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수의 들꽃에세이 75>
“낮게 그러나 넓고 평화롭게” - 긴병꽃풀(金錢草)
학명: Glechoma grandis (A.Gray) Kuprian.
쌍떡잎식물강 꿀풀과 긴병꽃풀속의 다년초
『긴병꽃풀』의 속명 글레코마(Glechoma)는 박하의 일종에 붙인 그리스어의 글레콘(Glechon)에서 유래되었고, 종소명 그랜디스(grandis)는 ‘큰, 성대한’ 의 뜻으로 왕성하게 퍼져나가 넓은 지면을 뒤덮는 긴병꽃풀의 생태를 묘사한 것으로 보인다. 줄기가 반덩굴성 포복성으로 뻗는데 잎과 꽃이 달리는 마디마디에서 뿌리를 내린다. 수풀 사이를 진행하다 직립의 풀기둥이라도 만나면 다투지 않고 가볍게 넘거나 사이사이를 잘 더듬어 낮게 제 갈 길을 간다. 활짝 입을 연 통꽃의 긴 꽃부리가 병모양이라서 긴병꽃풀이라 하고, 동그란 잎 모양이 잇달아 동전을 바닥에 깔아놓은 듯하여 연전초(連錢草), 그것이 가을에 노랗게 변해가니 금전초(金錢草), 동전초(銅錢草)이다. 또 구리향(九里香), 유향등(乳香藤)이라고도 하는데 이 풀을 손에 쥐면 허브처럼 맑고 진한 향기가 묻어난다. 동전 모양의 ‘금전’과 방향성의 ‘박하’를 결합하여 금전박하(金錢薄荷)라 부르기도 한다. 동서양 공히 꽃보다는 동그란 잎사귀와 향기의 특성에 주목한 것. 앵초과의 봄맞이꽃도 근생엽이 동글동글하여 동전초라 부르기도 하고, 십자화과의 도입종 루나리아는 납작하게 생긴 꼬투리를 보아서 그렇게 부른다. 우리나라에는 제주도에 잎 모양이 비슷한 병풀이 있는데 이는 산형과식물이다.
「금전초(金錢草)」는 긴병꽃풀의 생약명이다. 맛은 쓰고 떫고 매우며 성질은 서늘하다. 열을 내리고 이뇨하며, 기침을 멈추고 종기를 없애는 효능이 있다. 간 신 담 방광경으로 들어가 해독하고 급성간염으로 인한 황달을 치료한다. 무엇보다 방광결석을 비롯하여 요도, 담낭, 신장 결석을 용해시키는 특별한 효능이 있다. 담즙분비를 촉진하여 간 내 담관의 내압을 높여 결석을 배출시키는 힘에서 금전초는 으뜸이다. 《방약합편》의 담석을 배출하는 ‘담도배석탕(膽道排石湯)’각호 방에서 맨 첫 자리에 올라 군약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세상의 모든 식물은 성장과 발달에 직접적인 기능을 하지 않는 2차대사물질(각종 천연화합물)을 생산한다. 식물체에 들어있는 페놀화합물은 수천 종에 이르며 이들 화합물은 다른 식물의 생장을 제한할 수 있다. 식물은 초식동물이나 외부환경, 병충해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여러 가지 능력을 발전시켜왔다. 예컨대 왁스 층의 보호막을 만들어 유해한 자외선을 차단하거나, 수분매개자나 열매산포동물을 유인하고 영양이나 햇빛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며 식물과 미생물간의 공생 능력도 갖추어야 할 것이다. 가시박이 이런 물질을 분비하여 주변 식물을 말라죽게 하는 것이나 피톤치드가 원생동물이나 미생물에 저해작용을 주는 것, 천수국의 뿌리에서 나오는 물질이 토양선충을 죽이고 빨간 단풍잎이 상추씨의 발아를 현저히 감소시키는 것 등이 그것이다.
개망초의 뿌리는 주변식물의 성장을 억제하는 물질을 내면서 번식하기 때문에 큰 군락을 이룰 수 있으며, 결명자 재배지에선 잡초들의 생육이 억제되고, 명아주는 콩이나 밀 같은 식물에 장해를 일으킨다고 알려져 있다. 박하와 같은 허브식물의 독특한 향기나 샐비어속, 쑥속의 식물이 테프펜 류의 휘발성분을 내어서 다른 식물의 생육을 저해하는 따위들이 그 예로 식생 천이의 한 요인이 되기도 한다. 알렐로파시(allelopathy), 즉 타감작용(他感作用)이다. Allelon(상호)와 Pathy(한쪽이 다른 한쪽에 장해를 줌)의 합성어로, 생물이 무리와 떨어져 생활하는 다른 종의 생물에게 영향을 주는 현상을 뜻한다. 긴병꽃풀이 다른 풀에 대응하여 넓은 영역을 차지할 수 있는 능력은 사방으로 포복하는 활발한 번식력 덕분이긴 하지만 무엇보다 한 성깔 하는 저 강한 방향성의 타감 효과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