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듬이소리
고즈넉한 밤이다. 은은한 달빛만이 삼라만상을 부드럽게 어루쓸어준다. 창문너머로 비쳐드는 교교한 달빛을 빌어 어디선가 또닥, 또닥, 똑, 또다닥 소리가 가락맞게 들려왔다. 이 밤중에 웬 소리지? 나의 잠은 어느새 구중천에 날아가버렸다.
또닥, 또닥, 똑, 또다닥— 그 소리는 때론 시원하게 불어오는 산들바람처럼, 때론 처절썩처절썩 밀려오는 파도의 썰물처럼, 그리고 때론 쏴쏴 쏟아지는 소나기처럼 절주있게 들려와 고요한 밤 하늘에 청아하게 울려퍼졌다.
참으로 오랜만에 들어보는 다듬이 소리였다. 또닥, 또닥, 똑, 또다닥! 그 소리는 마치 나를 아득한 동년에로 싣고 가는것만 같았다. 달빛을 타고 아스라하니 들려오는 다듬이 소리— 그 소리는 어쩌면 그 옛날 인생살이에 고달픈 우리네 할머니들의 삶이 아닌가싶다..
봄이면 우리 할머니는 온집 식구의 이불안을 뜯어서는 강역에 나가 깨끗이 빨았다. 강역에는 아낙네들이 깨끗이 빨아놓은 하아얀 이불안 빨래들이 여기저기 널려 마치 흰 비단필을 펼쳐놓은것만 같았고 방불히 순결함과 깨끗함을 즐기는 우리 백의민족의 얼을 말해주는듯싶었다. 여우볕에 이불안이 꾸들꾸들 마르면 다음은 풀을 먹이고 눅눅할 때 당겨서 모양새를 잡았다.
"얘야, 힘을 좀 팍팍 주거라, 이 늙은 할미보다 힘이 없으면 어떻게 하니?"
그러면 언니는 새초롬해서 할머니한테 정겹게 눈을 흘긴다. 언니가 눈을 흘기건 말건 할머니는 언니와 광목 자락 마주잡고 힘 겨루기를 한다. 언니는 입이 뿌루퉁해서 달가와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할머니를 척척 잘도 맞추어주었다. 빨래당기기를 하다가 할머니가 빨래 감을 놓치면 언니가 뒤로 벌렁 넘어지고 언니가 세게 당기면 할머니가 앞으로 쏠리니 서로 적당히 균형을 잘 잡아야 했다. 그 때 당시는 옷이나 이불안 같은것은 대부분 천연 섬유였던 시절이여서 아무리 힘들어도 온 집 식구들의 옷이나 이불안은 정결하게 빨아서 꼭 풀을 먹이고 손맛을 들이고 온갖 사랑과 정성을 다 넣었다 이불안이 하아얗고 반듯해야 편안히 잠도 잘 오고 낡은 옷이라도 구김살없이 반듯하게 다듬이하여 입어야 인생도 구김살없이 반듯하게 살수 있다는게 우리 할머니의 소박한 인생철학이였다. 그래서 할머니는 밤마다 빨래 감 만지는 일이 제일 재미있고 즐겁다고 하셨다. 낡은 옷이 나마 온집 식구들의 옷을 반듯하게 구김살 하나 없이 다듬이질해서 입혀 내보낼 때가 할머니에게는 가장 큰 행복이였고 기쁨이였고 생활의 락이였단다. 아니 어쩌면 할머니가 다듬이질 한것은 한낱 옷이나 이불안만이 아닌 험난한 인생을 살아가면서 구석구석 주름이 잡힌 삶의 구김살이 아니였던가싶다. 그러다보니 할머니의 손에서는 일년내내 방망이가 떨어질새가 없었다. 어쩌면 다듬이소리는 평생을 할머니와 인생의 희노애락을 함께 동반한것만 같았다.
다듬이소리에는 할머니의 고달프고 서러운 인생사가 고스란히 담겨져있었다. 열여섯살에 류씨가문에 시집와서 우로는 시부모님에 아래로는 시누이 시동생. 열셋식구가 사는 대가정에서 시어머니의 구박에 시누이들의 등살에 허리 한번 펴지 못하고 고달프게 살아왔단다. 그래서 다듬이소리에는 고달픈 인생살이에 대한 할머니의 서러움이 서리서리 담겨져있었다. 아니 그 소리는 어쩌면 가슴속에 서려있던 삶에 대한 한많은 우리 녀인네들의 서러움의 응어리가 아닌가 싶다. 그러다가 할아버지를 따라 중국에 건너와서 할머니는 그렇게 좋아하셨단다. 인제야 자기의 살림을 하게 되였다고 시어머니 시누이들의 시집살이에서 벗어났다고 자기의 두손으로 행복한 살림을 하게 되였다고. 하지만 그 기쁨 그 행복은 오래가지 못하였다. 할머니 나이 서른아홉에 그만 할아버지가 돌아가고 말았다. 하다보니 할머니는 섬약한 녀자의 몸으로 혼자서 아글타글 자식 다섯을 키우면서 온갖 수모를 다 당하고 갖은 풍상고초를 다 겪으시며 평생을 가난에 쪼들리고 그리움에 몸부림치고 외로움에 부대끼면서 고달프게 살아오셨던것이다. 그 외로움 그 괴로움을 달래는것이 바로 할머니의 방망이였다. 그 서러움 그 외로움을 풀기 위하여 온 몸에 땀이 흠뻑 나도록 다듬이질을 하고 나면 가슴속에 서리서리 얽힌 삶의 응어리가 후련하게 풀렸단다. 방망이는 바로 할머니의 한많은 인생이였다 아니 어쩌면 그 옛날 우리네 모든 녀인들이 고달픈 인생을 살아온 삶의 흔적이였다…
그러다가 우리 엄마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딸 셋을 다 시집보내고 삼촌을 군대에 보내고나서야 우리집에 오셨다. 우리 집에 오셔서도 할머니의 손에서는 방망이가 떨어질새가 없었다. 온 집 식구의 빨래들은 모두 부지런한 할머니의 손을 거치지 않은게 없었다. 매양 깨끗하게 씻은 옷이나 이불안이 마르면 할머니는 입에 물을 머금고 푸푸 물을 뿌렸다. 그리고 곱게 포개어 놓으면 억척스런 어머니가 발로 자근자근 밟아 숨을 죽이고 나면 이불안은 다듬돌우에 오른다. 다음은 할머니가 다듬이질을 시작한다. 다듬이질은 서로가 박자가 맞아야 한다. 박자가 맞지 않으면 한쪽 방망이를 약하게 두 번 굴려 박자를 맞춰야 한다. 한참 신이 나서 등줄기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도록 옷이나 이불안을 두드리고 나면 기분이 그렇게 상쾌할수가 없단다. 우리 집은 삼대가 함께 살아서 빨래 감도 무던히도 많았건만 할머니와 어머니의 정성어린 손길을 거치는 동안 비록 낡고 볼품없는 옷이였지만 옷매무새가 곱게 다듬어져서 가난했었지만 낡은 옷도 항상 새 옷인듯 입고 살았다…
그런데 사회의 발전에 따라 어느사이엔가 방망이도 자취를 감추었다. 그러니 오랜만에 방망이소리를 듣노라니 감회가 새롭다.
다듬이소리 듣고싶다. 그 옛날 할머니의 다듬이소리 돌돌 흘러가는 시내물처럼 건들건들 넘어가는 노래가락처럼 얼마나 절주있게 정겨웁게 들려왔던가? 잠못 이룰 때면 그 소리는 감미로운 자장가로 되여 나를 아늑한 꿈나라에로 실어다주었다. 그 다듬이 소리 들으면서 나는 동년의 아름다운 꿈을 키워왔고 생활을 사랑하는 법을 배워왔고 인생을 구김살없이 반듯하게 살아야 한다는 삶의 리치를 깨달았다. 내 심장의 박동만큼이나 생생하게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는 정다운 추억의 소리 내 성장을 지켜준 할머니의 다듬이소리 지금도 할머니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을 타고 나의 어깨너머에서 아스라하니 들려오는듯하다.
다듬이소리 듣고 싶다. 비록 가난하게 살았지만 그것은 녀인네들의 그리움과 기다림과 외로움을 풀어주는 생활 속의 리듬이었고 힘들고 지친 삶에 대한 녀인들의 괴로움에 대한 토로였고 그 옛날 범같은 시어머니들의 시집살이 승냥이 같은 시누이들의 등쌀에 대한 서러움의 토로이기도 하였다.
다듬이소리 듣고싶다. 그 소리에는 자기 가족에 대한 사랑과 정성이 듬뿍 담겨져있으며 그 소리에는 우리 조선족녀인들의 부지런함과 근면함이 담겨져있으며 그 소리에는 우리 녀인들의 생활의 지혜와 슬기가 담겨져있었다. 그래서 그 다듬이 소리 유정한 세월이 흐른 오늘날에도 더 귀맛을 당기고 더 정감을 불러일으키는지도 모르겠다
또닥, 또닥, 똑, 또다닥— 이 밤중에 달빛을 타고 절주있게 들려오는 다듬이소리 처음에는 가볍게 그러다가 절주있게 나중에는 힘차게 리듬을 타고 때로는 정겹게 때로는 쓸쓸하게 때로는 은은하게 때로는 격정높이 그 먼 옛날 우리 녀인들에 대한 그리움을 싣고 나의 가슴에 와 닿는다.
옛녀인들의 한이 서렸던 다듬이소리 자기 가족에 대한 옛녀인들의 사랑과 정성이 담겼져있던 다듬이소리 웃어른에 대한 존경과 공경이 담겼져있던 다듬이소리 인젠 더는 들을수 없다는 현실에 가슴이 아프다. 병들고 지치고 현대생활의 절주가 빨라져 인간사이에 친절한 대화마저 점점 줄어드는 사막화되여가는 현실에서 자기 가족에 대한 우리 어머니들의 정성과 사랑도 점점 메말라가는것 같아 가슴이 아프다.
사회의 발전에 따라 방망이는 소실되였어도 우리네 옛 녀인들의 가족에 대한 사랑과 정성. 옛녀인들의 부지런함과 근면함, 옛녀인들의 지혜와 슬기 생활에 대한 열애의 마음만은 본받아야 하지 않을가? 이것은 바로 슬기로운 우리 백의 민족의 아름다운 전통일진대 그것을 우리가 이어가야 바람직하지 않을가?
또닥, 또닥, 똑, 또다닥 지금도 고요한 밤을 타고 계속 이어지고 있다.
2011.5.25
장백산 2012년 4기에 발표.
첫댓글 다듬이 소리속에 지나간 추억들이 떠오르면서 어머니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도 생기고요.옛추억을 더듬는 좋은글 즐감하였어요
네. 너무 그리운 다듬이소리입니다. 고운 자취 고미워요.행복하세요.
다듬이 소리를 들으변서 근로하고 아뜰하고 부지런 할머니님의 형상을 보면서 깨끗한 우리민족의 자랑을 보는것 같습니다.할머니에 대한 아름다운 추억을 잘 보고 갑니다!행복한 꿀샘님 존 시간 되세요!
귀한 발걸음 감사합니다.
꿀샘님의 글에서 다듬이소리 정답게느껴지면서 어릴때 어머니와함께 빨래터에서 즐겁게 방치질하던때가 그리워집니다.좋은글 즐감하구 내립니다 감사합니다~~~~~
고운자취 감사합니다. 동년의 추억은 아름답지요. 행복하세요.
어머니 하고 다딤질 하던 그때가 떠오르네요 다듬이소리 지금도 나의귀가에 울려 오고 있어요 추억으로 이끄는 글 즐감 하였어요 감사합니다
고운자취 고마워요. 항복하세요.
이글을 읽으면서 동년시절 어머니가 이불안을 다듬던 정경이 눈앞에 선히 떠오르면서 잊지못할 동년의 추억들이 주마등마냥 스쳐지나네요.항상 자식을 위해 모든것을 바치신 어머니 오늘따라 어머니 생각에 가슴 후련한 추억에 잠겨보는 시간이 되였습니다.행복한꿀샘님의 좋은글 즐감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지기님 행복한 동년의 추억을 떠올렸다니 저도 기쁘네요. 수고하세요.
지금 애들은 다듬이소리라면 잘 모를수도 있어요.우리조선민족의 상징인 다듬이에 대해 생동한 언어로 잘 표달하셨네요.멋진 글 많이 부탁드립니다.
그래요 우리 민족의 전통을 잊어서는 안돼죠, 정다운 다듬이소리 매양 그립네요. 공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하세요.
다듬이소리 예전에 들어본 기억이납니다~잠시나마 추억여행 다녀왓네여~건강하시고 좋은글 많이 올려주세요...
추억려행 다녀왔다니 저도 즐겁네요. 공감해주셔서 고맙습니다. 행복하세요.
다듬이소리속에 어머니의 가정에 대한 사랑과 헌신을 다시한번 생각하게 되네요.좋은글 즐감하였어요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함께 소통합시다. 행복헤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