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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10. 24)
신고있던 등산화가 10년도 더 되었다. 문제는 그 신발을 신고 산을 오르내리다 발가락이 멍드는 일을 두 번이나 겪었다는 것. 최근에는 뒷굽 부분에 못인지 모를 뾰족한 것이 솟아서 신고 다니려니 발을 찔러대서 도저히 신을 수 없었다. 마침 등산화를 세일 한다는 소식을 듣고 구입하러 갔다.
매장에 진열된 여러 종류를 보았지만 오직 할인가로 내놓은 것에만 눈독을 들였는데 그것들은 내 발에 맞질 않았다. 내 발은 발등의 볼이 넓어 신발의 길이만 아니라 폭도 고려해 주어야 했기 때문이다. 할인상품들은 대부분 발에 너무 꽉 끼었다. 신고 다녀보면 늘어나기야 하겠지만 판매하는 사람은 등산화의 경우는 처음 신는 순간부터 편안한 것이 좋다고 했다.
등산하면서 발고락에 멍든 사연을 말했더니, 하산할 때는 등산할 때와 다른 끈묶음을 해야 한다고 가르쳐주었다. 즉, 내려올 때는 신발끈을 더욱 바짝 조여 발이 밑으로(앞부분으로) 쏠리는 것을 막아주어야 한다고 했다. 또 게다가 등산화는 운동화 보다 더 큰 것으로 골라야 등산양말을 신는 것과 발에 주는 부담을 덜 수 있다는 것도 가르쳐주었다. 그러고 보니 군화를 신는 이치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병영훈련을 받을 때 꼭 끼는 군화때문에 발에 물집 잡힌 일이 한 두 번이 아니었던 기억이 났다.
판매인의 충고를 참고하여 신발을 골랐다. 그런데 내게 맞는 신발은 그 많은 모델 중에 꼭 한 가지만 해당되었다. 볼이 넓은 등산화! 드디어 구입했다.
오늘은 새로 산 등산화의 기능을 시험삼아 금정산성에 올랐다. 아내와 같이 나섰는데 집 앞에서 111번 버스를 타고 거의 버스 종점 가까이에서 하차했다. 그곳에는 새로 개원한 부산인력개발원인가 하는 대형건물이 들어서 있었다. 지난 번 금정산 산행을 할 때 그쪽으로 내려왔기 때문에, 이번에는 거기를 시작점으로 다시 오름길을 잡아 금정산성 서문으로 내려가는 길로 가려고 작정했다. 우리 앞에 아주머니 세 분이 올라가시고 있었는데 우리와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함께 올랐다.
지난 번의 갈림길에 도착해서 '미륵사'쪽으로 길을 잡았다. 산성마을에서 올라오는 네 아저씨에게 미륵사 가는 길을 물었다. 그 분들도 미륵사가는 길이라고 하여 뒤를 좇았다.
미륵사!
최근 가본 절중에는 조용하고 엄숙한 것이 절제된 풍모를 보여주고 있었다. 보통 대웅전이 위치해 있을 자리에는 염화전(拈華展)이 있었으며, 스님의 목탁소리가 운치있게 들렸다.
석가세존이 영산(靈山)에서 자주 설법을 하셨는데, 어느 날 대중 속에서 한 사람이 석가세존에게 꽃 한송이를 드렸다고 한다. 석가세존은 그 꽃을 들어 사람들 앞에 보여주고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사람들이 무슨 뜻인지를 몰라 어리둥절 할 때 오직마하가섭(摩訶迦葉)만이 그 의미를 알고 혼자 빙그레 웃었다. 이것을 보고 석가세존은 마하가섭에게 특별한 교훈을 주었다고 한다. 이때 탄생한 말이 염화미소(拈華微笑)이다.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지는 이심전심의 의미로도 통한다. 그리고 염화(拈華)란 꽃을 손에 드는 것을 말한다. 석가세존의 형상을 모신 대웅전이라는 이름보다는,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것이 진정한 깨달음인 것을 깨우치려한 의도였을까?
염화전 뒤로는 웅장한 바위가 자리하고 있었다.
(이 바위는 '좌선바위'로 불린다고 한다. 멀리서 보면 꼭 스님의 좌선하는 모습 같이 보인다는 이유에서다.)
뒷편에 있는 미륵전을 지나 바위 위로 올라가면 독성각(獨聖閣)이 있다.
여자 보살 두 분께서 기도 중이었다. 독성각에 올라 아래를 바다보았다. 탁 트인 시야가 좋았으나 공기가 맑지 않아 멀리까지 보지는 못했다. 독성각을 오르내리는 계단 길도 일품이었다.
다시 염화전 앞마당으로 내려왔다. 독성각에 올라갈 때보다 사람들이 더 많았다. 염화전 마당 앞에는 오래된 은행나무가 있었는데 크기가 무척 컸다. 미륵사는 원효대사가 창건하였다고 한다.
신종플루때문에 점심 공양을 중지하고 있다는 안내푯말을 보았다. 미륵사에서 점심 공양 하는 것을 알았다. 염화전 마당 밑으로는 채전(菜田)이 있었는데 푸성귀들이 맛나게 보였다. 채전 쪽으로 가던 중에 다람쥐 두 마리를 보았다. 발에 스프링을 달아도 저렇게 잘 튀어오를까 싶었다.
(독성각에서 내려다본 계단)
(독성각에서 내려다본 계단. 이 계단만 올라서면 독성각)
(독성각에서 내려다본 산성 모습. 바로 아래 기와들은 미륵사 전각들 모습)
(염화전 앞 은행나무)
(채전, 사진 바로 앞에 있는 물있는 곳은 미나리를 기르는 것 같았음)
신성 서문쪽으로 길을 잘 몰라 미륵사에서 조금 내려오다 준비해간 송편을 먹으며 길을 가늠해 보았다. 길을 잡다가 아무래도 방향이 서문쪽이 아닌 것 같아서 다시 미륵사를 올라 금곡동에서 올라오는 길로 방향을 잡으며 걸었다. 화명동쪽으로 내려가는 길로 계속 갔다. 아내는 잘 모르면서 길을 잡는다고 했지만 가다보면 갈래길이 나올 것이라며 앞장세워 걸었다. 한참을 내려가다 올라오는 아저씨에게 서문가는 길을 물었다. 자신도 잘 모르지만 부산학생수련원쪽으로 가는 것일거라 했다. 지도에는 그렇게 나와있다. 그래서 내가 맞다고 하였더니, 조금 더 내려가면 학생수련원가는 안내판이 있다고 했다. 과연 표지판이 나왔다. 길이 가파랐다. 새로 산 등산화 덕을 보았다. 발이 편해서 지난번처럼 아프지 않았다. 끈조임을 강하게 해서 신었더니 등산화 판매인의 말대로 발목에서부터 잡아주어 발이 신발 앞쪽으로 쏠리지 않았다.
학생수련원에 도착했는데 이정표가 없어 하산길이라고 생각하고 내려간 길이 끝내 길이 막히고 말았다. 어지간하면 뚫고 나가려 했는데 그럴 길이 아니었다. 다시 올라왔다. 정문을 통과해서 한쪽 방향으로만 통로가 나있었다. 하산하는 사람들을 위해 나가는 길이라고 표지 하나만 붙여두면 도움을 받을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웠다. 수련원에서 등산객을 위해 조그만 배려를 해주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한편으로 부산에 이런 수련원 시설이 있는데 굳이 멀리까지 수련장소를 잡는 것은 생각해볼 문제였다. 수련원에 들어가면 거의 대부분은 수련원 내에서 생활해야 한다. 금정산 학생 수련원의 시설은 아주 좋아보였다.
수련원 정문을 통과하여 길을 갔다. 단풍든 나무 모습에서 완연한 가을 기운을 느꼈다. 나는 도로를 따라가면 길이 멀 것이라 판단해 정문을 나서서 조금 걷다가 곧장 산길로 길을 잡았다. 아내는 또 불평하였다. 너무 고생스럽다고 했다. 내가 잡은 길은 사람들이 급할 때 용변보러 오는 길 같다며 길 여기저기 놓이 대변물을 가리켰다. 하지만 계속 앞으로 나아가게 하였다. 산허리를 돌아 작은 언덕 하나를 넘었는데, 내가 수련원에서 본 바로는 산 두개를 더 넘어야 산성마을이 나올 것으로 보였기 때문에 계속 가자고 한 것이다. 길인지 아닌지 모를 길을 걸었다. 길이 없을 때는 무작정 방향을 믿고 나아갔다. 드디어 산 하나는 어렵게 넘었는데 무슨 큰 공사장이 나왔다.
터를 확보하고 멀리 포크레인 한 대가 분주하게 일하고 있었으며 멀리 차들이 오르내리는 도로가 보였다. 완전 포장되지는 않았지만 공사 차량이 다니는 길을 이용하여 가면 저 멀리 보이는 도로에 닿을 수 있었지만, 가을이라도 날카로운 햇살을 계속 맞고 길을 가는 것도 마뜩찮고 운치가 없었다. 다시 산 하나를 더 넘자고 했더니 알아서 가라고 한다.
이번에는 내가 앞장섰다. 공사장을 가로질러 산입구에 들어섰는데 사람이 닿은 길흔적이 없다. 다시 길을 내야겠다고 생각하고 나섰다. 방금 지나온 산보다 더 미끌했다. 아내 손을 잡아 끌다 놓다 하며 산을 오르내리며 나아갔다. 멀리서 들리는 차소리가 하나의 방향타가 되었다. 곳곳에 거미줄이 있었다. 나는 본의아니게 거미줄을 파괴했다. 거미 입장에서는 정말 황당했을 것이다. 겨우 시야를 확보하고 보니 멀리 그렇게 찾았던 '서문'이 보였다. 나는 직감적으로 그곳이 서문인 것을 알았다. 그런데 서문쪽으로 가까이 가려는데 우리가 성벽 '바깥'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멀리서 봤을 때는 우리가 진행하는 방향에서 높이가 제법 상당한 계곡으로 보여 나는 아내더러 성벽을 타넘어야 될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 적당한 자리를 찾아보았다. 가까이 가서 보니 성벽 높이가 2미터는 족히 넘어 보였다. 그런 성벽이 길게 줄을 이어 있었는데 한 지점을 발견하고는 아내를 먼저 올렸다. 뒤에서 발을 밀고 올려주어 아내를 올린 후에 가방을 아내에게 던져주고 내가 올랐다. 성벽은 매우 단단했다.
서문에 도착해서 보았더니 우리가 진행하던 방향대로 계속 나아갔으면 계곡을 지나오는 길을 만나게 되어 있었다. 그것을 모르고 성벽을 올라타면서 '천신만고' 끝에 서문에 도달했던 것이다.
서문!
두어 달 전부터 나는 금정산성을 오르면서 서문의 존재를 파악하고자 했지만, 산성을 많이 오르내리는 사람들도 유독 서문의 위치를 몰랐다. 오늘 서문에 닿음으로써 나는 금정산성의 동서남북문을 모두 방문한 것이다. 일부러 준비한 카메라로 오늘 역사적인 날을 기록했다.
(서문 옆, 그러니까 문을 바라볼 때 왼쪽에 있는 수문. 이 수문이 멀리서 보았을 때는 깊은 계속 마냥 보였던 것!)
(서문을 바라보는 입장에서 오른편 위로 계속 타올라가면 산성마을로 가는 도로를 만난다. 화면에 보이는 아주머니의 왼편이다. 도로를 올라가려면 서문 안으로 들어가서 화면 오른쪽의 계단처럼 보이는 성벽에 붙은 사잇길을 이용하면 된다.)
서문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후에 도로에 올라섰다. 그곳에 도착하고나서 알았다! 그러니까 산성마을에서 구포시장을 오가는 마을버스를 이용하면 서문으로 오는 길이 쉽다. 서문 앞은 본래 정류소가 아니었으나 손을 들었더니 마을버스 기사분이 차를 세워주셨다. 그것을 타고 산성마을로 들어서서, 203번으로 환승하였다. 온천장에서 다시 80번 시내버스로 환승하여 집에 도착했다.
등산화!
일단 합격점을 준다.
첫댓글 멋있네요. 저도 가족이랑 언제 한번 가 봐야 겠어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