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는 돌담처럼 사람도 바람에 길을 내준다.
[시민포커스=조한일 기자]
흑룡만리
강덕환
일러준 대로 불어주지 않았다, 바람은
이레착저레착 저들도 밤새 뒤척였으리라
그래놓고도 고스란히 지나치지 않았다, 바람은
숭숭 뚫린 돌담을 여지없이 무너뜨렸다, 설령
그렇더라도 바람아, 이 몹쓸 녀석아
돌담이 바람에게 욕하지 않았다
다만, 아귀가 맞지 않아 공글락거리면
몇 번이고 돌리고, 뒤집고, 빼고, 받치기를
서슴지 않았다, 오히려 돌담은
바람을 다스리고 길을 내주었고
바람은 모서리를 원만하게 다듬어
벗이 되고, 이웃이 되고, 마을이 되고
더욱 단단한 줄기를 이어갔다
마침내 꾸불텅꾸불텅 흑룡만리 역사를 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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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말부터 조선 후기까지 제주에 온 유배인들은 처음 보는 ‘검은 돌담’에 적지 않게 당황했을 것이다. 지금처럼 화려한 조명도, 다양한 색상의 빌딩도 없었고 도로도 조잡했고 제주 천지사방이 수백 개 오름과 한라산의 화산 활동으로 빛을 보게 된 현무암 군락들이 만들어 놓은 ‘검은 섬’이 눈에 들어왔을 것이고 그들이 도착한 화북포구 주변에 굳어 있는 시커먼 현무암 갯바위도 멈칫했을 것이다. “검다”라는 느낌이 다였을 것이다. 제주의 “검은” 돌담은 밭담을 비롯해서 잣담, 산담, 울담, 원담, 불턱 등이 있다.
‘이레착저레착’하는 바람의 행로와 ‘숭숭 뚫린 돌담’과의 밀고 밀리는 접전이 제주의 역사, 문화, 신앙, 삶이 되었지만 시인의 표현처럼 ‘바람아, 이 몹쓸 녀석아 / 돌담이 바람에게 욕하지 않았다’. ‘오히려 돌담은 / 바람을 다스리고 길을 내주었고 / 바람은 모서리를 원만하게 다듬어’ 온 참 기묘한 조화로움과 배려와 희생이었다.
그중에 밭담의 총길이는 2만 2108km로 지구 둘레의 절반이 넘는다고 한다. 해안에서 한라산 중턱까지 구불구불 이어진 형상이 마치 검은 용 같다고 해서 선조들이 흑룡만리(黑龍萬里)라고 불러왔다. 이러한 밭담은 제주 자연, 문화, 경제를 융합시키는 요소가 되어 왔는데 1234년 판관 김구가 제주로 부임하면서 변화가 생겼다. 그는 당시 밭에 대한 소유권 분쟁이 종종 일어나자 흔한 돌을 이용해서 경계로 삼았고 소나 말이 남의 밭으로 넘어가는 것, 씨앗과 농작물의 날림, 거센 바람을 막아주게 되고 이후 800여 년 제주 고유의 “돌문화”로 자리 잡게 된다. 그러다가 2014년에 FAO(세계식량농업기구)에 인류가 보전해야 하는 “세계중요농업유산”으로 지정되면서 우리 조상들의 지혜와 농업유산을 세계가 인정하게 된다.
시인의 표현대로 ‘몇 번이고 돌리고, 뒤집고, 빼고, 받치기’가 ‘벗이 되고, 이웃이 되고, 마을이 돼’게 하는 수눌음과 조냥이라는 제주의 2대 정신의 근간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제주에는 돌담처럼 사람도 바람에 길을 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