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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 금괴 실은 트럭은 어디로
런던 시내 한 복판 영란은행 주변에 난리가 난 그 시각, 런던에서 서쪽으로 난 M4 고속도로 위를 컨테이너를 실은 짙은 쥐색 볼보(VOLVO) 트럭이 빠른 속도로 달리고 있었다.
시속 100km가 넘는 속도로 서쪽을 향해 달린 볼보트럭은 한 시간 반 만에 남북으로 뻗은 M5 고속도로와 교차하는 대도시 브리스톨에 다다랐다.
브리스톨에서 M5 고속도로 위로 갈아탄 트럭은 남쪽으로 100km를 더 달려서 서쪽으로 난 A361 지방도로로 빠져나왔다.
어둠 속 꾸불꾸불한 지방도로를 타고 70km쯤 가더니 잉글랜드 땅 `하틀랜드 데번 헤리티지 코스트` 근처의 한적한 해안 절벽에 멈춰 섰다.
이곳은 북쪽 웨일즈와 남쪽 잉글랜드가 브리스톨 해협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는 곳이다.
브리스톨 해협에서 서쪽의 켈트해를 지나면 섬나라 아일랜드에 도달한다.
이곳 하틀랜드에서 북서쪽으로 20km 해상에 영국령 `룬디 헤리티지 코스트`라 불리는 아주 작은 섬이 있다.
브리스톨 해협 입구에 위치한 이 섬은 남북으로 길쭉한 길이가 5km 정도이고, 선착장과 하얀 등대가 있는 남쪽 끝 제일 넓은 폭이 1.5km이다.
민간인은 살지도 않는 이 외딴섬에는 선착장 근처에 헬리콥터 착륙장도 갖춘 영국군 소규모 주둔부대 캠프가 있는데, 헬기도 없고 보초나 경계를 서는 병사도 보이지 않는다.
이 섬 북쪽 끝에 차량은 들어올 수 없는 하얀 무인등대가 있고, 이 등대의 서쪽 600m 해상에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돌핀부두(dolphin wharf: 해상에 정박한 채 하역하는 시설)가 있다.
어제저녁에 아일랜드에서 몰래 들어와 영국 본토 하틀랜드 해안에 북괴군으로 구성된 R팀을 내려주고 이 돌핀부두에 은신해 있던 러시아 외항선이 조금 전에 출발하여, 되돌아온 R팀 볼보트럭이 도착할 `데번 헤리티지 코스트`로 향하고 있다.
어젯밤에 짙은 안개가 낄 거라는 일기예보에 맞춰서 D데이를 잡았고, 이제 조금 후에 먼동이 트면 농무도 사라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소령님! 안개가 점점 걷히는데, 배가 아직 안 보입니다? 짐을 미리 내려놓으면 어떨까요?”
안개 낀 어두운 고속도로를 시속 100km가 넘는 속도로 R트럭을 몰고 온 사우디 특수부대 대위 유세프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아킨피프 러시아 소령을 쳐다본다.
트럭에서 내려와 만반의 하역준비를 갖춘 10명의 R팀 대원들과 백두산 대장도 멀리 안개 낀 어두운 바다를 바라보며 초조한 표정으로 어슬렁거린다.
“여기는 통신감청이 심해서 무전기 사용은 위험해요. 약속된 시간이 다 돼 가니까 곧 나타날 겁니다. 예정대로 그때 짐을 내리기로 합시다.”
캐나다 TD은행 런던지점 지하금고의 금괴 탈취 작전 책임자인 아킨피프도 내색은 안 하지만 가슴속은 조마조마해서 견디기가 힘들다.
만에 하나, 러시아 외항선이 문제가 생겨서 제시간에 도착하지 못하면, 안개 걷힌 아침에 훔친 10톤의 금괴를 트럭에 싣고 어디로 피해서 은신할 곳도 없는 상황이다.
한마디로 외항선 접선 외에 다른 대책이라는 것은 없다.
“아, 저기 불빛이 깜박입니다!”
대원 한 명이 고함을 지르다 입을 틀어막는다.
만약에 무슨 일이 생겨서 정상적으로 철수하지 못하면, 이 대원들은 모두 주머니 속에 넣고 온 극약을 먹고 자살해야만 한다.
멀리 안개 낀 해상에서 신호등의 깜박이는 불빛이 어렴풋이 보인다.
약속시간 04시 30분을 5분 정도 지난 시간이다.
이쪽에서 신호등을 들고 있던 대원이 답신을 보내자, 저쪽에서도 알았다는 신호가 보내져 온다.
“자, 짐을 내려라! 서둘러!”
백두산 대장의 명령이 떨어지기도 전에 북괴군 R팀 대원 10명은 트럭에서 캐리어를 내리기 시작한다.
시간이 04시 35분인데 벌써 안개가 서서히 걷히기 시작하고 어둠도 사라지고 있다.
대원 4명이 트럭 위에 올라가고 6명이 아래에 남았다.
트럭 위 4명은 2명씩 나뉘어 컨테이너 안쪽에 세워둔, 120kg이 넘는 무게의 캐리어를 뒤로 끌고 나와 뉘어서, 가로 손잡이를 잡고 컨테이너 난간에 걸친다.
트럭 아래 4명도 2명씩 나뉘어 각각 캐리어 한 개 양쪽을 붙잡고 들어 내린다.
나머지 2명은 내려진 캐리어를 하나씩 세워서 손잡이로 끌고 널찍한 곳으로 간다.
끌고 온 캐리어를 다시 누여서 가로 손잡이를 하늘로 향하게 하고 잡아당겨 놓는다.
다른 데서 미리 연습을 많이 했던지, 캐리어 2개가 내려지는데 채 30초도 걸리지 않는다.
“선박이 저 자리에 정박했다는 신호입니다!”
바다 쪽을 지켜보고 있던 백두산이 아킨피프에게 보고한다.
“그래요, 나도 보았소. 어제저녁보다 좀 먼 것 같은데, 저 지점이 200m면 드론이 몇 분 후에 도착하겠소?”
눈을 찡그리며 안개 낀 바다의 외항선 신호 불빛을 바라보던 아킨피프가 물어본다.
“어제 돌아갈 때처럼 드론을 싣고 올 거니까, 시속 25km 정도로 날아오겠지요. 드론 4대 실은 운반박스 무게가 130kg 나가니까 빠르게는 못 올 겁니다.”
러시아에 파견되어 이곳 지형을 닮은 모의 시험장에서 한 달 동안이나 대원들과 함께 드론 조종과 실전 예행연습을 해본 백두산이 분명한 대답을 해준다.
아마 러시아제 드론 한 대의 무게가 30kg 나가고, 운반 박스 자체 무게는 10kg인가 보다.
그렇다면 러시아 무인 비행체 드론 한 대는 무려 130kg의 화물을 들어 올려 나를 수 있다는 얘기다.
하기야, ㈜뉴젠 이정훈의 드론도 지금 중동 건설현장에서 100kg 화물은 나르니까, 비행체 제작에 있어서는 미국과 자웅을 겨루는 러시아에서 그 정도야 당연히 만들 수 있겠지.
우리 인공위성 우주발사체 나로호도 러시아 흐루니체프에서 제공하는 엔진을 사용하고 있지 않는가?
“시속 25km로 200m 거리면, 비행시간은 48초밖에 안 걸립니다. 운반 박스 집어 들고 오더라도 1분이면 도착할 겁니다.”
영리한 유세프가 금세 머릿속으로 계산한 정답을 알려준다.
어느새 트럭에서 내린 90개의 캐리어는 10개씩 9줄을 이루고 바닥에 가지런히 놓여있다.
캐리어 무더기에서 조금 비켜선, 표지가 있는 지점에 대원들이 이미 넓게 둘러서서 드론이 날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아, 저기 옵니다!”
채 1분도 안 돼서 멀찍이 100여 미터 거리의 희뿌연 어둠 속 해상 공중에 두 개의 큼직한 물체가 나타났다.
물체가 가까이 날아오자 드론 두 대에 각각 매달려 오는 육면체 철망 구조의 운반 박스가 윤곽을 드러낸다.
GPS에 의해서 착륙 위치가 메모리 된 드론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그들이 둘러서 있는 표지 지점을 향해 분속 400m가 넘는 속력으로 곧장 날아온다.
20여 초 만에 눈앞에 도달한 드론은 똑같은 드론 4개가 들어있는 약 1m 높이의 육면체 철망 구조 운반 박스를 가제트 양팔에 달린 오렌지볼 손으로 거머쥔 채 지면에 살며시 내려놓고 공중에서 정지비행을 하며 머문다.
“자, 각자 자기 드론을 찾아서 선적작업을 한다. 실시!”
드론이 싣고 온 드론 화물이 안전하게 착지된 것을 확인한 백두산이 작업 개시 명령을 내린다.
예행연습으로 자기 역할이 몸에 밴 북괴군 특수부대원들은 일사불란하게 운반 박스로 다가가서 공중에 떠있는 2대의 드론부터 내리고, 두 개의 운반 박스 안에서 모두 8개의 드론과 10개의 조종기를 끄집어낸다.
자기 드론을 찾은 10명의 대원들은 드론과 조종기를 들고 10개씩 9열 횡대로 놓여 있는 90개의 캐리어 앞줄에 가서 열 맞춰 선다.
훈련된 능숙한 솜씨로 조종된 10대의 드론은, 가제트 양팔의 오렌지볼 손으로 가로누워 있는 120kg짜리 캐리어의 가로 손잡이를 거머쥐고 서서히 차례로 날아올랐다.
공중에 솟아오른 10대의 드론은 일렬종대를 이루며 바다에 정박해 있는 러시아 외항선을 향해 항진해 나아갔다.
“야~ 조종 솜씨들이 보통이 아니네요?”
그 광경을 목격한 사우디 유세프 대위가 찬사를 금치 못한다.
“노스 코리아 대원들이 조종연습 하느라고 고생이 많았습니다. 허허.”
러시아 아킨피프 소령도 자기들이 제공한 러시아제 드론을 능수능란하게 조종하는 북한 특수부대원들이 대견한지 칭찬을 해준다.
“이거이 다, 우리 위대한 최고지도자 김정은 장군님 덕분입네다!”
옆에 있던 백두산도 두 선임의 칭찬에 고무되어 괜히 또 쓸데없이 최고 존엄을 찬양하고 나선다.
장군이라니? 김정은이가 언제 육군사관학교 나왔지? 유럽에서 대학 다니지 않았나?
1분도 안돼서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졌던 10대의 드론은, 출발한 지 2분 조금 지나자 다시 줄을 지어 나타났다.
외항선에 금괴가 든 캐리어를 내려놓고 돌아온 드론 10대는 다시 캐리어 10개를 들어 올려 바다로 향했다.
안개가 점점 사라지고 주변이 여명의 어스름에 젖어들 무렵인 05시 20분쯤에 캐리어 90개를 모두 나른 드론이 되돌아와 자기 주인 앞 눈높이에 떠서 자동으로 정지비행을 한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날아온 드론이 드론 2대와 조종기, 그리고 U자형 그네처럼 생긴 철제 물건 12개가 실린 운반 박스 하나를 들고 왔다.
아킨피프와 백두산이 운반박스로 가서 자기들 드론과 조종기를 꺼내고, 함께 실려온 U자 구조의, 걸터앉아서 타고 갈 안장을 들어냈다.
가벼운 금속 봉으로 만들어진 Y 형태 구조물 두 개가 위쪽 v 부분 두 군데서 50cm 길이의 바(bar)로 서로 이어져있다.
거꾸로 세우면 아래로 놓이는 두 개의 바(bar) 위에 사람이 올라앉을 수 있는 U자형 그네 같은 구조가 된다.
위를 향하게 된 양쪽 두 개의 봉은 드론의 가제트 양팔에 달린 오렌지볼 손이 거머잡고 들어 올릴 것이다.
안장에 앉은 사람은 조종기를 자동모드로 두고 출발시켜서, 드론이 뜨면 손으로 이 수직 봉을 잡고 날아가면 된다.
대원들도 자기 드론 밑에 조종기를 내려놓고 운반 박스로 가서 각자의 안장을 챙겨서 돌아온다.
아킨피프와 백두산까지 12명이 된 드론 조종사들이 자기의 드론을 조종하여 가제트 팔에 안장을 부착시켰다.
그런 다음 안장 높이를 앉기 쉬운 지상 30~40cm 정도에 머물게 해서 드론을 자동 정지비행 시키고, 조종기를 안장 위에 얹어 둔다.
이륙 준비가 다 된 대원 몇 명이 다시 철망 운반 박스 앞으로 모여서 처음 가져왔던 운반 박스 3개를 들어 트럭의 컨테이너 안에 옮겨 싣고는 트럭 문을 잠그고 돌아왔다.
아킨피프 소령의 지시에 따라 백두산 중위에 이어서 R팀 북괴군 대원들 모두가 일렬횡대로 도열해 섰다.
탈취한 금괴 10톤은 200m 거리의 해상에 정박하고 있는 러시아 외항선에 실려있고, 이제 이들은 각자의 드론을 타고 외항선으로 돌아가면 작전은 종료되는 시점이다.
러시아 `푸틴` 대통령과 사우디아라비아 `살만` 부왕세자가 1년도 넘게 계획하고 준비한 캐나다 TD은행 런던지점의 금괴 탈취 작전이 오늘 드디어 성공적으로 완수되는 순간이다.
“수고 많았소, 유세프 대장! 또다시 만나기를 기대합니다.”
이번 작전의 책임자 러시아 특수부대 아킨피프 소령이 사우디 유세프 대위와 굳은 악수를 나눈다.
“소령님과 함께해서 영광이었습니다. 다시 또 뵙기를 바랍니다.”
유세프가 아킨피프와 작별인사를 나누고 나서, 옆에선 백두산의 앞으로 옮겨 간다.
“백두산 대장님, 함께한 시간 즐거웠습니다.”
“내래, 정들 뻔했시요. 날래 지나가기요!”
백두산이 무뚝뚝한 인사말을 하면서도 입가에는 미소를 짓는다.
나머지 10명의 R팀 대원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눈 유세프가 볼보트럭으로 걸어가서 운전석에 올라앉아 시동을 건다.
차창 밖으로 손을 내밀어 흔들어준 유세프는 철망 운반 박스 3개만 실린 18톤 트럭을 천천히 몰아 먼동이 터오는 어스름 속으로 사라진다.
유세프의 트럭을 향해서 손을 흔들어주던 대원들은 트럭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서둘러 자기들 드론에 돌아가서 안장에 올라앉는다.
아킨피프 소령부터 공중으로 솟아오른 12대의 드론은 일렬종대를 이루며 서쪽 200m 해상의 러시아 외항선을 향해 날아갔다.
한편, 유세프의 트럭은 타고 온 A361 지방도로에 이어진, 차량통행도 없는 A39 도로를 따라 남서쪽으로 속력을 내고 달린다.
50km쯤 달리던 유세프는 서쪽 해안방향으로 꺾어, 집도 인적도 없는 어느 호젓한 시골길로 들어선다.
조금 더 가자 도로도 없어지고 초지만 무성한 험준한 언덕길이 나오면서 저만치 육지가 끝나는 절벽 위에 검은색 SUV 차량 한 대가 보인다.
트럭이 다가가자 차 안에서 나온 한 사람이 손짓으로 반긴다.
절벽 앞 10여 미터 지점에 멈춘 트럭 옆으로 바짝 걸어온 사내가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그리며 오케이 사인을 보낸다.
템스강으로 향했던 사우디 S팀도 모두 무사하다는 뜻이다.
유세프는 얼굴에 환한 미소를 지으며 시동을 건채 차문을 열고 일어선다.
18톤 볼보 트레일러트럭은 서서히 움직이며 절벽으로 다가가고, 절벽 끝 3m 앞에서 유세프는 차에서 뛰어내린다.
굴러가던 트럭은 앞머리부터 절벽 아래로 꺾이더니 컨테이너를 실은 뒷부분도 금세 시야에서 사라지고 만다.
잠시 후 풍-덩 하는 물소리만 한 번 크게 들리고 주위는 나직한 파도소리만 들려온다.
절벽 끝으로 걸어간 두 사람은 수 십 미터 낭떠러지 아래를 내려다본다.
모래톱도 없고 갯바위 앞 짙푸른 파도만 넘실대는 절벽 아래 해안에 트럭의 흔적은 찾아볼 수도 없다.
말없이 악수를 나눈 두 사람은 SUV 차량으로 걸어가서 시동을 걸고, 어둠이 걷히기 시작하는 시골길을 되돌아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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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어디로?
두근두근...
네, 난정 작가님.
금괴는 드론 타고 러시아 외항선으로... ㅎ
우째 저토록 절묘하게 들어맞는 사진을 구했을꼬?
못 말려!
네, 글보다 삽화 사진이 더 재미있지요?
제가 문피아에 글 쓰는데 소요된 시간의 절반은 참고 자료 검색, 저장이었습니다.
시종일관 손에 땀을 쥐게하는 영화 한편 보는것 같습니다.
네, 뱃사공님. 재미있게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한 늦가을 주말, 즐거운 시간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