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7년 9월 3일 아산UBF 주일메세지
모퉁이의 머릿돌
말씀 / 누가복음 20 : 1~18
요절 / 누가복음 20 : 17
조선시대에 지금의 아산 지역에 온양군,아산현, 신창현이 있었습니다. 천안 지역에는 천안군, 목천현, 직산현이 있었습니다. 온양군과 천안군에는 군수가 부임했고, 아산현, 신창현, 목천현, 직산현에는 현감이 파견되었습니다. 조선시대에 군,현 까지 중앙에서 관리를 파견한 것은 백성들의 세금 부담을 덜어주기 위함이었습니다. asan ubf
신라와 고려시대 농민들은 세금 부담이 컸습니다. 각 지방 호족들, 지역 토호들의 세력이 강하여 백성들은 중앙과 지방의 정치세력 호족들에게 많은 세금을 내야 했습니다.
오늘 말씀에는 주인이 아니면서 주인행세 하는 사람들이 나옵니다. 오늘 말씀에는 주인이 아니면서 주인행세 하는 사람들의 최후가 어떠한지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온 세상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만나고 주 하나님을 경배하고 섬기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asan ubf
1.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가?
1,2절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백성을 가르치고 복음을 전하고 계셨습니다. 이때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문제 제기 하였습니다. ‘당신이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이 권위를 준 이가 누구인지 우리에게 말하라’
19장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성전의 장사치들을 내쫓으셨습니다. 로마는 유대 통치를 원활하게 하게 위하여 유대 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자치권을 부여해주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그들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종교지도자들이 끌어들인 장사치들을 성전에서 내쫓으시자 예수님께 대하여 적개심을 가졌습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말씀을 가르치시고 백성들이 말씀의 은혜 받고 많은 사람들이 모이자 참지 못하고 예수님께 나온 것입니다. ‘당신이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가?’ asan ubf
이들의 표면적 이슈는 ‘권위’입니다. 이것을 ‘자격’이라고 대체해도 됩니다. 성전에 있는 장사치들을 내쫓는 일을 하였는데 무슨 권위, 무슨 권세, 무슨 자격으로 그렇게 하였는가? 성전에서 말씀을 전하고 있는데, 무슨 권위, 무슨 자격으로 이렇게 하고 있는가?
그들에게 주시는 예수님의 대답은 무엇입니까? 3,4절을 보십시오.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도 한 말을 너희에게 물으리니 내게 말하라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 세례 요한은 빈들에서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세례 요한은 요단강에서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모든 유대인들이 세례 요한에게 세례 받으러 나왔습니다. 종교지도자들도 세례 요한에게 나가 보았습니다. 누구도 세례 요한이 어떤 권위로 말씀 전하는지 시비 걸지 않았습니다. 누구도 세례 요한이 세례 베푸는 것에 대하여 문제제기 하지 않았습니다. 많은 백성들이 세례 요한을 선지자로 인정하였습니다. 그의 메시지와 그의 삶과 그의 열매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세운 종이라는 것이 명백 하였기 때문입니다. asan ubf
5~7절을 보십시오. 종교지도자들은 난처했습니다. 세례요한의 권위가 하늘로부터 내려진 것이라고 하면 왜 믿지 않았는지 지적받을 것 같고 인간적인 권위라고 하면 백성들이 돌로 칠까 두려웠습니다.
그들은 대답하였습니다. “어디로부터인지 알지 못하노라” 그들은 난처한 질문에 대하여 빠져나가는 대답을 했습니다.
8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세례 요한의 권위는 하늘로부터 말미암은 것입니다. 예수님의 권위도 하늘로부터 말미암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권세, 하늘의 권세를 가진 분이십니다. asan ubf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이 말하고 있는 표면상의 이슈는 ‘권위’입니다.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무슨 자격으로 말씀을 전하는가? 무슨 자격으로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내쫓았는가? 문제 삼았습니다. 표면상의 이슈가 ‘권위’와 ‘자격’이라면 이면적인 이슈, 이들이 예수님께 반발하고 시비거는 문제의 근원은 ‘소유’입니다. 종교지도자들은 성전이 자기들의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자기들의 것이기 때문에 장사치를 끌어 들이든 환전상을 끌어 들이든 자기들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asan ubf
종교지도자들은 성전만 자기 것이라 여긴 것이 아니었습니다. 100만의 유대인들이 거주하는 예루살렘 성 전체가 자기들 ‘나와바리’라고 여겼습니다. 240만 유대인들이 살고 있는 유대와 갈릴리-유대교를 신봉하는 유대인 커뮤니티 전체가 자기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성전에 오는 유대인들, 예루살렘에 들어오는 유대인들이 모두 내 양, 내 것이라 여겼습니다.
asan ubf
내것 아닌 것을 내것이라고 여기는 것은 큰 죄입니다. 내것 아닌 것을 내것이라고 여기는 것이 얼마나 심각한 결과를 가져오는지 이들은 모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비유를 들어서 말씀하십니다.
9절을 보십시오. “그가 또 이 비유로 백성에게 말씀하시기 시작하시니라 한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어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가서 오래 있다가” 어떤 주인이 포도원을 만들었습니다. 좋은 포도원을 만들었습니다. 주인은 이 포도원을 농부들에게 임대하였습니다. 그리고 다른 나라에 갔습니다.
주인은 농부들에게 포도원에 들어와 농사지을 수 있는 권리, 경작권을 준것입니다. 경작 결과물, 소출을 자기들이 쓸 수 있는 권리도 주었습니다. 대신, 소출의 일부를 임대료로 내야 합니다. ‘세’, 임대료를 내는 조건으로 포도원에 들어갈 수 있는 권리, 경작할 수 있는 권리, 소출을 획득할 수 있는 권리가 농부들에게 주어졌습니다.
asan ubf
농부들이 주인에게 내는 ‘세’는 계약 성립의 중요한 조건입니다. 농부들은 주인에게 세를 내고, 주인은 농부들에게 점유, 경작, 소출을 줍니다. 이 계약에 따라 주인이 먼저 농부들에게 점유, 경작을 허락해주었습니다. 다음은 농부들 차례입니다. 농부들이 세를 내면 됩니다.
10절을 보십시오. “때가 이르매 포도원 소출 얼마를 바치게 하려고 한 종을 농부들에게 보내니 농부들이 종을 몹시 때리고 거저 보내었거늘” 계약 파기 상황이 발생하였습니다. 농부들이 임대료 내기를 거부하였습니다. 주인의 종을 때린 것은 주인에게 한것과 같습니다. 종은 주인의 보냄을 받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농부들은 주인이 보낸 종을 주인 대하듯 잘 대하고 그에게 세를 주었어야 합니다. 이로써 계약은 파기 되었고, 주인은 모욕 당하는 상황이 발생하였습니다. asan ubf
11절을 보십시오. “다시 다른 종을 보내니 그도 몹시 때리고 능욕하고 거저 보내었거늘” 주인은 다른 종을 보냈습니다. 주인은 계약을 즉시 파기하지 않았습니다. 주인은 계약이 지속될 수 있는 기회를 다시 주었습니다. 결과는 같았습니다. 첫번째 종은 그냥 때렸다고 했는데, 두번째 종은 몹시 때렸다고 하였습니다. 농부들의 상태가 더 악해 진 것을 보여 줍니다.
12절을 보십시오. “다시 세 번째 종을 보내니 이 종도 상하게 하고 내쫗은지라” 주인은 계약 파기하고 포도원을 회수하여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인은 세 번째 종을 보냈습니다. 주인은 농부들이 정신 차릴 수 있는 기회를 더 주었습니다. 하지만 농부들은 세 번째 종은 상하게 해서 내쫓았습니다. 첫 번째 종은 맞고 돌아왔고, 두 번째 종은 능욕당하고 심하게 맞고 돌아왔고, 세 번째 종은 부상당하여 돌아왔습니다. 농부들은 갈수록 악해 졌습니다. 이제는 주인이 계약을 파기해야 합니다. 농부들을 내쫓고 그들의 점유, 경작권을 박탈하여야 합니다.
asan ubf
13절을 보십시오. “포도원 주인이 이르되 어찌할까 내 사랑하는 아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혹 그는 존대하리라 하였더니” 주인은 또 다시 기회를 주고자 합니다. 농부들이 그렇게 하는 것이 혹시라도 종들을 보내서 그런 것이 아닐까 하였습니다. 이번에 아들을 보냅니다. 아들을 보내면 아들은 존대할 것이라 기대합니다. 주인은 오래 참는 분입니다. 주인은 농부들이 잘못 했을지라도, 회개할 기회를 주는 분입니다. 주인은 농부들에 대한 신뢰가 있습니다. 주인은 농부들에게 오래동안 자비와 긍휼을 베푸는 분입니다. asan ubf
14~15절을 보십시오. 농부들은 주인이 준 마지막 기회를 버렸습니다. “이는 상속자니 죽이고 그 유산을 우리의 것으로 만들자” 농부들의 본심이 무엇인지 정확히 드러나 있습니다. 그들은 현재 점유하고 있는 포도원을 자기들의 것으로 만들고자 하였습니다. 세는 포도원의 소유권이 주인에게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세를 내는 것은 주인을 인정하고 주인이 가진 소유권을 인정하는 것인데 그것을 거부했습니다. 농부들은 세를 내지 않음으로써 현재 포도원을 불법 점유하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이제 아들을 죽임으로써 불법 점유와 불법 경작 상태를 실제 소유상태로 바꾸고자 합니다.
asan ubf
농부들은 아름다운 포도원에서 농사 지으며 포도원을 만든 주인을 잊었습니다. 포도원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포도원에 대한 집착이 생겼습니다. 집착과 함께 이것을 우리것으로 할 수 있으리라는 착각도 함께 자라났습니다. 농부들은 포도원에 거하면서 포도원의 모든 아름다움과 풍요로움에 대한 탐욕에 사로잡혔습니다.
예수님의 비유는 유대 종교지도자들의 문제를 정확하게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농부들과 같습니다. 포도원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아들은 예수님이십니다. 보냄 받은 종들은 선지자들입니다. 주인이 만든 아름다운 포도원에서 일어난 비극이 유대에서 일어난 것입니다.
asan ubf
유대종교지도자들이 어쩌다 이렇게 된 것입니까? 그들은 하나님께로부터 택한 백성들의 제사장으로 택함받았습니다. 성경선생으로 세움 받았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백성들의 존경 받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의 인정을 받으면서 착각 속으로 빠져들었습니다. 이전의 정복자들이 성전을 파괴하고 제사장들을 몰아냈던 것에 비하여 로마가 제사장들에게 자치권을 주었는데, 정치권력을 맛 보고 이렇게 되었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을 받을 때, 세상 권력의 달콤함을 맛볼 때, 이런 일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asan ubf
중요한 것은 결과입니다. 포도원은 농부들의 것이 아닙니다. 포도원은 주인의 것입니다. 16절을 보십시오. “와서 그 농부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라 하시니 사람들이 듣고 이르되 그렇게 되지 말아지이다 하거늘” 주인의 것을 자기 것으로 여긴 끝은 진멸입니다. 주인의 것을 자기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주인이 보낸 종들을 때렸습니다. 주인처럼 영접할 주인의 종들을 모욕하고 불구로 만들었습니다. 끝으로 그 아들을 죽였습니다. 이것은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죄입니다.
농부들에게 남은 것은 심판입니다. 심판 외에 농부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없습니다. 이 비유를 들은 자들은 그런 일이 일어나지 말았으면! 하였습니다. 하지만, 주인의 것을 탐하고 주인의 종을 상하게 하고 그 아들을 죽인 자들에게 심판은 피할 수 없습니다. asan ubf
역사는 그들이 심판 받을 때 어떻게 심판 받았는지, 어떻게 죽어 갔는지, 얼마나 진멸 되었는지, 하나도 살아남지 못하고 잔인하고 철저하게 죽어간 사실을 기록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주님의 것은 주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주님의 것은 주님께 드려야 합니다. 주님을 주님으로 경외하고 주님의 것을 주님께 돌려 드려야 합니다.
asan ubf
내인생은 나의 것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 노래가 있습니다. ‘내인생은 나의 것’ 인생이 정말 자기 것입니까? 나의 건강과, 나의 본성과, 나의 미래를 정말 내마음대로 할 수 있습니까? 자식을 자기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많습니까? 자식이 정말 자기 것입니까? 자식을 내마음대로 할 수 있습니까? 내가 행복을 주고자 하면 아이가 행복해지고 내가 관심을 주면 관심만큼 아이가 부모의 관심과 바람대로 자라납니까? 예전에는 양을 자기 것이라고 여기는 목자가 많았습니다. 복음역사, 자기 지부, 센터 이런 것을 자기 것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자기 양을 다른 목자가 손도 대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사람 데려다가 자기 자랑 삼고 사람 모아서 자기영광으로 여기는 일이 정말 있었습니다.
asan ubf
내 인생, 나의 삶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내 자식의 주인도 하나님이십니다. 양들도, 주님의 사명도 센터도 모두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인이십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을 주관하십니다. 모든 것에게 복을 주시기도 하고 심판하기도 하십니다. 세우는 분도 하나님이시며 폐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착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모임에는 착각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기 바랍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시간을 맡았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자식을 기르라고 맡았습니다. 사명도, 직장도 모두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 주신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의 주인은 오직 하나님 이십니다. 온 세상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모든 인생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asan ubf
2. 모퉁이의 머릿돌
17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그러면 기록된 바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함이 어찜이냐” 비유의 말씀을 들은 사람들이 그런 일은 제발 일어나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하였습니다. 보통의 논리로 따져 보아도 일어나지 말았으면 하는 점들이 많습니다.
농부들에게 너무 많은 기회를 준 것이 아닌가? 생각듭니다. 포도원 주인은 농부들 때문에 너무 많은 것을 잃은 것 같습니다. 얻어 맞고 온 종들, 모욕 당하고 온 종들, 큰 부상을 입은 종들의 당한 것은 얼마나 안타깝습니까! 가장 큰 충격은 주인의 아들이 죽은 것입니다. asan ubf
아들 편에서 볼 때, 아들은 무슨 죄가 있습니까! 아버지께 순종 하였을 뿐인데, 농부들에게 끌려 나가 죽임을 당했습니다. 비유의 말씀은 가슴 아픈 이야기 입니다. 슬픈 이야기 입니다. 이런 일은 일어나지 말았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비극 중의 비극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기록된 바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함이 어찜이냐” 모퉁이의 머릿돌은 모퉁이의 기초에 박혀서 건축물을 지지하는 주춧돌을 말합니다. 건물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예수님께서 포도원 주인의 아들처럼 영문 밖에 끌려 나가 십자가에 죽음을 당하고 말았다면 그것은 매우 슬픈 이야기 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슬픈 이야기, 눈물겨운 영화를 만드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승리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영광의 하나님이십니다. asan ubf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사도행전 2:36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슬픔에 두지 않으셨습니다.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부활의 주, 영광의 주가 되게 하십니다. 우리가 믿는 우리의 주 예수님은 슬픈 주님이 아닙니다. 우리 믿는 우리의 주 예수님은 고난과 운명에 갇힌 아픔의 주님이 아닙니다. 주 예수님은 다시 살아 만물을 발아래 두시는 주의 주, 왕의 왕이십니다. asan ubf
18절을 보십시오. “무릇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어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그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는 장차 온 세상을 심판하시는 주의 주, 왕의 왕이십니다. 그 날, 하늘의 모든 것이나 땅위의 모든 것, 땅아래 모든 것들은 모두 심판의 주 예수님 앞에 나와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을 심판하시고 알곡을 거둬 들이십니다.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거할 자들을 건져 주시고 이 세상을 폐하실 것입니다. 대신 쇠하지 않고 멸하지 않는 새하늘과 새땅을 열어 주실 것입니다. 천군 천사들은 모두 예수님을 거룩하신 주님으로 찬양하고 찬양할 것입니다.
asan ubf
예수님 당시 예수 믿는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고난과 예수님의 죽음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또 그들은 유대교와 로마 황제가 가하는 핍박과 고난을 감당 하기가 아주 힘들었습니다. 고난과 죽음의 길을 가야 하는 그들의 길은 깊은 탄식과 고통만이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의 주 예수님은 고난받고 슬픔 당하고 끝나는 애절한 이야기의 주인공이 아닙니다. 그를 믿는 우리도 마찬가지 입니다. 우리는 조금 고난을 겪으면 이 고난이 지속 될 까봐 두려워 합니다. 우리는 조금 고생하면 앞으로도 이 고생을 계속 할 까봐 겁이 납니다. 떨어지면 어떻게 하지? 불합격 하면 어떻게 하지? 끊임없이 걱정에 휩싸이는 고3 어린 학생처럼 근심이 많습니다. asan ubf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예수님께서는 모퉁이의 머릿돌로 부활하셨습니다. 부활하셔서 승리의 주, 영광의 주가 되셨습니다. 고난 받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는 지극히 높은 이름, 가장 큰 영광의 이름을 얻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예수님께서 앞서 가신 길을 갈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도 주님과 함께 고난 받으면 예수님과 함께 영광과 승리의 면류관을 얻습니다. asan ubf
이로써 아름다운 포도원을 지으신 만유의 주 하나님께서는 그 이름이 영화로우십니다. 농부들의 악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오래 참으시고 그들에게 은혜를 주시니 그 이름이 영화로우십니다. 아버지의 뜻을 따라 순종하고 죽임을 당한 예수님을 부활의 주 영광의 주로 만유 위에 세우셨으므로 그 이름이 영화로우십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아들을 따라 고난에 참여하는 모든 믿는 자들을 영화롭게 하시니 그 이름이 세세에 무궁하도록 영화로우십니다.
asan ubf
결론적으로 모든 인생의 참 주인이신 하나님께 영광과 찬양을 드립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십자가에 죽으셨다가 다시 부활하셔서 주의 주, 왕의 왕이 되신 예수님을 감사하며 찬양합니다. 우리 모두 일생 토록 예수님을 우리의 주님으로 모시고 사시기 바랍니다. 고난 앞에 슬퍼하지 말고 영광을 얻으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사시기 바랍니다. 이 예수님을 따라 믿음과 순종을 드리기를 기도합니다. 기도하고 마치겠습니다. asan ubf
asan ubf
asan ubf
asan ubf
asan ubf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