 원리를 떠올리면 문양의 개요가 쉽게 다가온다.
건곤감리 사괘와 태극의 자리에 원형의 꽃을 그려 넣고는, 만유에 대자대비로 상주하시는 부처님의 명호를 한자와 범자로 새겨 넣었다.
‘관세음보살’과 ‘옴마니(반)메훔’의 육자진언, 그리고 ‘석가모니불’을 드높은 꽃의 자리에 모셨다. 그 자리는 분별의 자성을 여읜 걸림이 없는
원융회통의 자리, 곧 중도의 연화좌다.
그 꽃은 더 이상 자연의 꽃이 아니다. 거룩함으로 정화된 꽃이다. 불교장엄에서 수레바퀴가 탈 것의
묘사가 아니라, 중생에게 베푸신 법의 전법륜인 것과 같은 이치다. 절집천정의 꽃은 시방삼세 차별없이 상주하시는 부처요, 법의 진리이며,
대생명력의 대자대비다.
자연의 꽃을 빌려 신묘한 뜻을 펼쳤으니, 삼회일귀의 묘법연화가 지리산 원통전 천정에 큰 수레바퀴로 걸려있는
것이다.
| 화엄사 원통전 전경 -현대불교에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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