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3화. 덫과 연막
신성한 매실 758
민서라는 고개를 끄떡였다.
“좋아요, 최 형사님이라 했나요? 여기까지 오시느라 시장하실 터인데 일단 저랑 뭐라도 먹으면서 대화를 나눠요. 필요하면 술도 곁들이면 좋구요.”
그러더니 민서라는 어디엔가 전화를 걸었다.
“그렇죠. 귀한 손님이니 백숙과 술 두어 병 준비해주세요.”
그리고는 민서라가 앞장섰다.
마침 최림도 아침밥을 거르고 이곳까지 오느라 몹시 시장했고 피곤한 상태였다.
“어디로 가는 거죠?”
“마을 안에 게스트하우스가 있어요. 마침 오늘 마을에 중요한 행사가 있어 백숙을 끓이고 있던 참이었어요. ”
“중요한 행사요?”
“네, 그동안 이곳에서 교육 중이던 청년들의 첫 실습이 있거든요.”
‘청년들의 실습?’
게스트하우스 실내는 아담했다.
가장 바깥 풍광이 좋은 방에 가니 상위에 잘 익은 백숙과 술 두어 병이 있었다.
민서라가 옆방에 옷을 갈아입으러 간 사이에 최림은 다리 한쪽을 집어 들었다.
“호홋! 괜찮아요. 많이 시장하셨네요. 드세요. 그리고 여기 우리 마을에서 만든 술도 한잔해보세요. 특산품이거든요.”
최림은 엉겁결에 술잔을 받아 한잔 마셔버렸다.
속이 찌릿해 오면서 온갖 피로가 풀리는 것 같았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옷을 갈아입고 온 민서라의 외모였다.
최림은 마치 천상의 선녀가 앞에 있는 줄 착각했다.
그녀는 민소매에 짧은 미니스커트를 입고 있었다.
“저도 한 잔 주세요. 괜찮죠? 오늘 휴가라면서요? 저도 오늘은 하루 쉴래요. ”
민서라는 한잔 마시고 또 잔을 내밀었다.
최림은 속수무책으로 그녀가 주는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최림도 그녀도 술이 꽤 취해버렸다.
그런 즈음에 여자가 물었다.
“사실은 저도 최 형사님께 묻고 싶은 게 있어요.”
“네? 뭘요?”
“도대체 무슨 이유로 그때와 마찬가지로 우리 마을을 수색하는 거죠?”
술을 꽤 많이 마셨지만 민서라의 눈빛은 살아있었다.
“잘 알고 있지 않나요? 원지 둔치 사건의 용의자가 이 마을에 있잖아요.”
쳇!
“또요?”
“네?”
“그것 말고도 또 다른 이유가 있다면서요. 아까 말한, 전두태 씨인가?”
“아시네요. 이 사건의 살인 교사자, 천년왕국의 교주, 전두태를 체포하러 왔죠.”
“증거 있나요?”
최림은 이왕 이리된 것, 모조리 밝혔다.
“민서라 씨, 아니, 민채원 씨. 다 알고 왔습니다. 그러니 협조하는 게.”
여자는 자기 본명이 나오자 깜짝 놀라는듯했다.
하지만 이내 표정을 가다듬었다.
“남의 이름을 함부로 바꾸시네요. 그래, 나에 관하여 대체 뭘 안다구요?”
“서울에 사는 당신 언니, 민지원 씨가 동생을 무척 그리워합니다.”
그러자 여자의 눈이 심하게 흔들렸다.
“우리 집에도 갔어요?”
“네, 수사상 갔지요. 그뿐만 아니죠.”
“또 뭐요?”
“J 시의 유치원과 당신이 살던 원룸, 그리고 그 집 아들과 친구까지.”
“…….”
여자가 침묵하는 사이, 최림은 더 질렀다.
“그 순전한 두 청년을 살인범으로 만든 게 누구입니까? 당신? 아님 전두태?”
그러나 여자의 표정은 변함이 없었다.
최림은 한 번 더 질렀다.
“전두태의 연인이자 현재 그가 가장 잘 챙기는 여자가 당신이죠.”
이번에도 여자는 움찔했다.
하지만 이내 반격이 나왔다.
“그걸 어떻게?, 하고 말할 줄 알았죠?”
“뭐요?”
“저는 지금 최 형사님이 무슨 말을 하는지 도통 모르겠습니다.”
이에 최림은 할 수 없이 그녀의 사진을 탁자 위에서 놓았다.
“이 여잔 누군데요?”
“잘 보세요. 대학 다닐 때 민채원 씨잖아요.”
그러자 여자는 한바탕 크게 웃었다.
“왜요? 절 이런 식으로 유도심문하는 거예요? 그래서 마치 저랑 전두태가 지금 연인관계라고 추정하는 거예요. 그렇다면 제가 여기서 민채원이 되는 거군요?”
‘이것 봐라.’
“호홋. 사진을 자세히 보세요. 이 여자는 저랑 전혀 닮지 않았어요. 저보다 훨씬 못생겼다고요.”
최림은 그녀의 당돌함에 허를 찔렸다고 생각했다.
“무슨 소리? 그때나 지금이나 판박이건만. 이제 솔직히 대답하시죠? 전두태는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최림의 말에 그런데, 이번엔 민서라의 반응이 묘했다.
“방이 왜 이리 더울까요?”
“네?”
그녀는 갑자기 한쪽 어깨를 완전히 아래로 내리고 말았다.
그녀의 어깨선은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최림은 그녀의 황당한 반응에 술을 병째로 마셨다.
‘아! 왜 이리 취하지?’
그러는 사이에 그녀는 최림 옆으로 다가왔다.
“정말 알고 싶으세요? 그와 나의 관계를?”
그녀는 최림의 귓불에 뜨거운 바람을 불어넣었다.
최림은 이러면 안 되는 줄 잘 알고 있었지만, 그도 남자였다.
아니 이건 순전히 술 때문이었다.
야릇한 향수 냄새가 풍기는 그녀를 물리칠 힘도 의지도 생겨나지 않았다.
‘아!…….’
최림이 민채원과 마을에서 하룻밤을 보낼 때였다.
전두태가 권 팀장에게 편지로 경고한 지 이틀이 지난 오후 무렵이었다.
퇴근 시간이 다가올 무렵 야근을 준비하는 부서에서는 바깥 식당에서 식사하거나. 중국집 등에 배달 음식을 주문하였다.
경찰서에서 매일매일 벌어지는 일상적인 풍경이었다.
정각 6시가 되었다.
형사팀에서는 권 팀장 혼자 사무실에서 배달 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머지는 식당으로 향했다.
5시 55분경 정문으로 오토바이 한 대가 들어왔다.
정문을 지키던 의경은 아무런 검문 없이 오토바이를 통과시켰다.
단지 그 의경은 이렇게 중얼거렸다.
‘천년왕국 반점? 새로 생겼나?’
오토바이에서 내린 사내는 배달통을 들고 본관 건물로 재빨리 진입했다.
목적지는 형사팀 사무실이었다.
“짜장면 왔습니다.”
권 팀장은 컴퓨터를 보면서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었다.
“그 앞에 둬.”
몹시 바쁜 모양이었다.
사무실을 둘러본 사내는 사무실이 텅 빈 걸 확인하곤 능숙하게 배달통을 열었다. 그 안에서 그릇 대신 기름통을 하나 꺼냈다.
그리곤 그걸 사무실에 뿌리면서 권 팀장 앞으로 다가갔다.
그때까지도 권 팀장은 일에 열중한 나머지 전혀 눈치채지 못하였다.
단지 코끝이 간지러워 이런 말을 내뱉었다.
“이게 무슨 냄새지?”
마침내 사내가 권 팀장이 있는 책상 앞에 섰다.
“왜?”
“대가를 치르셔야죠.”
“뭐? 대가? 아. 계산 말이지. 그냥 달아줘. 늘 그랬잖아. ”
권 팀장은 대수롭지 않게 말하며 계속 컴퓨터만 응시했다.
“아뇨.”
사내는 일전에 권 팀장에게 보냈던 것과 똑같은 편지를 그 앞에 툭, 하고 던졌다.
권 팀장 무심코 그 편지를 읽더니 갑자기 얼굴이 노래졌다.
“이틀이나 지났잖아요. 내가 경고했을 텐데? ”
“전두태?”
순식간이었다.
사내는 들고 있던 기름통을 재빨리 그에게 부어버렸다.
“악! 이게 뭐야?”
그리고는 가슴팍에서 노끈을 꺼냈다.
바로 권 팀장의 뒤로 돌아가서 그의 목을 졸랐다.
억!
잠시 후 고통스러워하던 권 팀장의 목이 힘없이 축 늘어졌다.
사내는 태연하게 시계를 보았다.
6시 10분. 봉고차 한 대가 경찰서 정문으로 돌진했다.
직원들이 식사하러 가는 동안은 통상 바리케이트를 내려두었다.
그래서 봉고차는 그대로 주차장으로 가버렸다.
정문에 있던 의경은 의아해하면서도 차량이 너무 당당하게 들어와서 혹시 외근 다녀온 부서의 차량으로 간주하고 그냥 통과시켰다.
드디어 주차장으로 들어온 봉고차 문이 열렸다.
“모조리 태워 버려!”
날카로운 여자의 목소리가 떨어졌다.
차 안에서 검은 양복에다 검은 마스크를 착용한 남녀 10명이 쏟아져 나왔다.
그들의 손에는 각자 기름통과 라이터가 들려있었다.
청년들은 순식간에 뿔뿔이 흩어지더니 세워둔 차량에 각각 기름을 뿌렸다.
그리고는 여자의 명령에 따라 라이터를 켰다.
“하나, 둘, 셋! 질러!”
‘펑, 펑, 펑.’
‘활활’
아수라장이었다.
차량은 동시다발적으로 불이 붙으면서 연쇄적으로 폭발하고 있었다.
“불이야! 주차장에 불이 났다!”
그제야 이 광경을 처음 목격한 정문 의경이 고함을 질렀다.
그는 이 갑작스러운 상황에 어찌할 줄을 몰랐다.
이 끔찍한 광경을 보고 당직실에 연락한 자는 다름 아닌 서장이었다.
서장은 퇴근 시간이 지났음에도 홀로 창가에 서 있다가 이 광경을 목격한 것이다.
“비상 걸고! 전경들 빨리 나오라 해서 진압해!”
하지만 전경들 역시 식사 시간이었다.
그나마 5분대기조 1소대가 내무반에 있는 건 정말 천운이었다.
‘웨에엥 ~ .’
5분대기조가 소총을 휴대한 채 소화기 여러 대를 들고 주차장으로 튀었다.
식당에서 밥을 먹던 전경들도 비상벨이 울리자 우르르 밖으로 나왔다.
사무실에서 배달 음식을 먹던 직원들이 절반은 무기고로 내려가 총을 받았다.
나머지는 소화기를 들고 주차장으로 몰려들었다.
두두두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