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차 낙남정맥 산행 후기: 마재고개-장등산-천주산-검산-소목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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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차 낙남정맥 산행

2015.02.15

마재고개-장등산-천주산-신풍고개-검산(북산)-소목고개-창원 사격장

시간: 7시간 10분

거리 20.9km

"높은 산은 오르지 못해 높은것이 아니라

오르지 않아 높은것이다

길도 마찬가지다."

08:21

마재고개에서

어제밤 나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한 숨도 자지 못한 채 꼬박 밤을 새웠다

새벽 네시 반

몽롱한 새벽을 깨우는 알람벨을 나는 뜬눈으로 껐다.

몸이 비에 젖은 옷처럼 무거웠다.

이미 팔자가 되어버린 산행을 위해 몸을 일으킨다.

7시에 출발한 버스는 8시에 이미 출발지인 마재고개에 닿았다.

멀뚱한 오르막이 게으르게 걸쳐있는  다리같았다.

나는 나른함을 이기기 위해 한동안 선두에 서서 씩씩하게 걸어나갔다.

평소에 보이지 않았던 만용이 화근이 되었는지

갈 길 잘 찾아가고 있는 나를 잃어버렸다고 생각한 일행들이

나를 찾아가다 알바를 하는 사건이 다 벌어졌다.

08:29

구 마재고개

지도상으로는 마티고개라 되어있지만 마재나 마티나 같은 말이다.

참 소박한 교차로란 생각이 들었다.

길을 통해 우리가 만나는 세계는

우리가 잊어버린 세계,

관심으로부터 멀어진 세계이다.

하지만 이런 멀어지고 잊혀진 세계에도 엄연히 영혼이 존재함을 일깨워 준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인간이다

우리는 하늘에 빌고 달에 빌고 나무며 돌에 기도를 한다

이렇듯

삼라만상에 숨죽이며 숨어있던 영혼들은 인간과의 교감을 통해 소스라치듯

잠을 깨게된다

우리가 산길을 지나며 만나는 길이며 나무며 바위며 풀 한포기까지 다 그렇다

그러니 나그네여

늘 깨어 있으라.

그대가 잠들어 버리면 세상도 잠든다.

08:33

장등산 갈림길

고개를 넘어가는 길과 산허리를 감싸 도는 길이 선택을 강요한다

고민할거 없이 고개를 넘어갔다.

아직 일행들은 보이지 않는다

전화가 발발이 걸려왔다

알바를 한 후미들이 길을 바로 잡고 오는 중이었다

몇분을 기다려 보다 가던 길을 계속 갔다

송정고개

동물 이동 통로까지 왔다

바로 산을 치고 올라가려다 아직 도착하지 않은 일행을 좀더 기다려 보기로 했다

산 건너편을 향해 큰 소리로 이름을 불러보았다

이름은 메아리가 되어 냉큼 되돌아왔다

그게 재미있어 몇번 이름을 불러보다 고개 마루에서 다시 기다리기로 하고

산을 올라갔다.

09:16

중지고개

송정 고개 마루에서 일행과 합류했다.

송정고개 에서 중지고개 넘어오는데 한 25분 가량 시간이 걸렸다

중지 고개 쯤 오니 후미에 오던 한분이 힘들어한다는 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눈 앞에 일행들로부터 떨어진 외로운 회원 한분이 또 계셨다

일단 그 분과 합류하여 오랜만에 함께 걸었다.

후미가 풍성해진 기분이 들었다.

09:18

제골 농장이라는 어수선한 농장 근처를 지난다

개 키우는 농장이니지 백구 두마리가 동네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개짓는 소리는 나지 않았다

천주산 전위봉인과  용지봉이 한 눈에 들어옵니다

10:07

장등산

이 형님과 백두대간도 같이 탔지만

오늘처럼 함께 걸어보기는 처음이다.

멀리 천주산이 눈에 들어옵니다

10:33

안성고개

전열을 가다듬고 안성고개에서 전위봉까지 약 200여 미터의 고도를

단숨에 올라섭니다.

산을 오르는것도 이력이요

산을 내려서는것도 팔자같습니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듯

닥치는대로 대합니다.

이렇게 길을 차별없이 받아들이다 보면

어느새 내 마음도 길에 순응하여

좋고 나쁨도

옳고 그름도 없는 그런 평탄한 경지를 맞게 되겠지요.

오름도 평지요

내림도 평지가 되는...

10:53

장등산 우측으로 작대산이 보입니다

기억 저너머의 풍경이 다가 옵니다

풍경이 쉬 흩어지는 상념처럼 느껴집니다.

따로 떨어진채 흔들리는 말들의 편린들,

방담과 같은 편안함이 추억을 가만히 되살립니다.

잘 저어져 눋지않은 죽처럼

부드럽고 따뜻한 언어들...

그 언어들이 만든 소박한 옛집과 같은 기억이 저 산 너머에 앉아있습니다.

10:55

전위봉에서 낙타 등처럼 꺼진 안부를 지나 다시 용지봉으로 오르막이 이어진다

150여미터 정도의 오르막이지만 부드러운 산세 때문인지

별 어려움없이 산을 오른다.

소박한 모습의 천주산은

찬은 없지만 고봉으로 쌓은 밥과 같이 넉넉한 모습이다.

천주산 넘으면 오늘 고생 다했다는 일행들의 말이 오고 갔지만

이제 겨우 반을 왔을 뿐이라는 생각에 마음을 다 잡았다

천주산으로 오르는 마지막 오름길

아무리 좁은 길이라 할지라도

길은 모세가 갈라놓은 홍해의 바다처럼 분명하다.

길을 맥으로 빗대는것도

그 막힘없는 도도한 흐름의 세계가 길에 내포되어있기 때문이다.

길을 걷다보면 사고가 정리되고

체계화되며

관계의 층위가 분명해진다.

이런 단순함을 통해 내 삶을 해명하고

스스로 이해함으로써

나는 세상에 더 유기적으로 존재하게되는것이다.

10:58

구름에 가린 무학산이 희미하게나마 우리를 배웅합니다

그 앞으로 오늘 우리가 지나온 능선이

 전리품처럼 놓여있습니다.

야성이 죽고 희망과 용기가 사라진 산마루.

그 침묵의 오선지를 나는 저음부를 훑어가는 음표처럼

땅바닥을 끓며 걷고있습니다.

11:24

고도를 조금 더 높이자 정맥길은 더 확연해지고

아쉬움과 그리움은 무엇이 먼저랄것도 없이

애수를 자아냅니다.

무채에 가까운 음양이,

삶과 죽음의 색채들이

조근 조근 삶의 대화를 나눕니다.

저만치 떨어져 흐늘거리는 허구와 같은 풍경들이

벌써 지난 일이되어 멀어지고 있습니다.

11:24

구름 속을 우무룩하게 떠다니는 풍경 속에서

무한한 안도감을 느낍니다.

어디를 보아도 평범한 남녘의 숫기없는 산하입니다.

나는 이런 풍경들 속에서 오히려 원숙한 멋을 느낍니다.

단순하고 소박한 아름다움이야말로

극단의 통제력과 긴장감의 소산입니다.

예술에서 보여주는 극적인 순진함과 단순함도

이런 내적 자제력의 소산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랜 세월이 가져다 준 완만한 구릉의 아름다움을 통해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게되고

나아가 세월에 마모되어가는 자신을 돌아보게합니다.

이렇게 닳아가다보면

언젠가는 나도 나를 버려

저 아다지오와 같은 풍경 속에 구름처럼 흩어질 날이 오게 될것입니다.

11:27

천주산 용지봉에서

옛날에는 용이 살던 못이 있었다고 하는데

어디를 보아도 연못의 흔적은 없다.

용을 대신해 다섯명의 사나이가 서 있을 뿐이다.

11:29

진달래밭 너머로 천주봉이 말갛게 보입니다

수년전 일이다

햇병아리 산꾼 시절 이야기지만

나는 지인들과 천주산에 꽃구경을 하러 온 적이있었다.

산정상에서 사진을 찍고 돌아가려는데

대학후배가 돌연 자기따라 산행을 좀 계속할 생각이 없는지를 물었다

꽃구경만하고 집으로 갈려니 좀 섭섭했던지

산길을 같이 걸을 길동무 한명을 수배했던 모양이다.

나는 선뜻 그를 따라 나서기로 작정했고

우리는 작대산쪽으로 산행을 이어갔다.

용지봉에서 농바위 양미재 작대산을 지나 구기마을 쪽으로 이어지는 길이었다.

인적이 없는 봄길을 걸으며

나는 길이 주는 시원적 느낌을 처음 받았다.

행복 이상의 진실된 경험,

뽀얀 목관 악기와 같은 싱그러움,

그것은 산에대해 가지고 있었던 호불호를 뛰어 넘는 신선한 감흥이었다.

그 후로도 그 때의 추억은 늘산길에대한 갈망을 주었다.

그 덕에 나는 대간길로 나아갔고

오늘도 이 남녁의 정맥길을 한가로이 걷고있다.

몇년전 천주산 진달래를 보러 갔을 때의 풍경

천주봉지나 얼마 못가 마치 바리깡으로 밀어버린듯한 훤한 내리막길이 나왔다.

워낙 길이 미끄러워 땅팔기 딱 좋은 급경사였지만 요령껏 잘 하산하였다.

굴현 고개 지나 북산(검산)에 당도했을 때 또 더 내려가야할 길이 있다는게 이상했지만

얼마 안가 땅 속 지하까지 내려가야한다는 말이 허언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았다.

곳곳에 대밭이 있었고

대밭의 푸르름이 머지않아 다가올 봄의 기대를 부풀렸다.

길은 살랑거리고 부는 봄바람 같았으며

골프를 치며 휴일을 즐기는 사람이나 총을 쏘며 사격을 즐기는 사람들 속에는

삶의 무질서나 세상의 고뇌 따위는 없는것같아 보였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천주봉으로 가는 길에

추억 한조각이 바람결에 문득 날아 온 종이 조각처럼

내 머리에 착 달라붙었다

 고향 생각이었다.

부산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즐풍목우를 이긴 당산나무처럼

고향 부산을 지키며 살고 있지만

고향이라고 하면 역시 제 태어난 곳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내 고향은 초량.

구봉산 아래다

어린 시절 고향의 뒤란은

온통 판자촌이었고 내 벗들은 그기서 살았다.

산이라해도 온통 민둥산.

푸른쪽 하나 볼 수 없었던 산이지만

우리는 그 산에 나무를 심고 송충이를 잡으며

오늘의 숲을 가꾸었다.

지금은 제법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지만

그 때만 해도 몸하나 숨길 곳 없는 보잘것 없는 산이었다.

하지만 지금도 초록이라고 없었던 그 시절의 산들이 그립고 그립다

내 아버지와 아우와 친구들의 추억이

앨범 속 사진처럼 채곡한 까닭이다.

복숭아꽃 살구꽃 보고 자라지는 못했어도

내 삶을 풍성하게 가꾸어 준 텃밭이다.

용지봉에서 인정샷을 찍던 중에

나는 카메라에 메모리칩을 넣지 않았다는 사실을

그제야 알아차렸다

계속 내장 메모리에 사진이 저장되고 있다는

멘트가 올라왔지만 사진이 찍히고 있었기에 무시했다

마침내 더 이상 내장 메모리에도 사진을 저장할 수 없어

카메라를 배낭에 집어 넣어버렸다

아쉬웠지만 홀가분했다

낙남 정맥이 끝나고 나면 이제 카메라없는 산행을 해 볼까 생각 중이다

모자라는 사진은 나그네님께 빌려왔다.

- 후 기-

산행을 끝내고 그날 산행이 참 좋았다던지 혹은 그렇지 못했다고 하는 말은 식상하다

  好不好의 평가는 적어도 맥을 타는 산꾼들에게

요구되는 답은 아니다.

나는 길을 걷되

좋고 나쁨의 이원적 관념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걷는다.

但莫憎愛(단막증애)

증애가 끊어진 자리에 비로소

길이 있다.

그래서 길은 늘 스스로 길이다.

Hamabe no Uta(해변의 노래,Song of the Seashore)-Mischa Maisky(연주

Tamezo Narita(일본 1893~1945) 작곡
Mischa Maisky, Cello연주

[구름나그네2]

이번 산행은 조금은 지루했다.
하지만 다시한번 생각해보니 이것역시
산을 타면서 하나의 길에 속한다.
어찌 맨날 같은생각 같은 모습으로는 산을 가지는
않는다. 앞으로도 어떤일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때마다 현실에 적응하면서 가리라고 생각하면서
이 맥이 종착이 아니라 생각하면서 시작이라 생각고
산을 타리라 생각한다.앞으로도 늘 함께 숨쉬면서
멋진글 잘 새기고 갑니다.

[poll]

어제 지인들을 만나 담소를 나누다 맥길의 진미는 역시 소박한것에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질박한 남도 산야의 아름다움,
비록 도시화에 밀려 수려함은 사라졌다할지라도 더 사람들과 가까와 지고 친근해졌다는 점만은 부인할 수 없겠죠.
앞으로 얼마남지 않은 정맥길 즐겁게 타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