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힐링 여행/ 전 성훈
지난 1월 중순 필리핀 세부(CEBU)로 7박8일 간 여행을 다녀왔다. 필리핀 여행은 과거와는 다른 여행이었다. 예전에는 여행사를 통한 패키지나 또는 자유여행이거나 몇 몇 장소를 방문하여 그 곳의 문화 유적지와 관광지를 구경하는 여행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휴양지를 찾아가 푹 쉬는 여행을 했다. 몇 년 전부터 유행하는 이른바 몸과 마음을 쉬면서 재충전한다는 뜻의 힐링 여행이었다.
1월 11일(월) 출발
오후 3시 넘어 중계동에서 공항버스를 타고 인천 공항으로 출발하였다. 인천 공항엔 사람들로 매우 혼잡하고 시끌벅적했다. 출국수속을 마치고 36번 게이트 앞에서 아시아나 항공기 탑승을 기다리며 천상병 시인의 ‘저승 가는데도 여비가 든다면’이라는 시집을 꺼내 들었다. 인천공항 출발이 1시간 정도 지연되어 필리핀 막탄 세부 국제공항에 새벽 1시 지나서 도착하였다. 수화물을 찾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지만 입국 심사는 까다롭지 않아 수박 겉핥기식으로 지나갔다. 출국장을 나서기 직전에 세관 직원이 짐에 붙어 있는 꼬리표와 주인이 소지한 태그를 검사하였다. 수화물 분실 사고를 줄이기 위한 조치이지만 이런 광경은 내가 다녀 본 다른 나라 공항에서는 보기 힘든 모습이었다. 출국장을 나서자 먼저 가 있던 딸이 반가운 표정으로 우리 부부를 맞이하였다. 공항 바로 옆에 있는 워터프론트 호텔에서 간단히 여장을 풀고 잠시 이야기를 나눈 다음 잠자리에 들었다.
1월 12일(화) 세부 시내로
필리핀은 우리나라보다 한 시간이 늦다. 오전 9시 경 느긋한 마음으로 호텔 식당에서 아침 식사를 했는데 음식이 짰다. 식사를 마치고 숙소를 세부 시내 퀴스트 호텔로 옮기기 위해 택시를 타고 이동하며 보니까 도로가 너무 좁았다. 그래서일까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가 서로 먼저 달려가려고 매우 혼잡했다. 딸이 새벽 공항 바로 옆에 호텔을 예약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한밤중에 외국인이 전혀 모르는 다른 나라의 한적한 길을 달리는 택시를 탄다는 것은 정말 무섭고 두려운 일이다. 호텔에 짐을 내려놓고 잠시 후 근처에 있는 커다란 쇼핑몰과 시내 구경에 나섰다. 쇼핑몰은 사람들로 넘쳐나고 많은 물건이 진열되어 대도시 냄새를 물씬 풍겼다.
1월 13일(수) 호핑 투어 가는 길
퀴스트 호텔 조식은 맛이 괜찮았다. 쌀국수, 빵 등을 배불리 먹었고 달걀은 스크램블, 반죽, 프라이까지 모두 맛보았다. 오전 8시경 바다로 가서 낚시나 스노클링을 하는 것을 뜻하는 호핑 투어(HOPPING TOUR)에 나섰다. 호텔 정문에서 승합차를 타고 어딘지 모르는 바다로 갔다. 바다로 가는 도중 다양한 교통수단들을 볼 수 있었다. 일반 승용차, 승합차, 승합차를 개조한 미니버스, 오토바이, 자전거등, 그 중 특이한 것은 15-16명이 탈 수 있는 미니버스였다. 미니버스는 창문이 없는 열린 상태로 다니다가 비가 올 때는 비닐이나 포장으로 된 천막으로 가린다. 우리나라 1톤짜리 픽업 화물차 개조한 모습과 흡사하다. 뒷문(자동차 트렁크 위치)으로 사람들이 타고 내린다. 간혹 뒷문 발코니에 한 발을 걸친 채 담배를 피우면서 한 손으로 손잡이를 잡고 있는 사람도 자주 눈이 띤다. 열악한 도로 사정상 미니버스의 속도는 빠르지 않다. 대형버스는 리조트에 서 보았을 뿐이다. 오토바이는 1인용 오토바이와 옆에 승객용 보조 장치를 설치하여 승객을 나르는 오토바이가 있었다. 2차 대전 영화에서 보았던 독일군 3인용 오토바이와 형태가 비슷했다. 그런데 더욱 가관인 것은 자전거에 승객용 보조 장치를 부착한 것이다. 체격이 왜소한 아이들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사람을 태우고 힘겹게 페달을 밟고 있는 모습을 보고 오래도록 시선을 떼지 못하였다.
길은 대부분 포장도로이지만 비포장도로도 때때로 눈에 띤다. 게다가 곳곳에 도로 공사가 한창이다. 큰 길에는 신호등과 건널목이 있으나 작은 길에는 건널목도 신호등도 없다. 그저 가고 싶은 방향으로 좌회전을 하거나 위회전 또는 유턴을 하는 자동차들과 그 사이를 뚫고 위험천만하게 길을 건너는 사람들, 정말 정신이 아찔하여 이곳에서는 도저히 운전을 할 수 없을 것 같다. 길에는 가로등이 거의 없다. 가로등이 있는 곳도 간격이 너무 멀어서 밤길이 상당히 어둡다.
지역 이름을 알 수 없는 바다에서 호핑 투어를 했다. 주관업체에서 구명조끼를 입은 관람객 1팀에 조교 1명을 배치하여 위험하지 않았다. 물안경을 쓰고 마우스를 입으로 꽉 물고 고무 호수를 통해서 호흡해야 하는데 입을 벌리는 실수를 반복하여 그 틈새로 짜디짠 동지나해 바닷물이 스며들었다. 젊은 조교가 이곳 바닷물은 맛이 있다고 짧은 우리말로 장난을 쳤다.
바닷물을 실컷 마시고 수상 가옥에서 점심 식사를 하였다. 식탁에 게찜과 대하구이, 돼지고기, 닭고기가 차려져 있었다. 조교들이 일회용 비닐장갑을 끼고 게찜과 대하구이를 먹기 좋게 발라주었다. 차디차게 식은 음식은 맛이 별로였지만 물놀이를 한 탓인지 시장한 덕분에 밥과 반찬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다 먹었다. 음식점 젊은 여종업원들이 식탁 옆에서 달려드는 파리를 쫓으려고 연신 부채질을 하고 있어서 음식을 먹으면서 조금 마음에 걸렸다.
1월 14일(목) 샹글리라 리조트를 향하여
오전 10시 경 퀴스트 호텔을 나와 아내와 딸이 쇼핑몰에서 쇼핑하는 사이 부근 버거킹 카페에서 일기를 적었다. 오후에 택시를 타고 최종 여행 목적지인 샹글리라 리조트로 향했다. 딸이 알아보니, 택시요금은 미터요금에 추가하여 50페소 정도를 더 주면 되었다. 그런데 운전기사가 500페소 또는 미터요금 플러스 100페소를 달라고 했다. 서로 간에 정확한 의사 전달이 잘 안되었지만 각자의 주장은 확연히 달랐다. 리조트에 도착하여 미터요금 230페소에 70페소를 더 주자 운전사는 아무 말 없이 받고 떠났다. 이 세상 어디서나 관광객을 상대로 장난을 하는 운전기사는 있게 마련이다. 특히 그곳이 후진국이라면 더욱 그렇다.
1월 15일(금) -16일(토) 쉬고 또 쉬고
일찍 일어나 리조트 주변을 어슬렁어슬렁 거리며 경치를 구경하였다. 붉게 물들며 솟아오르는 황홀한 아침 태양을 바라보며 사진을 몇 장 찍었다. 풀장 옆 벤치에 기대어 앉아 일기를 적고 시집을 읽기도 하였다. 간간히 고개를 들어 새파란 하늘을 쳐다보면서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조금 심심하다고 느낄 때는 바닷가 모래밭을 거닐기도 하고, 풀장에서 헤엄을 치면서 보냈다. 많은 한국인과 중국인 그리고 서양인들의 모습은 보였으나 일본인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현지 안내문은 영어, 중국어, 일본어, 한국어 순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리조트 부페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하였는데 아침보다 상당히 좋은 음식이 나왔다. 가져간 소주를 음료 페트병에 넣고 식사를 하면서 한 모금 마셨다. 저녁 식사 후 남쪽 나라 하늘을 올려다보니 아내가 손짓으로 ‘오리온 별자리’라고 알려주었다. 별들이 듬성듬성 눈에 띄었다. 남녘 하늘의 그 많은 별들은 도대체 어디로 갔을까? 생태계 파괴로 지구 남반부에서도 수많은 별들이 촘촘하게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며 빛나는 밤하늘을 만날 수 없었다.
1월 17일(일) 다시 집으로
오전에 풀장 벤치에서 쉬다가 CHECK OUT하였다. 18일 새벽 1시 출국 시간 전까지 반나절을 한국인 부부가 운영하는 고즈넉한 분위기의 저택인 게스트하우스를 찾았다. 휴양지 힐링 여행도 한 번쯤은 경험해 볼 만했다. 어린 아이들이 물장난 치며 노는 모습을 보고 어린 시절을 회상하거나, 새파란 하늘과 두둥실 떠가는 뭉게구름을 보고 아련한 추억 속 크레파스와 도화지를 꺼낸다든지, 야자수 그늘아래 이름 모를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에 한 마음으로 동화되면 더 없이 따스한 미소가 흐른 느낌이었다. 게다가 젊은이들처럼 마사지를 받거나, 끼니때마다 무엇을 먹을까 생각하며 맛 집 쇼핑하는 것도 즐거웠다.
가족여행도 준비를 책임진 사람이 현지 스케줄과 식당을 정하고 음식을 고르는 일에서도 목소리가 클 수밖에 없다. 늙어가는 세대는 젊은이들이 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그저 그러려니 하고 따라가면 좋다. 다음 세대에게 주인공 자리를 내어주고 앞으로 가야할 미지의 길을 준비 하면 된다. 기분이 조금 언짢아도 서럽다는 생각을 하지 말고 그냥 받아들이며 살아가야 한다. 속절없이 그렇게 가고 오는 것이 모든 생명체의 숙명인 것을 어찌 누굴 탓하라!
이번 여행에서 느닷없이 떠오른 단어가 ‘천덕꾸러기와 구박덩어리’다. 귀찮고 짜증나기도 했겠지만 묵묵히 온갖 수발을 들어주던 아내가 나보다 먼저 먼 길을 떠나면? 겉옷을 어울리게 받쳐 입을 줄 모르는 사람, 소소한 가정 일을 전혀 할 줄 모르는 사람, 스스로 밥 짓고 음식 만들고 빨래 할 줄 모르는 사람을 자식들은 부담스러워 할 것이다. 아직 충분한 시간이 있다고 생각들 때 서서히 ‘홀로 서는’ 준비를 하는 것은 어떨는지. 천상병은 그의 시[귀천] 마지막 행에서 이렇게 읊조리며 천상의 소리를 들려준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그래, 나 또한 이렇게 노래하며 본향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2016년 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