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 궁궐
조선의 궁궐은 처음에는 경복궁 하나 이었는데, 태종이 창덕궁을 지어 법궁(法宮)과 이궁(離宮) 양궐 체재가 되었다. 임진왜란 이후 경복궁을 복원 하지 않고, 창덕궁을 법궁으로 창경궁과 경희궁을 이궁으로 건설하여 운영 되었다. 1868년 경복궁이 중건되고 고종이 아관파천(俄館播遷) 이후, 경운궁(덕수궁)에서 살게 되어 5개가 되었다.
◼ 경복궁(景福宮)
조선시대 궁궐 중 가장 중심이 되는 법궁으로 태조 3년(1394) 한양으로 수도를 옮긴 후, 태조 4년(1395년 9월) 자금성 모델로 조선왕조 5대 궁궐가운데 최초로 창건되었다.
궁의 이름은 정도전이 <시경 >에 나오는 “이미 술에 취하고 이미 덕에 배부르니 군자만년 그대의 큰 복을 도우리라”에서 큰 복을 빈다는 뜻의 ‘경복(景福)’이라는 두 글자를 따서 지었다. 1412년 태종은 경복궁의 연못을 크게 넓히고 섬 위에 경회루를 만들었다. 연못을 크게 만들면서 파낸 흙으로는 아미산이라는 동산을 만들었다.
선조 25년(1592)임진왜란 때 창덕궁, 창경궁과 함께 모두 불에 타 그 후 270여 년이 지나도록 방치되어 있었다.
1867년에 흥선대원군이 다시 세웠다. 그러나 1895년에 궁궐 안에서 명성황후가 시해되는 사건이 벌어지고, 고종이 아관파천(俄館播遷)을 하자, 주인을 잃은 빈 궁궐이 되었다. 1910년 국권을 잃게 되자 일본인들은 건물을 헐고, 근정전 앞에 총독부 청사를 짓는 등의 조직적으로 훼손되어 궁궐의 옛 모습을 거의 잃게 되었다. 현재 궁궐 안에 남아있는
현재 궁궐 안 대부분의 건물들이 없어지기는 하였지만, 주요건물인 근정문, 근정전, 사정전, 천추전, 수정전, 자경전, 경회루, 재수각, 숙향당, 함화당, 향원정, 집옥재, 선원정 등 원래 규모의 약 15% 가 남아있고 처음 지어진 자리를 지키고 있어서, 조선의 정궁의 모습을 대체적으로나마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