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8년 명륜동에 서울문묘와 성균관 창건.
이곳은 한강 너머로 해가 뜰 때 한양에서 가장 먼저 햇볕이 떨어지는 따뜻한 성지.
사적 제143호.
보물 제141호.
1402년 소실.
1407년 중건.
임진왜란 때 소실.
1602년 중건.
조선의 국교는 유교.
유교란 사람의 도리를 익혀 자기 몸에 젖게 한 뒤에 부드러운 모습으로 남을 가르쳐서 마치 하얀 종이에 물이 스며들듯이 상대방의 마음속에 가르침이 젖어들게 하는 학문.
자고로 선비는 먼저 자기의 마음가짐 몸가짐을 올바르게 닦은 후에 남도 가르쳐서 이 세상 모든 사람에게 도리를 알게 하고,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하게 하며, 평화로운 삶을 누리게 한다.
유교의 최고 성인은 공자.
당태종이 공자 사후 문선왕에 추존.
역사상 선비가 왕에 오른 경우는 공자가 유일하죠.
그래 문선왕묘를 문묘라고 하는 거죠.
공자는 3살 때 부친을, 17살 때 모친을 여의었다.
시련이 있어야 큰 인물이 나오는 거죠.
공자의 본명은 구.
자子는 위대한 선생님이라는 뜻의 시호죠.
1750년 대구 유생 이양채가 대구시와 붙었다.
공자의 철학을 공부하는 학생을 유생이라고 하는 거죠.
‘대구의 구丘자가 공구선생의 이름과 같으니 바꿔라’
대구는 구자를 구邱로 바꿨다.
공자 세죠.
공자는 56살 때 주유천하에 나선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법.
죽는 그날 까지 손에서 책을 놓아서는 안 되는 법.
대한민국 사람들 너무 일찍 명퇴하죠.
13년간 중국을 돌아다니며 3천 명의 제자 양성.
그래 내 딸도 14살에 주유천하에 나섰다.
중 1 때부터 혼자 일본을 시작으로 8개 국가 여행 중.
깨달음을 얻으면 귀국해 새로운 도전에 나서겠죠.
자녀들 빨리 내 보내시길.
조선은 공자를 모시는 예, 학을 중시하는 인문학의 나라.
문묘는 전묘후학.
전면에 커다란 학문을 이룬 분이 사시는 큰 집인 대성전을 두고 후면에 명륜당을 두었다.
명륜당은 윤리를 밝혀 사람을 사람답게 기르는 집.
경사지에서는 전학후묘.
명륜당을 전면에 대성전을 후면에 둔다.
명륜당이 공자님이 사시는 대성전을 내려다보게 할 수는 없죠.
대성전에는 공자의 위패를 중심으로 증자, 맹자, 자사, 안자 4대 성인과 공자의 뛰어난 제자들인 10철, 송조 6현 그리고 우리나라 명현 18인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죽은 사람의 이름과 죽은 날짜를 적은 나무패가 위패죠.
18인의 명현 보시죠.
설 총, 최치원, 안 향, 정몽주, 김굉필, 정여창, 조광조, 이언적, 이 황, 김인후, 이 이, 성 혼, 김장생, 조 헌, 김 집, 송시열, 송준길, 박세채.
우리 집안의 한은 문묘에 들어가지 못한 거.
광산 김씨는 김장생, 김집 부자가 들어가는 영예를 남긴 센 집안.
1519년 대사성 윤탁이 안마당에 은행나무를 심었다.
이 은행나무의 나이는 500살.
천연기념물 제59호.
공자가 은행나무아래서 가르침을 베풀어 이 은행나무를 ‘행단’이라고 부르죠.
원래 이 나무는 열매를 많이 맺는 암나무였다.
은행의 고약한 냄새 때문에 공부를 할 수 없다.
선비들이 제사를 올렸다.
제발 열매를 맺지 않는 수나무로 바꾸어 주시길.
이듬해부터 이 은행나무는 수나무로 바뀌어 열매를 맺지 않았다.
“정도(正道)의 길은 더디다. 항상 늦는 것 같다. 하지만 병폐가 없기 때문에 나중에 결실 맺는 길은 이 길이 가장 빠르다”
최근 1백년 만에 ‘거둥길’ 복원 개통.
왕은 창경궁의 동문인 집춘문을 나와 서울 문묘로 간다.
집춘문은 ‘봄을 모으는 문’
집춘문은 임금이 성균관 내 공자사당에 ‘작헌례’를 올릴 때 이용하던 문으로 임금이 성균관에서 유생들이 시험을 볼 때나 임금의 요청으로 유생들을 불러올 때만 열렸던 문.
‘작헌례’는 능이나 사당을 참배하고 술잔을 올리는 의식.
그럼 ‘성균관’은 무슨 뜻?
‘결함 있는 것을 정성을 다해 균형 있게 가르치는 대학’
성균관은 '인륜을 밝히고 인재를 양성'하는 게 목표.
성균관 입학 자격.
1. 과거 1차 시험인 생원시와 진사시에 합격한 자.
2. 서울의 사학 생도 중 15세 이상 소학 및 사서와 오경 중 1경에 통한 자.
3. 공신과 3품 이상 관리의 적자로서 ‘소학’에 통한 자나 관리 중 입학을 원하는 자.
생원은 사서오경에 통달한 학생, 진사는 문학도.
생원이나 진사는 상재생, 나머지는 하재생이라 하여 거처에 차별을 뒀고.
유생 정원은 200명.
약장에 단 북을 한 번 치면 기상, 두 번 치면 세수, 세 번 치면 식당으로.
저녁 식사 때 도기에 서명을 하면 원점 1점.
300점 얻으면 문과 초시 응시 가능.
매월 8일과 23일은 정기 휴일.
왕세자도 8세가 되면 성균관에 입학해 원자학궁에서 공부.
최초의 입학생은 양녕대군, 마지막 입학생은 순종.
왕세자라 할지라고 공부 못하면 잘리고.
서울 문묘의 설계자는 삼봉 정도전.
정도전은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건축가.
대학에서는 이렇게 가르치지 않죠.
묻어가려는 사대주의에 젖어 우리 건축가를 비하하고.
그럼 문묘의 시공자는?
박자청이다.
처음 들어 보시죠.
개국공신 황희석의 노비 출신.
성실함을 인정받아 태종은 박자청을 공조판서에 등용.
세종은 박자청을 종1품 의정부 참찬으로 승진시켰다.
조선은 서얼이나 노비도 출세가 가능한 민주적인 국가.
‘석전대제’ 많이 들어 보셨죠.
‘석전대제’는 중요무형문화재 85호.
석전은 공사의 사망일인 5월 11일과 탄신일인 9월 28일 술 한 잔 올리는 거죠.
배경음악인 문묘제례악은 9백여 년간 단절 없이 전승되어온 세계 유일의 아악.
아악은 궁중에서 행해지는 제사음악.
‘정아한 음악’
중국에서는 이미 사라졌고.
대만이 최근 문묘제례악을 배우러 왔었죠.
대한민국은 위대한 인문학의 나라.
1910년 왜놈들이 성균관 폐쇄.
대신 '경학원'을 열었다.
도덕, 역사, 윤리는 가르치지 않았고.
일본법만.
지금 대한민국도 도덕은 안 가르치죠.
돈 버는 법만.
그래 나라가 어지럽고.
‘팔일무’
8명씩 8줄로 춘다.
64명.
천자의 나라만 팔일무 가능.
조선은 제후국이니까 육일무 춰야 되지만.
우린 공자의 나라라 팔일무 가능하죠.
공자 왈.
‘임금과 신하, 부모와 자식이 자신의 직분에 충실할 때 세상의 혼란은 끝난다’
지금 세상이 어지러운 건.
각자의 도리를 하지 않아서.
계단을 오르실 때는 오른 발 부터 디뎌야.
오른 쪽이 ‘바른 쪽’
지금 윤리는 외출 중이죠.
어디 갔나.
대한민국은 ‘종만물, 시만물의 땅.’
‘천하의 만물이 이 땅에 들어 와 올곧게 보존되었다가 새롭게 시작되었다’
명륜당 뒤편 ‘존경각’은 최초의 대학 도서관.
1475년 한명회의 건의로 창건.
존경각 옆의 ‘육일각’
활과 화살 보관하는 집.
선비는 '음악, 말 타기, 예법, 산술, 서예, 활쏘기' 등의 6가지 기예에 능해야 한다는.
왜놈들 쳐들어오면 나가야죠.
내 이놈들을.
명륜당 담 밖에 있는 ‘비천당’
‘큰 도를 밝히는 집’
1661년 도성 안에 있던 인수원, 자수원 두 사찰 훼철.
그 목재와 기와로 비천당 건립.
과거시험을 비천당에서 실시.
6.25 전쟁 때 소실.
1988년 중건.
정승 3명 보다 대제학 1명이 우선이고, 대제학 3명 보다 문묘 배향 1명이 우선이죠.
근데 여러분 서울 문묘 가 보셨죠.
정문인 삼문은 공자님 다니시는 문.
임금도 우측의 작은 동삼문으로 다녀야죠.
성균관대학교는 서울 문묘와 관계없죠.
지금 성균관대학교의 주인은 ‘삼성’
지금 전국 향교를 관리하는 선비들의 평균 연령은 70대.
이제 누가 유교를 보살펴야 되나.
공자님 이민 가셔야 되남유.
얼마 전 공자의 75대 적장손 공상해가 서울문묘를 찾아 예를 갖추었다.
적장손은 맏손자 말하는 거죠.
‘고맙습니다. 대한민국.’
1949년 공자의 후손들은 대만으로 도망갔죠.
중국이 버린 공자를 우리가 모시고 있으니.
근데 언론은 공씨를 쿵씨로 표기한다.
중국 현지 발음대로 표기하도록 한 규정 때문이죠.
공자의 후손은 공씨다.
공씨로 표기하는 게 맞죠.
맹자의 후손은 멍씨가 아니고 맹씨고.
아셨죠.
성균관장 왈.
“전국 234개 향교마다 교육시설이 있다. 거기서 초, 중등생 예절교육도 하고, 주부유도회도 대중 활동을 한다. 하지만 아이들이 안 온다. 영어 학원 다니기 바쁘고 수능, 내신 챙기는 게 급하다는데 어느 부모가 아이를 향교에 보내겠나. 심지어 유림들조차 손자손녀 향교 보내기 어렵다고들 하는 실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