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고장 강릉(江陵)
경포(鏡浦)호수 / 경포대(鏡浦臺) 누각(樓閣) / 누각 내부 / 강릉시 관내도(管內圖)
<강릉시(江陵市)의 행정구역(行政區域)>
강릉시 관내도에서 ‘시내 동지구’로 표시된 곳이 구(舊) 강릉시(江陵市)인데 1995년에 주문진읍(注文津邑), 연곡면(連谷面), 사천면(沙川面), 성산면(城山面), 구정면(邱井面), 왕산면(王山面), 강동면(江東面), 옥계면(玉溪面)까지 강릉시로 통합되어 광역시(廣域市?) 형태를 이루었지만, 총인구는 20만 정도이다.
<강릉시(江陵市)의 자연환경(自然環境)>
강릉지방은 서쪽으로 태백준령의 오대산(五臺山), 황병산(黃柄山) 등이 있고, 대관령(大關嶺)이 막아서서 영서(嶺西)와 영동(嶺東)으로 갈라놓는데 교통이 원활해지기 전까지 영동지방은 고립된 지역으로 독특한 문화가 이루어져 언어(사투리)와 풍습 등 색다른 문화가 형성되었다.
강릉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강원도 사람들이 쓰는 사투리인 ‘강원도 사투리’를 강릉지방 말만 특별히 구별하여 ‘강릉말’이라고 하기도 한다. 이곳은 태백준령의 대관령이 막아서 있는 해안지방이다 보니 영서지방에 비하면 연교차(年較差)가 적어 기후가 온난하고 해양성 기후에 가깝다.
그러나 봄철이면 대관령을 넘어오는 높새바람(서북풍:푄 현상)으로 엄청나게 건조한 강풍이 휘몰아칠 때가 많으며 겨울에도 눈보라가 휘몰아치고 눈이 날려 눈 언덕을 이루고는 한다.
옛 강릉시로 좁혀보면 서쪽 태백준령의 골짜기에서 흘러내린 물을 오봉산 자락에 가두어 생긴 것이 왕산면 오봉리 산기슭에 있는 오봉(五峰)저수지인데 여기서 흘러내리는 물줄기가 강릉 시내 남쪽을 끼고 흘러 남대천(南大川)이 되고, 이 물이 안목항(安木港, 現 江陵港) 죽도봉(竹島峰) 옆을 지나 동해(東海) 남항진(南港津)으로 흘러든다.
또, 강릉시 대전동(大田洞: 한밭마을)의 즈므골에서 흘러내린 경포천(鏡浦川)과, 위촌리(渭村里/우추리)에서 흘러내리는 물은 죽헌(竹軒)저수지와 연이어 경포(鏡浦) 저수지를 이루고 오죽헌(烏竹軒) 앞에서 경포천과 만나 경포호(鏡浦湖)가 된다.
그리고 호수와 연이어 곧바로 해변으로 이어져서 경포 해수욕장이 되고 조금 남쪽으로 내려오면 커피 거리가 있는 안목항(安木港)과 솔바람 다리를 건너면 남항진항(南港津港)으로 이어진다.
경포해수욕장은 백사장 길이가 6km나 되고 수용인원이 15만 정도가 되는 국내 최대의 해수욕장이다. 재미있는 이야기로 내가 어렸을 적에 죽도봉(竹島峰)이 있는 안목(安木) 마을을 일명 젠주라 불렀고 죽도봉을 젠주봉이라고 불렀는데 전라북도 전주(全州)에 있던 산봉우리가 바다에 떠밀려 이곳으로 왔다고 하여 젠주, 젠주봉이라 불렀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도 전한다.
강릉 시내에 있는 산들을 보면 북쪽으로 교동(校洞)에 화부산(花浮山), 남쪽으로 성덕동(城德洞)의 나지막한 산인 월대산(月帶山)과 강남동(江南洞)에는 제법 우뚝 솟은 모산봉(母山峰)도 있다.
강릉에서 주문진 방향으로 가는 동해대로(7번국도)를 따라가다 보면 대전동(大田, 한밭)의 화부산 언덕길에 ‘즈므마을’이라는 표지석이 있어 눈길을 끈다. 한밭은 이곳에 커다란 밭이 있다는 의미이고 순 강릉 말인 ‘즈므’는 ‘해가 저문다.’라는 의미라고 하니 ‘해가 저무는 마을’이라는 뜻이겠다.
<1> 경포대(鏡浦臺)와 경포호(鏡浦湖)
경포해수욕장과 경포호 / 경포호 학섬(鳥島) / 기생 홍장(紅粧)과 박신(朴信)
강릉 시내에서 북쪽으로 화부산(花浮山)을 넘어가 해안 쪽으로 나가면 경포호수가 펼쳐져 있다.
거울(鏡)처럼 맑은 물이 고여 있는 호수라 하여 경포호(鏡浦湖)라는 이름을 얻었는데 둘레의 길이가 4km가 넘는 제법 큰 호수로 작은 개천이 연결되어 곧바로 바다이고 그곳에 경포대해수욕장이 펼쳐진다.
호수 가운데에는 기생 홍장(紅粧)의 고사가 얽혀있는 홍장암(紅粧巖) 바위섬과 해변 쪽으로 조도(鳥島)라는 작은 바위섬도 있는데 섬 한가운데 바위 위에다 월파정(月波亭)이라는 작은 정자각을 짓고 지붕 꼭대기 한가운데에 학(鶴) 조각을 세워놓아 학(鶴) 섬이라고도 부른다.
경포대 북쪽 기슭 언덕 위에는 멋진 정자각인 경포대(鏡浦臺)가 있는데 고려 후기에 건축된 누각(樓閣)으로 정면과 측면이 각각 5칸에 팔작(八作)지붕으로 보물(제2046호)로 지정된 건물이다.
현판(懸板)에는 경포대(鏡浦臺), 건물 안에는 제일강산(第一江山)이라는 액자가 걸려있는, 너무나 수려한 누각(樓閣)인데 고려 충숙왕 13년(1326)에 건축되었다고 한다.
경포호수는 한 바퀴 돌면 가는 곳마다 풍광이 아름답기 이를 데 없고, 예전에는 아주머니들이 물에 들어가 부새우(민물새우, 곤쟁이)를 뜨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었는데 젓을 담그면 정말 맛이 있었다.
<경포의 달>
정철의 관동별곡(關東別曲)에 보면 경포대 누각에서 술을 마시면 달이 다섯 개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①하늘에 떠 있는 달, ②호수에 비친 달, ③바다에 비친 달, ④술잔에 비친 달 그리고 술을 따르는 여인의 ⑤눈동자에 비친 달로 한꺼번에 다섯 개의 달이 보인다는, 경포대 예찬의 글이다.
관동별곡은 영동(嶺東)지방의 아름다운 경관을 노래한 것으로, 고려 말 안축(安軸)이 경기체가(京畿體歌)로 쓴 관동별곡(關東別曲)이 있고, 조선 선조 때 정철(鄭澈)이 쓴 가사집(歌詞集)의 명칭도 관동별곡(關東別曲)이다.
이들이 예찬한 영동지방 여덟 곳의 경승지(景勝地)인 관동팔경(關東八景)은 다음과 같다.
<1> 총석정(叢石亭, 북한 통천) <2> 청간정(淸澗亭, 고성) <3> 낙산사(洛山寺, 양양)
<4> 삼일포(三日浦, 북한 고성) <5> 경포대(鏡浦臺, 강릉) <6> 죽서루(竹西樓, 삼척)
<7> 망양정(望洋亭, 울진) <8> 월송정(越松亭, 울진) 인데 단연 제1경(第一景)은 강릉 경포대이다.
지금은 북한 땅인 총석정과 삼일포도 물론 강원도이고, 울진도 현재 경북으로 편입되었지만, 예전에는 강원도였다.
조선 시대의 대문호 송강(松江) 정철(鄭澈)은 관동별곡(關東別曲) 외에도 성산별곡(星山別曲), 사미인곡(思美人曲), 속미인곡(續美人曲) 등 4개의 가사집(歌詞集)이 전하는데 관동별곡에는 경포호수를 바라보며 ‘홍장고사(紅粧古事)를 헌사(獻辭)타 하리로다.’라는 구절도 나온다.
<홍장고사(紅粧古事/說話)>
고려 우왕 때, 강원도 안렴사(按廉使, 일명 按察使) 박신(朴信)은 강릉기생 홍장(紅粧)에게 깊이 빠졌다고 한다. 그 당시 강릉부사(江陵府使)였던 조운흘(趙云仡)이 박신을 골려주려고 어느 날 홍장을 만나려고 온 박신에게 홍장이 갑자기 죽어버렸다고 거짓말을 하자 박신은 몹시 서러워한다.
며칠 후, 조부사(趙府使)는 박신을 초청하여 경포대에서 뱃놀이를 베풀었는데 두 사람의 취흥이 무르익었을 때 석양 녘에 멀리 호수를 보니 그림같이 떠 있는 배 한 척이 보이고 갑판 위에서 아름다운 여인이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박신은 깜짝 놀라 저 배가 무슨 배냐, 저기서 노래를 부르는 여인의 모습이 홍장의 모습과 똑같다고 말하자 조부사는 짐짓 놀라는 체하면서 경포호에는 가끔 선녀가 내려와서 뱃놀이하는데 저것은 필시 선녀의 놀음일 것이라고 하며 우리도 가까이 가서 같이 놀아보자고 한다.
가까이 가서 보니 그 여인은 분명 홍장(紅粧)인지라 박신은 깜짝 놀라며 그제야 조부사에게 속았음을 깨닫고 세 사람은 한바탕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는 이야기이다.
영동지방의 중심 강릉(江陵)은 선사시대의 유물유적들이 발견되어 먼 옛날부터 인간이 거주하였던 지역으로, 강릉시 교동(校洞)에서 발굴한 유적에서는 청동기시대의 유물(빗살무늬 토기, 항아리 토기 등)은 물론 상당량의 탄화미(炭化米, 쌀)까지 출토되어 청동기시대부터 이곳에서 농업이 발달했었음을 증명한다.
또 역사적으로 보면 부족국가 시대에는 동예(東濊/BC 1~6)의 수도 하슬라(河瑟羅)였고, 고구려 때에는 하서량(河西良), 통일신라 시대에는 북빈경(北濱京)으로 불렸다가 경덕왕 16년(AD 757)에 명주(溟州)로 개칭하였고 고려 원종 4년(1263)에는 강릉도(江陵道)라 하였다.
이후, 조선 세종 5년(1423)에 비로소 지금 이름인 강원도(江原道)의 강릉(江陵)이라 칭하였다고 한다. 이런 오랜 역사의 고장이다 보니 국보와 보물 등이 엄청나게 많아서 강원도 지정문화재의 90% 정도가 이곳 강릉에 몰려있다고 한다.
강릉은 예로부터 교육의 도시, 예술·문화의 도시 예향(藝鄕)이라고 불리던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