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회에서 컴퓨터를 빼버리면 우리의 일상생활이 멎어버릴 것이다. 가까운 예로 커피 한 잔이나 우동 한 그릇도 컴퓨터로 주문하고, 본인 아니면 절대로 안 된다던 인감증명서도 간단히 컴퓨터로 받을 수 있다. 코로나로 인해 학교 교실 수업을, ‘비대면’이란 이름으로 집에서 선생님 얼굴을 보면서 공부를 계속했다. ‘네비’란 길 안내 프로그램은 나라의 구석구석 번지까지 찾아가 집 대문 앞에 차를 멈추게 한다.
이걸 모르는 노인들은 쉽사리 커피 한 잔도 마시기 어려워 뒷골목 아줌씨 가게를 찾는다. 불과 반세기가 못 되는 사이에 엄청난 변화이다.
「나이 많은 사람이 나이 적은 사람에게 머리를 숙여야 하는, 인류 역사상 없었던 일」이 이 컴퓨터 때문에 발생했다고 한 철학자의 말에 수긍이 간다. 대학교수인 아버지가 대학생 아들에게 PPT(파워포인터) 하나 만들어 달라고 하다가 그 아들의 눈빛에서 심한 모멸감을 느꼈다고 한다. 이 시대의 위대한 괴물이요 현대의 마술사다.
“허허! 이기요, 아 맹그는 일 빼고는 다 하네요.”라고 하던, 국민정보화 IT 강사 시절 때 초로(初老)의 제자(弟子)가 한 말이 현실화가 되었다는 느낌도 든다.
내가 이 괴물을 처음 마주하게 된 것은 1979년 1월, 7,000톤급 최신형 냉장·냉동선 ‘Royal Lily’호에서다. 일본 나가사키(長崎)에 있는 하야시가네(林兼)조선소가 신조(新造)한 선박으로 당시 일본에서도 자력(自力) 조선(造船)했다는 자부심을 나타낸 기술집약형 최신선박이었다.
선박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냉장 · 냉동고로서 영상 20도에서 영하 30도까지의 온도를 8개의 선창(船倉)별로 자유롭게 유지하면서 야채나 과일, 육류, 생선 등 식품을 비롯한 냉장(冷藏)이 필요한 화물의 운송에 따른 모든 조치와 그로 인한 선속(船速) 등을 감안해야 하기 때문에 고도의 기술을 필요로 하는 선박이었다.
주로 식품을 운반하는 선박의 속성상 빠른 속력이 필요함으로 선체의 중량(重量) 톤수에 비해 마력은 10,000마력이나 되면서도 온도 조절의 제약으로 선박의 크기를 최대 1만톤 이상으로 만들기가 불가능하였다. 주기관(主機關)의 소리도 웅장하고 각 기통에서 울리는 폭발음도 우렁찼다.
일반 선박의 기관실에는 추진력을 담당하는 주기관(主機關)과 발전기 그리고 그에 따른 부속시설들이 전부이지만 냉장 냉동선에는 냉동기관이 추가되어 이 부분이 가장 중요한 시설이기도 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기관실 전체를 제어하는 ‘통제실(Control Room)’이라는, 그리 크지 않은 규모의 별실(別室)이 따로 만들어져 있었는데 여기에 요상한 것이 있었다.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것이었다.
초기의 Apple사 컴퓨터
신기한 것은 옛날 초등학생 시절에 쓰던 책받침보다 쬐금 더 큰 크기의, 까만 바탕에 초록색 글자가 갓 깨어난 누에처럼 꼼지락꼼지락 움직이는 화면을 가진 두 대의 ‘컴퓨터’라는 것이었다. 지금이야 눈에 익지만, 한 쪽을 베어 먹은 사과 그림의 로고가 있는 것. 바로 ‘에플사(Apple社)’ 제품이었다.
다행히 사용설명서가 영어와 일본으로 자세하게 되어 있어 쉽게 이해하고 터득할 수 있었다. 기관실 자체의 뜨거운 열기(熱氣)를 피하여 시원한 냉방시스템이 된 곳이면서, 전면(前面)이 두꺼운 유리로 된 방음벽이라 소음마져 차단된 곳에서 기관실 전체를 훤히 내려다보면서 컴퓨터 앞에 앉은 당직 기관사(機關士)가 자판기의 키(Key)를 몇 번 두드리기만 하면 마치 괴물같이 움직이던 기관이 ‘죽었다 살아나기’를 반복하고 L.O(유활유) 역시 몇 번의 키 조작으로 필요한 시간과 장소를 맞추어 두면 자동적으로 적재적소에 주입되곤 하였다. 실무 기관부원들이 “선장님, 이기요, 누버 떡 묵기라요.”라며 좋아하던 표정이 지금도 선명하다.
이런 시설이 없으면 당직자가 기름 조리개를 들고 일일이 뜨거운 기관실을 돌며 점검하고 수십 개의 계단을 오르내리며 요소요소에 부어야 했으니 그럴 만도 하다.
“기관마력이 엄청 크다고 하길레, 그 소음과 덩치 하며 뜨거운 열기 속에 높은 계단을 오르내리기가 여간한 일이 아닐 거라고 각오했는데, 막상 와 보니 이건 지금까지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천국’이다.”라고 기관장 영감님도 얘기했다.
신기했다. 마치 동화 ‘요술램프’에 나오는 알라딘과 거인처럼 말 한마디로 부리는 식이었다. 도대체 뭘 어떻게 했기에 저렇게 될까? 신통방통했다.
선교(Bridge) 보다 먼저 기관실에 컴퓨터가 설치된 셈이다. 지금이야 선교에는 초정밀 컴퓨터들이 여러 대 설치되어 바깥을 보지 않고서도 항로 · 위치 · 선속 · 타 선박 혹은 부두와의 거리 등 만이 아니고 태풍의 움직임까지 이 정확하게 표시되고 있고, 기관실에는 모든 기통(氣筒)의 온도는 물론 각 탱크의 평형수(Ballast)나 연료의 잔량 등도 눈으로 볼 수 있게 되어 있어 선박의 경제적인 운항과 안전을 도모하고 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컴퓨터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사실은 이 컴퓨터 이전에 게임을 먼저 알았다. 당시 일본에서는 게임기가 대단한 인기를 끌고 있었다. 그때도 「Nintendo(닌텐도, 任天堂)」가 단연 최고였었다. 프로그램이 입력된 게임기는 쉽게 접할 수도, 살 수도 있었다. 그것이 지금은 휴대폰 속에 들어가 있기에 청소년들은 물론 중년들도 지하철에서 즐기는 광경을 볼 수 있다. 일본 동경의 아키하바라(秋葉原)에 가면 입이 벌어질 정도의 전자제품이 있었고, 알아보지도 못하는 게임기나 기기(器機)들이 바리바리 쌓여 있었다.
또 일본 시내를 다니다 보면 고장으로 집 앞에 버려진 TV가 많았다. 얻어다가 적당히 먼지를 털고 연결하면 텔레비전 기능은 불가능하였지만 게임은 기똥차게 잘 나왔다.
처음 내가 좋아한 게임이 ‘겔럭시(Galaxy)’란 것이었다. 아랫부분에 준비된 로켓이 스윗치를 누름과 동시에 총알같이 날아가 위로 지나가는 비행물체를 맞추어 떨어뜨리는 게임이다. 초등학교 시절 빌려온 만화에 빠져 밤을 꼬박 새운 이후 처음으로 이 게임으로 밤을 새웠다.
이런 게임들을 내 손으로 직접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에서 시작한 것이 베이직(Basic) 방식이었다. 지금의 스마트폰 두서너 배 되는 크기와 두께를 가진 기기(器機)에다 책에 나와 있는 데로 Code(코드 : 알파벳과 숫자 혹은 기호로 됨)를 직접 입력하고 실행하기만 하면 ‘두더쥐 잡기’, ‘시계’, ‘미로’ 같은 각가지 게임이 되곤 하는 것이 있었다. 신기하기도 했지만 재미도 있었다. 알파벳과 문자, 숫자만 입력하면 움직이는 영상으로 게임이 되는 것이었다.
현재 집에서 사용하는 Notebook(HP)
한 번은 어떤 게임의 코드를 입력하고 실행시켰는데 되질 않는다. 천 여 자(字) 이상의 알파벳과 문자, 숫자 등을 조합하여, 옆에서 본 사람이 “눈 빠지겠다”고 할만큼 꼼꼼하게 입력했는데도 매번 ‘불가(不可)’로 떴다. 밤을 하얗게 새면서 며칠 밤을 붙었다. 어딘가 입력이 잘못되었다는 결론인데 찾을 수가 없었다. 환장할 일이었다.
내가 한 번 쓴 숫자나 글자가 잘못된 경우 내 자신이 그 착오를 발견하기가 어렵다는 사실을 경험한 적이 있다. 초임 교사 시절, 통계문서를 작성하는데 아무래도 맞질 않았다. 일련번호가 틀린다. 요즘같이 자동계산은 꿈도 꾸지 못했고 계산기는커녕 주판 아니면 직접 손으로 헤아려야 했던 시절. 실제 학생 수는 325명인데 일련번호는 335번이다. 수십 번을 세어 봐도 그렇다. 옆에서 보던 연로 하신 선생님 한 분이 “어디 보자” 하시더니 한 번 쓱 훑어 보시곤 “여기…” 하시면서 지적하는 곳을 보니, 이런! 잘 나가다가 ‘143’번 자리에 ‘153’라고 적혀 있었다. 졸지에 10명이 늘어난 것은 당연지사. 그 ‘5’ 자가 왜 그렇게 눈에 띄질 않았을까.
그 기억이 얼핏 떠올라 요령만 알려주면 해낼 수 있을 만한 직원 한 명을 불러 ‘맥주 몇 깡’으로 부탁했다. 잘못된 곳이 어딘가 찾아보라고… .
한 시간도 안 되어 해결되었다. “선장님 여기가…” 하면서 찾아준 딱 한군데. (. : 마침표)가 들어가야 할 자리에 (, : 쉼표)가 들어가 있었다. 우선 원인을 찾았으니 반가웠지만, 자신이 생각해도 바보스러워 ‘멍청한 넘’이라고 내 머리를 쥐어박으면서도 아무래도 신기할 뿐이었다. 눈에 뵐 듯 말 듯한 점의 꼬리 하나가 무슨 역할을 했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쉼표와 마침표’는 문자로서의 기능은 전혀 다른 것이기는 하지만, 컴퓨터 세계에서는 단순한 기호이니 모양으로 인식할 뿐이다. 분명히 모양은 다르다. 암튼 잘 아는 알파벳과 숫자, 점, 괄호 등등 각종 기호만을 입력했는데 글자는 하나도 안 보이고 게임만 작동되니 놀랄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요즘은 이것을 코딩(Coding)이라고 하여 스크렛치(Scratch)나 엔트리(Entry) 같은 프로그램으로 초등학교에서부터 가르치고 있다. 또 인공지능(AI : Artificial Intelligence) 시대가 열려, 그것을 만들어 낸 사람과 경쟁을 하며 맞짱 뜨려 하고 있다. 스마트폰은 속된 ‘말로 개도 물고 다닌다’고 할 정도로 보급되어 있다. 이 역시 컴퓨터에서 나온 것이지만, 최근에는 컴퓨터가 핸드폰에 밀리고 있다.
다행히 승선 중 일상 문서 작성 시 사용했던 영문 타자기 자판이 바로 컴퓨터 자판기와 똑같았기 때문에 쉽게 접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한글보다 영문자판을 먼저 익힌 셈이다.
덕분에 컴퓨터 관련 자격증을 ‘워드프로세스 1급’을 비롯하여 ‘컴퓨터활용능력 2급’, 국제자격이라고도 하는 ‘MOS(Microsoft Office Specialist)’ 등 대여섯 개를 취득하기도 했다.
동영상도 신물 나게 주물럭댔지만, 좀 더 전문적으로 건너가, ‘웹튠’과 움직이는 ‘이모티콘’ 제작까지 이어졌어야 하는데, 프로그램까지 구해두고도 공부하지 않은 것은 내 게으런 성품탓이지만, 지금 생각하면 아쉽고 후회스러운 일임이 분명하다.
현재 사무실에서 쓰고 있는 것. 꽤나 나이를 먹었다
운 좋게도 나는 이 세기의 괴물을 일찍이 접할 기회가 있었기에 졸저 「항해일지」, 「회고록(痕迹)」을 쉽게 발간할 수 있었고, 내 과거를 모두 IT(Information Technology)화(化)하여 손바닥보다 작은 USB(외부 저장기)에 담아 어디든 들고 다니기도 한다.
아마도 이 현대의 마법사가 우리 또래에게는 시대적 숙제(宿題)였는지도 모른다. 동시대에 태어났으면서도 우리 세대를 밟고 지나가면서 경제부흥의 주역들을 시대의 낙제생으로 둔갑시켰다. 그래서 어떤 이는 잘하고 전혀 못 하는 친구도 있다.
지금도 나에게 컴퓨터는 일상의 중요한 Routine이 되고 있으며, 특히 타자(打字 : typing)는 양손을 함께 쓸 수 있는 유일한 도구로, 심지어 치매 예방에 효과가 있다는 의학적 연구 결과까지 있으니 일거양득이 아닐 수 없기에 매일 밥은 굶어도 한 시간 이상은 자판을 두드리고 있다.
뭘 쳐야 하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어려 울 것은 없다. 주위의 신문지나 책 등 보이는 대로 하거나, 아니면 지금 머리속의 생각대로 두드리다 보면 자연히 새로운 방향이 보이게 되어 있다. 내가 좋아했던 30여 권의 책을 통째로 입력하고, 책은 버리므로 복잡한 서재가 설렁하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으니 꼭 권하고 싶은 일이기도 하다.
가끔은, 자기는 할 줄도 알고, 하고 싶기도 하지만, (하기 싫어서? 게을러서?) 실천이 잘 안 되니 샘(심술)이 나서 핀잔을 주는 마눌님의 잔소리를 들으면서도…. .
첫댓글 목을 쭈욱 빼고 읽었습니다. 신나게. 공감하면서 ....
늦게 시작은 했으나 컴 앞에 앉아 밤을 세우기 일쑤였습니다. 이 괴물에 올릴 애플릿(applet)을 공부하다가 죽어도 좋다면서.....ㅋㅋㅋ
그런데 모바일을 접하고선 빨리 죽을 수 없다. 모바일 땜시.ㅋㅋㅋㅋㅋ
이제 기력이 쇠진해서 모두 놓고 편하고 싶습니다.
목디스크 허리디스크가 '네 몸 좀 사랑해줘라'기승을 부립니다.ㅋㅋㅋ
선각자 늑점이님의 건강을 염려하면서 편안한 밤 되시길 바랍니다. ^^
컼퓨터에 관한 좋은 이야기를 잘 읽었습니다. 컴퓨터로 큰 변혁이 있었지만 계속 발전하여 어정거리면 더욱 쳐지게 될 것 같습니다.
나이가 들어도 컴퓨터를 자주 만지고 새로 나오는 기법을 공부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건강과 행복을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