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황상제의 명을 받은 천자(天子)가 있는 곳이 대중화국입니다. 선천 상극시대의 천자국인 대중화국은 중국이었으나, 후천 상생의 천자국인 대중화국은 한국입니다. 후천개벽기가 되기까지 조선은, 중국의 제후국으로 소중화국을 자처하면서 대중화국 중국을 섬겨왔습니다.
대중화국인 중국의 천자문화를 그대로 소중화국인 조선에 이식하기 위해, 한문을 통해 중국의 지명과 인명을 조선의 지명과 인명으로 옮겨왔습니다. 또한 공자가 체계화한, 요임금으로 부터 비롯된 대중화 중국 천자문화의 종교사상적 토대인 사서삼경을 가르치고 배우며, 유교를 정치체제의 전범으로 삼았습니다. 조선의 임금과 신하들과 백성들은 거의 모두가 요순의 시대를 그리며 요순의 백성이 되기를 원했습니다. 대중화국 중국을 섬겨온 조선은 소중화국으로서 역할을 충실히 했던 것입니다.
증산상제님께서는 요순(堯舜)으로 비롯된 선천상극의 천자기운을 중국에서 조선으로 넘겨, 중국을 대중화국으로 하는 선천상극의 천자시대를 마감하고 조선을 대중화국으로 하는 후천상생의 천자시대를 여는 천지공사를 다음과 같이 보셨습니다.
@ 이달에 고부 와룡리에 이르사 종도들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제 혼란한 세상을 바루려면 황극신을 옮겨와야 하리니, 황극신은 청국 광서제(光緖帝)에게 응기되어 있느니라." 하시고, 또 가라사대 "황극신이 이 땅으로 옮겨오게 될 인연은 송우암이 만동묘를 세움으로부터 시작되었느니라." 하시며, 종도들을 명하사 밤마다 시천주(侍天呪)를 읽게 하시되 친히 곡조를 먹이사 며칠을 지난 뒤에 가라사대 "이 소리가 운상하는 소리와 같도다." 하시고 또 가라사대 "운상하는 소리를 '어로(御路) 어로(御路)'라 하나니 '어로'는 곧 임금의 길이라. 이제 황극신(皇極神)의 길을 틔었노라." 하시고 문득 "상씨름이 넘어간다!"고 외치시더니 이 때에 청국 광서제가 죽으니라.
인하여 세계일가통일정권(世界一家統一政權)의 공사를 행하실 새 제자들을 엎드리게 하시고 일러 가라사대 "이제 만국제왕(萬國帝王)의 기운을 걷어버리노라."하시더니, 문득 구름과 같은 이상한 기운이 제왕의 장엄한 모양을 이루어 허공에 벌려 있다가 이윽고 사라지니라.(대순전경 PP255-256)
@ 중국이 오랫동안 조선의 조공을 받아 왔으니, 이 뒤로 스무다섯해 만이면 중국으로부터 보은신이 넘어오리라. (대순전경 P258)
증산상제님의 천지공사에 의해, 선천상극의 대중화국 중국천자의 황극신이 응기해 있는 광서제가 1908년 원인 모르게 죽음으로써, 청국이 1912년에 멸망하게 됩니다. 증산상제님께서는 광서제의 천자기운을 따라, 동서의 만국제왕과 24장들을 조선으로 옮기시어 만동묘에 응기시키시고, 만동묘가 쑥대밭이 되면 금산사로 옮겨 응기하여 있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28장은 용화기지에, 3만 철기신장은 원평장상대기지에 응기하고 있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청주 만동묘는 일본의 폭격으로 1941년 4월 쑥대밭이 되었습니다.
@ 대원사를 출발하려 하실세, 천하만국 제왕신과 이십사장들을 부르사 만동묘에 응신을 시키신후 가라사대 "이 다음에 만동묘가 쑥대밭이 될 것이요, 그때에는 만국제왕신과 이십사장들을 금산사로 옮겨 호위하게 하리니, 이 신명들을 잘 대접하라." 그러나 지금은 당분간 만동묘에 응신시킬 수 밖에 없느니라." 하시니라. (정영규의 천지개벽경 p22)
소중화국인 조선 전라도 김제에도 금산사가 있듯이, 대중화국인 중국 남경인 소주에도 금산사가 있습니다. 금산사는 중국의 역대천자들과 장수들이 모이는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청나라 시대 성허라는 선비가 선계에 가서 이를 확인한 내용을 소설로 쓴 것이 '금산사몽유록'입니다. 우리 나라에는 조선 숙종때 번역되어 널리 알려졌습니다. '금산사몽류록'을 '금화사몽유록'이라고 한 것은, 김제 금산사에 주석하고 있던 스님이 역모로 처형된 사건이 있었기에, 금산사를 금화사로 바꿔 부른 것입니다. 금산사몽유록에 대한 설명은 다음과 같습니다.
* 금산사몽유록: 규장각도서 소장. 한문체 역사소설로서 일명 《금화사기(金華寺記)》라고도 한다. 줄거리는 청나라 강희(康熙) 말에 능주(凌州)의 유사(儒士) 성허(成虛)가 꿈속에서 금산사(金山寺)라는 현판이 붙은 선계(仙界)에 들어가 한(漢)나라 고조(高祖)를 비롯한 중국 역대의 시조들과 제갈량(諸葛亮)이 한 자리에 모여 노는 광경을 보고 돌아온다는 내용이다.
* 금화사몽유록(金華寺夢遊錄): 조선 중엽의 한문본 몽유록(夢遊錄) 소설의 하나. 《금산사몽유록(金山寺夢遊錄)》 《금화사기(錦華寺記)》 《금화사태평연기(金華寺太平宴記)》라고도 한다. 지정(至正) 말에 성생(成生)이란 자가 있어 이름은 허(虛)이고, 자는 탄지(誕之)로, 산동(山東)의 유사(儒士)였다. 각지를 떠돌다가 갑술년(甲戌年)에 금릉(金陵) 금산(錦山) 금화사에 들어가 자고 있는데 비몽사몽 간에 밖에서 거마(車馬) 소리가 들려서 보니 한(漢)나라 고제(高帝), 당(唐)나라 태종(太宗), 송(宋)나라 태조(太祖), 명(明)나라 태조(太祖)가 들어와 각기 자기의 참모인 문무제신들을 불러들였다. 다시 중흥주(中興主)인 동한(東漢)의 광무제(光武帝), 촉한(蜀漢)의 소열제(昭烈帝), 당나라 숙종(肅宗), 송나라 고종(高宗)과 전후 시신(侍臣)을 불러들이고, 이어 제갈량(諸葛亮)으로 하여금 그 우열을 가리게 하였다. 갑자기 진(秦) 시황(始皇), 진(晉) 무제(武帝), 수(隋) 문제(文帝), 초(楚) 백왕(伯王)의 격서(檄書)가 이르니, 제갈량이 동루(東樓)·서루(西樓)로 가르게 하여 창업지주(創業之主)만 법당에 들게 하였다. 여기서 여러 제왕이 자리 다툼을 하다가 제갈량이 좌정시켜 중국 역사상의 인물 수백명이 술을 마시며 가무를 즐기는데, 연회에 초청받지 못한 원(元)나라 태조를 선봉으로 한 적군이 쳐들어오는 것을 시황과 무제가 군사를 일으켜 격퇴시킨다. 이윽고 닭이 울자 다시 만나기를 기약하고 흩어졌으며, 성허도 놀라 깨어 보니 일장춘몽이었다는 내용이다. 1권 1책. 한문필사본.
성허는 명나라를 건국한 주원장도 자신과 같은 꿈을 꾸었다는 것을 확인하고, 역대 중국천자들과 24장과 28장을 비롯한 문무대신이 금산사에 틀림없이 모여있다는 것을 확신하고, 이를 널리 알리기 위해 '금산사몽유록'이라는 소설로 풀어냈던 것입니다. 증산상제님께서 숙종이 꾼 꿈을 말씀하시며 '천자부해상'공사를 보셨듯이(이중성의 천지개벽경 p276), 주원장의 꿈과 성허의 꿈을 통해 예시한 금산사몽유록을 인정하시어, 중국의 남경 소주에 있는 금산사를 조선의 전라도 김제 모악산에 있는 금산사로 옮기시어 천하만국의 만국제왕신과 24장 28장을 응기시키신 것입니다.
@ 어느날 종도들에게 가라사대 "일후에 때가 되면, 천하만국의 제왕신과 이십사장은 금산사를 옹위하고 이십팔장은 용화기지를 옹위하며 삼만의 철기신장은 원평장상 대기지를 옹위하리라." 하시고, 이어서 가라사대 "옛 말에 이르기를 '수양산 그늘이 강동 팔십리 간다'고 하는 말과 같이, 금산사를 중심으로한 용화도장은 장광이 팔십리니라." (정영규의 천지개벽경 p28)
24장은 당태종을 도와 천하를 평정한 장군들이요, 28장은 후한 광무제를 도와 한나라를 재건한 장군들입니다. 24장은 천자를 도와 나라를 개창한 장군들의 대표요, 28장은 천자를 도와 망한 나라를 중흥한 장군들의 대표입니다. 증산상제님께서는 박공우를 중국 대중화의 개창조와 중흥조를 도운 명장들인 24장과 28장들을 지휘하는 총책임자인 만국대장 신병대장으로 삼으시어, 금산사를 중심으로 후천대중화국이 조선에 들어설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 하루는 경석의 집 서쪽 벽에 이십사장과 이십팔장을 써 붙이시고, 공우의 왼팔을 잡으시며 소리를 높여 "만국대장 박공우!"라고 부르시니라. 이 뒤로 어디를 심부름 가든지 문밖에 나서면 어디선가 방포성이 나더라. (대순전경 p249)
증산상제님께서는 신도(神道)를 바로잡으시어, 선천상극기운이 지배한 천자의 뿌리인 요임금을 상생천자의 뿌리인 단주로 바꾸시고, 단주로 하여금 상생대도인 태을도로 급살병을 극복하고 선천오만년을 해원하여 상생개벽의 후천선경을 건설하도록 하셨습니다.
@ 선천에는 상극지리가 인간사물을 지배하여 모든 인사가 도의에 어그러져서 원한이 맺히고 쌓여 삼계에 넘침에, 마침내 살기가 터져나와 세상에 모든 참혹한 재앙을 일으키나니, 그러므로 이제 천지도수를 뜯어고치며 신도를 바로잡아, 만고의 원을 풀고 상생의 도로써 선경을 열고 조화정부를 열어, 하염없는 다스림과 말없는 가르침으로 백성을 화하며 세상을 고치리라.
무릇 머리를 들면 조리가 펴짐과 같이, 인륜기록의 시초이며 원의 역사의 처음인 당요의 아들 단주의 깊은 원한을 풀면, 그 뒤에 수천년동안 쌓여 내려온 모든 원의 마디와 고가 풀리리라.
대저 당요(唐堯)가 단주(丹朱)를 불초히 여겨 두 딸을 우순(虞舜)에게 보내고 드디어 천하를 전하니, 단주는 깊이 원을 품어 그 분울한 기운의 충동으로 마침내 우순이 창오에 죽고 두 왕비가 소상(瀟湘)에 빠진 참혹한 일을 이루었나니, 이로부터 원(寃)의 뿌리가 깊이 박히고 시대의 추이를 따라 모든 원이 덧붙어서 더욱 발달하여 드디어 천지에 가득차서 세상을 폭파함에 이르렀나니,
그러므로 단주(丹朱) 해원(解寃)을 첫머리로 하고, 모든 천하를 건지려는 큰 뜻을 품고 시세가 이롭지 못하므로 인하여 구족을 멸하는 참화를 당하여 의탁할 곳이 없이 한을 머금고 천고에 떠도는 만고역신(萬古逆神)을 그 다음으로 하여, 각기 원통과 억울을 풀어 혹은 행위를 바로 살펴 곡해를 바루며 혹은 의탁을 붙여 영원히 안정을 얻게 함이, 곧 선경을 건설하는 첫걸음이니라. (대순전경 pp298-300)
증산상제님의 법을 용사하시는 고수부님께서도 다음과 같이 단주에게 천명을 내렸음을 확인하여 주셨습니다.
@ 고수부께서 무오(1918)년 9월 19일 대흥리를 떠나 조종골로 오실 때, 약장을 아니 가지고 빈 몸으로 오셨으므로, 이제 약장을 짜시니 다음과 같으니라. 약장의 밑의 칸은 큰 칸 하나를 두시고 그 위의 칸은 사상에 응하여 빼닫이 네 칸을 횡으로 두시고 아래칸 바닥에다 경면주사로 붉은 점을 둥글게 스물넉점을 돌려 찍으시고 그 중앙에다 팔문둔갑(八門遁甲)이라 쓰시고 글 쓴 위에다 설문(舌門)이라고 두 자를 불지져 낙서(烙書)하시고 약장 안벽에다가 이와같이 쓰시니라.
「강증산 소유(姜甑山 所有)
여동빈지 조화권능(呂童賓之 造化權能)
강태공지 도술(姜太公之 道術)
신농씨지 유업(神農氏之 遺業)
단주수명(丹朱受命)」
그리고 이 약장을 둔궤(遁櫃)라 부르시고 또는 신독(神독)이라고도 부르게 하신 바, 약방에 오는 사람은 누구든지 그 앞에 돈을 놓고 절을 하게 하시어 이 법을 엄격히 지키도록 명령하시어, 누구든지 반드시 실행하게 하시니라. (선도신정경 pp77-79)
급살병이 돌면, 금산사에 응기한 선천상극의 천자들인 만국제왕신과 24장과 28장들은, 박공우 성도의 안내로 천지부모이신 증산상제님과 고수부님을 모시고 들어가는 후천상생의 천자인 단주를 맞이하여 천제를 모시고 의통성업을 집행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