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자격도 늘어나고 인기있는 자격은 사람이 몰리다 보니 자격간의 밥그릇 싸움(조금 유식한 말로 직역이기주의)이 장난이 아니다.
직업선택의 자유란 원래 입법재량에 맡길 부분이 많으면서도 공공복리를 명분으로 국가가 개입할 여지가 많은 권리이기도 하다.
진입장벽으로 인식되는 인허가 제도도 직업선택의 자유와 관련된 사항이고 자격제도도 마찬가지이다.
자격기본법이 제정되고 각종 민간자격이 생겨나는 상황이 되었지만 예전에는 자격이란 매우 제한적으로 인정되었다.
교사가 될 수 있는 자격도 있고 의사나 약사가 되는 자격도 있었지만 가장 저명한 자격은 역시 변호사였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세무사란 자격은 역사가 일천한 자격에 해당한다.
세무사법은 1961년에 처음 도입되었으니까 일제시대부터 존재하던 변호사나 공인회계사(종전의 계리사)에 비하면 많이 늦어졌다.
세무사제도를 도입하는 목적은 "세무사제도를 확립하여 세무행정의 원활과 납세의무의 적정한 이행"을 위한 것이었고 최초에는 "납세의무자의 위촉에 의하여 조세에 관한 신고, 신청, 청구, 이의신청 기타 사항(소송 제외)의 대리와 상담"을 업무로 하였다.
1978년에는 신고납세주의로 전환함에 따라 신고를 위한 기장업무가 세무사의 주력업무로 떠올랐고 1990년에는 세무조정계산서의 작성이 세무사의 업무로 추가되었다.
세무사는 다른 자격과 달리 국가를 유지하는데 필수적인 조세행정을 돕는 자격으로 자리를 잡았다.
조세행정에서는 징세액의 정확한 산정이 가장 중요한데 이는 기업은 물론 개인의 경우에도 정확한 회계장부에 근거하여 산정되어야 한다.
따라서 조세의 부과 징수에서는 회계학에 대한 정확한 지식이 필수적이다.
그런데 세무사제도는 처음 도입할 때 새로운 자격제도의 도입을 반대하는 세력을 무마하기 위해서인지 변호사에게 자동으로 세무사 자격이 주어지게 하였다. 물론 이 때는 신고납세제도가 도입되기 전이었고 세무관청에 대한 민원업무의 대리와 상담 정도가 세무사의 업무였기 때문에 변호사에게 세무사 업무를 수행하게 하여도 큰 문제는 없었다.
그러나 신고납세제도가 도입되자 세무사는 징세행정을 분담하는 준공무원의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고 징세당국의 엄격한 감독을 받아야 할 상황에 이르렀다.
조세관련 업무가 늘어남에 따라 이 업무를 수행할 자격자인 세무사에 대한 관심도 높아져 갔고 변호사도 예외는 아니었다.
변호사가 법률분야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전문가임을 누구나 인정하지만 변호사가 숫자로 가득찬 회계장부를 살펴 납부할 세액을 산정해 내는 데 대해서는 누구도 신뢰를 보낼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호사들은 조세관련 업무가 짭짤한 수입을 보장한다는 점에 매력을 느껴 일각에서는 회계지식을 갖춘 사람을 시켜 업무를 수행하게 하고 자신의 이름을 빌려주는 명의대여를 통해서라도 이 업무에 관여하려는 시도까지 감행하게 하였다.
징세당국은 이를 심각히 여겼지만 자격자간의 다툼은 각 자격을 감독하는 부처간의 다툼으로까지 번져 해결이 쉽지 않았다.
주무부처의 소극적 태도와 달리 세무사들이 스스로의 업무영역을 지키고자 나섰고 그 결과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세무사들이 자신들의 밥그릇을 지키려는 노력으로 비쳐지게 되었다.
세무사법은 세무사의 업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만이 그 업무를 담당하게 하는 방향으로 개정을 거듭하였다.
여기에는 관련되는 다른 자격자단체들의 집요한 방해공작이 있었고 일반 국민들도 세무사들의 직역이기주의로 인식하는 경향을 보여 주었다.
조세는 국가를 지탱하는 기본요소이지만 국가의 과도한 징세로부터 개인의 재산권을 보호하는 것도 중요한 요소가 된다.
이는 역사상 나타난 수많은 조세저항이 국가와 왕조의 흥망을 좌우하였던 점과 마그나카르타에서 유래된 조세법률주의의 확립과정을 통해서도 잘 알 수 있다.
현대국가에서는 실질과세와 과세형평 등 조세법의 중요원칙들이 확립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고도의 회계적 기법이 개발되어 있어 근거없는 과세가 발붙이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고 탈세 또한 쉽게 적발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어 있다.
이러한 업무는 조세공무원들의 임무이지만 제한된 인원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부분에 대하여 보조인력으로서 세무사가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다.
따라서 세무사는 징세당국의 엄격한 감독을 받으면서 징세업무를 돕는 위치에 놓여 있다.
변호사는 모든 법률사무를 관장한다는 점에서 국가행정이나 개인생활의 다양한 영역에 개입할 여지가 있다.
그러나 징세업무와 관련하여서는 고도의 회계지식을 필요로 하며 아울러 징세당국과 긴밀한 협조와 감독 아래 수행되어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세무사법 개정과 그에 대한 변호사들의 반발 및 헌법재판소의 셀프판결에 대하여 살펴 보는 것은 의미가 있는 일이다.
[계속]
미국 세무사 , 일본의 세리사(税理士), 영국의 공인세무사(CTA)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