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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적인 부흥사 상(像) (요엘 2:15, 18, 23-24)
합동과 통합 교단의 부흥사들이 모인 칼빈부흥사회 제3회 부흥사 연수에 참석하신 한 분 한 분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이상적인 부흥사 상이란 제목으로 말씀을 증거하겠습니다.
1. 부흥회가 무엇입니까? 목회학적인 입장에서 이렇게 정의할 수 있습니다.
(1) 부흥회는 잠든 심령을 깨우는 각성(覺醒)운동이다.
(2) 부흥회는 병든 심령을 치료하는 치유(治癒)운동이다.
(3) 부흥회는 죽은 심령을 살리는 소생(蘇生)운동이다.
(4) 부흥회는 더러운 심령을 회개케 하는 회복(回復)운동이다.
(5) 부흥회는 성령으로 충만케 하는 영성(靈性)운동이다.
(6) 부흥회는 말씀과 은사(恩賜)를 통한 신앙 훈련(訓練)운동이다.
(7) 부흥회는 교회를 양적으로 질적으로 성장시키는 교회 성장(成長)운동이다.
(8) 부흥회는 목회자의 목회를 돕는 목회 협력(協力)운동이다.
(9) 부흥회는 교회를 개혁시키는 교회 개혁(改革)운동이다.
그러므로 부흥회를 통해서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는 운동이 일어나야 한다. 잃어버린 양을 찾아야 한다. 신앙이 헤이 해진 교인들이 열심을 다시 찾아야 한다. 성령의 은혜와 은사를 체험하지 못한 교인들이 체험해야 한다. 침체상태에 있는 교회가 개혁 또는 부흥되어야 한다. 복음을 국민 정신 속으로 파급시켜 사회에 영적 대각성 운동이 일어나게 해야 한다.
한국교회 크리스천의 대부분은 부흥회, 또는 부흥사를 통해서 각자의 영성을 성장시켜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때문에 부흥사의 자질이 얼마나 중요한가?
부정적인 현상의 부흥집회만 보아 건전한 부흥회 마저 비판해서는 안 된다. 부정적 부흥사들에게 실망한 나머지 참다운 부흥사의 출현을 방해해서도 안 된다. 우리는 진정한 부흥회, 부흥사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그렇다면 어떤 부흥사가 되어야 이런 부흥회를 인도하는 이상적인 부흥사인가?
2. 이상적인 부흥사 상은 무엇입니까?
(1) 부흥사역에 대한 투철하고 특별한 소명의식이 있는 자
부흥사는 하나님께로부터 부흥사역을 위하여 부름을 받은 사람이다. 그러므로 부흥사역에 적합한 소질과 사명이 있는가를 살펴보고 임해야 한다.
(1) 하나님께서 부흥 사역자로 나를 불러 주셨다는 확신, 내적 증거가 있는가? 나는 부흥사역을 감당해야 한다는 굳은 결심, 확고한 신념, 적극적인 열정이 있는가?
(2) 나는 부흥사역에 대한 자질이 있는가? 부흥강사로서 행하는 집회인도, 부흥설교, 찬양, 안수기도 등 이 모든 부흥사역에 소질이 있는가?
(3) 나는 부흥사역에 대한 진정한 기쁨이 있는가? 신바람 나게 감당하고 있는가?
(4) 하나님이 나를 부흥사역자로 쓰고 계신다는 확신이 있는가?
(5) 하나님이 나를 통하여 나타내신 하나님의 역사가 있는가? 회개의 역사, 결심의 역사, 전도 훈련의 역사, 성령의 역사, 변화의 역사, 문제 해결의 역사, 교회 성장의 역사, 사명자 발굴의 역사 등 열매가 있는가?
(6) 부흥사역을 감당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미칠 것(고전 9:16)이라는 사명감을 느끼는가? 나는 이 일을 위하여 태어났고(막 1:38) 이 일을 감당하다가 그대로 죽을 것이라는 사명감이 있는가?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귀한 일을 혼자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그 시대에 부흥을 허락하시고 택한 백성을 보호하시며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기 원하신다. 그 시대마다 이렇게 온전히 헌신이 준비되고 부흥사역에 대한 소명의식이 뛰어난 사람을 사용하셨다.
(예) 장로님들이 박수 강요하지 말라고 강사에게 요구해도, 강사로 불러 놓고 장로라고 밑에 소 강대상에서 설교하라고 해도, 목사와 장로 간에 심한 갈등 가운데 있는데 이번에 누구 편을 들거냐고 해병대 출신 장로가 강사 뺨을 친다 하더라도, 이런 비 본질적인 문제를 다 극복하고 강사로 왔으니 은혜를 끼쳐야 한다고 부흥회를 인도해야 소명이 뚜렷한 부흥사다.
(2) 부흥사의 자질(Talent, 끼)이 있는 자
부흥사는 부흥회를 통하여 교인들의 신앙 성장과 교회의 성장에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지를 분명하게 인식해야 한다. 또한 이런 중대한 일에 동참하게 하신 하나님의 부르심을 순종하고 희생하고자 하는 소명 의식이 분명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중대한 사명을 감당할 부흥사로서의 자질이 있어야 한다. 부흥사는 영력과 실력과 박력이 있어야 한다.
부흥사는 교인 개개인의 고민을 듣고 상담을 잘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설교를 통하여 대중을 한꺼번에 휘어잡을 수 있는 힘, 즉 분위기를 장악하여 영적인 방향으로 인도할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한다. 또한 부흥사의 음성은 맑고 곱고 분명해야 한다. 말을 더듬거나 탁하거나 음성이 약하면 안 된다. 나팔이 분명하지 못한 소리를 낸다면 누가 전쟁을 준비하겠는가? 탁월한 성대(聲帶)나 성량(聲量), 웅변력(雄辯力)이 있어야 하고 말의 속도를 유지해야 한다. 단어사용의 적절성, 순발력, 유머감각 또한 뛰어나야 한다. 부흥사가 웅변가이기를 바랄 수는 없으나 음성이 분명하고 회중을 감동시킬 수 있는 변술(辯術)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좋은 자질은 계속 개발해야 한다.
그리고 초청하는 교회가 개척교회나, 농어촌교회, 미 자립교회라 할지라도 교인 숫자 따지지 말고, 숙식, 사례 생각하지 말고 달려가야 한다. 한 영혼이라도 살리는 길이라면, 교회를 살릴 수 있는 길이라면, 담임 목회자가 목회 의욕을 회복하는 길이라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길이라면, 사람의 눈치를 의식하지 말고 뜨거운 열정을 가슴에 품고 달려가야 한다.
부흥사는 부흥사역을 좋아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자질을 통하여 부흥사역을 부단히 개발해야 하고, 이로 인하여 부흥회 인도에 뛰어나야 한다.
(3) 성경에 능한 자
부흥회는 교육적인 성격이 있다. 성경을 통하여 기독교 신앙과 기독교인의 생활을 배우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담임목사가 교육하지 못한 문제도 가르칠 수 있는 참 좋은 기회이다. 그러므로 부흥사는 성경에 능하고 가르치기에 능한 자라야 한다.
성경은 40여 명의 각기 다른 사람들에 의해서 1,600년 이상의 기간에 걸쳐 기록된 오류가 없는 완전무결한 66권의 책이다. 성경 안에는 2,197여명의 인물과 1,551곳의 지리적인 장소가 언급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성경에는 32,500여 가지의 이야기가 있다. 성경은 무궁 무진한 설교의 보고(寶庫)이다.
성경은 듣는 사람의 죄를 지적하는 날카로운 칼과 같다(히 4:12).
성경은 듣는 사람의 완악함을 깨뜨리는 망치와 같다(렘 23:29).
성경은 듣는 자들을 희생시키는 살아있는 씨앗과 같다(벧전 1:23).
성경은 자신의 모습을 스스로 비추어 볼 수 있는 거울과 같다(약 1:23-25).
성경은 듣는 자들의 불순한 것들을 소멸하기 위해 타오르는 불과 같다(렘 20:9, 23:29).
성경은 성도들의 삶을 인도하기 위해 비추는 등불과 같다(시 119:105).
성경은 영혼을 살찌게 하는 음식과 같다(롬 10:17, 고전 3:2, 벧전 2:2).
부흥사의 유일한 무기는 성경이다. 성경에 대한 풍부한 지식과 성경을 적절하게 인용할 수 있는 지혜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따라서 부흥사는 성경을 많이 읽어야 하고, 성경을 많이 외워야 하고, 성경을 깊이 연구해야 한다.
요즈음 성도들의 가정에는 집집마다 성경이 몇 권씩 책 서랍에 꽂혀있다. 성도들의 구미에 맞는 성경들이 얼마나 많이 나왔는가! 그런데 정작 성도들의 가슴속엔 말씀이 없다. 이런 때에 부흥사는 성경을 많이 읽고 깊이 연구하여 목마른 사슴이 갈급한 심정으로 시냇물 찾듯이 은혜자리 사모하여, 찾아온 성도들에게 준비 된 하나님의 말씀을 생수를 쏟아내듯 능력 있고 권세 있게 전해야 한다.
(예) 부흥사 모임에, 심지어 성경 봉독을 맡고 설교를 맡은 순서 담당자가 남의 성경을 현장에서 빌리기도 하던데 이런 강사가 평소에 성경을 읽고 성경에 능하겠는가?
(4) 조직신학, 부흥신학에 지식이 풍부한 자
신학(Theology)이란 하나님을 의미하는 Theos와, 말씀 강론 교리를 의미하는 Logos라는 두 개의 희랍어에서 유래된 말이다. 즉 신학은 하나님께 관한 학문이다. 하나님께 대한 특수한 교리와 우주를 지탱케 하시는 일반적인 교리를 포함한 기독교 교리 전체를 말한다. 신학은 일반적으로 주석(주경)신학, 역사신학, 조직신학, 실천신학으로 분류한다.
그렇다면 조직신학이 필요한 이유는?
첫째로, 인간 지성의 통일화 조직화 본능 때문에 필요하다.
둘째로, 현재의 무신론, 불가지론, 범신론 등 불신앙적 풍조 때문이다.
셋째로, 성경 속에 제각기 분산되어 있는 교훈들을 함께 모아서 그것들을 하나의 논리적이고도 조직적인 체계로 구성해 놓기 위해서다.
넷째로, 기독교인 인격의 지적인 발전을 위해서다.
다섯째로, 효과적인 봉사의 조건을 위해서 필요하다.
부흥신학은 실천신학의 한 분야에 속한다. 그렇다면 부흥신학이 필요한 이유는?
첫째로, 오늘날 한국교회의 보편화되고 정례화된 부흥운동의 신학적 의의를 확립시켜 주는데 필요하기 때문이다.
둘째로, 부흥회는 교인들의 신앙을 성숙시켜주는 필수 요건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셋째로, 부흥회는 교회를 성장시켜주기 때문이다.
넷째로, 건전한 부흥운동의 정로를 설정시켜주기 때문이다.
부흥사는 조직신학이나 부흥신학에 대한 풍부한 지식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적절하게 적용할 수 있는 탁월한 지혜와 능력도 겸비하여야 한다. 조직신학이나 부흥신학에 대한 기반이 약한 부흥사들은 항상 탈선(脫線)의 여지를 갖고 있다. 신학의 부재는 천편일률적으로 반복하는 설교, 자기의 경험담, 신비주의, 기복주의로 전락하기 쉽다. 뿐만 아니라 강단에서 성경말씀 대신 적극적 사고방식, 긍정적 성공주의, 감성적 축복, 오늘을 사는 처세술, 이웃 사랑 정도의 윤리를 논할 때 수많은 영혼을 병들게 한다. 부흥사는 정규 신학의 과정(Regular Course)을 밟아야 하고 자기 신학에 대한 정체성(Identity)이 분명해야 한다.
(5) 성령의 능력을 체험(體驗)한 자
성령의 능력 체험은 부흥사에게 가장 기본적인 요소이다. 부흥사는 하나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하고, 실천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사소한 일에도 회개에 민감해야 한다. 그리고 목숨을 건 기도생활이 뒤따라야 한다. 이 때 성령의 능력이 사람이 옷을 입듯이 임한다(Come upon you). 성령의 능력을 체험한다. 성령의 능력을 체험하면
첫째로, 속 사람이 강건하게 된다(엡 3:16).
둘째로, 마음이 평안해진다(요 14:26-27).
셋째로, 세상적인 욕심이 사라진다(약 3:14-15, 요일 2:15-16).
넷째로, 심령이 깨끗해진다(막 2:5).
다섯째로, 기쁨이 솟아난다(요 7:37-39, 욥 8:20-21).
여섯째로, 심령에 변화가 생긴다(롬 12:12).
일곱째로, 성령의 은사를 체험한다(고전 12:1-11).
여덟째로, 육신의 질병이 고침을 받는다(막 9:26-27).
아홉째로, 성령의 열매가 맺힌다(눅 13:6-9, 갈 5:22-23).
열째로, 구원의 전신갑주로 무장을 한다(엡 6:12-17).
열한 번째로, 내세의 소망이 생긴다(고전 4:16-18, 빌 3:20).
열두 번째로, 문제를 해결하는 힘이 생긴다(약 1:2-4).
열세 번째로, 하나님의 일에 충성심이 생긴다(고전 4:2).
열네 번째로, 그리스도를 담대하게 증거 한다(행 1:8, 6:10).
그러므로 성령 충만한 부흥사는 자신이 직접 성령의 능력을 체험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힘있게 증거 할 수 있고 영적인 분별력도 겸비하여 은혜로운 부흥회를 인도 할 수 있다.
(예) 기도원, 타교회 부흥회에 참석하지 말라고 담임 목사가 말리는데도 왜 교인들은 담임목사 몰래 기도원으로 또는 부흥회에 참석하는가? 담임의 부흥신학의 빈곤 때문이다.
(6) 물질에 대하여 초연(超然)한 자
부흥사가 제일 자랑하기 좋은 이야기는 ‘내가 어느 교회 부흥회를 갔더니 헌금이 수십억이 나왔더라’, ‘나한테 은혜 받고 집을 바쳐서 교회를 지었다’는 것과 또한 ‘사례비를 얼마 주더라’ 하는 이야기인데, 이런 드라마(Drama) 같은 이야기는 이제 사라져야 한다.
은혜는 결코 돈으로 흥정되거나 계산될 수 없는 하나님의 위대한 선물임에 틀림없다. 돈의 액수로 은혜를 사고, 복을 살 수 있는 것처럼 선전하지 말아야 한다. 따라서 헌금을 만들어내기 위한 의도적인 부흥회는 배제되어야 한다.
그러나 은혜를 받은 결과로 성령의 감동하심을 따라 드리는 헌금은 문제가 다르다. 이는 하나님께 드려지는 온전한 예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부흥사는 부흥사로서 순수성을 상실하지 않도록 사례비에 연연하지 말고 물질에 초연해야 하며 불미스러운 소문(Rumor)에 휘말리지 말아야 한다.
(7) 성품이 겸손한 자
겸손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하나님의 뜻을 행할 수 없는 죄인인 것을 알고 스스로 자랑하는 것을 버리고 낮은데 처하여 하나님께 긍휼을 구하는 마음의 자세이다. 겸손은 부흥사에게 요구되는 주요 덕목중의 하나이다(잠 15:33, 18:12, 골 3:12, 벧전 3:8). 그리고 하나님이 바라는 것이다(미 6:8).
부흥사는 인간이기 때문에 무의식적으로라도 자신의 인기를 기뻐하게 되고 스스로 교만에 빠지기가 쉽다. 부흥사는 인기가 오르다보면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들 앞에서 교만해 지기 쉽다. 만일 교인들이 부흥사를 좋아하고 따르는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부흥사가 예수님을 증거하고 은혜를 끼치는 주님의 종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인들이 사랑하는 것은 부흥사가 아니라 그 속에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은 겸손한 부흥사와 함께 하시고(사 57:15) 그의 소원을 들어주신다(시 10:17). 항상 은혜를 더 베풀어주시며(잠 3:34, 약 4:10) 더욱 더 귀하게 쓰신다.
(8) 사람됨이 진실한 자
부흥사는 진실해야 한다. 진실을 생활의 철학으로 삼아야 한다. 진실은 하나님의 속성(시 33:4, 108:4, 143:1)이다. 진실하지 않고는 훌륭한 부흥사가 될 수 없다.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이기 때문에 진리를 전하는 부흥사는 반드시 진실해야 한다. 거짓이 없이 정직해야 한다. 부흥사는 언행일치(言行一致), 즉 말과 행동이 같아야 하고, 겉과 속이 같아야 한다. 매사에 진실성을 유지하기 위하여 인격을 성숙하게 하려는 꾸준한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진실하지 않는 부흥사를 통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생명으로 능력으로 권세로 나타나지 않는다.
하나님은 진실한 부흥사를 사용하셔서 진리를 나타내고 뜻을 나타내기를 원하신다. 사소한 일이나 말 한마디에도 거짓됨이 없어야 한다. 예화나 간증을 소개 할 때에도 과장이나 거짓이 없어야 한다. 약속은 적게 하고 한번 약속한 것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죄송하지만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너무 쉽게 해놓고 못 지키는 부흥사들이 의외로 많다. 집회를 약속하고도 천재지변의 사고가 없는 한 꼭 지켜야 한다. 그리고 자기 자신의 잘못이나 결점에 대해서도 솔직해 질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예) 부흥사가 거짓말도 잘한다는 소리에 마음이 그렇에 아프지 않던가?
(9) 규칙적으로 기도생활을 하는 자
영혼을 살리고 신앙을 성숙시키는 부흥사역에는 반드시 기도생활이 뒤따라야 한다. 그런데 막상 부흥회 인도하랴, 설교 준비하랴, 본 교회 돌아보랴, 단체 모임에 나가랴 하다보면 기도 할 시간이 없다. 그런데 부흥사에게 기도가 뒤따르지 아니하면 능력 있는 말씀을 선포 할 영력을 잃게 된다.
기도는 하나님의 명령이다(마 7:7-8, 26:40-41).
기도는 하나님의 뜻이다(살전 5:18).
기도는 생산이다(창 25:21, 삼상 1:10-20).
기도는 변화다(마 17:1-13).
기도는 치료다(왕하 20:5, 약 5:13-16, 말 4:2).
기도는 방패다(창 15:1, 단 6:10-23).
기도는 향기다(대하 7:14).
기도는 자녀의 특권이다(왕상 3:5).
기도의 영혼의 호흡이다(욘 2:1).
기도는 능력의 통로이다(왕상 18:37, 왕하 20:5, 대하 16:9).
기도는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이다(창 35:3, 시 50:15, 렘33:3, 눅 18:7-8).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이다(마 6:6, 왕하 19:20, 시 19:14).
기도는 교회 부흥의 원동력이다(슥 4:6).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을 사랑하신다(말 1:23).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을 가까이 하신다(신 4:7, 시 145:18).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에게 응답하신다(삼상 3:19, 7:9, 겔 36:37-38, 사 58:9, 렘 29:12, 마 21:21-22, 요 14:14, 15:7).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에게 복을 주신다(사 65:16).
하나님은 결국 기도하는 사람을 크게 붙들어 쓰신다(대상 4:10).
부흥사는 영력을 잃지 않도록 언제나 기도로 무장되어 있어야 한다. 꾸준한 기도생활 금식 경건한 삶이 부흥사의 바탕이 되어야 하고, 부흥사의 현주소가 되어야 한다.
(10) 독서생활을 하는 자
영혼을 살리는 부흥사역에는 반드시 독서생활이 뒤따라야 한다. 그런데 부흥회 인도하랴, 본 교회 돌아보랴, 단체 모임에 나가랴 하다보면 독서할 시간이 없다. 그런데 부흥사에게 독서가 뒤따르지 아니하면 권세 있는 말씀을 선포 할 능력을 잃게 된다.
독서는 기술이다. 기술에는 규칙이 있다. 기술은 이론이기 보다 실습이기에 몸에 익숙해져야 한다. 독서는 정신적인 면의 양식 공급이기에 부흥사의 생활에 익숙해져야 한다. 주희(朱喜)는 독서삼도(讀書三到)를 말했다. 독서의 법은 구도(口到), 안도(眼到), 심도(心到)에 있다고 하는 것이다. 곧 입으로 다른 말을 하지 말고, 눈으로 딴 것을 보지 말고, 마음을 하나로 가다듬고 반복 숙독(熟讀)하면 그 참뜻을 깨닫게 된다는 말이다. 부흥사는 먼저 양서를 많이 구입해야 한다. 알렉산더 화이트는 “침대를 팔아서라도 책을 사라”고 하였다.
부흥사는 양서를 정독(精讀)해야 한다. 독서를 하다가 중요한 부분에서는 밑줄을 쳐 두는 것도 좋다. 밑줄을 칠 때에는 책 반 페이지나 책장 전부에 치는 것은 도리어 독서에 방해가 될 수 있으니 중요한 요소에서 쳐야 한다. 밑줄을 치기 위해 흑색, 적색, 청색의 3색 형광 펜이 필요하다. 어떤 비평을 해야 할 요소나 주(註)가 필요한 곳에는 흑색을, 요점이나 좋은 단어 등을 표할 때에는 적색을, 동의하고 싶지 않는 곳이나 인명이나 지명 등 고유명사에는 청색을 사용하면 독서에 도움이 된다. 연구서 같은 책에는 색인이나 주가 있으나 그렇지 않는 책에는 필요한 항목이나 독후감을 책 끝의 백지에 적어두는 것도 유익하다.
부흥사는 양서를 천천히 읽어야 한다. 결코 급히 읽을 필요는 없다. 그 책으로부터 배우기 위해, 그 책을 비평하기 위해, 그 책을 즐거워하기 위해서도 천천히 읽어야 한다. 천천히 읽는 것은 요즘처럼 스피드 시대에 어려운 일이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서 참 뜻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급하게 읽을 필요 없다. 천천히 읽는 것은 책의 참 뜻을 반복해서 읽는 방법이다. 한번 읽어서 다시 읽을 생각이 없는 책은 한번도 읽을 필요가 없다고 한다. 저자의 참 뜻을 이해하는 것이 독서의 목적이므로 독서에는 이해와 비평을 전제로 하고 읽어야 한다.
매일같이 쏟아지는 책 한 권을 읽지 아니하면, 그는 외치는 부흥사는 될지라도 은혜를 끼치는 영향력 있는 부흥사가 될 수 없다.
(11) 부흥사 자신이 성장하는 자
아이러니컬(Ironical)하게도 부흥사역에 방해가 되는 요소는 부정적인 태도와 매너리즘(Mannerism)에 빠져 더이상 성장하기를 거부하는 부흥사이다. 부흥사역의 전문가인 부흥사가 어느 정도 성장하느냐에 따라 부흥사역이 달라진다. 부흥사역의 전문가인 부흥사가 성장하지 않으면 부흥사역의 성장은 이뤄질 수 없다.
부흥사는 제대로 배워야 한다. 배움의 기회를 항상 열어놓아야 하며, 새로운 정보를 파악하기 위해 책을 손에서 떼지 말아야 한다. 독서하지 않는 날은 손해를 당하는 하루이다. 부흥사는 평생 학습자요, 독서가이어야 한다. 리더(Leader)는 리더(Reader)인 것이다.
부흥사의 질이 부흥사역의 질을 결정한다. 그러므로 부흥사는 일평생 동안 지식, 능력, 인격의 개발을 위해 관심을 지니고 개발해 나가야 한다. 교회부흥은 부흥사의 부흥사역에 달려 있다. 헨리 나우엔은 “새로운 시대의 교회부흥은 힘이나 권력이나 재력으로 되지 않고, 오히려 겸손과 진실과 투명성과 신실성으로 사람들을 감동시키며, 예수 그리스도에게 인도함으로 가능하다.”고 하였다.
(12) 사후(事後) 관리를 잘 하는 자
부흥사는 자기 통제, 자기 관리가 뛰어나야 한다. 제반 영역에서 자신을 잘 지킬 수 있어야 한다.
부흥사는 영성관리를 잘 해야 한다.
부흥사는 물질관리를 잘 해야 한다.
부흥사는 시간관리를 잘 해야 한다.
부흥사는 건강관리도 잘해야 한다. 부흥사의 건강을 자신이 지키지아니하면 누가 지켜줄 것인가?
뿐만아니라 부흥사는 부흥회를 최선을 다해서 인도한 것으로 그 사명을 다한 것이다. 부흥회를 인도한 후에, 교인들의 마음속에 나와 세상은 간 곳 없고 오직 구속한 주님만 남게 해주어야 한다. 주님으로만 만족하고 주님으로만 행복하게 해 주어야 한다.
또한, 온 교인들과 담임 목회자가 하나가 되게 해 주어야 한다. 담임 목회자와 교인들 사이에 부흥사가 끼어 있어서는 안 된다. 안수기도나 신앙상담을 빙자하여 만나자고 하든지 헌금을 요구하든지 부흥사의 교회로 옮기라든지 하는 뒷거래는 금물이다.
부흥사는 사후 관리를 깨끗하게 잘하는 것이 자기 관리를 잘하는 것이요, 부흥사의 수명을 길게 하는 것이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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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멘
의인의 빛은 환하게 빛나고 악인의 등불은 꺼지느니라(잠 13:9).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설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