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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 가장 길었던 하루
긴 해외일정을 마치고 모스크바로 돌아온 일행들은 도시의 분위기가 심상찮다는 점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습니다. 총참모부의 니콜라이 라텔 총사령관은 크라피엘과 세레브랴코프를 부르더니 대뜸 ’최고소비에트 항의방문‘이라는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사정은 이러했습니다. 해방49년(1919년) 3월 카자크 공화국 위수사령관 이반 디오니시오비치 스워지니치니 중장은 카자크 치안대와 외지인 자경대 간의 첨예한 분쟁사태를 해결해야 했습니다. 전임 국방장관 사빈코프가 지시하고 당시 총참모장 루즈키 상장이 승인한 이 인사이동은 꽤 의외의 것이었는데, 스워지니치니는 돈-쿠반 카자크 지역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었기 때문입니다. ”드미트리 본치브루예비치 총참모장의 말에 따르면“ 스워지니치니 중장은 자경단과 치안대의 대립 속에서 한 쪽 편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고, ‘현지 치안 안정’이라는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치안대 병력을 향해 발포를 지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외지인들이 카자크 공화국의 주도권을 장악한 것에는 이런 속사정이 끼어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군의 입장과 정치권의 입장은 달랐습니다. ‘자유로운 공화국들의 연합’에서 중앙의 군인이 가맹 공화국의 정식 치안병력을 제거하고 사실상의 쿠데타를 감행했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으니 말입니다. “그가 무죄면 연합이 유죄라네.” 압크센티예프 총리는 프랑스 혁명기의 유명한 구절을 인용하며 바레츠노프에게 확실히 주지시켰습니다.
민주당, 사회혁명당, 사회민주노동당의 입장(책임자 엄벌, 군의 정치개입 금지, 파견위원제도 제정)이 일본 사건 이후로 오랜만에 일치단결된 7월 11일, 드디어 청문회가 개최되었습니다. 청문회장에 출석한 스워지니치니 중장은 그 어떤 표정도 짓고 있지 않았습니다. 실내 체육관을 개조한 최고소비에트 건물의 ’관중석‘에는 의원 수보다 많은 군인, 카자크, 유족, 그리고 구경꾼들이 몰려들었습니다. 물론 청문회에서 판결을 내리거나 형량을 결정할 수는 없지만, 이곳에서의 증언과 발언이 중장의 실제 처분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점은 쉽게 예측할 수 있었죠.
사회혁명당을 중심으로 한 온건파 의원들이 스워지니치니에게 (유일하게 사형 선고가 가능한)국가반역죄 기소를 주장하는 가운데, 일행들은 갑작스러운 전개에 놀라면서도 차근차근 사건기록을 반추하기 시작했습니다. 군부 대표격으로 출석한 크라피엘이 의원들의 반군인정서를 진정시키면서 세레브랴코프의 대질심문을 유도하고 바레츠노프가 군과 정치권의 타협을 위해 노력하는 동안, 사회민주노동당 강경파의 두 젊은 요원들은 오직 사회주의 혁명만을 생각했습니다. 본래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었던 데이비슨은 애시당초 자유공화국연합 체제 자체가 프롤레타리아 독재정을 수립하기 전 잠깐 거쳐가는 단계라고 생각했고, 그러한 생각에 잠겨있는 것은 체슬라프 역시 마찬가지였으니까요.
크라피엘과 세레브랴코프가 (일견) 스워지니치니를 옹호하는 것으로 판단한 체슬라프가 스워지니치니를 “학살자”라고 비난하며 군부와 맞서려 하자, 그의 후견인 스탈린은 급하게 그의 발언을 막았습니다. 스탈린이 이끄는 당 지도부는 청문회의 분위기를 극단화해 군부의 분노를 유도, 그 군부를 등에 업고 또 한 번의 혁명을 일으키려는 구상을 하고 있었으니까요. 이 구상에 적극 찬성한 데이비슨은 체슬라프에게도 계획을 전달했고, 체슬라프는 조직국 서기로서 로스토프의 당 지부에 사건의 상세보고를 요청했습니다.
한편, 크라피엘과 세레브랴코프는 스워지니치니의 진술에서 뭔가 쎄한 점을 잔뜩 발견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시종일관 “내 병력”, “내 부대” 등 사병私兵화를 암시하는 단어를 사용했고, 자신이 “공화국의 혁명정신 유지를 위해 거사를 벌였다”는 등 영웅주의에 경도된 발언을 거듭했습니다. 의원들이 이에 혀를 차며 분노한 것은 당연지사였죠. 뿐만 아니라 관중석에서는 스워지니치니 중장이 치안대 포로를 산 채로 불태워 죽였다는 놀라운 증언이 잇따랐고, 군부 측에서는 인사권자인 사빈코프 당시 국방장관이 이러한 사건이 벌어질 것을 미리 예상하고 사건사고를 빌미로 군을 통제하려고 한 것이 아니냐는 볼멘소리가 나왔습니다. 정치권의 뜻대로 움직일 수도, 군부의 희망대로 중장을 구할 수도 없게 된 세레브랴코프는 군부의 음모론을 그대로 받아 사빈코프의 청문회 소환을 요청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만일 뒤의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이는 그 자신은 물론 크라피엘의 경력마저 끝장낼 수 있을 정도의 선택이었죠.
그러나 크라피엘과 세레브랴코프가 정치인들의 먹잇감으로 던져지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습니다. 로스토프의 사회민주노동당 지부 책임자 라브렌티 베리야는 그간 미리 조사해둔 심층보고서의 핵심내용을 요약해 즉각 모스크바로 전달했습니다. 사건의 진상은 예상보다 더욱 심각했는데, 사실 치안대와 자경단의 세력비는 오히려 자경단이 약간 앞서는 수준이었으며 민족공산주의 사상에 경도된 스워지니치니 중장은 자경단을 친위세력화해 ‘임의적 판단’으로 카자크에 대한 집단학살을 저질렀다는 것이 진실이었습니다. 크라피엘이 의원들을 사실상 윽박지르며 군부-정치권 갈등을 극한까지 끌어올리는 동안, 데이비슨은 급히 의사당을 나섰습니다.
사빈코프와 아까의 그 여인을 증인으로 소환해 소비에트에서도 사건의 진상을 차차 파악해나가는 동안, 길가의 오토바이를 뺏어탄 데이비슨은 곧장 모스크바 근교 크라스노고르스크에 있는 인민군 총참모부 건물로 향했습니다. 단신으로 철조망과 담장을 넘어 경계병 두 명을 기절시킨 뒤 벽을 타고 올라가 니콜라이 라텔 총사령관의 집무실 창문을 통해 공중제비를 돌며 착지한 데이비슨은 깜짝 놀란 라텔 장군에게 권총을 들이밀었습니다. 믿기지 않는 광경에 얼어붙은 라텔은 그녀의 다음 발언을 듣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죠.
“누.. 누구인가! 사빈코프, 그 자가 보냈나?”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오히려 같은 사회주의 동지입니다, 니콜라이 요시포비치 ‘동무’. 저희는 이번 사태의 진상을 파악하는 과정에서 스워지니치니 장군 동지가 투철한 혁명정신을 가진 엄연한 아군이라는 점을 확인했습니다. 그를 지키지 못하면 러시아 인민군... 아니, ‘붉은 군대’는 영원히 부패한 정치가들의 꽃놀이패로 전락할 것입니다. 노동자와 농민의 붉은 군대가 이런 취급을 받아야 하겠습니까? 원하지 않는 배속을 받고 성실하게 임무를 수행했을 뿐인 지휘관을 공개적으로, 그것도 수백명의 어중이떠중이들이 보는 자리에서 망신주는 것이 ‘사회민주주의 러시아’에서 가당키나 한 일입니까?
군은 더 이상 은인자중할 필요가 없습니다. 군부의 중립 같은 것은 반동국가에서나 신줏단지처럼 모시는 허섭스레기일 뿐입니다. 니콜라이 요시포비치 동무, 동무께서는 혁명가입니다. 그 누구보다도 전장에서, 현장에서 혁명을 위해 힘쓴...! 그 댓가를 받을 수 없다면, 직접 쟁취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소비에트의 반동주의자, 그에 찬동하는 기회주의자들을 일거에 쓸어내고 진정한 사회민주주의 국가를 설립합시다.”
소비에트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정확히 전달받지 못한 라텔 총사령관은 크라피엘과 세레브랴코프가 위험에 빠졌다고 판단했습니다. (사실 틀린 판단은 아니었습니다.) 그의 머릿속에서 차례차례 퍼즐이 맞춰지고 있었죠. 사빈코프를 비롯한 정치가들이 단지 인민군을 통제하는 것을 넘어서 아예 군에 대한 대규모 숙청을 일으킬 작정임이 분명했습니다. 라텔 상장은 그러한 분석을 전제로 지극히 상식적인 조건을 데이비슨에게 전달했습니다. 크라피엘과 세레브랴코프에게 국방장관과 내무장관을, 자신에게 상황 통제가 가능한 군사혁명위원회 위원장직을 달라는 것이었죠. 또한 군사혁명 이후의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실무진들을 최대한 안배하라는 조건도 추가되었습니다.
그렇게, 거사가 시작되었습니다. 모스크바를 경비하는 수도경비단에게는 즉각 수도를 에워싸고 바깥으로 향하는 모든 길목을 차단하라는 지시가 내려졌고, 청문회를 참관 중인 군 간부들에게는 즉각 그곳을 빠져나와 (모스크바로 진군 중인)병력에 합류하라는 지시가 전달되었습니다. 사빈코프와 격렬한 언쟁을 벌이던 세레브랴코프와 크라피엘에게도 메시지가 전달되었습니다. 군인들이 단체로 빠져나가려는 모습을 보이자, 그 광경을 바라보던 바레츠노프는 무언가 이상함을 감지했습니다. 단순히 자리를 비우는 것으로는 보이지 않았죠. 당연히 총참모부 등에서 지령을 받았을 것이었습니다. 급변사태를 짐작한 바레츠노프는 체레텔리 의장에게 출입구를 봉쇄해줄 것을 요청했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사회민주노동당 강경파 및 민주당 민족주의파를 따르는 인물이었습니다. 체슬라프가 ‘혁명’이 일어나고 있음을 주지시키자 의장은 즉각 봉쇄했던 문을 재개방했죠.
차량을 타고 총참모부 방향으로 향하던 크라피엘과 세레브랴코프는 제3수도경비여단 병력과 함께 있는 데이비슨을 마주쳤습니다. 그들은 상황을 완전히 파악했죠. 데이비슨은 병사들을 선동해 두 장군을 헹가래쳐 쿠데타를 막기 위한 행동을 봉쇄하려 했으나, 이번에는 둘의 행동이 더 빨랐습니다. 크라피엘이 거사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병사들은 혼란에 빠졌습니다. 실패를 감지한 데이비슨은 총참모부에서 했던 가락 그대로 주변 병사들을 제압하고 도망치려 했으나, 이번에는 여의치 않았죠. 다리에 총을 맞고 쓰러진 데이비슨은 그대로 잡히고 말았습니다.
그대로 무선통신장치를 통해 라텔 총사령관에게 “데이비슨이 억류되었음”을 전달한 크라피엘이었습니다. 그제서야 라텔은 사건의 전모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자신이 또 다시 이용당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라텔은 실의에 빠져 지휘권을 크라피엘과 세레브랴코프에게 이양했죠. 그들은 빠르게 행동했습니다. 체슬라프와 스탈린, 체레텔리, 슐긴 등 “민족공산주의” 연합의 주요 인물들을 체포하고, 수도경비여단들의 원거리 포위를 유지하는 한편 약간의 호위병력을 이끌고 소비에트로 복귀해 상황을 ‘수습’하는 방안이 이루어졌습니다. “가장 길었던 하루”가 마무리되고 있었습니다.
09. 반혁명(反革命)
수도방위단장 니콜라이 쿠이비셰프 소장에게 병력으로 모스크바를 포위하라는 새 명령서가 전달되었습니다. 블라디미르 트리안다필로프 제3수도방위여단장(대령)을 포함한 동원병력의 최선임자들, 그리고 크라피엘과 세레브랴코프는 모스크바 시내로 진입해 최고소비에트 의사당 건물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여전히 아수라장이 된 채 절반도 남지 않은 의원들이 벌벌 떨고 있던 의사당에서는 유일하게 민주당 자유주의파의 영수 밀류코프만이 두 사람을 알아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정치인들에 대한 환멸이 극에 달한 세레브랴코프, “힘 없는 자유주의”를 냉소하게 된 바레츠노프,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지긋지긋했던 크라피엘은 마치 바그다드에서, 마치 프라하에서와 같이 또 한 번 머리를 맞대었습니다.
크라피엘의 제안에 따라 인민군 총사령관직을 영구히 폐지하고 예비역 장성이 국방장관을 역임하여 군과 정부의 화합을 도모하는 타협안이 도출되었고, 밀류코프는 최고소비에트 임시의장 자격으로 즉각 전국에 비상계엄을 선포했습니다. 정부와 의회가 모두 무력화된 상황에서 남은 이들은 극단주의 세력을 일소하고 정부를 정상화하기 위한 ‘공안위원회’의 설립을 공식화했습니다. 공안위원회의 위원장으로는 군민 양쪽의 신뢰를 받는 인사, 즉 알렉세이 브루실로프 원수가 추대되었죠.
공안위원회는 3년간의 ‘무질서’를 바로잡는 데 힘썼습니다. 스탈린, 체레텔리, 슐긴 등에게 국가반역죄가 적용되어 사형이 선고되었고, 데이비슨은 미국 법무부의 요청에 따라 추방 및 송환되었죠. 공안위원회, 그리고 민주당 자유주의파와 사회혁명당 잔존파 등을 규합한 ‘질서자유당(Партия Права и Правды)’ 정권은 “법, 질서, 정의”라는 세 마디를 강조하며 극단주의와의 전쟁을 선포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모든 것이 ‘정상’ 상태를 되찾았습니다. 변침파, 민족공산주의, 제3국제당 등 기존 좌우익세력을 상징하던 단어들은 그대로 ‘반역’과 동의어로 취급받았습니다. 스워지니치니 중장이 군법재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는 동안 세속국가법은 폐지, 암암리에 유지되던 정부의 기업 경영권 간섭 역시 ‘시정’되었습니다.
모든 것은 제자리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10. Epilogue: 법, 질서, 그리고 정의
독일에서 카이저 빌헬름 2세와 사회민주당이 군신동맹을 맺고 사민당이 ‘사회주의와 민주주의를 모두 포기한’ 기괴한 키메라로 변모해가고 있을 때, 그리고 프랑스가 센 강을 경계로 독일의 괴뢰국과 파시스트 국가로 분단되는 동안, 모스크바에서는 ‘정치’가 차근차근 거세되어갔습니다. 3년간의 육군참모총장직을 끝으로 원수 계급장만을 받아든 채 군문과 정계를 모두 떠난 크라피엘이 자발적 은둔을 선택한 탓에, 정부와 ‘두마’를 조정하는 역할은 세레브랴코프 및 그 추종자들, 그리고 ‘바레츠노프 가문’의 피후견인들에게 돌아갔습니다. 전자는 구 사회혁명당 출신이자 우익으로 전향한 바딤 루드네프를, 그리고 후자는 러시아 패권주의를 주장하는 니콜라이 트루베츠코이 등의 정치인들을 후원하며 ‘명사 정치’를 이끌어나갔죠.
정치적 이상, 사상의 차이 같은 것은 전혀 중요치 않았습니다. 어제의 사회주의자가 오늘의 민족주의자가 될 수도 있고, 오늘의 평화주의자는 내일 “즉시 전쟁”을 외칠 수 있는 곳이 바로 1930년대의 러시아였으니까요. 그 말을 증명하듯, 1934년 권력을 되찾은 바레츠노프는 자신의 발언을 세 번이나 정반대로 뒤집었습니다. 쑥대밭이 되어버린 중부 유럽을 정리하고 독일의 폭주를 막기 위해, 서쪽의 파시스트들과 손잡는다는 선택을 내린 것입니다.
본래 “권력에 관심이 없다”는 이가 그 누구보다 권력을 탐하는 법인 걸까요? 정치인들을 불신하던 세레브랴코프는 누구보다 정치에 깊숙하게 관여했고, 사회주의자들이 장악한 소비에트에서 홀로 중용과 평화를 외치던 바레츠노프는 누구보다 호전적인 대외정책을 추동했습니다. 심지어 법정 최후변론에서 크라피엘 등을 조롱하며 “권력욕에 솔직해지라”고 발언한 데이비슨 역시 전세계에서 ‘미완성 혁명’을 잔뜩 생산한 끝에 자본주의 세계의 아이콘으로 변모해버렸으니, 참으로 아이러니하지요.
하지만 그러한 모순을 참아내는 것이야말로 ‘난세’를 살아가는 교과서적인 방식이나 다름없으니, 치열하게 살다 간 다섯 명(또는 여섯 명)의 인간 군상에게 박수를 보내도 좋을 것입니다.
Fin.
생각보다 일찍 끝이 났네요. 모두들 수고 많으셨고, 참가해주셔서 다시 한 번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늦지 않게 다음 작품으로 돌아오겠습니다.
그때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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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E.샤츠슈나이더 이홍립으로 CIA의 스파이 컨셉을 해볼려고 했는데 아쉽군요...
@로콘 미국이 기침하면 바로 폐결핵 걸리는 나라라(…)
@E.E.샤츠슈나이더 심심해서 캐릭터를 미리 썼는데 올려봐도 괜찮을까요?
@dear0904 네 좋습니다. ㅋㅋㅋ
@E.E.샤츠슈나이더 그래도 미국의 정보원 같은건 있지 않을까요...?
@E.E.샤츠슈나이더 와 ㅋㅋㅋ... 쓸때는 배경이 길다고 생각했는데 올리니까 한 300-400자? 밖에 안되네요 ㅋㅋ 1/2/3부로 나눠 올리신거 형식은 참고해서 썼다고 썼는데 ㅋㅋ
@로콘 그렇기 때문에 캐릭터가 미국 정보원이면 그 자체로 밸붕입니다(…)
이름 (한국) : 정 원상(鄭 原相)
이름 (일본) : 栗原 相澤 (쿠리하라 아이자와)
본관 : 부산 동래.
플레이어 : dear0904.
생년월일 : 1924년 5월 9일.
모국어 : 한국어
사용 가능 언어 : 영어, 일본어.
배경 : 일제 치하에서는 쿠리하라 아이자와로 불렸던, 정원상은 1924년 5월 9일 일본제국령 동래군 기장면의 한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그는 소학교 시절부터 남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고, 결국 집안에 칩거하며 독학으로 지식을 쌓을수 밖에 없었죠. 그는 독학을 하며 생각했습니다. "왜 나는 이런 고통을 겪어야만 하는가." 그리고 그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 모든건 다 일본이 문제다... 라구요. 그래서 그는 한국 광복군에 관한 소식을 전해듣고 충칭으로 향해 광복군에 투신했습니다.
그리고 광복군이 참전하기도 전에 일본 제국은 패망했습니다. 그의 피는 일본에 대한 복수심으로 들끓었지만, 망한 국가를 공격 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고향땅으로 돌아왔지만, 그의 가족은 일본 제국의 마수에 걸려 이미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그는 결국 홀로 남아서 광복군 경력을 가지고 국방군에 입대했습니다. 문제가 있다면, 광복군이란 빛나는 경력은 오히려 만주군 출신, 일본군 출신 인사끼리 끼리끼리 뭉쳐서 우덜끼리 노나먹는데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것이었습니다. 물론 그들이 끼워준다 해도, 더러운 일본 부역자들과는 섞이고 싶지 않았을겁니다.
그래서 아직도 그는 혼자입니다. 그러나 누군가 그를 필요로 한다면, 그는 손을 잡을것입니다. 그는 누구와 손을 잡고, 그의 원념을 풀 수 있을까요?
정식으로 쓰겠지만, 어째서 북진통일/민주주의/(만약 동조한다면)혁신사상에 공감하게 되었는지 정도의 정보 정도는 있으면 좋을 것 같네요. ㅋㅋ
북진통일론/민주주의 2개는 필수고, 중도좌익일 필요까지는 없고 아예 상극(예: 파시스트, 스탈린주의 등 극좌)만 아니면 됩니다. ㅋㅋ
@E.E.샤츠슈나이더 아 ㅋㅋ... 그거 물어보실것 같아서 주석으로 달아놨다가 (배경에 끼우기는 어려웠습니다) 지웠습니다 ㅋㅋ
1. 광복군이 투입되지 못한 이유를 소련으로 생각하고 있고, 그래서 소련이 세운 괴뢰 정권을 없애야 한다고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2. 다른 통치이념을 배격하기때문에 민주주의를 지지합니다. 공산주의는 위에 썼고, 군부 독재는 주변 꼬라지로 설명 되고... 그렇기에 이념도 중도라고 보는게 더 가깝습니다.
@dear0904 오... 김일성 축출 이후에도 소련의 괴뢰로 보는 쪽인가요? 그리고 중도면 혹시 안철ㅅ(읍읍)
@렌지파일 망하기 전까지 괴뢰 도당(...) 이라고 볼겁니다 ㅋㅋ...
+ 중국에서 분명히 철수를 했습죠(?)
이번에도 영씨 하실 줄 알았는데(?)
@돈이 곧 진리 참고로, 직전작 캐릭터 연관 배제를 위해 노력했습니다(...) 이름 글자를 다 빼고 고른겁니다. 이, 현, 영, 강, 율, 윤. 이렇게 6글자 밴한거죠. 그런데 그러고도 율이 들어갔는데(...) 본명에 안 들어 갔으면 된거죠 뭐.
국민정신(국가 트레잇), 지도자 특성(팩션 트레잇)을 추가할지 말지 고민 중입니다. 전자는 빼고 후자는 넣는 쪽으로 생각은 하고 있습니다만… ㅋㅋㅋㅋ
이것저것 넣는 게 좋습니다 ㅎㅎ.. 그래야 이런저런 핑계로 난이도 올리기가 좋거든요(?
@렌지파일 꿀팁 감사합니다(?)
감당이 가능한 선에서 많이 넣는게 좋죠 ㅋㅋ 너무 많이 넣다가 까먹고 터지는 경우도 있으니까, 적절한 선에서...?
***스테이터스
대한민국
Republic of Korea
# 국민정신
[혁명 후 혼란기] 독재자가 떠난 빈 자리는 아직 메꿔지지 않았습니다.
[재정보수주의/자유시장주의] 국가는 성장보다 부채의 감소를 더 중요시하며, 시장개입을 자제합니다.
[토지개혁 완료] 우리는 경자유전의 원칙을 지켜냈습니다.
[할슈타인 독트린] 적의 적은 친구가 아닐 수도 있지만, 적의 친구는 확실히 적입니다.
[국가보안법] 국가는 사상의 좌반부를 단호히 배격합니다.
[동포를 버린 정부?] 국가는 일본의 동포들을 위해 아무것도 해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황군의 후예] 군부의 야심가들은 언제고 정권탈취를 노리며, 장비와 시스템 모두 낙후되어 있습니다.
[권력기생적 경찰] 경찰은 독재자의 필요를 위해서만 존재합니다.
[열악한 사회인프라] 사회간접자본의 상태는 매우 열악합니다.
[극심한 실업률] 노동자들이 일할 직장의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합니다.
[도시빈민의 창궐] 주택은 부족하고 주민들의 주머니는 먼지만 날립니다.
[낙후된 농촌] 농촌의 상태는 조선시대와 별로 다를 바가 없습니다.
# 대북관계
현재 북한의 지배세력은 [연안파]입니다.
북한의 군사력은 우리에 비해 [상당히 우세]합니다.
[중공 인민지원군이 주둔 중]입니다.
우리의 대북 정보력은 [미약]합니다.
# 대외관계
우리는 일본과 [수교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자유중국을 승인 중]입니다.
우리는 [어떤 사회주의 국가와도 수교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핵무기를 [개발하지 않았]습니다.
주한미군이 [핵무기와 함께 주둔 중]입니다.
# 정치구도
공화당(1) | 자유당(혼란!) | 민주당-한민당계(3) | 민주당-흥사단계(4) | 혁신계(3) (합 20)
공화당의 지도자는 [장택상]입니다.
민주당-한민당계의 지도자는 [윤보선]입니다.
민주당-흥사단계의 지도자는 [장면]입니다.
혁신계의 지도자는 [조봉암]입니다.
# 00회(가칭)
세력의 영향력은 [미약]합니다.
세력의 국내 평판은 [경계받음]입니다.
세력의 미국 평판은 [알려지지 않음]입니다.
정리해두고 보니 괜찮네요. TNO를 너무 베낀 것 같지만 뭐… 좋은 게 좋은 것 아니겠습니까(?)
더 추가할 사항이나 수정했으면 하는 사항 있으면 말씀해주십쇼…
예상질문)
그래서 국민정신 효과는 어디갔죠?
답변)
스토리에 반영됩니다. (?)
예상질문2)
국민정신이 왜 이렇게 쉽창나있져?
답변)
이박사님께 물어보세요(?)
와우... 좀 많긴 한데, 어차피 플레이어가 외워야 할거 아니면 상관 없죠 ㅋㅋㅋ... 그래서 이걸 다 떼면 되는거죠(?) ... 하나 빼고?
+ ... [] 안이 바뀔수 있다고 쳤을때, 핵무기를 개발 할 수 있다는게 제일 크리피한데요 ㅋㅋㅋ
@dear0904 나머지 하나도 [기업화 농업]같은 걸로 대체 가능하지만… 뭐 그렇습니다 ㅋㅋ
스테이터스는 이벤트 종료때마다 업데이트됩니다. 캐릭터시트에 함께 등재되니 수시로 확인해주시면 되겠습니다.
+ 포토샵으로 간지나게 만들고 싶지만 필요할 때마다 수정하기가 어려워서 포기했습니다(…)
@E.E.샤츠슈나이더 아 ㅋㅋㅋ... 그나마 하나는 괜찮은게 다행이군요. 이 런장군놈이 국가를(...)
+ 저걸 만들려면 모듈형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어렵죠 ㅋㅋ
+ 아. 그러고보니... 장면은 손에 총을 맞았나요?
@E.E.샤츠슈나이더 질문.. 이 시기 한국이 자유시장주의에 해당될까요? 이승만정권은 그냥 관치경제고, 장면 내각도 경제기획원 설치하고 5개년 계획 만들고 그랬으니까요
@dear0904 장면 저격사건은 그대로 일어났습니다.
@렌지파일 산업투자 소극적으로 한다는 걸 표현하려 했는데, 자유시장경제는 어울리지 않은 표현같기도 하네요. 흠…
일단 원역사 60년대부터 IMF 전까지 시기는 [지도주의]로 들어갈 겁니다.
@E.E.샤츠슈나이더 하긴... 생각해보니 진보당 사건은 장면 저격 이후니 변할일이 없었군요. 아니 근데 범인 이름 보고 웃었습니다 ㅋㅋ... 어떻게 사람 이름이 상붕(...) 이기붕도 있으니 이상할건 없는거 같은데, 하필 그때 같이 보던게 ㅋㅋㅋ...
@E.E.샤츠슈나이더 캐릭터 스토리를 만들었는데 댓글 4개 분량이 나오는 것 같은데 괜찮을까요 (...)
@렌지파일 로그 한편 분량이어도 상관없습니다(?)
@E.E.샤츠슈나이더 오.. 그럼 지금 미리 올려보겠습니다.
@dear0904 가짜 이강석 사건도 그렇고 진짜 어메이징한 일들이 많았던 1공…
@E.E.샤츠슈나이더 원래 개국 당시는 그런 일이 많을만 하지만, 정말 대단했죠(...)
@dear0904 “핵무기를 개발할 수 있다는 게 제일 크리피”
다시 보니까 아이러니한 문장이네요(…)
@E.E.샤츠슈나이더 아이러니하게도 그래서 포기 못하고 세계가 망한(....) 웃기네요 ㅋㅋ 저렇게 말하고 그 크리피한 일을 저지르고 ㅋㅋ
김시형(金始衡) 1924년생
김시형은 경상북도 선산(현 구미) 출신의 사회운동가'였'습니다. 일본에 어린 나이에 유학까지 갔던 '천재' 식민지 인텔리였음에도 김시형은 지역적 분위기에 휘말려 좌익사상에 관심을 가졌고, 동아일보 기자이자 선산지역 사회주의자들의 웃어른인 박상희를 스승으로써 모셨습니다.
그러나 조여오는 일제의 민족말살정치와 정보통제의 압박 속에서 김시형은 '일제의 패망이 멀지 않았다'라는 정확한 소식을 좌익 연락선을 통해 전해들은 박상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사회주의 운동을 이탈했습니다. 회유와 압박을 반복하는 일제에 의해 결국 김시형은 더는 견디지 못하고 전향을 결심했습니다. 그는 45년 7월 24일 경성 부민관에서 유명 친일파인 박춘금이 조직한 대의당의 기념행사에 깜짝손님으로써 등장해 일제를 찬양하는 연설을 할 예정이었죠.
김시형은 독립운동가 세 명이 부민관에 폭탄을 설치한 것은 전혀 몰랐습니다. 폭탄은 김시형에게 중상을 입혔고, '깜짝손님'이었기에 목록에 없었던 김시형은 친지들에게는 사고라고 둘러대며 입원치료를 받았고... 한달도 되지 않아 조선은 해방되었습니다.
자신이 단 한달을 버티지 못해 전향을 했다는 충격에 김시형의 정신세계는 무너져내렸습니다. 해방정국의 소용돌이 속에서, 김시형은 자신에게 접근하는 모든 이들이 자신의 전향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란 생각에 불신과 경계심으로 모두를 배척했습니다. 스승 박상희가 46년도 10.1 사건으로 허망하게 선산에서 최후를 맞을 때에도 김시형은 오히려 '좌익의 경거망동을 비판한다'라는 사설을 실으며 사회주의자들과의 연계를 끊어버렸죠.
정판사 위조지폐 사건으로 좌익이 궤멸될 때에도, 자신을 마지막까지 찾던 이관술이 마침내 체포되었을 때에도 김시형은 침묵을 지켰습니다. 그가 좌익인지 우익인지 확인하기 위해 찾아온 장택상은 '전향서'를 이야기했고, 김시형은 자신이 살기 위해서라면-그리고 자신의 친일행위를 들키지 않기 위해서라면- 민족주의 세력으로 전향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전향을 숨기기 위해 또 다른 전향을 하는 모순은 김시형에게 하등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좌익인사들을 '인간적으로' 변호했으나 사상적으로는 완전히 떨어져나갔고, 소련과 스탈린을 공공연히 비난하고 마르크스주의를 비판하는 사설을 늘어놓았습니다. 그렇게 전향자 생활이 시작되었죠.
@렌지파일 김시형의 민족주의자 활동은 최악이었습니다. 보도연맹의 초대 발기인 중 한명으로 들어간 그는 6.25전쟁이 발발하자 마자 장택상의 중재로 기적적으로 총살만은 면했습니다. 북한군에게 체포되지 않기 위해 정신병자 행세를 하기도 하고, 자신을 찾는 서북청년단 속에 일부러 숨어 한때의 동지들을 폭행하는데 가담했습니다.
어느 순간 김시형은 꺠달음을 얻었습니다. 마르크스주의는 노동계급이 '폭력(권력, Gewaltsam)'적으로 권력을 쥐고 모든 생산수단을 공동소유해 불평등을 해결하자고 말했죠. 폭력은 권력으로만 멈출 수 있고, 권력은 폭력으로만 멈출 수 있으니, 김시형은 자신이 목표해야 할 것은 곧 권력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래야 자신에게 다가오는 "부당한" 폭력을 막을 수 있고, 자신의 친일행적을 지울 수 있을 테니까요!
51년부터 김시형은 열렬한 이승만의 지지자가 되었습니다. 그를 설득하려 했던 장택상조차 당황하게 만들 정도였죠. 물론 김시형은 이승만의 과오는 어물쩡 넘어가고 외교력과 반일정책만 골라 찬양하는 등 최소한의 절제를 보이긴 했습니다만, 그건 이미 김시형이 자신의 올곧은 성향을 가진 운동가라서가 아니라 자신을 잘 포장해야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렌지파일 그랬기에 김시형은 이승만을 버리는 것또 빨랐습니다. 사사오입 개헌 사태 이후 민주당(신파)으로 전향한 김시형은 열렬한 반독재 운동가로 변신했습니다. 민주당은 반공을 지속해야 하지만 모든 좌익을 배척할 필요는 없이 조봉암과 손을 잡아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죠. 하지만 이 시기 김시형은 자신의 친일행적을 "알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김창룡을 암살하는 데 비밀리에 자금을 보탰습니다. 아니, 김창룡이 악질이어서 그랬던 것일지도요.
마침내 이승만 정권이 몰락한 지금 김시형은 그 어느때보다도 자신의 목표에 가까웠다고 생각하는 중입니다. 그 목표는 바로 권력입니다........ 분명, 어떠한 이유가 있었던 것 같지만, 이제는 아무래도 상관없겠죠.
+ 짐작하시는 분들이 있겠지만 이 러시아 RP의 제 캐릭터의 요소를 반반씩(전향, 정신적 문제) 섞고 완성도를 높인 캐릭터입니다.
@렌지파일 카드 돌려막기 장인이네요 ㄷㄷㄷ
이정도면 원역사 박통 정권에서도 뭔가 했을 것 같은 느낌? ㅋㅋㅋㅋ
+ 아 근데 이 캐릭터의 생업은 직업정치인인가요?
@렌지파일 역사속 인물 한명이 떠오르네요 ㅋㅋ 공직이라고... 전향의 달인인데, 신라 - 고려 - 후백제 - 고려... 일케 전향 하고도 살아남아서 고위직까지 갔을겁니다 ㅋㅋ
@E.E.샤츠슈나이더 사실 이름과 생년월일만 있는 걸 보면 아시겠지만 대부분이 미정입니다 (...) 직업 자체는 변호사입니다.
@dear0904 탈라노프 부녀(...)의 피해망상+뉴라이트 기질을 반반씩 섞어놓은지라, 다행히 RPG 와중에 전향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ㅋㅋㅋ 불신이 문제겠지만..?
"(북진)통일전선 이상없다"의 프롤로그화 표지입니다.
주인공은 '닥터 리'이며, 매 화마다 그때그때 비중있었던 실존인물들로 대체할 계획입니다.
요주의 인물(박통 등)이 표지에 안나와야할텐데 말이죠 ㅎ..
프롤로그화 작성에 2시간 쓰는 건 또 처음이네요. 아무튼 0화 올렸습니다..!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