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여종 넘는 사시사철 푸른 나무…
삼국유사에 '김수로왕의 왕비가 처음 심었다' 고 전해짐
차나무
전남 강진은 조선 후기 실학자인 정약용(1762~1836)이 18년간 유배됐던 곳입니다. 정약용의 호는 '다산(茶山)'. 그가 10년간 살았던 초당 뒷산 백련사 석름봉에 차나무가 많아 붙여진 이름이에요. 반들반들한 잎을 보며 유배 생활의 고됨을 잊은 걸까요. 실제 정약용은 잎을 뜯어 직접 차를 만들어 마실 정도로 애정이 깊었답니다.
차나무는 사시사철 푸른 상록 관엽수예요. 변종이 많아서 그 모양과 크기가 달라요. 야생종에서 재배종까지 100여 가지가 넘는 차나무가 전 세계에서 자라고 있죠. 원산지는 중국 남서부 쓰촨성과 윈난성, 그리고 미얀마와 인도로 이어지는 산악 지대로 추정됩니다. 10m 이상 교목은 아열대 지방에 많이 분포하고, 2~3m 관목은 북쪽 지방에 주로 분포한다고 해요. 잎은 보통 단단하고 두꺼운 데다 표면에 광택이 있죠.
차는 원래 중국의 불교 사원에서 즐겨 마시던 음료였는데요. 참선할 때 정신을 맑게 해주는 약으로서 차를 마시다 명나라 때 이르러 서민들에게 차 문화가 보급되었다고 해요. 이후 실크로드와 바닷길을 따라 유럽으로 퍼져나가며 '동양의 진귀한 물건'으로 명성을 얻었어요. 특히 17세기 차를 처음 접한 영국인들의 차 사랑은 대단했답니다. 당시 영국에는 거리마다 '커피 하우스'가 있었는데, '티 가든'이 새로 등장하면서 커피의 인기를 위협할 정도였어요.
영국인들은 처음에는 중국에서 차를 들여왔지만 나중에는 식민지 인도에서 차를 재배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인도는 중국보다 너무 더워 중국산 차나무를 재배하기 쉽지 않았어요.
그런데 19세기 초 영국의 한 해군 소령이 인도 아삼 지방에서 자생하는 차나무 한 그루를 발견하면서 상황이 반전됐습니다. 이 차나무는 바로 인도의 더운 기후에 적응한 '아삼종'이었습니다. 잎이 손바닥만큼 큼지막해 손가락만 한 중국산 차나무 잎과 완전히 다르게 보였지만 같은 종(種)이었던 거예요. 식물학자들은 인도처럼 햇빛이 풍부한 지역에서는 잎이 클수록 광합성을 통해 많은 양분을 얻을 수 있고, 해충이 많아도 잎을 다 갉아먹기 어려워 이런 차나무가 생존하기에 유리했을 거라고 설명합니다.
우리나라에는 신라 시대 당나라를 통해 차나무가 처음 소개됐다고 해요. 일연 스님이 쓴 '삼국유사'에 따르면 가야(가락국)를 세운 김수로왕의 왕비인 아유타국(오늘날 인도) 공주가 종자를 가져와서 김해의 죽림에 심었다고 해요. 또 김부식의 역사서 '삼국사기'에 따르면 828년 당나라에서 종자를 들여와 지리산에 심었다고 합니다.
원래 차나무는 따뜻한 전남 장흥이나 영암, 보성, 제주도와 경남 하동, 사천 등에서만 재배할 수 있었는데요. 아삼종보다는 상대적으로 추위에 강한 중국산 차나무이긴 하지만 우리나라의 위도가 차 원산지에 비해 높은 탓에 북쪽에서는 재배가 어려웠기 때문이에요. 대부분 홍차나 녹차 등으로 가공돼 국내에서 소비되고 있다고 해요. 번식력이 강하고 병충해에 강한 편이라 재배할 때 어려움은 크지 않다고 합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기후변화로 인해 차나무의 서식지가 북쪽으로 이동하고 있답니다. 강원도에서도 차나무가 시험 재배되고 있고, 심지어 북한 황해도 강령에서도 차나무를 재배해 '은정차'라는 제품을 만들어 냈다고 해요. 특히 차나무는 식용뿐 아니라 화장품이나 비료, 가축 사료 등으로 쓰이는 등 활용도가 다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