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라이딩으로 미술관가기_한승엽< 백색의 잔상_검은침묵>_인사아트센터_글 이명환(시각예술가)
한승엽 개인전
인사아트센터 2층 충북갤러리
2026.8.5~8.17
Opning_8월5일 오후4시.
■ 빛의 존재론과 침묵의 형이상학
― 한승엽 《백색의 잔상_검은 침묵》의 미학적·철학적 시각
한승엽의 회화는 단순히 '빛을 그린 그림'이 아니다. 그의 작품은 빛이라는 존재가 인간에게 무엇인가를 묻는 철학적 장치이며, 동시에 보이지 않는 정신의 구조를 시각화한 미학적 우주이다. 화면을 채우는 수많은 색채와 중심의 백색 원은 회화적 형식 이전에 존재와 초월을 탐구하는 사유의 구조를 형성한다.
화면의 중심에 자리한 거대한 백색 원은 단순한 태양도, 만다라도 넘어선 그 이상의 빛이다. 그것은 모든 형상이 생성되기 이전의 순수한 가능성, 철학자 플라톤이 말한 '선(善)의 이데아'와 같은 절대적 중심이다. 빛은 여기서 물리적 현상이 아니라 모든 존재를 존재하게 만드는 근원적 조건으로 제시된다. 우리는 사물을 빛으로 인해 인식하지만, 작가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빛이 존재 자체를 가능하게 하는 근원이라고 말한다.
그 주변으로 흩어지는 수많은 선과 파편들은 우주의 생성 과정을 연상시킨다. 무의식 속 낙서와 자유로운 색의 흔적들은 질서를 잃은 혼돈처럼 보이지만, 결국 하나의 원형 질서 안으로 수렴된다.
이는 카오스에서 코스모스로 나아가는 우주의 생성 원리와도 닮아 있다. 작가의 회화는 무질서를 제거하지 않는다. 오히려 질서는 혼돈을 품을 때 비로소 살아 있는 질서가 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미학적으로 이러한 화면은 '완성과 미완성'의 경계를 끊임없이 흔든다. 세밀하게 분할된 색면과 즉흥적인 선들은 서로 충돌하면서도 하나의 리듬을 만든다. 이는 칸딘스키가 말했던 **'내적 필연성'**을 떠올리게 한다. 형태는 외부 세계를 모사하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정신이 스스로 만들어낸 필연적 구조라는 것이다. 한승엽의 화면 역시 외부 현실을 재현하지 않고 내면의 우주를 구축한다.
특히 작품에서 흥미로운 것은 백색의 의미이다. 일반적으로 백색은 모든 것이 비어 있는 상태처럼 보인다. 그러나 물리학에서 백색광은 모든 색을 품고 있는 빛이다. 비어 있는 것이 아니라 가장 충만한 상태이다. 이러한 역설은 철학적으로도 깊은 함의를 갖는다. 불교의 공(空)이 허무가 아니라 무한한 가능성을 의미하듯, 작가의 백색 또한 결핍이 아니라 모든 존재를 품는 충만한 공백이다.
반대로 화면 가장자리를 감싸는 검정은 단순한 어둠이 아니다. 그것은 침묵이다. 그리고 침묵은 부재가 아니라 말 이전의 언어이다. 철학자 하이데거는 존재는 침묵 속에서 가장 깊게 드러난다고 말했으며, 동양의 선사상 또한 언어를 넘어선 침묵 속에서 진리를 발견한다. 한승엽의 '검은 침묵' 역시 빛과 대립하는 악이나 부정이 아니라, 빛이 태어날 수 있도록 감싸는 존재론적 공간이다.
한승엽작가는 세상을 떠난 존재들을 별로 은유한다. 별은 이미 죽은 빛일 수도 있고, 지금도 우리에게 도달하는 생명의 흔적일 수도 있다. 현대 천문학에서 우리가 바라보는 별빛은 수백만 년 전의 과거일 수도 있다. 따라서 별은 시간의 역설을 품는다. 존재는 사라졌지만 빛은 계속 도착한다. 이처럼 그의 작품 속 별들은 단순한 추억이 아니라 시간을 초월하여 계속 살아 있는 존재의 흔적이다.
흥미롭게도 작가는 종교적 상징과 대중문화를 구분하지 않는다. 만다라와 성자의 후광, 로봇 태권브이가 동일한 화면 안에서 하나의 상징 체계를 이룬다. 이는 오늘날 신성(神聖)이 반드시 종교 안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희망을 투영하는 모든 대상에서 발생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영웅은 시대가 만든 현대의 신화이며, 어린 시절의 태권브이는 성자의 후광만큼이나 강력한 빛으로 기억된다.
따라서 그의 회화는 과거와 현재, 종교와 대중문화, 의식과 무의식을 대립시키지 않는다. 서로 다른 세계들은 하나의 거대한 원형 구조 안에서 공존한다. 이러한 통합성은 융(C. G. Jung)이 말한 <집단무의식의 원형(archetype)>과도 연결된다. 원은 완전성의 상징이며, 만다라는 분열된 자아가 통합을 향해 나아가는 정신의 지도이다. 한승엽의 화면은 결국 자기 자신을 치유하는 심리적 만다라이기도 하다.
결국 《백색의 잔상_검은 침묵》은 빛과 어둠을 묘사한 회화가 아니라 존재와 부재, 희망과 상실, 생성과 소멸이 동시에 일어나는 철학적 우주이다. 그의 화면에서 빛은 어둠을 제거하지 않는다. 오히려 어둠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며, 침묵은 빛을 더욱 깊게 만든다.
한승엽의 예술은 말한다. 인간은 어둠을 없애기 위해 빛을 찾는 존재가 아니라, 어둠 속에서도 끝내 빛을 상상하는 존재라고. 그의 백색은 단순한 색채가 아니라 존재를 향한 희망이며, 검은 침묵은 절망이 아니라 새로운 빛이 태어나는 가능성의 심연이다.
그렇기에 그의 회화는 하나의 이미지를 감상하는 경험을 넘어, '빛은 어디에서 오는가'라는 근원적 질문 앞에 관람자를 세우는 현대적 명상 공간으로 기능한다. 이 작품의 진정한 완성은 캔버스 위가 아니라, 작품을 바라보는 관람자의 내면에서 각자의 '빛'이 다시 점화되는 순간에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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