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백낙란
늦은 오후, 시를 쓰다 자꾸 눈꺼풀이 내려온다
반쯤 열린 창문에
빼꼼히 반쯤 얼굴을 내민 홍시 하나
두툼한 입술로 나를 홀린다
창가에서 몰래 훔쳐 보는 붉은 탐심
잘 익은 감 하나 머릿 속에 툭 떨어져
몇 겹의 상상으로 영글어간다
끼니를 채우던 동글고 짙푸른 아이의 눈동자와
햇살에 노랗게 그을린 단단히 여문 청춘과
고달프게 맺혀진 중년의 농익음까지,
파란 허공 속, 눈시울지도록 올리는 기도
세찬 빗줄기에도 주눅들지 말게 하소서
꺾어지는 바람에도 놀라지 않게 하소서
주홍빛 노을에도 현혹되지 말게 하소서
타는 목마름에도 주름지지 않게 하소서
가을이 포장해 놓은 사색과
사색이 되어 떨어지는 잎새 사이
새들이 떠날 때마다 슬픔이 짙어진다
고행이다
떫었던 계절을 속깊이 삭히고
흔들릴수록 더 붉어지는 인내
속절없이 모니터에 적막이 끼어든다
감이 잡히지 않는 미간의 주름
씨 하나 없는 기분이다
안으로 고이는 물렁함, 생목이 오른다
전혀 아삭거리지도
껍질이 잘 벗겨지지도 않는 감
오늘도 감 떨어지는 시를 삭제한다
그만 문 좀 닫아 줄래,
첫댓글 시인님 배독합니다 최고
네, 감사합니다 시인님
감이라는 놈은 참 이상합니다. 영감이 떠올라 막상 시를 쓰려 하면 어느땐 떫가만 하고 어느땐 단맛이 빠져 너무 물컹거린 탓에 시맛를 잃곤 합니다, 시상의 때깔이 너무 좋아 깨물었는데 물컹거리는 시가 나오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