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랑(紅娘)의 사랑과 詩
권 혁 수(시인)
묏버들 갈해 것거 보내노라 님의 손대
자시난 창밧긔 심거두고 보쇼서
밤비에 새닙 곳 나거든 날인가도 너기쇼셔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린 이 홍랑의 시(詩)를 모르는 사람은 아마 드믈리라.
홍랑은 어떤 여자인가?
다 아시다시피 함경남도 홍원 출신의 기생이다. 기생이지만 그녀는 시인이었고 사대부가의 묘지에 당당히 묻힐 만큼 절개 있는 여인이었다.
오랑캐와 살벌하게 대치하던 국경지대인 경성에 있던 기생 홍랑이 어떻게 천리 길 파주 땅에 와서 묻히게 되었을까?
때는 조선 선조 6년(1573년)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19년 전, 송강 정철과 친분이 깊고 삼당파(三唐派) 시인이었던 고죽(孤竹) 최경창(崔慶昌)이 북도평사(北道評事,정6품)를 제수 받고 함경도 경성에 부임하게 된다. 당시의 공무원은 임지에 가족을 데리고 갈 수 없었으므로 최경창은 임기 동안 살림을 맡아줄 사람이 필요했으리라. 따라서 최경창이 천릿길인 서울과 경성의 중간지점인 홍원 땅을 지나다 시문에 능한 기생 홍랑을 만나게 되고 경성으로 데려가 함께 군막(軍幕) 생활을 한 것은 당시로선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다만 자세히 밝혀진 사실이 없어 그들의 군막 생활 정도가 어떠했는지는 그 후 그들의 행적을 더듬어 짐작할 수밖에 없으리라 생각된다.
그들은 그렇게 1년간 경성의 군막에서 함께 지낸 것으로 문헌에는 나타나 있다. 그리고 이듬해(1574년) 봄, 최경창이 서울로 전근이 되어 돌아오게 되자 그녀도 함경도 끝 쌍성까지 따라나선다. 하지만 나라 법에 함경도 기생은 함경도를 한 발짝도 떠날 수 없었으므로 어쩔 수 없이 헤어져야 했다.
눈물을 흘리며 돌아서야 하는 길. 임을 보내고 돌아서 걷기를 얼마나 했을까, 함관령에 이르자 어느덧 날은 저물고 비는 주룩주룩 내리는데 홍랑은 암담하고 참담한 심경을 마침 길가에 늘어선 버드나무 가지를 꺾음으로써 위안받고자한다. 그러나 꺾인 버드나무는 또 무슨 죄가 있으랴. 그것은 마치 신분과 제도에 의해 꺾인 또 다른 자신의 모습이 아니던가. 路柳墻花의 신분인 기생. 그녀는 버드나무 가지를 내려다본다. 그 순간 그녀는 그 꺾인 버드나무 가지에 파랗게 움트는 생명의 실체를 본다. 어디서나 땅에 꽂기만 하면 싹을 내고 살아가는 버드나무. 그녀는 그 꺾인 버드나무 가지가 자신이라 판단하고 자신의 분신을 보내듯 아니 전부를 보내는 마음으로 그 자리에서 꺾인 버드나무를 승화시킨 한 편의 시(詩)를 써 천리 길, 저 피안의 최경창에게 보낸다. 그것이 오늘날 전해오는 바로 이 번방곡 홍랑의 <시>인 것이다. 그리고 또 1년이 지난 1575년, 최경창이 병이 들어 봄부터 겨울까지 병상에 누워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홍랑. 그녀는 그날로 길을 떠나 7일간 밤낮 없이 걸어 서울로 올라온다. 그리고 그의 병 수발을 들게 되는데 그때에는 양계(함경도, 평안도) 사람은 서울 출입이 금해져 있던 때인데다 마침 인순대비의 국상을 당한지 오래 되지 않은 시기라 이들의 일이 세상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게 된다.
그래서 최경창은 결국 당쟁에 휘말려 그 일로 벼슬을 내어놓게 되고 이듬해 여름 홍랑도 서울을 떠나 쓸쓸히 고향 홍원으로 돌아오게 된다.
이번엔 고죽이 홍랑에게 2편의 시를 지어준다.
이별하며 드리네 1.
옥 같은 뺨에 두 줄기 눈물 흘리며
서울을 떠나시는구려,
이별의 정에 겨워
새벽 꾀꼬리도 하염없이 웁니다.
비단옷에 보마 타고
강 건너, 혼자 걷는 길
길섶 풀빛 아득히 아득히
배웅해드립니다
贈別1.
玉頰雙啼出鳳城, 曉鶯千囀爲離情(옥협쌍제출봉성, 효앵천전위리정)
羅衫寶馬河關外, 草色迢迢送獨行(나삼보마하관외, 초색초초송독행)
이별하며 드리네 2.
서로 오래오래 마주보자
향 그윽한 난초를 드리고
이제 저 하늘 끝 먼 곳으로 가는 듯하오만
수일 내 돌아오리다.
함관령에서도 옛 노랠랑 부르지 마소
지금, 비구름에 가려
청산이 어둡나니
贈別2
相看脈脈贈幽蘭, 此去天涯幾日還 (상간맥맥증유란, 차거천애기일환)
莫唱咸關舊時曲, 至今雲雨暗靑山(막창함관구시곡, 지금운우암청산)
그리고 그녀가 보냈던 이별의 시도 <번방곡>이란 한시로 번안하여 함께 건네준다.
飜方曲
折楊寄與千里人, 爲我試向庭前種(절양기여천리인, 위아시향정전종)
須知一夜新生葉, 憔悴愁眉是妾身(수지일야신생엽, 초췌수미시첩신)
버들가지 꺾어
천리 머나먼 임에게 보내오니
뜰 앞에 고이 심어두고
이 내인가 여기소서.
모름지기 하룻밤 지나면
새잎 돋아나리니
이 내의 초췌하게
시름 쌓인 아미인 줄 아옵소서.
그녀가 쓴 시에 다시 자기의 마음을 담아 건네주는 것이다. 정말 가슴 저리고 감동적인 이별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다행히 시에서 소망한 대로 최경창은 바로 1년 뒤, 선조임금의 부름을 받아 명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오게 되고 전라도 영광군수(종4품)에 제수된다. 그리고 다시 경성부사로 승차하여 임지로 가는 길에 홍랑과 재회했으나 안타깝게도 1583년 성균관 직강(정5품)에 임명되어 서울로 떠나던 중 45세를 일기로 경성 객관에서 병사한다.
이젠 상여를 따라 서울 인근인 파주로 올라온 홍랑. 그녀는 뭇 사내들이 탐내지 못하도록 자신의 고운 얼굴을 험하게 상처내고 최경창의 무덤 옆에서 3년 동안 험한 시묘살이를 산다. 그리고 6년 뒤(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에도 목숨을 걸고 최경창이 남긴 시집(詩集)을 품속에 지니고 피난을 다녔기에 주옥같은 그의 시가 오늘날까지 온전히 전해질 수 있었다 한다.
홍랑은 단 한 편의 시만으로 시인의 삶을 살았다.(물론 최경창을 만나기 이전에 쓴 알려지지 않은 시도 많았겠지만) 나머지는 거의 최경창의 시를 사랑하며 살았다. 최경창 역시 많은 시를 썼지만 그녀와 함께 일생을 보냈고 사후의 삶까지 그녀에게 맡기고 있다.
詩는 이렇듯 삶 속에서 만들어지고 누군가와 더불어 혹은 그를 바라보는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월간『牛耳詩』 20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