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니엘이라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
10여 년 전, 안토파가스타에서 처음 그 아이를 알게 되었는데,
그때 다니엘의 나이는 네 살이었습니다.
호기심으로 반짝이는 두 눈에, 똘똘함이 가득한 귀여운 꼬마였습니다.
다니엘은 일주일에 한두 번 할머니의 손을 잡고
바오로딸 서원에 찾아와 수녀님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그림책도 보며 우리에게 아주 반가운 손님이 되었습니다.
직장 생활을 하는 엄마와 아빠 때문에 할머니의 손에 자란 다니엘은
말하는 폼이나 생각하는 것이 또래들과는 달리 의젓하고 거침이 없었습니다.
한동안 뜸하던 그가 어느 날, “수녀님, 저 복사됐어요.”라며 찾아왔습니다.
빛나는 눈엔 기쁨이 가득 찼습니다.
본당 신부님은 매일 미사에 오던 다니엘에게 특별히 복사단 입단을 허락하셨고,
다니엘은 신자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하였습니다.
어느 날은 환경미화 트럭 운전사가 되고 싶다더니,
다른 날은 소방관이 되겠다고도 했습니다.
복사 생활을 한 지 어느 정도 지나자
드디어 신부님이 되고 싶다고 하여 우리를 기쁘게 해 주었습니다.
아마 그해 성탄절이었을 것입니다.
무더위로 성탄 전야 미사는 본당 앞 광장에서 거행되었습니다.
넘어가는 햇살이 따가웠는데, 사람들의 행복한 웅성거림,
박수 소리와 함께 사제 입장이 시작되었습니다.
신부님의 두 손엔 한 갓난 아기가 들려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얀 장백의에 작은 허리를 띠로 질끈 묶은 다니엘도
두 손을 모은 채 신부님에 앞서 진지하면서도 상기된 얼굴로
제단을 향하였습니다.
신부님은 아기 예수님을 준비된 구유에 눕힌 뒤
다니엘에게 아기 예수님을 돌보라는 임무를 맡겼습니다.
한순간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미사 내내 다니엘은
아기 예수님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습니다.
그날 성탄 전야 미사는 저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특별한 은총의 순간이 되었습니다.
깔끔한 장식과 아름다운 성가, 장엄한 침묵 속에
잘 준비된 수녀원의 전례에 익숙해
어수선한 분위기와 신자들의 자유분방한 모습들이 낯설어
온전히 함께하지 못하였던 저에게
“자, 보아라. 하느님은 사람이 사는 곳,
있는 그대로의 너의 삶의 자리에 이렇게 오셨다.”라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성탄의 기쁨으로 가득 찬 얼굴들 하나하나가 제 눈에 들어오면서,
제 마음 역시 형언할 수 없는 기쁨으로 채워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지나가던 누구라도 멈춰서 예수님 탄생의 기쁨을 함께 나눌 수 있었던 미사,
저는 그 미사 안에서 베들레헴의 평범한 가정의 한 아기가 되어
우리에게 오신 임마누엘 참 하느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니엘의 환희에 찬 반짝이는 눈에서
‘하느님께 영광, 사람들에게 평화’를 노래한 작은 천사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많은 이들에게 잊을 수 없는 성탄을 선물해 주었던 다니엘이
이제는 고등학생으로 복사 단장이 되었고,
할머니는 몇 해 전에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다니엘의 꿈이 아직도 사제인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공동체 안에서, 가정 안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온전히 체험하고 자란 그 아이는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든
신앙인으로서 삶을 충실히 살아가리라 믿습니다.
백현실 라우렌시아 수녀 | 성바오로딸수도회 칠레 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