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부 감정의 기원과 그 본성에 관하여
감정의 정의
1. '욕망'이란, 인간의 본질 그 자체이다. 이 경우 인간은 주어진 각 변화상태(변체=변양)에 의하여 어떤 것을 하게끔 결정되어 있다고 생각된다. (164쪽)
2. '기쁨(즐거움)'이란, 인간이 보다 적은 완전성에서 보다 커다란 완전성으로 이행하는 것이다. (165쪽)
3. '슬픔(고통)'이란, 인간이 보다 커다란 완전성에서 보다 적은 완전성으로 이행하는 것이다. (165쪽)
4. '경탄(놀라움)'이란, 정신이 한 대상에 강하게 얽매여 있는 상태를 가리킨다. 정신이 그처럼 몰두하는 것은 그 대상의 표상이 특수하며 다른 표상과는 전혀 관계를 갖지 않기 때문이다(이 부의 정리52와 그 주해를 볼 것). (166쪽)
설명 : 나는 놀라움(경탄)을 감정 안에 셈해 넣지 않는다. 또 그것을 감정의 하나로 보아야 하는 이유도 알 수 없다. 실제 정신의 이와 같은 격리작용이 생겨나는 것은, 정신을 다른 것으로부터 분리하는 적극적인 원인에서 유래하는 것이 아니고, 단순히 정신으로 하여금 한 대상에 대한 사색을 그만두고 다른 것을 사색하도록 결정하는 원인이 결핍되어 있는 데서 유래한다. (166-167쪽)
[주] 놀라움(경탄)을 감정으로 간주하지 않는 점은 스피노자 자신의 문제점이다. 그에 의하면 감정에는 정신 자신의 적극적인 변화가 동반되어야 하는데, 놀라움은 다만 정신의 상상으로 인한 결과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중요시했던 데카르트의 [정념론] 제2부 69에서도 이 놀라움을 6개의 기본감정 중의 하나라고 했다. (181-182쪽)
5. '경멸'이란, 정신을 거의 감동시키지 못하는, 그렇기에 정신이 그것을 눈앞에 보면서도 그 안에 있는 것보다 그 안에 있지 않는 것을 상상하도록 만드는, 어떤 사물의 표상이다(이 부의 정리52를 볼 것). (167쪽)
6. '사랑'은, 외적 원인의 관념을 동반하는 기쁨이다. (167쪽)
7. '미움'은, 외적인 원인의 관념을 동반하는 슬픔이다. (168쪽)
8. '애호(호감)'는, 우연히 기쁨의 원인이 되는 사물의 관념을 동반하는 기쁨이다. (168쪽)
9. '혐오(꺼림)'는, 우연히 슬픔의 원인이 되는 사물의 관념을 동반하는 슬픔이다. (168쪽)
10. '헌신'이란, 우리가 경탄하는 것에 대한 사랑이다. (168쪽)
11. '조소(조롱)'란, 우리가 경멸하는 것이 증오하는 것에 내재하고 있음을 표상할 때 생겨나는 기쁨이다. (168쪽)
12. '희망'이란, 불안정한 기쁨이다. 즉 그것은, 우리가 그 결과에 대하여 어느 정도 의심하고 있는 미래나 과거의 사물에 대한 관념에서 생겨난다. (169쪽)
13. '공포(무서움, 두려움)'는, 불안정한 슬픔이다, 즉 그 결과에 대하여 우리가 어느 정도 의심하고 있는 미래나 과거의 사물에 대한 관념에서 생겨난다. (169쪽)
14. '안도(안심)'는, 하나의 기쁨이다. 즉 의심의 원인이 제거된 미래나 과거의 존재물에 대한 관념에서 생겨나는 기쁨이다. (169쪽)
15. '절망'이란, 하나의 슬픔이다. 즉 의심의 원인이 제거된 미래나 과거의 존재물에 대한 관념에서 생겨나는 슬픔이다. (169쪽)
16. '희열(환희)'은, 공포에 어긋나게 일어난 과거의 사물의 관념을 동반하는 기쁨이다. (170쪽)
17. '회한(낙담, 양심의 가책)'이란, 하나의 슬픔이다. 즉 희망에 어긋나게 일어난 과거의 사물의 관념을 동반하는 슬픔이다. (170쪽)
18. '연민(긍휼)'은, 우리가 동류라고 표상하는 다른 사람에게 당면한 해악의 관념을 동반하는 슬픔이다. (170쪽)
19. '호의'란, 다른 사람에게 봉사하는 사람에 대한 사랑이다. (170쪽)
20. '분노'란, 타인에게 해악을 끼치는 사람에 대한 증오이다. (170쪽)
21. '과대평가'란,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 때문에 그를 정당한 것 이상으로 평가하는 것이다. (170쪽)
22. '과소평가'란, 다른 사람에 대한 미움(증오) 때문에 그를 정당한 것 이하로 평가하는 것이다. (170쪽)
23. '질투(시기)'는, 다른 사람의 행운을 보고 슬퍼하며, 반대로 다른 사람의 불행을 보고 기뻐하도록 사람을 자극하는 경우의 미움이다. (171쪽)
24. '동정(同情)'이란, 타인의 행복을 보고 기뻐하며, 반대로 타인의 불행을 보고 슬퍼하도록 사람을 자극하는 경우의 사랑이다. (171쪽)
25. '자기만족'은, 사람이 자기 자신 및 자기의 활동을 고찰해 보는 데서 생겨나는 기쁨이다(그림6 참조). (171쪽)
26. '비하(겸손)'란, 사람이 자기의 무능이나 허약을 고찰해 보는 데서 생겨나는 슬픔이다. (172쪽)
27. '회오(悔悟, 후회)'란, 정신의 자유로운 결정에 의하여 수행된다고 믿어지는 어떤 행위의 관념을 동반하는 슬픔이다. (172쪽)
28. '거만(교만)'은, 자신에 대한 사랑 때문에 정당한 것 이상으로 자기 자신을 높게 평가하는 것이다. (172쪽)
29. '자비(自卑, 소심)'는, 슬픔 때문에 자신을 정당한 것 이하로 평가(간주)하는 것이다. (173쪽)
30. '명예(허영)'는, 하나의 기쁨이다. 즉 누군가가 칭찬하여 줄 것으로 표상되는 행위의 관념을 동반하는 기쁨이다. (174쪽)
31. '치욕'이란, 하나의 슬픔이다. 즉 어떤 사람에게 비난받을 것으로 표상되는 행위의 관념을 동반하는 슬픔이다. (174쪽)
32. '사모'는, 어떤 것을 소유하려는 욕망 혹은 충동이다. 즉 그와 같은 욕망은 존재물의 회상에 의하여 유지되며, 또 그 존재물의 존재를 배제해주는 다른 것을 회상할 때 억제된다(그림7 참조). (174쪽)
33. '경쟁심(대항심)'이란, 다른 사람이 무언가에 대해 욕망을 가진다고 표상될 때, 우리 안에 생겨나는 그 대상에 대한 욕망이다. (175쪽)
34. '사의(謝意, 감사)'란, 우리에게 한결같이 사랑의 감정으로 은혜(선행)을 베풀어 준 사람에게 은혜를 갚으려는 욕망 혹은 사랑의 열의이다. (176쪽)
35. '친절'이란, 우리가 동정하는 사람에게 기쁨을 주려고 하는 욕망이다. (176쪽)
36. '분노(노여움)'란, 미워하는 마음을 품고, 자신이 증오하는 사람에게 해악을 가하려는 욕망이다. (176쪽)
37. '복수'란, 서로 증오하기 때문에 같은 감정에 자극되어, 자기에게 해악을 가한 사람에게 해악을 가하려고 노력하는 욕망이다. (176쪽)
38. '잔인(잔혹)'은,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이나 연민하는 사람에게 해악을 가하려고 노력하는 욕망이다. (176쪽)
39. '겁(근심)'이란, 우리가 무서워하는 보다 커다란 화를 보다 작은 화로써 회피하려는 욕망이다. (176쪽)
40. '용감(대담)'이란, 자기의 동류들이 떠맡기를 두려워하는 것을 애써 위험을 무릅쓰고 추구하려는 욕망이다. (176쪽)
41. '소심'이란, 자기의 동류가 대담하게 감행하는 위험을 보고 겁을 내어, 자기의 욕망을 억제하려 하는 인간에 대한 말이다. (176쪽)
42. '공황(당황)'이란, 무서운 화에 대한 놀라움 때문에 화를 피하려는 욕망이 억제되는 경우를 가리킨다. (176쪽)
43. '공손함 또는 순종'은, 사람들의 마음에 드는 것을 행하려고 하며, 또 사람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을 행하려고 하지 않는 욕망이다. (177쪽)
44. '명예욕'은, 명성(명예)을 얻으려는 나머지 절제를 잃은 욕망이다.
설명 : 키케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무리 훌륭한 사람도 명예욕에는 지배당하게 마련이다. 철학자들은 명성(명예)을 경멸해야 한다고 써 놓은 그들의 책 안에 자신들의 이름을 써넣었다." (177쪽)
[주] 키케로(Cicero, BC 106~43)는 로마의 웅변가이다. 스피노자가 인용한 이 말은 키케로의 연설집11에 있는 것이다. (182쪽)
45. '탐식(貪食=포식)'이란, 미식에 대한 무절제한 욕망 혹은 사랑이다. (177쪽)
46. '폭음'이란, 음주에 대한 절제 없는 욕망이요, 사랑이다. (177쪽)
47. '탐욕'이란, 부(富)에 대한 절제를 잃은 욕망이며 사랑이다. (177쪽)
48. '색욕(色慾=육욕)'이란, 이성과 교제하려는 욕망이며 사랑이다. (177쪽)
지금까지 내가 설명한 여러 감정의 규정으로 보아 이들 감정들은 오로지 욕망 · 기쁨 · 슬픔의 세 감정에서 생겨난 것이 명백하다. 결국 모든 감정은 이들 세 감정에 지나지 않으며, 그들의 다양한 관계와 다양한 외적 특징에 따라 각기 별개의 이름으로 불리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세 개의 근원적인 감정과 정신의 본성에 관하여 우리가 이제까지 다루어 온 내용을 유의한다면, 우리는 단지 정신에게만 관계하는 감정을 다음과 같이 정의할 수 있다. (179쪽)
감정의 일반적인 정의
정신의 수동상태라 불리는 감정은 혼란된 관념이다. 그런 관념으로 말미암아 정신은 자신의 신체 전부나 혹은 그 일부분에 대하여 이전보다 크거나 작은 존재력을 긍정한다. 그리고 그와 같은 혼란된 관념이 주어짐으로 인하여, 정신 자신은 어떤 것을 다른 것보다 더 많이 사색하도록 결정된다. (179쪽)
설명 : 첫째, 나는 감정 혹은 정신의 수동상태를 '혼란된 관념'이라고 말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이미 명시한 것처럼 정신은 불충분하거나 혼란된 관념을 가질 때 작용을 받기 때문이다(이 부의 정리3을 볼 것). 다음으로, 나는 '혼란된 관념에 의하여, 정신이 자신의 신체 전부 혹은 신체의 어느 한 부분에 대하여 이전보다 크거나 작은 존재력을 긍정한다'고 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신체의 모든 관념은 외적 물체의 본성보다도(제2부 정리16의 계2에 의해) 우리 신체의 현실적 상태를 보다 많이 표시한다. 그중에서도 특히 감정의 본질을 구성해 주는 관념은, 신체 전부나 혹은 한 부분의 활동력 및 존재력을 증대시키거나 감소시키고 또는 촉진하거나 억제함으로써, 신체 전체나 또는 그 일부의 상태를 표시 또는 표현해야 한다. (...) 끝으로, '정신 자체는 그러한 혼란된 관념이 주어진다면 어떤 것을 다른 것보다 많이 사색하도록 결정된다'고 나는 덧붙여 말하였다. 이것은 감정에 대한 정의의 맨 처음 부분에서 설명되어 있는 기쁨과 슬픔의 본성 이외에, 욕망의 본성도 아울러 표현하여 두기 위해서이다. (179-18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