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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규모 R&D투자로 금융위기를 기회로 역전
고 대표가 ‘세계시장 순위 1위’라는 타이틀을 거머쥘 수 있었던 것은 지금으로부터 3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0년대 초 서울대 공대를 졸업한 고 대표는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에 입사했다. 안정보다는 도전 성향이 강했던 그에게 국책연구소는 답답했다. 그때 우연히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로봇’. 금성사 중앙연구소(현 LG전자)로 자리를 옮겨 로봇을 연구했지만, 신 연구모델인 로봇에 대한 답답함은 해결되지 않았다.
미국으로 돌연 유학을 떠난 그는 피츠버그 공대에서 공학 박사 학위를 받고 한국으로 돌아와 로봇 컨트롤러를 개발하는 등 ‘로봇틱스 공학 1세대’로서 나름의 역할을 했다. 하지만 일본 기업들과의 경쟁에서 번번히 쓴잔을 마셔야 했다. 가슴엔 응어리가 생겼고, 어느순간 1등에 굶주려 있는 사람이 돼 있었다.
고 대표는 “30년이나 뒤진 분야에서 싸워봤쟈 소득이 없어 초기비용은 적게 들면서 비교적 기계가 단순한 검사장비로 눈을 돌렸다”며 “석달동안 시장 조사를 하던 중 생산 현장에서 수백여명 중 3명이 ‘3차원 납 도포검사 장비(SPI)’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각각 냈는데, 현장의 소리를 놓치지 않은 것이 주효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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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광일 대표가 3차원 납 도포검사 장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당시에도 2D SPI가 일부 있었지만, 장비 성능이 고객사의 기대치에 미치지 못한데다, SMT(전자기 조립을 자동으로 실행하는 장치) 생산공정에서 발생하는 불량 중 70%의 과정이 납 도포 공정과 관련돼 있다는 리서치 결과가 3차원 SPI 개발의 불씨를 당겼다. 3차원 납도포검사장비는 전자제품 조립 공정 과정에서 본드 역할을 하는 납이 제대로 칠해졌는지를 검사하는 장비다. 납 도포 불량률을 3차원으로 확인시켜주는 장비로는 세계 최초다.
기술력은 자신했지만 판로가 녹록치 않았다. 고영은 첫번째 수주 경쟁에서 미국 업체에게 패했다. 한국의 작은 벤처 회사에 대한 신뢰가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이는 고 대표를 자극시키는 계기가 됐다. 고 대표는 이 일을 계기로 영업 방식을 ‘탑 다운’으로 바꿨다. 세계적인 업체부터 공략해 제품을 납품하는 전략을 쓴 것이다.
첫번째 타깃은 세계적인 전기전자기업인 독일의 ‘지멘스.’ 지멘스는 국가와 기업 브랜드는 게의치 않고 오직 실력으로만 승부를 보는 기업이었다. 고영은 도전했고, 수개월에 걸쳐 수십여장에 달하는 장비 성능 테스트를 통과하자마자 첫 글로벌 계약이 성사됐다.
까다롭기로 소문난 지멘스와의 계약은 별도의 마케팅이 필요 없을 정도로 전세계로 빠르게 퍼져 나갔다. 인텔, 보쉬 등 세계적인 기업이 너도 나도 러브콜을 보내기 시작했다. 주류시장중에 세분화된 틈새시장을 하나의 목표로 삼아 집중공략하는 ‘볼링 앨리’ 전략이 적중한 것이다.
고영은 지난 2010년 이래 매출액이 연평균 15%씩 성장했다. 매출액 가운데 해외 비중이 90%를 상회한다. SPI의 세계시장 점유율은 47.3%에 달했다. 지난해엔 52%를 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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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D SPI, 3D AOI 세계시장 점유율.(사진=고영테크놀러지 제공) |
이런 전략 하에 고영은 글로벌 전자제품 시장을 선도하는 2500개 고객사를 보유한 기업으로 성장했다. 콧대 높은 글로벌사들을 보유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의 불만, 건의사항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해결했기에 가능했다.
고 대표는 “기술만 1등해서는 장비산업계에서 살아남을 수가 없다”며 “산업현장에서 새로운 부품이 나오거나 고객사로부터 불만사항이 나올때마다 리얼타임으로 개발인력을 투입하고, 필요시 기술지원도 아끼지 않기 때문에 사실상 경쟁사들이 쫓아올수가 없는 구조”라고 자신했다.
실제 고영은 지난해 고객사 관리를 위해 해외 출장비용만 80억원을 사용했다. 여행사에서는 일찌감치 VIP고객으로 등극했고, 세계 어디든 고객사가 SOS를 치면 한걸음에 달려가 문제점을 해결해 준것이 고영테크놀로지의 경쟁력이 돼 버렸다.
고영은 ‘파괴적 기술력’을 바탕으로 개발한 ‘3D SPI’와 ‘3D AOI’를 통해 전자제품 생산 분야의 기술적 혁신을 이끌어내고 생산기술 향상을 통한 스마트 혁명에 기여해왔다. 이제 고영은 100년 먹거리를 위한 새로운 분야 투자로 눈길을 돌리고 있다.
검사장비의 기본이 되는 로봇기술과 3D 센서기술을 기반으로 뇌의 어느곳을 뚫어야 하는지 정확히 짚어내는 제품인 ‘뇌수술 보조로봇’이 고영의 차기 먹거리다. 올해 10월 국내 시판을 시작으로 미국 등 세계 최고 업체를 공략할 계획이다. 5년 내 매출 1조원 달성이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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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테크놀러지 소속 한 연구원이 미래 먹거리인 뇌수술 보조로봇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고 대표는 해마다 전체 매출의 12~14%를 미래사업을 위한 R&D에 투자한 노력이 의미있는 결실로 이어질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그 중 고영이 가장 신경을 쓰는 부분이 직원들이다. 고영 직원의 평균 연령은 37세지만, 평균 연봉은 8300만원으로, 대학생이 가장 일하고 싶은 직장 1위인 네이버보다 높다. 이미 취업준비생들 사이에서는 준 대기업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직원들 사이에서도 상대평가 없이 오롯이 실력과 노력을 인정해주는 절대평가 방식에 대한 만족도가 높은 편이다.
고 대표는 정부의 계획대로 세계 일류 상품 기업이 지금보다 2배 이상 증가하기 위해서는 제조업에서 필요로 하는 인재 양성이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고 대표는 “국내에는 제조업이 필요로 하는 인재들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라며 “정부에서 AI, 데이터 과학자 등 산업에서 바로 활용할 수 있는 인재를 많이 키워 바로 채용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4차산업 혁명시대 대한민국이 제조강국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