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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실치사범의 보호를 위한 도피성(22-29)
사람의 생명을 해한 값은 생명으로만 대속할 수 있습니다. 때때로 원한이나 해할 의사 없이도 살인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살인의 결과는 동일하지만, 그 동기가 다르기 때문에 용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이는 고의성과 우발성을 구분하는 중요한 기준이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생명에 대한 책임과 동기를 깊이 고려해야 합니다.
22악의가 없이 우연히 사람을 밀치거나 기회를 엿봄이 없이 무엇을 던지거나 23보지 못하고 사람을 죽일 만한 돌을 던져서 죽였을 때에 이는 악의도 없고 해하려 한 것도 아닌즉 24회중이 친 자와 피를 보복하는 자 간에 이 규례대로 판결하여 25피를 보복하는 자의 손에서 살인자를 건져내어 그가 피하였던 도피성으로 돌려보낼 것이요 그는 거룩한 기름 부음을 받은 대제사장이 죽기까지 거기 거주할 것이니라(22-25)
고의적인 살인에 대한 여섯 가지 사례들과 그것에 대한 처벌을 규정한 뒤, 여기서는 비고의적인 살인 행위를 세 가지 사례로 나눠 설명하면서 법적 처리 절차를 설명합니다.
무심코 발생한 세 가지 사망 사건의 예는 다음과 같습니다: ① 무심코 사람을 밀쳐서 죽임; ② 무심코 물건을 던져서 죽임; ③ 무심코 돌을 던져서 죽임 등이 있습니다. 이러한 살상은 예기치 않게 발생한 것들입니다. 살인자가 보지 못하고 한 일들입니다. 그래서 ‘악의 없이 우연히’, ‘노리지 않고(기회를 엿봄이 없이)’, ‘사람이 보이지 않았는데’라는 수식어들이 붙습니다. 22-23절은 사실 앞서 16-21절과 더불어 판례법들로 묶어야 합니다. 16-21절은 고살범인 경우, 22-23절은 과실치사범인 경우입니다.
일단 사망 사건이 발생하면 이 피의자와 보복자(고엘) 사이에 재판이 진행되어야 합니다. 재판 없이 사적인 보복으로 피의자를 죽이거나 무단으로 사형을 집행할 수는 없습니다. 아마 피의자는 사건 직후 도피성으로 몸을 숨긴 상태일 것입니다. 재판정은 그를 도피성에서 불러 재판을 진행합니다. ‘회중이’ 이 사건의 판결을 내린다고 되어 있으나(24), 여기 히브리어 에다(ה)는 ‘재판관들의 모임’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당시 어떤 형태의 사법 기관이 존재했음을 암시합니다.
고엘은 앞서 말한 대로 누군가의 고통과 한, 억울함을 풀어주는 사람을 말합니다. 메시아의 ‘구속자’ 개념이 여기에서 왔습니다. 레위기 25장의 희년법에 의하면 토지와 빚을 다른 사람이 대신 갚아줄 수 있는데, 이때 그 사람이 ‘고엘’, 즉 ‘갚아주는 자’, ‘무르는 자’가 됩니다. 이 경우 고엘이 ‘속량자’, ‘구속자’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단순히 상대에게 보복하여 손해를 보존하는 ‘보복자’의 의미도 가능합니다. 여기서는 가족을 잃은 피해자가 직접 고엘이 되어 피 값을 보상하려 하기 때문에 보복자란 뜻으로 쓰인다. 율법은 이러한 보복을 불법으로 비난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과실치사의 경우 실수로 살인을 저지른 사람이 보복을 당한다면, 무척 억울한 처사였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이를 위한 대책을 마련하여 법제화하십니다. 이 법의 취지는 결코 억울한 새로운 피해자가 생기지 않게 하고, 인간의 악한 심성에 의한 무고한 보복의 악순환을 차단하는 데 있습니다. 따라서 만일 그것이 과실치사로 드러나면, 법정은 그의 생명을 지켜줄 의무가 있습니다. 재판관들은 그를 피의 보복자로부터 그 사람을 보호하여 도피성으로 돌려보내야 합니다(25). 그가 도피성에 연금되는 기간은 대제사장이 죽는 날까지 연급되어 있어야 했습니다(25). 레위인들과 똑같이 생활했습니다.
도피성 생활의 준수사항(26-29)
사람의 행동이 의도적인지 우발적인지에 따라 책임의 정도가 달라집니다. 우리는 실수를 인정하고 그로부터 배우며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야 합니다.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모든 사건에 대해 공정한 심판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태도는 사회의 신뢰를 구축하는 데 기여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책임감 있는 행동을 통해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26그러나 살인자가 어느 때든지 그 피하였던 도피성 지경 밖에 나가면 27피를 보복하는 자가 도피성 지경 밖에서 그 살인자를 만나 죽일지라도 피 흘린 죄가 없나니 28이는 살인자가 대제사장이 죽기까지 그 도피성에 머물러야 할 것임이라 대제사장이 죽은 후에는 그 살인자가 자기 소유의 땅으로 돌아갈 수 있느니라 29이는 너희의 대대로 거주하는 곳에서 판결하는 규례라(26-29)
도피성 연금 기간 중에 그 살인자는 도피성 밖으로 외출이 금지됩니다(28). 만일 무단 외출을 했다가 보복자에 의해 살해당하면, 누구의 탓도 아니며 그 보복자 또한 자신의 복수의 피에 대해 책임질 필요가 없습니다(26-27). 그 살인자는 현재의 대제사장이 살아있는 동안에는 도피성 안에만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여기서 도피성 안이 성벽 안인지 아니면 도피성의 목초지의 경계 안인지 정확하지 않지만, 그가 모든 활동에 제약을 받는 연금 상태에 놓여 있으므로 성벽 안에 머물렀을 것으로 추론됩니다. 연금 중인 살인자는 대제사장이 죽은 후에야 결국 완전히 사면되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28). 이제 살인의 책임에서 자유로워진 그를 어떤 피의 보복자가 죽인다면 그것은 새로 살인 사건이 됩니다.
엄격한 살인자 처벌 규정(30-34)
공동체는 서로의 안전과 권리를 보호할 책임이 있습니다. 법은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는 데 필수적이며, 공정한 심판이 이루어져야 함을 나타냅니다. 살인죄에 대한 경고는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워 줍니다. 이러한 원칙들은 정의로운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서로를 존중하고 보호하는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30사람을 죽인 모든 자 곧 살인한 자는 증인들의 말을 따라서 죽일 것이나 한 증인의 증거만 따라서 죽이지 말 것이요 31고의로 살인죄를 범한 살인자는 생명의 속전을 받지 말고 반드시 죽일 것이며 32또 도피성에 피한 자는 대제사장이 죽기 전에는 속전을 받고 그의 땅으로 돌아가 거주하게 하지 말 것이니라 33너희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피는 땅을 더럽히나니 피 흘림을 받은 땅은 그 피를 흘리게 한 자의 피가 아니면 속함을 받을 수 없느니라 34너희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 곧 내가 거주하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나 여호와는 이스라엘 자손 중에 있음이니라(30-34)
살인 사건으로 열린 재판은 신중해야 한다. 자칫 무고한 사람이 혐의를 뒤집어쓰고 억울한 희생을 당한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는 재판의 정확성과 신중성을 위해 법적 장치를 보완합니다. 피의자의 고의적 살인 행위의 혐의를 입증하려면 한 사람의 증언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습니다(30). 율법은 증인을 세울 때 최소 두세 증인의 말이 법적인 효력이 있다고 명시합니다. 아마 두 사람의 의견이 일치할 때는 판결이 확정되나 두 사람의 증언이 갈릴 경우에는 추가적인 증인 한 사람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재판 결과 고의로 살인한 자로 드러나 유죄가 확정되면 사형 외에는 면책될 방법이 없습니다. 고대 중동의 다른 국가들과 달리 이스라엘의 율법은 고의적인 살인범이 ‘생명의 속전’으로 목숨을 보존하는 것을 허용치 않습니다. 생명 되신 하나님께서 반포하신 숭고한 하나님의 율법은 인명 살상이 돈으로 해결되는 것을 원천 봉쇄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기 때문에 사람을 죽이는 것은 그분의 형상을 파괴하는 무엄한 일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친히 호흡으로 불어 넣어주신 생명을 누군가 찬탈하는 것은 곧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주권을 침해하는 행위입니다. 따라서 인명 살상은 그 어떤 것으로도 배상이 안 되며, 그 범죄자의 생명만이 속전으로 지불 될 수 있습니다. 고의적인 살인자는 반드시 사형되어야 합니다. 이 원칙은 과실치사로 도피성에 연금되어 있는 살인자에게도 적용됩니다. 비고의적인 살인을 범했기에 사형은 면했지만, 역시 생명을 해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따라서 그가 도피성에 갇혀 사는 동안 ‘생명의 속전’을 내고 미리 죄사함을 받을 수 는 없었습니다(32). 대제사장이 죽을 때까지는 죄가 유효합니다.
33-34절은 살인죄에 대한 중요한 신학적 진술입니다. 이 구절은 최근까지도 논쟁이 계속되고 있는 동사 ‘키페르’의 의미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구절 중 하나입니다. 도피성 규정과 관련된 현재의 문맥에서 이 구절이 의미하는 바는 분명합니다. 만일 누군가에 의해 무고한 생명이 희생되면 그 흘린 피로 인해 땅이 더럽혀집니다(33). 그렇게 피 흘림으로 땅이 더럽혀지면 그 피를 흘리게 한 바로 그 사람의 피가 아니면 속함을 받을 수 없습니다. 땅의 오염에는 성전의 오염도 암시되어 있다. 인간의 극악한 죄로 인한 땅과 성전의 오염이 임계량에 이르면 거룩하신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견디지 못하시고 그곳을 떠나십니다: “내가 거주하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따라서 시급히 이 무고히 흘린 피를 속죄해야 합니다.
여기서 땅을 ‘속죄하다’라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 땅이 죄를 지은 것이 아닌데 왜 속죄가 됩니까? 동사 ‘키페르’는 바로 이러한 해석상의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학자들은 동사 카파르(kapar)와 그것의 피엘형 키페르(kipper)의 의미에 대해 크게 세 가지 견해로 나뉩니다: (1) 덮다(cover); (2) 배상하다(ransom); (3) 씻다(cleanse). 전통적으로 ‘덮다’라는 개념으로 이해되어왔는데 현재의 학자들의 연구 결과는 그렇지 않습니다. 일부 ‘덮다’라는 개념을 고수하는 학자들이 있긴 하나 현대의 학자들 대부분은 ‘배상하다’와 ‘씻다’, 이 두 견해로 양분되어 있습니다. 둘 다 본문상의 명확한 근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최근의 학자 중 스클라(J. Sklar)는 kipper가 이중적 의미를 지닌다는 사실을 밝혀 냈습니다. kipper = 배상(koper, ransom) + 정화(purgation), kipper의 이중적 뉘앙스에 대한 근거는 바로 현재의 본문인 33-34절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무고한 피로 땅이 더럽혀지면 살인자의 피로 더럽혀진 그 땅을 ‘씻어내고’, 생명의 희생을 ‘배상해야’ 합니다. 결국 본문은 “피가 아니면 속죄(kipper)가 만들어질 수 없다”는 문장에서 kipper라는 단어로 피의 이중적 기능을 지칭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속죄제 피의 기능을 두고 논쟁을 벌일 필요가 없습니다. 속죄제의 효과인 kipper는 정화와 대속의 기능을 모두 포함하기 때문입니다. 이때 성전 기물을 목적으로 하는 kipper도 대속+정화라는 뜻의 ‘make atonement for it’(속죄하다)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성물의 오염을 해상하고 그것을 닦아내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법과 정의의 중요성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행동의 의도를 이해하고, 고의적인 범죄와 우발적인 사고를 구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도피성은 회복의 기회를 제공하며, 이는 우리에게 실수를 인정할 수 있는 용기를 줍니다. 모든 사건에 대해 공정한 판단이 이루어져야 하며, 이는 사회의 정의를 실현하는 데 필수적입니다. 공동체는 서로의 안전과 권리를 보호하는 책임이 있습니다. 이러한 원칙들을 실천함으로써 우리는 건강하고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 나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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