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보장경 제8권
101. 제바달다가 호재(護財)라는 술취한 코끼리를 놓아 부처님을 해치려 한 인연
부처님께서는 왕사성에 계셨다.
그때 제바달다는 호재(護財)라는 술취한 코끼리를 놓아 부처님을 해치려 하였다. 그래서 5백 아라한들은 모두 허공으로 날아갔으나 오직 아난만은 부처님 뒤에 남아 있었다.
그때 부처님께서는 오른손을 드시었다. 흰 호재 코끼리는 5백 마리 사자를 보고 두려워하여 곧 항복하였다. 그러자 5백 비구들은 모두 부처님을 버리고 달아났는데, 오직 아난만은 부처님 뒤에 남아 있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이런 일은 지금만이 아니라 과거에도 그러하였느니라.
옛날 가시국에 5백 마리 기러기가 짝이 되어 살고 있었다.
그때 그 기러기들 왕의 이름은 뢰타(賴吒)요, 뢰타에게는 소마(素摩)라는 신하가 있었다.
그때 기러기 왕은 사냥꾼에게 잡히게 되었다.
5백 마리 기러기 떼들은 모두 그를 버리고 달아났지마는, 오직 소마만은 그를 버리지 않고 따라다녔다.
그리고 사냥꾼에게 말하였다.
‘우리 왕을 놓아 주십시오. 지금 내가 내 몸으로 대신 하겠습니다.’
그러나 사냥꾼은 듣지 않고 마침내 기러기 왕을 범마요왕(梵摩曜王)에게 바쳤다.
왕은 기러기 왕에게 물었다.
‘편안한가?’
기러기 왕은 대답하였다.
‘왕의 큰 은혜를 입어 왕의 맑은 물을 마시고 또 좋은 풀을 먹고 생명을 보전하면서 언제나 편안하게 이 나라에서 살아갑니다.
원컨대 대왕은 저 모든 기러기들을 놓아 주어 두려움이 없게 하여 주십시오.’
그때 5백 마리 기러기들은 왕의 궁전 위의 허공에서 소리를 쳤다.
왕은 물었다.
‘저것은 어떤 기러기인가?’
기러기 왕은 대답하였다.
‘저것들은 내 권속입니다.’
왕은 그들에게 두려움이 없게 하려고 나라에 영을 내려 기러기를 죽이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기러기 왕은 왕에게 아뢰었다.
‘부디 바른 법으로 나라를 다스리십시오. 세상은 덧없는 것입니다.
비유하면 사방의 산, 즉 끝없이 높은 동방의 큰 산이 갑자기 들어오고, 남방ㆍ서방ㆍ북방의 산도 또 그와 같이 와서 이 세상을 갈아 부술 때에는 일체 중생과 사람과 귀신들이 모두 없어지지마는 그것을 피할 수 없고, 믿을 데가 없으며, 구제할 수도 없는 것과 같습니다.
그 때를 당해서 무엇을 믿고 힘입겠습니까?
오직 이런 것을 생각하고 부디 사랑하는 마음으로 일체 중생을 두루 기르고, 바른 법을 닦고 행하여 온갖 공덕을 지으십시오.
대왕이여, 아셔야 합니다.
어떠한 부귀도 사방에서 오는, 쇠하고 멸하는 법에 꺾이고 부서져 허무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또 어떠한 건강도, 사방에서 오는 온갖 병 때문에 부서지고 멸하는 것입니다.
어떠한 젊음도 사방에서 오는 쇠약의 산 때문에 부서지는 것입니다.
또 어떠한 생명도 사방에서 오는 죽음의 큰 산 때문에 무너지고 멸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네 산은 일체가 다 가진 것으로서,
어떤 하늘이나 용이나 사람이나 귀신 등의 생명을 가진 무리는 그것을 면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사랑하는 마음을 닦고 정성껏 바른 법을 행하십시오.
만일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죽을 때에도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후회하지 않기 때문에 좋은 곳에서 나서 반드시 성현을 만날 것이요, 성현을 만나게 되면 생사를 벗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왕은 소마에게 물었다.
‘너는 왜 잠자코 있는가?’
소마는 대답하였다.
‘지금 기러기 왕과 사람의 왕이 같이 말씀하고 계신데, 만일 거기 끼어들어 말하면 그것은 예의가 아니어서 위에 대하여 공경하고 정성된 마음이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왕은 말하였다.
‘이는 실로 희유한 일이로다. 너는 기러기 몸으로서 능히 그러한 충신의 절개를 지키는구나. 그것은 사람으로서도 미치지 못할 바이다.
그리고 네 목숨으로 기러기 왕을 대신하려 하였고, 또 겸손하여 말에 참여치 않으니, 너희들과 같은 군신의 의리는 참으로 세상에 드문 것이다.’
왕은 곧 금아(金錏)를 그들의 머리에 씌워 주고,
또 좋은 비단으로 기러기 왕의 머리에 매어 보내면서 말하였다.
‘너는 아까 나를 위해 좋은 법을 말하였기 때문에 곧 놓아 주는 것이다.’
그 때의 기러기 왕은 바로 내 몸이요, 소마는 바로 아난이며, 사람의 왕은 아버지 정반왕이요, 그 사냥꾼은 바로 제바달다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