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관현 열사
해 떨어지면
잠 못 이루는 것들이 있다
누군가 그리워 별을 바라다보면
멀리 새벽을 깨우는 소리가 있다
감방의 벽에 다닥다닥 붙은
오래전 유서 같은 글들이 지워지지 않고
멀리 떠나야 할 길이 보였다
무등산과 고향집 어머니가 떠올랐고
끝까지 혁명의 날을 고대했건만
새들도 노래하지 않았다
도망을 친다는 것은 내일을 준비하는 것
잡히지 말아야 하는 것은
살아서 원수를 갚아야 하기 때문
짐승도 나무도 꽃도 살수 없는 땅
생명 있는 것들이 죽어가는 세상
정의에 목말라 자유를 외치는 청년
박관현의 얼굴이 빛났다
공장의 불빛도 잠이 들고
별들도 잠이든 아침
시린 발목을 만지며 길을 재촉한다
섬에도 숨어 보았고
숲에서 새들과 잠을 청했고
강물이 휘돌아가는 백사장
발자취를 지워보았다
더 이상 도망칠 수 없는
숨을 곳은 절대자의 가슴 속
아침마다 피어나는 나팔꽃 쓴 웃음
사랑도 미련도 죽음까지도 버려야하는
비 오듯 쏟아지는 총탄
감방의 벽을 파고드는데
새털처럼 가벼워진 내가 감방 문을 열고
춤추며 찾아간 곳은 천국이 아니라
광주였다 금남로 거리였다
[필진정보]
김창규 : 1954년 충북 보은 출생으로 한신대학교를 졸업했다. 분단시대문학 동인, 한국작가회의 회원이며 시집 <푸른 벌판> 외 2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