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카페정보
김동광의예술공간
 
 
 
카페 게시글
동양의 전통미술(한, 중,일) 스크랩 한국 도자기의 특성=개성=장점
호산 추천 0 조회 572 11.10.27 17:47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5. 한국의 도자기
5번 주자 : drg87 ( 2004-03-05 20:52:43 작성 ) 신고하기 | 이의제기
평점 : +5 (21명 평가) 나도 평가하기

인류가 처음 토기를 만들어 사용한 때는 대략 일만년에서 육천년 경이었고,

우리나라에서는 신석기 시대인 7-8천년 전부터 토기를 만들어 사용했다.

11세기 까지 세계적으로 도자기(=청자)를 생산할 수 있던 나라는 .......세나라

        

우리와 중국,베트남 정도였다.

중국,베트남과 달리 우리의 자기는

 

고려와 조선에서는 조형과 빛깔이 독창적이고 수려한 양질의 자기를 생산할 수 있었다.

자기는 적당히 철분이 함유된 흙을 물에 게어서 반죽하고 빚어서

 

나무로 피운 장작불에 구워 내는데

 

이는  동양의 오행의 요소가 다 포함된 창조예술이며,

인간이 만들 수 있는 가장 신비롭고 아름다운 조형물이라 할 수 있겠다.

과정 중에 조금만 하자나 배합의 과다가 있어도 제 빛깔이 나오지 않고,

현대적 제작기법으로 만들려 해도 예전의 빛깔을 재현해 내기 힘든 것은

 

장인의 혼이 투입되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우리에게 전해지는 도자기는 선조들의 미의식을 엿볼 수 있게 해주며,

도자기를 이해하지 않고는 한국의 미의 특색과 문화를 이해할 수 없다.

 



한국 도자기의 독특한 선과 빛깔의 아름다움은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미술적 가치 또한 높이 평가된다.

왕실과 같은 특정계급을 위한 것만 아니라 일반 서민들의 일상적 생활용품으로

제작된 것까지 도자기의 종류도 많고 시대적으로나 만들어진

 

장소도 전국에 걸쳐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다.

 

 

 

고려청자

통일신라 말기에 이미 청자를 만들어 사용했지만,본격적으로 고려시대에

와서 많이 만들어지고 세련되게 발전하였고 '고려청자'라는 이름을 선양하게 되었다.

한국에서 처음 만들어진 청자에는 중국의 영향이 강하게 반영된 것과

한국 전통의 형식을 채택한 것이 있었는데 청자기술이 세련되어간 11세기

경에는 중국 청자의 영향이 사라지고 고려인의 독창적 기법에 의한 도자기

를 만들고 12세기는 고려청자의 절정기였다.


당시 고려인들은 청자의 표현하기 힘들고 신비로운 색에 대해 비취옥 같다 하여

비색이라 했으며 모든 귀중품 중에 으뜸으로 여기고,신비한 빛깔을 담은 이런 비색청자는

열 개 중에 하나도 뽑아내기 어려울 만큼 뜻대로 되는게 아니었다 한다.


청자의 아름다움은 맑고 신비로운 비색과 함께 유려한 형태에 있다.

한국미술의 특성을 말할때 고려청자의 유려한 선에서 한국미술의 개성과 특성을 파악할 만큼

청자의 조형미는 오랜 전통을 기반으로 고려인의 독창적 미적 감각을 잘 드러내고 있다.

중국 도자기의 대담하고 양감이 넘치는 풍만한 것이 아니라 강하지도 약하지도 않은

세련된 균형과 절재의 미로서 다른 나라의 도자기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독창적인 것이다.


비취옥 같은 신비한 색채와 매끄럽게 흘러내리는 유연한 선,독특한 상감기법 등

 

가히 사람이 빚을 수있는 최상의 아름다움이 아닐까 한다.

 

 

 

 

조선백자

백자는 청자보다 안정되고 발전된 상태이다.

 

 



당시 유학을 중심한 사대부들은 한국적인 것을 찾으려 노력하였고,

그러한 사상은 화려한 중국백자를 배격하고 간결하면서 기품있는 순백자를 만들어 냈다.



조선의 백자는 청초하고 간결하면서도 기품 있는 당시 중국,일본과 뚜렸히 구분되는

 

독특한 품격을 가지며 다양한 형태와 여백을 살리며 간결하게 표현하는 것이 특징이다.

15세기 전반에는 백자의 생산이 왕실에 사용되는 걸 충당하는 정도였지만,

 

15세기 후반에는 국가가 필요한 도자기를 직접 제작하는 변화가 일어나 백자가 발달하게 된다.

17세기 후반에는 백자가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사용되었으며 철화백자가 제작되었다.

철화백자는 둥근 항아리에 굵은 필치로 자유롭게 그려진 구름과 용이 주로 등장하는 백자이다.

영,정조 때인 18세기는 문화의 전성기로서.....

 

....백자에 있어 고전적 유백색,설백색의 백자와 간결한 청화백자가 제작되었다.


조선 도자기하면 백자라 할 정도로 조선백자는 검소,질박,결백함을 중요한 가치관으로 여겼던

 

우리 조상의 평범하면서도 담백한 모습이며 백의민족의 상징이기도 하고,

그런 점이 더욱 공감과 애착을 갖게 한다.



 

조선 분청사기

세계적으로 가장 뛰어난 고려청자가 고려의 국운과 더불어 쇠퇴하자 분청사기가 등장했다.

분청사기는 청자와 달리 회색태토에 백토로 분장하고,회청색의 유약을 발라 구워낸 것이다.

그 전의 청자는 귀족적이며 실생활에 사용되기 어려운 한계가 있었으나,

사회변화에 따라 실생활에 필요한 검소하며 문양도 대담해지고 대량생산되기 시작했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분청사기에 스며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분청사기는 독창성이 발휘된 조선특유의 자기로서 조선인들의 검박하고 담담한 미의식이 담겨 있다.

형태가 수더분하고,구수하기도 하고 자유분방함이 있다.

추상적이고 익살스런 문양은 현대성을 많이 갖고 있으며 오늘날의 작품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16세기 중반에 일본에 전해지기도 했는데 일본인들이 신기라고 찬탄했다 한다.


옛날 우리 자기를 만들던 분들은 대를 이어 평생 도자기를 만들었으나,

 

현대처럼 유명하지 않고 무명으로, 천민으로 생활은 무척 가난했던 것 같으며,

 

무념무상의 경지에서 자연의 일부가 되어 도자기를 제작했고,

그런 정신과 혼이 작품에 배어나오지 않았나 싶다.

내용출처 : [기타] 인터넷 : http://www.totwo.com/dojagi.htm
 
다음검색
댓글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