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매 도공 놀이 6 고배를 들다
고배를 들다는 말은 흔히 어떤 경쟁에서 실패한 자를 비유한 말이다.
우리 말로 하면 쓴 잔을 마셨다는 뜻이니 아마도 고배(苦杯)라고 써야 할 것이다.
그러나 내가 말하는 고배는 쓴 잔이 아니고 제사상에 사용하는 다리가 길어 높은 잔 고배(高杯)이다.
오늘 이야기는 제사상에서는 왜 일상에서보다 더 다리가 높은 잔을 사용하는 가에 관한 나름의 썰(?)이다. 다리가 높다는 것은 하늘에 다만 몇 cm라도 더 가까운 것이고 그런 시선으로 보면 제사상에
진설하는 모든 제기(祭器)는 전부 그렇다.
종교가 어떻게 생겼느냐에 대해서는 고명한 학자들의 여러 학설이 있겠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농경시대를 맞이한 초기 인류가 농사의 결정적 요소인 날씨 때문에 하늘에다 대고 비나 햇빛 등 농사에 필요한 날씨를 기원하던 것에서 출발했다고 본다.
최초의 하느님의 이름은 아마 Rain Maker 였으리라 본다.
이어서 하늘은 투명하고 순수한 존재로 의인화되었고 이름이야 하느님, 한울님, 하나님, 제석, 환인,
여호와, God, Lord 등 여러 가지이겠지만 다 자비롭고 은혜롭고 인간에게 사랑을 베푸는 저 높은 곳에 계시는 분이라는 상상력의 소산임에는 분명할 것이다.
그 자비로운 높이 계시는 존재로부터 원하는 결과를 얻는 방법은 무엇이었을까?
처음에는 아마 애교도 떨고 읍소(泣訴)도 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찾아낸 최고의 방법은 바로 공갈 혹은 협박이었을 것이다.
오늘 날 유괴범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사용한 방법과 다를 것이 없었을 것이다.
자녀가 유괴당한 부모가 자녀의 신체 일부나 피 흘리며 고통 받는 사진이나 영상을 보게 될 때
요구조건을 거부할 수가 있겠는가?
즉 유괴범은 부모의 ‘무한대의 사랑’을 이용하여 공갈하고 협박하여 자기 목적을 이루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인간들은 무한대의 사랑을 가진 하느님을 협박하는 형식으로 하늘에 요구사항을 전달해 왔다. 하느님의 약점을 잡고 늘어지는 전략이 그것이다.
하느님의 약점은 마치 솔로몬의 재판에 등장하는 친엄마처럼 ‘인간과 생명에 대한 사랑’일 것이다.
그래서 ‘인간’이 제물(祭物)로 등장하게 되었으리라 본다.
그 중에서도 막 여인으로 성장하여 아름다움이 만개하기 시작한 ‘열 다섯살 처녀’들이 첫 희생(犧牲)
제물이 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기우제를 지내는 인간은 그런 제물을 하늘에 보이며 “자 보았지, 빨리 비를 내려 줘. 안 내리면 이 아까운 인간들 계속 죽일거야. 그럼 누가 더 가슴 아프지?”라고 외치는 것이다.
인당수에 던져진 심청이나 세계 곳곳에서 발견되는 처녀제물의 설화들이 그런 하늘의 자애에 대한
협박의 증거이다. 문
외한이지만 기독교에서는 아브라함의 가장 귀한 존재였던 아들 이삭이 그런 존재였을 것이다.
나는 우리나라 고대가요인 구지가의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어라, 만약 내놓지 않으면 불에다
구워 먹겠다’는 협박적 내용도 희생제의(犧牲祭儀)에 기반한 종교 발생의 한 사례라고 믿는다. 제
사라는 한자의 제(祭)를 분해해 보면 제사상 위의 제물을 하늘이 보도록 배치한 글자이다.
보일 시(示)자는 바로 제사상이고 동시에 하늘에 ‘보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잔인한 생명 박탈을 통해 하늘의 동정심을 유발해 목적을 이루는 방식이 바로 종교의 출발
혹은 제사의식의 출발이라면 지나친 비약일까?
우리가 제사 지내고 제사상의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조상의 선한 기운이 우리 몸 속에 체화(體化)되기를 기원하듯 스스로 합리적 종교라고 자부하는 기독교조차도 하느님의 아들인 희생제물(Sacrifice) 예수를 제사상에 놓인 제물처럼 음복(飮福)을 하고 있지 않은가?
성찬식인지 생명인지 부활인지 예수의 살인지 피인지 포도주인지 빵조각인지 모르지만 희생된 존재를 음용(飮用)한다는 점에서는 음복(飮福)과 다를 바 없다.
그런 상징성이 아니라면 그들은 식인종(食人種)에 불과할 것이다.
문명화되고 인간의 목숨 값이 높아지면서 제사에서 희생되는 생명체는 점차 15세난 처녀에서 말로
소로 돼지로 생선으로 생선 말린 포(脯)로 간략화 저렴화로 변해갔을 것이다.
중국의 경우 아마 한자가 형성될 즈음의 제물은 ‘소’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제물을 의미하는 희생(犧牲)이란 한자를 보면 모두 부수에 소 우(牛)자가 붙어 있는 것이
그 증거이다.
지금도 큰 제사엔 소를 잡고 고사 지낼 때 하늘 향해 방긋 웃은 돼지머리를 상 위에 올리고 있다.
안동 양반가에선 불천위(不遷位) 제사 등을 지낼 때 제사상에 생선을 올리는데
볏짚으로 꽁꽁 결박하여 옛날 산 제물을 바치던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중동에선 귀한 마소 대신 살아있는 양이나 염소를 죽여 제사상에 올렸을 테니
희생양(犧牲羊)이나 Scape Goat 같은 단어에 그 흔적을 남기고 있다.
이런 제물을 담는 그릇은 다른 일상의 생활용기보다 더 하늘 가까이 다가가야 했기에
높은 킬힐 굽을 달았다.
그것은 마치 상황당의 거목이나 교회당의 첨탑이 하느님에게 인간의 메시지를 더 확실하게 전달하는 안테나 역할을 했던 것처럼 ‘하늘 가까이’의 상징성일 것이다.
그래서 탄생한 술잔이 고배(高杯)이다.
원삼국시대 남녁 땅을 차지했던 가야의 옛 지방에서는 진흙을 빚어 굽을 길다랗게 만든
킬힐형 제기들이 요즘도 다수 출토되고 있다.
그런 예술성을 지닌 물건을 만들 재주는 없지만 하늘에 바치는 술병과 술잔을 한 번 만들어 보았다.
물론 손재주가 굼떠 작품성이 뒤지는 고배(苦杯)를 마시긴 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