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용수보살께서 중관의 견해를 바탕으로 어떤 실수행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보만론》, 《권계왕송》, 《대지도론》 등에서 육바라밀을 언급하셨고 어떤 사람들은 용수보살을 '팔종(八宗)의 조사(祖師)'라고까지 칭하지만, 그 근거를 살펴보면 대부분 후대 사람들이 용수보살의 이름을 가탁하여 지어낸 위작이라 들었습니다.
답변입니다.
용수보살께서 스스로 "나는어떤 수행을 했다."고 말씀하신 기록이 있다면 정확히 얘기할 수 있겠지만, 그런 기록은 없습니다. 용수보살님의 저술에서 스스로 알았고 남에게 권유했던 수행이 무엇이었는지 조사해 봄으로써 그 분이 어떤 수행을 하셨는지 짐작할 수 있겠습니다. 용수보살님의 대표적인 저작이 <중론>이고 <회쟁론>, <공칠십론>, <육십송여리론>, <광파론> 등 공사상을 천명하는 오여리론(五如理論)의 논리적인 책을 저술하셨지만, <보만론(보행왕정론)>, <권계왕송>과 같이 재가불자인 왕을 위한 저술을 보면 지계행, 무상, 무아 등 삼법인에 대한 통찰, 십이연기에 대한 이해, 육바라밀의 보살행 등을 권유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용수보살의 저술에 위작이 많다고 하지만, <중론>등의 오여리론과 <보만론>, <권계왕송>은 직접 저술하셨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대품반야경>에 대한 주석인 <대지도론>의 경우 위작으로 보는 분들도 있는데, 위작이라기보다 번역자 구마라습 스님의 가필이 많이 들어간 저술로 보는 게 옳을 듯 합니다. 구마라습 스님이 강의하듯이 번역하면 필수를 담당한 제자가 이를 받아써서 번역본이 완성되는데, 간혹 가다가 해설의 필요에서 원문에 없는 말들을 구마라습 스님이 보충설명했던 것까지 번역문에 포함시켜서 위작의 오해를 산 것으로 추정됩니다. 예를 들어서 다음과 같은 문장들입니다.
阿提,秦言初;阿耨波陀,秦言不生。
若聞羅字,即隨義知一切法離垢相。羅闍,秦言垢。
若聞波字,即時知一切法入第一義中。波羅木陀,秦言第一義。
若聞遮字,即時知一切諸行皆非行。遮梨夜,秦言行。
若聞那字,即知一切法不得不失,不來不去。那,秦言不。
若聞邏字,即知一切法離輕重相。邏求,秦言輕。
첫째 줄의 경우 "아제(ādya)는 진(秦)나라 말로 초(初)라고 한다. 아뇩파타(anutpāda)는 진나라 말로 불생이다."라고 번역되는데, 여기서 말하는 진나라는 5호16국 가운데 후진(後秦)으로, 용수 보살님 당시에는 존재하지도 않았고, 용수보살님이 알 수도 없는 나라입니다. <대지도론>에는 이런 문장들이 여러 군데 있는데, 이에 근거하여 일본학자들이 위작설을 제기했던 겁니다. 그러나 위에서 설명했듯이, 구마라습 스님의 보충설명까지 번역문에 넣은 것이고, 대부분의 문장은 산스끄뜨문의 번역이라고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물론 용수 보살 열반하신 후 유포된 후대의 밀교 관련 저술 가운데 그 저자로 용수 스님에게 가탁한 것이 많긴 합니다.
<중론> 제26장 관십이인연품(觀十二因緣品)은 다른 장들과 달리 12연기설에 대한 아비달마교학적인 해석인데, 이로 인해 일본학자 중에는 제26장이 후대에 다른 사람이 저술하여 삽입된 것이라고 추정하는 분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큰 오해입니다. <보만론(보행왕정론)>, <권계왕송> 그리고 <대지도론>에 아비달마적인 불교교리가 많이 등장하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 용수보살은 아비달마교학을 부정한 분이 아닙니다. 다만 아비달마교학에서 '법'을 대하는 실체론적 태도를 비판할 뿐입니다. 이는 <대지도론>의 다음과 같은 문장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般若波羅蜜中,四緣皆不可得」,般若波羅蜜於一切法無所捨、無所破,畢竟清淨,無諸戲論。如佛說有四緣,但以少智之人著於四緣而生邪論;為破著故,說言諸法實空,無所破.
반야바라밀 중에서 사연은 모두 얻을 수 없다. 반야바라밀은 일체법에서 버리는 것이 없고, 파하는 것이 없다. 필경 청정하여 온갖 희론이 없다. 예를 들어 부처님께서 사연이 있다고 설하신 것은, 다만 지혜가 열등한 사람이 사연에 집착하여 삿된 논의를 생하기에, 그런 집착을 파하기 위해서 제법은 실체가 공하다고 설하여 말하신 것이지, 파하신 것은 없다.
菩薩觀知諸法從四緣生,而不取四緣中定相
보살은 제법이 사연에서 생하는 것을 관찰하여 알지만, 사연 중에서 확고한 모습을 취하지 않는다.
사연은 연기적 인과관계에서 조건(緣)의 종류로 '인연, 연연, 차제연, 증상연'의 4가지입니다. 반야바라밀에서는 이런 아비달마 교리를 부정하는 게 아니라, 이런 법들을 대하는 태도를 시정할 뿐입니다. 따라서 용수보살님은 아비달마교학에 정통한 분이고, 아비달마교학의 수행론 역시 그대로 수용하셨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앞에서 썼듯이 <보만론(보행왕정론)>, <권계왕송>, <대지도론>에 아비달마적인 수행론이 많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다만 아비달마적인 수행에 덧붙여 대승보살도의 육바라밀을 실천하고, 대승반야사상의 법공의 통찰을 심화시키셨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질문에서 말씀하신 중관의 견해는 반야 공에 대한 통찰인데, 불교의 가르침을 진제와 속제의 이제(二諦)로 구분할 때 반야중관의 통찰은 진제, 일반적인 수행은 속제에 해당합니다. 그리고 육바라밀에서 보듯이 진제와 속제가 균등한 것이 대승 보살도의 삶입니다. 세속적인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을 작위적으로 실천하되, 그런 다섯 가지 법에 실체가 없다는 반야중관적인 통찰이 함께 하면 보시바라밀, 지계바라밀, 인욕바라밀, 정진바라밀, 선정바라밀의 5바라밀이 됩니다. 그리고 일반적인 반야는 인(人)무아, 즉 아공(我空)에 대한 통찰인데, 이에 덧붙여 색, 수, 상, 행, 식의 법도 실체가 없다는 법공(法空)의 통찰이 함께 하면 반야바라밀이 됩니다. 앞의 5바라밀과 반야바라밀을 합하여 육바라밀이 됩니다. (정확히 말하면 '법공의 통찰'과 '대승적인 대자비심'이 함께 하는 것이 '바라밀다'이고 그 토대 위에서 행하는 6가지 공덕의 실천이 육바라밀입니다.)
모든 불교 수행의 공통점은 계, 정, 혜 삼학을 닦는 것입니다. 따라서 용수보살님도 계, 정, 혜 삼학의 수행을 하셨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다만 반야중관적인 법공의 통찰과 함께 하는 계, 정, 혜 삼학의 수행이었을 것 같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고, 집, 멸, 도의 사성제로 요약되는데, 이 가운데 도성제가 수행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초전법륜에서 알 수 있듯이 도성제는 팔정도입니다. '정견, 정사유, 정어, 정업, 정명, 정정진, 정념, 정정'이 팔정도인데 이는 계, 정, 혜 삼학에 다름 아닙니다. '정어, 정업, 정명'이 계학에 해당하고, '정념, 정정'이 정학에 해당하며, '정견, 정사유'가 혜학에 해당하고, 정정진은 정학에 넣기도 하지만 계, 정, 혜 삼학에 공통한다고 보기도 합니다. 용수보살님 역시 이러한 계, 정, 혜 삼학을 닦으셨는데, 아공(我空)을 넘어서 법공(法空)에 이르기까지 혜학을 더욱 치밀하게 추구하신 분이라고 보면 어떨까 합니다. 법공에 대한 자각이 완성된 후, 그런 자각의 토대 위에서 계, 정, 혜 삼학을 닦는 모습을 시현하시면서 살아가셨을 것 같습니다.
이상 답변을 마칩니다.
(용수보살 저술 목록 파일을 참고자료로 첨부합니다. 1999년 출간한 번역서 <백론/십이문론>(경서원 간)에 실려 있는 목록입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혹 저의 무지와 지나친 언사로 선사(先師)를 욕보이진 않았나 반성하고 참회합니다. 육바라밀의 의미를 알게 되어 기쁩니다. 용수보살의 진의가 왜곡되지 않도록 진속이제의 가르침을 잘 이해하고 실천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리옵고 수상한 시절이지만 교수님 늘 강건하시고 무탈하시길 기원합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