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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밤에 조르바와 명퇴주 한 잔 하였습니다. 조르바 정태석님은 중등 음악교사입니다. 저와 현산에서 만난 지 어언 20년이 되었죠. 음악만이 그의 눈썹이고 표정이며 어깨이지만 성악가로서 자신의 꿈을 펼치기엔 이제 조금 늦었을까요. 대신 아들들이 음악인으로 무럭무럭 성장하고 있답니다. 기타를 비롯한 여러 악기와 클래식 팝 뮤지컬의 어느 지점인지는 잘 모르나 큰 아들은 잠시 멈추고 군입대 중이고 둘째는 아빠를 닮아 뮤지컬 배우로 길을 좁힌 모양입니다. 오는 2월 19일에 광주 호남대학교에서 뮤지컬발표가 있는데 주연으로 출연한다니 제가 다 설렙니다. 혹 시간이 가능하시다면 제게 연락 주세요. 함께 가서 격려해주게요. 모든 예술이 다 그렇듯이 바라봐주는 것만으로도 살이 찌고 작은 관심에도 뼈가 자랍니다. 위의 무슨 대본 같은 인터뷰는 4H신문에 게재된 정태석선생의 기사물이죠. 자연을 사랑하는 한 시골 중학교 음악선생님이 시골 아이들과 그 어머니들 더불어 창작곡을 합창하고 발표하는 과정의 이야기가 중심입니다. 건강하고 희망찬 농촌을 꿈꾸는 노래문화라 할까요 자본과 도시의 물결에 휩쓸리지 않는 건강한 농촌문화의 노래운동이라 할까요 사색을 많이 한 끝에 이 세상의 문제가 기사도의 결여에 있다고 판단하여 자신이 직접 방랑기사로 원정을 나서는 돈키호테 같다고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현실과 괴리되는 꿈을 꿀 때 스스로 느끼는 자괴감은 막막하고 쓸쓸하고 무겁습니다. 하지만 조르바는 오늘도 애마 로시난테를 타고 방랑의 원정을 꿉니다. 제가 쓴 [사계]를 곡을 붙이고 편곡을 마쳤으며 [해야, 샛별을 만나자]도 작곡을 마쳐 이 두 곡으로 뮤지컬을 꿈꾼답니다. 뮤지컬의 대본도 저더러 쓰라고 말을 붙여옵니다. 어제는 한 잔 사겠다기에 광주 진월동에 나가 모처럼 참치회를 오물거리며 회포를 풀었지요. 4H는 몰라도 그를 통한 농촌 아이, 엄마들의 발표기회는 퍽 아름다워 보입니다. 더욱이 대중성이 있고 도농의 벽도 조금 넘을 수 있는 뮤지컬은 교단에도 조촐한 교육자료가 되지 않을까 싶으니 급한 원고들 젖히고 나면 함 생각해 보기로 하였지요. 공교롭게도 학교를 물러났더니 오는 첫 숙제처럼 돼버렀습니다. 가차이 해남 한번 내려가서 조르바 정태석이 가꾸고 있는 해창의 산 언덕을 답사하고 마음 속으로 그리던 박승식 벗을 만나 점심이라도 약속하고 싶었죠. 하여 우리시대 미술운동의 대 논객 원동석사부님을 먼저 뵙고 차례로 만날 계산이었는데 어쩌다 타이밍이 깨져버렸어요. 오늘은 바람에 빗줄기가 사방팔방으로 들이쳐 어수선한데 바닷바람은 얼마나 신산할까 싶기도 하니 뵙지 못한 아쉬움을 빗줄기 탓으로 돌리기도 했습니다. 조르바는 지금 밭 1000평과 임야 4000평을 해창만 가까운 마을 가에 마련하여 꽃꿈을 가꾸고 있답니다. 전남들꽃연구회 15주년 행사는 거기서 열기로 半약속을 하였거든요. 훗날은 암도 모르므로 半... 벌써 많은 진척이 있었답니다. 저쪽 광양의 강물님도 무척 그리워하고 있으며 이짝 신문사 양순국장님도 몹시 애태우는데 어쩐지 한 소끔 소원한 듯하여 요번 아들 공연에 모시자고도 해요. 가능하시면 연락주세요. 원동석선생님께서 최근 저작한 책을 보내주셨는데 답변이 없자 이번엔 편지를 적어 보내주셨어요. 감사와 함께 죄송하여 일간 찾아뵙겠다고 했는데 다시 두 개의 단편을 적어 멜로 부쳐주셨죠. 언제 들어도 간명하고 힘찬 문장에 입이 떨어지지 않아 답신을 보내는 데 거짐 하루를 보냈답니다. 생각을 정돈하고 다시 쓰기를 몇 번 하다보니 그렇게 되었어요. 글은 싱거워도 함 읽어보시죠. 존경하는 원동석 사부님... 현실 정치사회로부터 역사와 신화를 넘나드는 사부님의 문장은 늘 지성적이고 강건하여 매료됩니다. 저는 조금 다른 영역에서 세계자본주의의 추악한 본질을 잘 이해합니다. 가령 2002년 ‘포춘’지가 선정한 세계 500대 기업 중 상위 10개사는 모두 제약회사였다고 합니다. 놀랍게도 이 10대 회사의 순이익은 나머지 490개사의 그것을 모두 합한 것보다 컸다고 하죠. 이 막강한 제약회사의 돈이 매수한 국가와 세계보건, 세계 의약산업 화학산업의 지배로부터 인류는 석유폐기물 등에서 합성한 화학약품에 의해 이 순간에도 무참히 살해당하고 있다는 인식입니다. 현대의학이 병을 거의 치료하지 못하고 주로 진통제로 증상만 완화시키는 대증요법으로 치우치게 된 것은 자연이 조화를 이루면서 만들어내는 거대한 힘을 믿지 않는 환원주의의 오만 때문 아니겠습니까. 사부님의 생멸론과 불멸론의 예를 저는 환원주의와 전일주의로도 치환하여 읽었습니다. 생명현상의 기본인 단백질을 이해했다하여 생명현상 전체를 알 수 없듯 부분의 성과를 계량적으로 측정하는 경쟁은 결국 창발도 통섭도 융합도 시너지도 없다는 점에서 저도 환원주의의 패러다임을 멀리합니다.
지적해주신 원근시법의 차용은 그저 차용일 따름입니다. 또 다른 방법론의 활용도 얼마든지 가능하겠지요. 심원시법의 조감 역시 한지라는 특정 재료가 허락하는 효과적 측면이로되 탁 트인 높은 시점이 얼마나 상쾌한지 바다를 굽어보시는 사부님이나 마을을 내려다보는 저로서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말씀입니다. 민화적 어법이나 신화적 제재에서는 재미를 덜 느끼고 문제는 붓을 들게 만드는 내적 동인인데 그것이 무엇이었든 지난 수묵그림의 방식은 아닐 것입니다. 어떻게든 나올 수만 있다면 그저 나오게 하는 것만으로도 저는 성공이라 생각합니다. 잡히지도 않은 감으로 ‘생태미술연구소’라 작업실 상인방에 새겨 붙여놨습니다만... ‘솔직한 서평’말씀 하셨는데 저는 그럴 능력도 자격도 없습니다. 앎도 실천도 불씨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제 몸 하나이 단속하는 것에 평생을 건 것처럼 바깥에 대해 문을 걸어 잠갔어요. ‘모두는 다 할만 하니까 한다.’라는 명제를 호주머니에 담고 말이죠. 敎 쪼끔, 農 쪼끔, 畵 쪼끔, 花 쪼끔, 醫 쪼끔, 禪 쪼끔, 詩 쪼끔 식으로 내가 비교적 평화롭게 잘 나아갈 수 있는 것으로 버티고 산 죄 밖에 없어요. 20여년 들꽃공부와 10수년 한의약· 임상 공부를 바탕으로 ‘사람마다 드러내는 바깥의 삶꼴은 그 타고난 기항지부와 오장육부의 형상에서 흐트러짐이 없구나.’ 하는 윤곽을 얻었습니다. 스스로 내인 젊은 날의 명제를 늙어가면서 확인한 셈이지요. 더욱이 시절인연에 따른 제 운명은 지난 시절을 탓하거나 시샘하지 않는 것으로 한 풀 꺾었습니다. 그니까 공부는 하되 다 잘할 수 없으니 좋아하는 것으로 실천하여 세상에 참여하자 이렇습니다. 그림도 꽃도 시도 의도 약도 다 그런 식으로 채워져 시간의 마음이 그닥 쫓기지는 않습니다. 그것이 비록 크지 않다 하여도 감당할만한 것으로 잡았으니 그 바닥색으로 스스로 남길만한 작품이 몇이나 건져질지 두고보자 싶은 것이죠. 원동석 사부님... 민민미술운동을 이끈 논자로서 오랫동안 선배의 자리를 잘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서운한 표정들이 <우리시대 작가들> 책 둘레에서 없지 않을 것은 사부님이 더 잘 아실 것입니다. 그나마 사부님께 ‘발탁’된 사람이 되레 마음 한 가닥 부럽기도 한 저로서는 지난 시대가 자꾸만 작아지는 기분도 들었습니다.^^ 향후 이 잔재주에 바라는 것은 나를 잘 닮은 그리고 그것을 아껴주는 사람들을 떠올리며 제 갤러리를 빼곡히 채우고 가는, 잘 하면 한 20년 붓짓거리나 아니 되겠습니까. 시간이 괜찮으시다면 이번 주 금요일 낮에 모습이나 잠깐 뵈올까 합니다만... 2016, 2. 10 김진수 올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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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한 잔의 술도 대중가요도 세상사는 이야기도 자신을 비워야만 새로운 세계처럼 다가오던 20년 세월이 어제만 같습니다. 2011년부터 4-H활동을 하면서..요즘 응답하라 1988드라마를 보면서 가족과 이웃간의 삶의 향기를 느낄 수 있어 좋은 봄방학을 보내고 있습니다. 아들 공연 일자가 20일(토) 오후쯤이 될 거라고 합니다. 정확한 날자가 나오면 한마디 누룽지에 공지토록 하겠습니다. 카페회원님!! 오셔서 뮤지컬 감상하시고 축하평도 해주시면 해요. ㅎㅎ
안주가 좋았는지 대화가 좋았는지 간이 아침에도 숙취를 모른 척 했다네. 산골에서는 갯것들이 가끔 떙기는데 오늘은 누가 생미역을 주어 초장을 떠올리며 입맛 다시고 있네. 뮤지컬 대본 쏘스도 곧 필요하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