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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의 “가난과 부” 주제에 나타난 종말론적 지혜.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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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신학사상 / KCI등재 2018. 12
http://hs.ac.kr/sinsang/index.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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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의 “가난과 부” 주제에 나타난 종말론적 지혜 ✽
이 윤 경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구약학)
Ⅰ. 여는 말
폰 라트가 지혜문학이 예언 문학에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고 제안한 이후, 지혜문학의 학문적 연구 대상으로서의 가치는 주목을 받기 시작하였다. 1) 특별히 잠언 연구사에서, 2) 흔히 잠언은 고대 근동, 특별히 이집트 지혜문학과 그 유사성이 지적되어왔다. 예를 들어, 잠언 22:17-24:22 단락은 이집트의 ‘아메네모페의 교훈서’와 그 유사성이 회자되었다. 3) 이집트의 지혜문학을 포함하여, 고대 근동의 지혜서는 대개 젊은이들에게 경험적 지식을 전수함으로써 어떻게 처세를 능하게 하며, 인생에서 성공 에 이르게 할지를 가르치고자 하였다. 성서의 잠언 역시 고대 근동의 지혜서와 일맥상통한 점을 분명 담고 있다. 예를 들어, “뇌물은 그 임자가 보기에 보석 같은즉 그가 어디로 향하든지 형통하게 하느니라 (17:8) ”, “너 는 잠자기를 좋아하지 말라 네가 빈궁하게 될까 두려우니라 네 눈을 뜨라 그리하면 양식이 족하리라 (20:13) ”, “재물은 많은 친구를 더하게 하나 가난한즉 친구가 끊어지느니라 (19:4) ”와 같은 구절은 분명 인생의 성공과 처세술을 가르치고 있다. 그래서 흔히 교회는 지혜문학, 특히 잠언의 속담과 격언을 통하여, 근면과 성실을 넘어 경쟁적인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남는 비법을 찾고, ‘목적이 이끌고’, ‘사회에서도 성공하는 기독교인’ 을 생산하고자 한다. 그러나 잠언은 단순히 ‘처세술’ 혹은 ‘격언집’으로 규 정할 수 없는 책이다. 4) 잠언은 개인이 사회에서 어떻게 삶을 살아가야 할지에 대해서 ‘지혜로운 자’의 삶의 모델을 제시하지만, 그 지혜로운 자 의 삶은 공동체의 조화, 상생, 기쁨, 행복과 어긋나는 것이 아님을 천명 하고 있다. 본 논문은 잠언 연구사와 관련하여, 종래의 연구는 구약의 지혜문학을 묵시문학과 무관한 분류로 인식되어왔다는 점에 주목한다. 그러나 폰 라트 이후 연구들은 지혜문학과 묵시문학의 상관성에 대한 논쟁을 벌였 다. 5) 이후 지혜문학 연구에 지혜문학의 저자로 간주되는 서기관 계층 내 부의 갈등으로 인해 지혜문학과 묵시문학으로 갈라졌다는 이론이 등장한다. 6) 한편 지혜문학 내의 여러 갈래의 지혜의 형태에 대한 연구 7) 도 진행 되고 있다. 본 논문은 잠언의 여러 주제 가운데에서 ‘가난과 부’라는 주제에 집중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문학 장르상, 지혜문학은 묵시문학과 다 른 형태를 갖추고 있지만, 암울한 현실을 넘어 신적 통치가 이루어질 것 이라는 미래의 희망과 ‘정의와 공의’가 이루어지는 이상을 전제한다는 점 에서, 잠언 역시 ‘종말론적 세계관’을 공유한다는 점을 ‘가난과 부’라는 주 제를 통해 제시하고자 한다.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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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논문은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이 주관하는 대학인문역량강화사업( CORE )의 게재료 지원을 받았음.
1) G . von Rad , Wisdom in Israel ( Harrisburg , PA : Trinity Press , 1993).
2) 잠언 연구에 대한 개략은 다음 논문을 참조하라. 천사무엘, “잠언 연구의 주요 해석학적 과제들,”『구약논단』 14/4 (2008), 147-166.
3) 이 교훈서는 대략 람세스 시대( c . 1300-1075년)의 작품으로 서기관 아메네모페가 그의 아들에게 인생에서 성공하는 비법을 전수하고자 기록한 30장으로 이루어진 책이다. 잠언과 이집트 지혜문학의 유사성과 차이점에 대한 연구는 유선명, 『잠언의 의 개념 연구: 신학적, 윤리적, 비교문화적 고찰』(새물결플러스, 2017), 6장 참조.
4) 그런데 한국 교회 안팎에서 잠언을 마치 재테크 서적처럼 읽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박정윤, “잠언서를 통한 가계재무관리교육,” 『로고스경영연구』 3/2 (2005), 42-66.
5) 20세기에 묵시문학과 지혜전승의 관련성을 지적하고 논쟁 거리가 되게 만든 학자는 폰 라트이다. 폰 라트, 허혁 역, 『구약성서신학 2』(왜관: 분도출판사, 1977), 302. John J . Collins , “ Wisdom , Apocalypticism , and Generic Compatibility ,” in In Search of Wisdom: Essays in Memory of John G. Gammie , L . Perdue , B . B . Scott & W . J . Wiseman ( eds .) ( Louisville , KY : John Knox Press , 1993), 165-186. 묵시문학과 지혜문학의 상관관계 연구사는 다음 논문들을 참조하라. 천사무엘, “지혜문학과 묵시문학의 관계,” 『한국기독교신학논총』, 32/1 (2004), 49-67. 안근조, “묵시의 기원 으로서의 지혜 재고,” 한신대학교 한신신학연구소, 『신학연구』 62 (2013), 7-30.
Ⅱ. 잠언의 인과율 신학에 대한 재고
1. 잠언의 시대적 배경
전통적으로 잠언은 솔로몬의 작품으로 여겨져 왔다. 솔로몬 시대는 아버지 다윗의 영토를 물려받고, 내외의 대적이 없는 시대적 상황을 배 경으로, 행정 체계를 수립하고, 무역을 통한 경제적 성장으로 이스라엘 역사상 유례없는 번영을 누렸다. 열왕기상 4:29-34는 솔로몬의 지혜가 단지 이스라엘뿐 아니라, 이집트를 포함한 근동에서 당대 최고였다고 증 언한다. 그러나 잠언 30장의 ‘아굴의 잠언’이라든지 31장의 ‘르무엘 왕의 어머니의 훈계 잠언’ 등의 포함으로 보아, 잠언 전체를 순수한 솔로몬의 저작으로 볼 수 없음은 자명하다. 일반적으로 잠언 1-9장은 포로후기의 저작으로, 9) 잠언 10-29장은 포로기 이전의 저작으로 본다. 이 두 번째 단락은 다시 왕정을 배경으로 하는 10-22장과 25-29장으로 구분된 다. 10) 대개 잠언 10-29장 단락은 왕정 시대 (기원전 9-6세기) 의 것으로 본 다. 그러나 잠언의 최종 편집 연대는 성전이나 율법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으로 보아, 느헤미야 개혁 (5세기 후반) 보다는 이른 시기인, 페르시아 초기로 보고 있다. 11) 그렇다면 이스라엘 역사의 포로 이전부터 포로 후기를 거치는 오랜 시기 동안 저작과 전수와 편집 과정을 거친 잠언이 가르치 고자 하는 궁극의 주제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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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J . Berquist , Judaism in Persia’s Shadow: A Social and Historical Approach ( Minneapolis , MN : Augsburg Fortress , 1995), 184-187.
7) 호슬리는 전통적인 잠언적 지혜를 고수하며 기득권을 지키려고 하는 서기관 그룹과 예언적이며 계시적 지혜를 통해 기존 질서에 저항하는 서기관 그룹이 있다고 본다. Richard A . Horsley , “ The Politics of Cultural Production in Second Temple Judea : Historical Context and Political - Reli- gious Relations of the Scribes who Produced 1 Enoch , Sirach , and Daniel ,” in Conflicted Bound- aries in Wisdom and Apocalypticism , B . G . Wright III and L . M . Wills ( eds .) ( Society of Biblical Literature , 2005), 137-141.
8) 다양한 종말론 이론에 대해서는 서남동, “종말론과 혁명,” 『신학사상』 7 (1974), 730-32 참조. 1991 년 신학사상 심포지엄에서 정권모는 기독교적 종말론적 세계관이 세속적 시한부 종말론과 다른 “역사적, 정치적 비판의식”과 관련이 있음을 언급한다. 서광선, 이원규 외 2인, “심포지엄: 종말사 상의 유행과 한국 교회,” 『신학사상』 74 (1991), 781. 한편 박경미는 “요한복음서의 종말 기대와 영,” 『신학사상』 118 (2002), 112에서 기독교의 종말의식이 “악의 문제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비롯 되었다고 본다.
2. 이중주 (二重奏) 잠언
잠언이 원하는 이상 사회는 한마디로 ‘상식이 통하는 사회’이다. 이런 사회를 위해 잠언 저자는 다양한 주제에 대해 이야기한다. 예를 들어, 잠언은 지혜와 우매, 언어생활, 가정생활, 부와 가난, 겸손과 교만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룬다.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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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Dell 은 1-9장을 포로 후기 수집물로서, 궁정이나 학교에서 서기관 교육을 목적으로 기록된 것으로 윤리적 내용이 주를 이룬다고 본다. Katharine J . Dell , The Book of Proverbs in Social and Theolog- ical Context ( Cambridge University Press , 2009), 18-50. Perdue 는 좀 더 구체적으로 1-9장을 페르시아 시대 초반의 작품으로 기원전 6세기 후반~5세기 초반 유다의 사회, 정치, 종교적 질서를 합법하고, 통제하기 위해 전통적 지혜자들이 기록하였다고 본다. “ Wisdom Theology and Social History in Proverbs 1-9,” in Wisdom, You are My Sister: Studies in Honor of Roland E. Murphy, O. Carm. on the Occasion of His Eightieth Birthday , M . L . Barre ( ed ), ( Washington , D . D ; CBAA , 1997), 78-101.
10) Dell 은 10:1-22:16은 가족이나 지파를 배경으로 도덕교육을 주된 내용으로 하고, 제의적이며 율법적인 특징들도 나타난다고 본다. 이집트의 아메네모페 교훈서와 유사한 단락을 포함하는 22:17-24:22은 법정과 학교를 배경으로 하고 있음을 분명하게 드러낸다고 본다. Dell , The Book of Prov- erbs , 51-89. 한동구는 잠언 10:1-22:16을 고대 잠언(초기 수집록)으로 보고, 이 단락의 시대적 배경을 다윗-솔로몬 제국 시대로 본다. 잠언의 이 단락은 “사회적 통합을 위해 지혜, 정의, 질서 등의 보편적 가치를 통하여 ‘자율성을 전제하는 새로운 인간관’을 주창”하고, “또한 세계와 우주를 질서의 토대 위에 세우므로 각 개체의 통합을 이룩하려 하였다”고 본다. “잠언의 하나님 이해와 성스러움,” 『구약논단』 43 (2012), 14.
11) L . Perdue , Wisdom Literature: A Theological History ( Louisville , KY : John Knox Press , 2007), 47. 잠언 편집 연대에 대한 우리말 논문으로는 다음을 참조하라. 이희학. “잠언의 수집과 최종 편집,” 『신학과 현장』 21 (2011), 125-149.
그런데 이토록 다양한 주제들을 크게 범주적으로 나누어 볼 때, 잠언은 두 가지 차원에서 가르침을 주고 있다. 먼저 잠언은 개인적 차원에서 자기 자신 (14:29-30; 15:18; 22:24) , 대인 관계 (11:12) , 여자 관계 (2:16-19) , 돈 관계 (11:28) , 자녀 관계 (13:24; 19:18) 에 대해 이야 기한다. 다음으로 잠언은 개인의 문제를 넘어서는 개인과 개인, 그러나 힘의 논리가 개입된 상호관계에 대해 언급한다. 이 문제는 몇 가지 주제를 갖고 전개된다. 종과 상전의 관계 (19:10; 30:10) , 통치자와의 관계 (8:16; 28:15-16; 29:14) , 부자와 빈자의 관계 (14:31; 22:16; 28:3) 등에 대해 언급한다. 그런데 잠언의 가르침은 단선적이지 않다. 예를 들어, 사회적 차원의 잠언은 처세술로서 뇌물을 사용하여 만사형통할 것을 권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17:8; 21:14) , 13) 곧이어 뇌물을 받고 재판을 굽게 하는 자를 악인이라 규정하고 (17:23) , 그런 왕은 나라를 망하게 한다고 말함으로써 (29:3) , 14) 마치 약자에게는 일종의 처세술로서 뇌물을 사용하기를 권하고, 강자에게는 뇌물을 받지 않고도 정의로운 판결을 내릴 것을 권한다. 이것은 정확하게 현실 세계에서 약자가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치면서도, 강자에게는 정의를 요구하는 이중 잣대를 제시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또 다른 예로, 종과 상전의 관계에 대한 가르침에서도 이런 이중 잣 대는 보인다. 잠언은 한편으로는 종과 상전이라는 계급 사회를 전제로 하는 시대적 사회 상황을 그대로 반영한다. 그래서 “미련한 자의 호강도 어쭙지 않거든 하물며 종이 상전을 다스리겠느냐? 하물며 종이 상전을 다스리겠느냐?” (공동번역, 19:10) , “무화과 나무를 지키는 자는 그 과실을 먹고 자기 주인에게 시중드는 자는 영화를 얻느니라” (27:18) . 15) 잠언에서 보듯, 종은 종이고, 상전은 상전이라고 규정하고, 각자 계급에서 안분지 족하라고 말함으로써, 계급사회를 견고하게 유지하고자 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또한 “너는 종을 그의 상전에게 비방하지 말라 그가 너를 저주하 겠고 너는 죄책을 당할까 두려우니라” (30:10) 라고 말함으로써, 종의 인권도 고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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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다양한 잠언 주제에 대한 연구는 다음 책을 참조하라. 트렘퍼 롱맨 3세, 전의우 옮김, 『어떻게 잠언을 읽을 것인가』(한국기독학생회출판부, 2005). 특히 제3부를 참조하라.
13) “뇌물은 그 임자가 보기에 보석 같은즉 그가 어디로 향하든지 형통하게 하느니라”(17:8). “은밀한 선물은 노를 쉬게 하고 품 안의 뇌물은 맹렬한 분을 그치게 하느니라”(21:14).
14) “악인은 사람의 품에서 뇌물을 받고 재판을 굽게 하느니라”(17:23). “왕은 정의로 나라를 견고하게 하나 뇌물을 억지로 내게 하는 자는 나라를 멸망시키느니라”(29:4).
이 점은 통치자에 대한 잠언들에서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통치자가 있는 현실세계를 전제로 한 잠언의 세계관은 “네가 관원과 함께 앉아 음식을 먹게 되거든 삼가 네 앞에 있는 자가 누구인지를 생각” (23:1) 하라는 가르침을 통해 확연히 드러난다. 그러나 잠언은 동시에 통치자들에게 ‘하나님의 의로 다스리라’ (8:16) 는 원칙을 제시함과 동시에 가난한 자를 학대하거나, 압제하지 말라고 제시한다 (28:3, 15, 27 등) . 이처럼 단편적으 로 살펴보더라도, 잠언은 지극히 단선적인 상식을 설파하는 윤리 교과서 가 아니다. 잠언은 현실을 알고, 또한 이상을 안다. 현실 세계의 부와 권력이라는 차가운 계급적 서열이 존재함을 알고, 이런 현실에 저항할 수 없는 사람들의 삶을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현실적 관계성을 향한 사 회적 차원의 잠언은 현실 세계를 바탕으로, 그 경험 속에서 우러나오는 지극히 현실적인 가르침을 전달한다. 그러나 현실의 무게에 눌려 현실에 머물러 있기를 거부한다. 그래서 부와 권력을 가진 자들을 향하여, 이상적 도덕 행위를 행하라고 가르친다.
3. 잠언의 종말론적 희망으로서의 인과율
흔히 잠언을 신명기적 신학에 기초한 ‘인과율’의 가르침 (가장 대표적인 예: 신 28장의 율법 순종 여부에 따른 축복과 저주) 을 일상생활에서 적용한 것이라고 본다. 이런 주장의 연장 선상에서, 구약 개론서와 지혜문학 개론서는 예외 없이 잠언을 오경, 역사서, 예언서를 관통하는 인과율의 체계 가 그대로 유지되는 책으로 분류하고, 잠언의 인과율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 욥기와 전도서에 나타난다고 설명한다. 대개 학자들은 이런 신학적 진화의 원인은 바로 ‘포로기’ 경험에 있다고 본다. 16) 포로기를 거치면서 ‘의인의 고난’에 대해 성찰하게 되고, 인과율이 작동하지 않는 세상을 경 험하면서 하나님의 개입으로 장차 올 세상에서 보상을 받을 것을 기대하는 묵시문학이 등장하게 된다고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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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본 논문에서는 따로 표기를 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개역개정을 사용한다.
그런데 잠언은 위에서 보듯, 물려받은 전통과 전승을 단순히 암기하고, 반복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잠언은 왜 ‘인과율’을 이야기하고 있을 까? 잠언의 저자는 전도서나 욥기보다 정치, 경제, 문화, 종교 모든 분야 에서 안락하고 평탄한 삶을 살았기에 인과율을 견지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오늘날에나 고대 이스라엘에서나 학교나 가정에서 전통적 지혜로서 인과율을 가르치는 것은 인간의 삶이 기계적 인과율이 적용될 만큼 순탄 하다고 믿어서가 아니라, 인과율이 적용되는 세상이야말로 ‘진리’요 ‘삶의 원칙’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잠언의 저자 역시 세상 현실에 눈이 어둡고, 순진해서가 아니라, 비록 세상은 원칙대로, 이상대로 돌아가지 않지만, 오히려 도대체 상식이 통하지 않고, 원칙이 행해지지 않기 때문에, 더욱 더 제대로 원칙이 통하고, 이상이 실현되는 삶을 바라게 되고, 이런 이상으로서의 인과율을 다음 세대에게 가르치는 것이다. 그렇다면 잠언은 더이상 이상 (理想) 의 세계가 아니라, 현실의 세계에서 구현되는 어떤 세상 을 꿈꾸고 있는가? 잠언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 (1:7) 이 되는 세상, 바로 종말론적 기대가 현실이 되는 세상을 지혜의 목적이요 목표라고 가르치고 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라는 선포는 바로 하나님의 질서와 원칙이 현실이 되는 사회를 향한 갈망을 표현하는 것이다. 권력과 억압, 주인과 노예라는 차가운 정치적, 경제적, 계급적 ‘현실’과 인과율이 적용되는 ‘이상’의 이중주를 말하는 잠언의 가장 중요한 논제 중 하나인 ‘가난과 부’는 ‘청빈’한 그리스도인이나 ‘깨끗한 부자’ 17) 그리스도인이 되라고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인과율이 적용되는 ‘종말론적 희망’을 설파하고 있음을 밝혀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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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E . S . Fiorenza , Revelation: Vision of a Just World ( Minneapolis , MN : Fortress Press , 1991), 24-25. 김창주. “포로기 신학적인 변화: 인과응보의 원칙을 중심으로,” 『구약논단』 16 (2004), 295에서 재인용.
Ⅲ. 가난과 부: 종말론적 희망을 가르치라!
잠언은 현실에서 사람들이 가난과 부를 어떻게 경험하는지를 냉정하게 보여준다. 잠언의 현실 묘사는 10:1-22:16 단락에서 집중적으로 나타난다. 이 단락은 포로기 이전 저작으로 ‘솔로몬의 잠언’이라는 소제목으로 시작하는 단락이다. 18) 포로기 이전 이스라엘 사회상을 알려주는 잠언들이라고 볼 수 있다. 고대 이스라엘인들의 일상의 편린들을 살펴보자.
부자의 재물은 그의 견고한 성이요 가난한 자의 궁핍은 그의 멸망이 니라 (10:15) . 가난한 자는 이웃에게도 미움을 받게 되나 부요한 자는 친구가 많으니라 (14:20) . 부자의 재물은 그의 견고한 성이라 그가 높은 성벽 같이 여기느니라 (18:11) . 가난한 자는 간절한 말로 구하여도 부자는 엄한 말로 대답하느니라 (18:23) . 재물은 많은 친구를 더하게 하나 가난한즉 친구가 끊어지느니라 (19:4) . 가난한 자는 그의 형제들 에게도 미움을 받거든 하물며 친구야 그를 멀리 하지 아니하겠느냐 따라가며 말하려 할지라도 그들이 없어졌으리라 (19:7) . 부자는 가난한 자를 주관하고 빚진 자는 채주의 종이 되느니라 (2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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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김동호, 『깨끗한 부자』(서울: 규장, 2001).
18) 잠언 10-22장의 편집 연대에 대한 개요는 한동구, “잠언의 지혜신학에 반영된 공정한 사회이념,” 『구약논단』 17/3 (2011), 12-33 참조.
잠언이 묘사하는 현실은 오늘 우리가 맞닥뜨리고 있는 차가운 현실과 대동소이하다. 부자는 재물을 자신의 정체성과 삶을 지킬 견고한 성 으로 여기고, 만인의 부러움과 시선을 한 몸에 받는다. 반면 가난한 자는 이웃에게, 친구에게, 형제에게 미움을 받고, 모든 이들의 기피 대상이 되고, 결국에는 채권자의 노예가 되는 신세로 전락하게 된다. 고대 이스라엘 사회에서 부자와 빈자가 겪은 현실은 오늘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과 다를 바가 없다. 오늘 우리 사회나 교회에서도 부자는 ‘돈’으로 명예도 사고, 권력도 사고, 인간 관계도 산다. 가난한 자는 기초 생활 보장 대 상자, 차상위 계층 등의 새로운 이름으로 칭해지지만, 여전히 사회의 하층 계급에 속하며, 이들은 생활고에, 고금리 개인 부채에 시달리다, 결국 에는 신용 불량자나 체납자라는 꼬리표를 붙이고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 놓이게 된다. 그렇다면 잠언은 가난과 부라는 주제에 대해 현실을 묘사 하는 것에서 그치고 있는가?
1. 잠언 (Proverbs) : 가난과 부에 대한 전통적 가르침
잠언에는 즉자적 (卽自的) 지식, 즉 ‘그 자체로 있는’ 개인의 삶과 현실을 고찰하는 단계의 지식이 나열되어있다. 이 단계에서 잠언 기자는 가난을 게으름의 결과로 공식화한다.
손을 게으르게 놀리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손이 부지런한 자는 부하게 되느니라 (10:4) . 게으른 자는 마음으로 원하여도 얻지 못하나 (13:4) . 게으름이 사람으로 깊이 잠들게 하나니 태만한 사람은 주릴 것이니라 (19:15) . 게으른 자는 가을에 밭 갈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거둘 때에는 구걸할지라도 얻지 못하리라 (20:4) . 너는 잠자기를 좋아 하지 말라 네가 빈궁하게 될까 두려우니라 네 눈을 뜨라 그리하면 양식이 족하리라 (20:13) . 연락을 좋아하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술과 기름을 좋아하는 자는 부하게 되지 못하느니라 (21:17) . 게으른 자의 욕망이 자기를 죽이나니 이는 자기의 손으로 일하기를 싫어함이니라 (21:25) . 술 취하고 음식을 탐하는 자는 가난하여질 것이요 잠자기를 즐겨 하는 자는 해어진 옷을 입을 것임이니라 (23:21) .
결국, 게으른 자의 존재는 “그 부리는 사람에게 마치 이에 식초 같고 눈에 연기” (10:26) 같다는 평가를 받게 된다. 게으름이 가난의 이유라면, 부는 복의 증거라는 공식이 보인다.
여호와께서 주시는 복은 사람을 부하게 하고 근심을 겸하여 주지 아 니하시느니라 (10:22) . 선한 눈을 가진 자는 복을 받으리니 이는 양식 을 가난한 자에게 줌이니라 (22:9) .
잠언은 가난과 부에 대하여 지극히 인과율적 체계로 설명하고 있다. 게으른 자는 가난하게 되고, 선한 자는 복으로 부를 얻게 된다. 종두득두 (種豆得豆) 즉, ‘콩 심은 데 콩 난다’는 인과율로 가난과 부를 이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인과율에 기초한 가난과 부에 대한 잠언은 ‘솔로몬의 잠언’이라는 소제목이 달린 두 단락 중 첫 번째 단락인 10:1-22:16에서 집중적으로 언급된다. 이 시대는 사사 시대와 왕정 초기의 불완전한 국가 체제를 극복하고, 새로운 독립국가 체제를 갖추고, 정치 경제적으로 성장하던 시기였다. 19) 이 시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국가의 미래와 개인의 생애가 진보하리라는 기대에 넘쳐났다. 노예살이와 광야 유랑의 경험을 딛고, 숱한 이민족과의 무력 투쟁 끝에, 마침내 행정과 군사 조직을 갖추고, 성전과 왕궁을 건설하여 전대미문의 부를 누리게 된 시대 상황 앞에서, 자신들의 지나온 과거의 경험이 바로 인과율이라고 믿었기에, 인과율을 기꺼운 마음으로 노래할 수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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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한동구는 잠언 10:1-22:16 단락의 배경을 다윗-솔로몬 시대로 보기에, 이 시대 지혜 신학자들은 “부의 공정한 획득의 원칙”을 세우고 하였고, “노동의 대가만큼 부를 얻는 것이 정의롭다고 주장” 하였고, 이를 통해 “제국의 질서를 수립하고 다원적 민족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원칙을 수립”하였 다고 본다. “잠언의 하나님 이해와 성스러움,” 16-17. 그러나 솔로몬 시대의 지혜 신학자들이 ‘제국의 질서’를 위한 ‘부의 공정한 획득 원칙’을 이상적 이데올로기로서 제시하였을 것이라는 가정 은 많은 문제점을 노정한다. 만약 솔로몬의 궁중 지혜 신학자들이 이런 원칙을 제시하였다 하더라도, 이 원칙을 선언이나 표어 이상으로 간주하고, 얼마나 철저하게 현실화하려고 했는지는 회의적이다. 솔로몬 행정부의 세금과 부역의 불공정한 부과와 실행이 원인이 되어, 그의 사후 바로 국가 분열이 초래되었다는 것을 상기한다면, ‘제국의 질서’를 위한 이데올로기로 ‘부의 공정한 획득 원칙’을 제시했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힘든 가정이라 하겠다.
2. 반 잠언 (Counter-Proverbs) : 가난과 부에 대한 비판적 성찰
그러나 낙관적이며 긍정적인 인과율 찬양은 멈출 수밖에 없다. 이스라엘이 처음으로 경제 발전의 성과를 누릴 때, 그늘에 가려진 사람들이 있었다. 솔로몬 사후, 그의 아들 르호보암이 즉위하자마자 ‘이스라엘의 온 회중’은 과도한 부역, 세금, 공물 납부 등을 줄여 달라고 협상을 요청 한다 (왕상 12:1-19) . 결국 이스라엘 백성은 왕정 초기로부터 경제 성장이 모든 사람과 모든 계층에게 고르게 분배되지 않음을 일찌감치 깨닫게 되고, 개인의 가난과 부가 인과적으로 적용되지 않음을 분명하게 알게 된 다. 더욱이 개인의 가난이 단순히 게으름의 결과가 아니라는 것을 보다 분명히 보게 된다. 이제 잠언에는 전통적 가르침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듯, 전통적 잠언을 대상화하고, 현실에 비추어 반성적으로 사유하는 ‘대자적’ (對自的) 지식이 나타난다. 잠언의 저자는 전통적인 진리인 인과율에 입각하여 ‘성실-부’와 ‘게으름-가난’이라는 도식을 소개한다. 그러나 잠 언의 저자는 그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 속에서 인과율이 적용되지 않는 현실을 분명하게 목격하고 있다. 브루그만 (Brueggemann) 은 가난과 부에 대한 주제들이 주로 나타나는 10:1-22:16 단락의 잠언들의 역사적 배경 을 솔로몬 시대로 보고 있다. 그런데 브루그만은 솔로몬 시대를 물질이 주는 풍부함과 거룩함을 통해 깨닫게 되는 ‘물건에 대한 책임’이 아니라, ‘물건으로부터 소외’되는 시대라고 정의 내린다.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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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W . 부르지만/ 장일선 옮김, 『지혜전승연구』(대한기독교출판사, 1990), 98-120.
그러므로 솔로몬 시대 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처음으로 국가 체제를 갖추고 전쟁이 아닌 일상의 삶을 살게 되는 상황 속에서 ‘가난과 부’가 인과율에 따른 법칙이 아니며, 정치적 안정 위에 세워진 경제성장으로 인한 풍요가 모든 이들을 풍요하 게 하는 것도 아님을 깨닫게 된다. 오히려 개인과 개인이 부의 유무, 다소로 인해 서로를 소외하고, 인간이 물질에 의해 도구화되고 대상화되는 현상을 목도하게 된다. 이제 이들은 전통적 잠언의 가르침을 여전히 유효한 진리라고 믿고 싶지만, 현실을 바라볼 때, 28:8 (“중한 변리로 자기 재산을 늘리는 것은 가난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자를 위해 그 재산을 저축하는 것이니라”) 에서 증언하듯이, 가난한 자는 살기 위해 돈을 빌리고, 힘들게 빌린 다 할지라도 고율의 이자로 인해 부채에 부채를 늘이게 되는 현실을 살 아가게 된다. 21) 또한 잠언은 결국 가난한 자가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도 알고 있다. 즉, “앞니는 장검 같고 어금니는 군도 같아서 가난한 자를 땅 에서 삼키며 궁핍한 자를 사람 중에서 삼키는 무리가 있느니라” (30:14) . 나아가 13:23의 “가난한 자는 밭을 경작함으로 양식이 많아지거니와 불의로 말미암아 가산을 탕진하는 자가 있느니라” (13:23) 에서 보듯이, 가 난한 자가 성실하고 부지런하게 일하여 얼마간의 부를 축적하여도 가산을 탕진하고 결국에는 다시 가난하게 되는 일이 벌어지는 것을 목도한다. 여기에서 특별히 주목할 것은 바로 불의 ( ט פ ֽ ָ ש ְ מ ִ א ֹ ל ֣ ב ְ ; 문자적 의미: ‘정의가 없 기 때문에’) 로 인해 가산을 탕진한다는 사실이다. 바로 ‘정의가 없기에’ 가 난한 자는 성실의 열매를 거둔다 할지라도, 그 열매를 오래 누리지 못하 는 현실을 맞닥뜨리게 됨을 잠언의 저자는 목도한다. 잠언 저자는 ‘가난한 자는 게으른 자’요, ‘부자는 성실한 자’라는 도식은 진정 도식에 불과하 다는 현실을 폭로한다. 잠언은 성실하지만 가난한 자가 있음을 철저하게 인지하고 있다 (예: 19:1 “가난하여도 성실하게 행하는 자는 입술이 패역하고 미련한 자보다 나으니라.”; 28:6 “가난하여도 성실하게 행하는 자는 부유하면서 굽게 행하는 자보다 나으니라.”) . 또한 가난한 자가 모두 지혜롭지 못한 자가 아님을 알고 있다 (예: 28:11 “부자는 자기를 지혜롭게 여기나 가난해도 명철한 자는 자기를 살펴 아느니라.”) . 한편 ‘부’가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현실 인식도 잠언 저자는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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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본래 율법에 따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돈이나 식량을 꾸어줄 때 이자를 받아서는 안 된다(레25:36-37). 단 외국인에게서는 이자를 받을 수 있다(신 23:20).
사람의 재물이 자기 생명의 속전일 수 있으나 가난한 자는 협박을 받을 일이 없느니라 (13:8) . 사람은 자기의 인자함으로 남에게 사모함을 받느니라 가난한 자는 거짓말하는 자보다 나으니라 (19:22) . 또한 잠언은 모으기만 하라고 가르치지도 않는다.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 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11:24) .
그렇다면 잠언은 가난과 부에 대한 전통적 상식을 말하고, 이 전통적 상식이 더 이상 상식이 아닌 현실을 폭로함으로써,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가? 무엇보다도, 잠언은 깨끗한 부자가 되라고 가르치는 책이 아님이 분명하다.
부자 되기에 애쓰지 말고 네 사사로운 지혜를 버릴지어다 (23:4) . 곧 헛된 것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 가 가난하여 도둑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 이니이다 (30:8-9) .
잠언은 부자가 되는 것도, 가난하게 되는 것도 원치 않고, ‘오직 필요한 양식’만을 구하라고 가르치고 있다. 이 가르침은 바로 우리에게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을 주옵시고’라고 기도하라고, 주기도문을 통해 가르치신, 예수의 부의 기준과 상통하고 있다. 인간에게 필요한 부의 정량 (定量) 은 ‘일용한 양식’이다. 그러므로 결국 근본적으로 잠언이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하라고 말하는 것이 곧 부자가 되라고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깨끗한 부자가 되라는 것은 잠언에도 성서 어디에도 나타나지 않는, 기독교와 무관한 세속 윤리일 뿐이다. 깨끗한 부자가 되어 선한 영향력을 끼친다는 것은 종교와 무관하게, 세상 사람 누구나가 원하는 착한 윤리일 뿐이다.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잠언의 가난한 자에 대한 인식은 가난한 자가 하나님의 피조물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잠언은 “가난한 사람을 학대하는 자는 그를 지으신 이를 멸시하는 자요 궁핍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자는 주를 공경하는 자니라” (14:31) , “가난한 자를 조롱하는 자는 그를 지으신 주를 멸시하는 자요, 사람의 재앙을 기 뻐하는 자는 형벌을 면하지 못할 자니라” (17:5) 라고 말함으로써, 가난은 ‘사람의 재앙’이요, 이런 재앙을 만난 자를 조롱하는 자는 창조주를 멸시 하는 자이며, 가난한 자의 재앙을 보고 기뻐하는 자는 형벌을 면하지 못 하며, 그들을 불쌍히 여기는 자가 주를 공경하는 자라고 말한다. 이 잠언들은 예수가 자신을 ‘지극히 작은 자 하나’와 동일시한 말씀 (마 25:31-46) 을 연상케 한다.
나아가 잠언은 오늘 우리에게 ‘부자’를 어떻게 사유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제기한다. 잠언은 부자를 타도해야 할 타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피조물임을 상기시킨다. 결국 빈부격차로 인한 계급의 차별성을 강조함으로써, 타자를 생산하고, 철저하게 소외하고, 배제해가는 과정을 끊어버리라고, 잠언은 과감하게 선언한다.
가난한 자와 부한 자가 함께 살거니와 그 모두를 지으신 이는 여호와 시니라 (22:2) . 가난한 자와 포학한 자가 섞여 살거니와 여호와께서는 그 모두의 눈에 빛을 주시느니라 (29: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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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C . F . Keil and F . Delitzsch , Biblical 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 ( Peabody , MA : Hendrickson , 1989). http :// biblecommenter . com / proverbs /29-13. htm
잠언의 저자는 ‘가난한 자’와 ‘부한 자’와 ‘포학한 자 ( םי כ ֣ ִ כ ָ ת ְ שי א ֣ ִ oppres- sor) ’가 섞여 살아가는, 살아가야만 하는 현실을 목도하며, 이 모든 자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동일한 피조물임을 지적하고 있다. ‘포학한 자’는 억압적으로 세금을 부과하고, 과도한 이자를 물리는 자이다. 22) 오늘날 신자유주의 체제하에서 금융 자본들이 보여주는 행태는 바로 ‘포 학한 자’라는 이름을 붙이기에 가장 적합하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잠언은 돈과 권력으로 타자화되고, 나눠진 세상이 하나님 앞에서 만나는 세상을 말하고 있다. 우리말 성서에서 ‘섞여 산다’ (개역, 개역개정) , ‘한데 어울려 산다’ (공동번역) , ‘다 함께 살고 있다’ (새번역) 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ש ג ַ פ ָ 의 문자적 의미는 ‘누군가를 대면하다, 마주치다’ (to confront someone, encounter someone) 이며, 23) 본문처럼 니팔형인 경우는 ‘함께 만나다’ (to meet together) 24) 라는 뜻을 갖는다. 결국 잠언은 가난한 자와 포학한 자가 대면해야 한다고 말한다. 부자와 빈자는 마주치기 싫지만, 마주칠 이유도 없지만, 마주쳐야 하는 관계임을 말하고 있다. 바로 이때, 하나님은 이 둘 “모두의 눈에 빛을 주신다” (29:13) 고 종말론적으로 말한다.
‘모두의 눈에 빛’을 주신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셀만 (Selman) 은 시편 13:3 (MT 13:4) 의 ‘나의 눈을 밝히소서 두렵건대 내가 사망의 잠을 잘 까 하오며’라는 구절과 관련하여 눈에 빛을 준다는 것을 생명을 준다는 의미와 동일시한다. 25) 그러므로 부자와 빈자가 대면함으로써, 가난의 현실을 드러내고, 대면할 때, 상대방에 대한 소외가 아닌 이해, 이해를 넘어서는 상생의 의지가 솟아나게 된다. 바로 이 만남의 순간, 생명의 빛 되신 하나님의 빛을 얻게 되고, 그 빛을 통해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 잠언의 신학은 부자를 하나님의 정의의 길에 동참하게 하는, 부자에게도 상생의 길을 여는 지혜를 가르친다. 만나지 않는다면 살 길이 없다. 만남이 없는 그곳에 생명의 길이 없다. 구약의 지혜는 재화의 다소로 인해 인간의 관계가 단절되는 것이 아니라, 재화의 다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의 동일한 피조물로서 동등하게 대면하고, 둘 모두가 새로운 삶의 빛을 얻으라고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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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Ludwig Kohler , L . Koehler , W . Baumgartner , The Hebrew and Aramaic Lexicon of the Old Testament, vol. 2 ( London : Bril , 2002).
24) Francis Brown , S . R . Driver and Charles A . Briggs , Brown-Driver-Briggs Hebrew and English Lexicon ( Hendrickson , 1996).
25) Martin J . Selman , “ רוֹא ,” in New International Dictionary of Old Testament Theology & Exegesis vol. 1 . W . A . VanGemeren ( ed .) ( Grand Rapids , MI : Zondervan , 1997), 325. 셀만은 시편에서 ‘눈에 빛을 준다’는 도덕적, 영적 이해를 지칭하기도 한다(시 19:8; 119:130)고 설명한다.
3. 종말론적 잠언 (Eschatological Proverbs) : 정의의 길, 공의의 길, 생명의 길
잠언은 분명 ‘가난과 부’라는 주제에 대해 모순된 것처럼 보이는 잠언 들을 함께 실고 있다. 그런데 이것은 잠언의 저자 혹은 편집자의 사상 자체에 모순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인간의 삶의 현실이 모순되기 때문이 다. 비록 학교에서, 가정에서 ‘부지런히 일하면 부자가 되고, 게으르면 가난하게 된다.’는 진리를 가르치지만, 잠언이 읊어지던 고대 이스라엘이나, 오늘 대한민국이나, 현실은 이 단순한 진리의 가르침을 따라 구현되지 않는다. 새벽부터 인력시장에 나가지만, 하루 벌이할 일자리를 구하기가 녹록지 않고, 설사 일자리를 운 좋게 구한다 할지라도, 뼈빠지게 일 해도 가난을 대물림하지 않기는 거의 불가능한 현실이다. 그런데 잠언은 이상적 진리와 참담한 현실이 모순되는 것을 단순히 병기하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대자적으로 현실을 바라보면서 현재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희망하는 즉자적인 모습의 미래를 노래한다. 26) 즉, 잠언 저자는 삶의 모순을 날카롭게 직시함으로써, 즉자적 잠언이 갖는 모순을 주저 없 이 보여준다. 그러나 이상적 잠언과 현실적 잠언의 간격을 보여주고, 좌절하거나 냉소적이 되는 것이 아니라, 즉자적 잠언이라 불릴 수 있는 이 상적 잠언의 본질과 지향점은 사회적 한계를 넘어서서, ‘불가능한 현실’, 즉 이상이 여전히 진리가 되고 현실이 되는 길을 제시하고 있다. 잠언이 제시하는 바로 그 길은 ‘지혜롭게, 공의롭게, 정의롭게, 정직하게’ (1:3; 2:9) 라는 말씀 속에서 드러난다. 먼저 잠언은 ‘가난한 자’와의 관계를 어떻게 맺어야 하는지를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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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이것은 헤겔 변증법의 지양 개념에서 착안한 생각이다. “헤겔의 지양( Aufheben ) 개념은 제거해 버리는 부정( negation )이 아니라 ‘보존하는’( erhaltende ) 부정, 말하자면 ‘지양된 것은 그것이 유래한 규정성을 아직 즉자적으로 가지고 있다’”( Logik I , S .110, Ausg . von 1833). 양우석, “오늘날에도 헤겔의 변증법은 가능한가,” 한국헤겔학회 편, 『헤겔연구 7』(청아출판사, 1997), 320에서 재인용.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어 드리는 것이니 그의 선행을 그에게 갚아 주시리라 (19:17) . 귀를 막고 가난한 자가 부르짖 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면 자기가 부르짖을 때에도 들을 자가 없으리 라 (21:13) . 이익을 얻으려고 가난한 자를 학대하는 자와 부자에게 주는 자는 가난하여질 뿐이니라 (22:16) . 가난한 자를 학대하는 가난한 자는 곡식을 남기지 아니하는 폭우 같으니라 (28:3) . 가난한 백성을 압제하는 악한 관원은 부르짖는 사자와 주린 곰 같으니라 (28:15) . 가 난한 자를 구제하는 자는 궁핍하지 아니하려니와 못 본 체하는 자에 게는 저주가 크리라 (28:27) . 왕이 가난한 자를 성실히 신원하면 그의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29:14) . 의인은 가난한 자의 사정을 알아 주나 악인은 알아 줄 지식이 없느니라 (29:7) .
잠언은 가난한 자의 부르짖는 소리를 듣고, 불쌍히 여기고, 학대하지 말며, 압제하지 말며, 그의 사정을 듣고, 신원해 줄 것을 가르치고 있다. 지혜는 결국 하나님과의 관계에 비춘 인간 관계를 이야기한다. 잠언은 가난한 자에 대한 문제를 출애굽기와 신명기에서 율법적으로 제언하는 것을 넘어서서, 27) 현실의 삶 속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만나야 하는지를 말하고 있다. 잠언에서 ‘가난과 부’의 주제를 인과율에 근거하여 거론하는 부분이 포로기 이전으로 추정되는 시기의 저작물인 ‘솔로몬의 첫 번째 잠언’ 10:1-22:16 단락에 집중되어있다면, 가난한 자를 학대하고, 억압하는 이야기는 ‘솔로몬의 잠언’ 두 번째 단락인 25-29장 부분에서 주로 언급되고 있다. 이 부분은 히스기야 시대의 편집물이라는 것을 이 단락 의 첫 번째 절에서 밝히고 있다 (25:1) .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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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계약법전(출 20:22-23:33)과 신명기법전(12-26장)에 나타난 약자보호법은 사회적 약자의 인권을 보호하라는 정언명령이다. 비록 이 법전들이 몇 가지 구체적인 시행 규칙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지만(예: 신 24:12, 15), 잠언은 보다 개인 차원의 문제에서 가난과 그로 인한 관계를 구체적으로 언급한다.
히스기야 시대는 국가체제를 갖추고 새로운 역사를 향해 도약하던 솔로몬 시대 초기의 장밋빛 모습과는 거리가 먼 시대였다. 또한 국가의 부가 모든 계층의 개인을 풍요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파와 지 파를 가르고, 개인과 개인을 가르는 분열의 핵이라는 것을 점차 깨달아 가던 솔로몬 후기와도 완연히 다른 역사적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29) 히 스기야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앗수르의 침략으로 북이스라엘이 멸망 하는 것을 목도한다. 히스기야는 20여 년간을 앗수르에 맹종하다가, 사 르곤의 죽음을 면하여, 반앗수르 동맹을 형성하였다. 그러나 이 일로 인 하여 유다는 오히려 예루살렘이 함락되기 직전 상황까지 맞게 된다. 산헤립이 전쟁 배상금 조로 ‘은 삼백 달란트와 금 삼십 달란트’ (왕하 18:14) 를 부과한 것을 조달하기 위해, 히스기야는 ‘성전과 왕궁 곳간에 있는 은’ (왕하 18:15) 과 ‘성전문의 금과 자기가 모든 기둥에 입힌 금을 벗겨’ 내야 했다 (왕하 18:16) . 비록 히스기야 시대에 관한 성서 자료들이 정치적 상 황보다는 종교적 관심에 집중하고 있지만 (왕하 18-20장; 대하 29-32장; 사 36-39장) , 이 시기 이스라엘은 이사야 예언자의 활동에서 보듯, 국가적 재난을 맞아 ‘가난과 부’라는 문제를 단순히 개인과 개인의 관계성의 문제로 국한시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라는 문제로 보고, 사회적 차원으로 확대하게 된다 (사 3:14-15; 10:2; 11:4 등) . 30) 이 시기에 이스라엘은 분명 민족과 구속사라는 거시적 문제에 혼신의 힘을 다했던 시대적 상황을 맞아, 개인의 삶과 국가의 흥망성쇠가 어떻게 하나님 경외/공의/정의라는 신앙과 하나의 선상에서, 또한 연장선상에서 다루어지고, 행해져야 할 것인지에 대해 논의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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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Daniel C . Snell , Twice-Told Proverbs and the Composition of the Book of Proverbs , 1 edition ( Wi- nona Lake , IN : Eisenbrauns , 1993), 81-82에서 25:1-29:27의 히스기야 단락을 잠언의 매우 초기 편집 단락으로 본다. 이 단락의 편집 연구사 및 잠언 전체 편집사에 대한 상세 연구는 R . Norman Whybray , The Composition of the Book of Proverbs ( Sheffield , JSOT Press , 1994), 120-131 참조.
29) 히스기야 시대에 대한 성서 자료들을 비교하고, 역사적 문서들을 비교하는 자료로는 다음 책을 참조하라. J . 맥스웰 밀러, 존 H . 헤이스, 박문재 역 『고대 이스라엘 역사』(서울: 크리스챤 다이제스트, 2004), 433-454.
구약에서 ט פ ָ ש ְ מ ִ (우리말로는 정의, 영어로는 justice로 주로 번역된다) 는 425회 나타나는데, 이것을 다시 분류하면, 오경에 84회, 역사서에 74회, 지혜 문학에 47회, 예언서에 144회 나타난다. 지혜문학 중 욥기에 23회, 잠언 에 19회 등장한다. 기본적으로 이 단어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민 사 사건에서 지켜야 할 것들을 명령한 법적 내용들을 지칭한다 (출 21:1) . 31)
이 단어의 빈도수가 가장 높은 예언서에서 ט פ ָ ש ְ מ ִ 는 주로 부패한 지도자와 관련하여 사용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와 관련하여 잠언에서 קדצ 를 동반하지 않고 ט פ ָ ש ְ מ ִ 가 단독으로 사용되는 경우는 몇 경우가 되지 않는다.
대저 그는 정의의 길을 보호하시며 그의 성도들의 길을 보전하려 하심이니라 (2:8) . 망령된 증인은 정의를 업신여기고 악인의 입은 죄악을 삼키느니라 (19:28) . 악인의 강포는 자기를 소멸하나니 이는 정의를 행하기 싫어함이니라 (21:7) . 정의를 행하는 것이 의인에게는 즐거움이요 죄인에게는 패망이니라” (21:15) . 악인은 정의를 깨닫지 못하 나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것을 깨닫느니라 (28:5) . 왕은 정의로 나라를 견고하게 하나 뇌물을 억지로 내게 하는 자는 나라를 멸망시키느니라 (29: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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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이사야가 가난한 자를 학대하는 문제를 하나님을 향한 반역이며, 공의를 무너뜨리는 행위로 보았음은 “너희가 내 백성을 짓밟으며 가난한 자의 얼굴에 맷돌질하느냐”(3:15)와 같은 말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31) Peter Enns , “ ט פ ָ ש ְ מ ִ ” in New International Dictionary Of Old Testament Theology & Exegesis, vol.
2 . Willem A . VanGemeren ( ed .) ( Grand Rapids , MI : Zondervan , 1997), 1142.
이상에서 보듯 잠언에서 ט פ ָ ש ְ מ ִ 는 구약 전체의 이 단어의 용례와 평행한다. 즉, 시민 법정에서 위증하는 증인에 대해서 ‘정의를 업신여기는 악인’ (19:28) 이라고 규정한다든지, 예언서의 용례처럼, 왕은 ט פ ָ ש ְ מ ִ 로 나라를 통치해야 함을 이야기한다.
잠언은 ט פ ָ ש ְ מ ִ 없이 קדצ 를 단독으로 사용한 경우가 훨씬 많다. 히브리 어 קדצ (우리말로는 ‘공의’로, 영어로는 righteous로 주로 번역된다) 의 파생어들은 잠언에 총 92회 나오는데, 그중 66회는 형용사형으로 나온다. 32) 명사형 קדצ 의 뜻에 대해서 학자들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33) 쿠취 (Kutzch) 는 ‘기준 혹은 표준에 복종 혹은 순종,’ 크레머와 악트마이어 (Cremer and Achte- meier) 는 ‘사회적으로 수용 가능한 행동,’ 올리 (Olley) 는 ‘공동체 내의 모든 사람들에게 바르고 조화로움을 가져다주는 것,’ 와트키 (Waltke) 는 ‘사회관계에서 사회적으로 수용 가능한 옳은 행동을 하는 것’이라고 קדצ 에 대해 정의를 내린다. 특별히 와트키는 잠언의 지혜를 모세의 율법과 십계명을 사회와 공동체에서 구체적으로 적용하는 지침서라고 보고, “잠언의 공의는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레 19:18) 는 모세의 가르 침에 상응한다.”고 주장한다. 34) 이런 정의들을 보건데, 한자어 ‘공의’ (公義) 는 공적이라는 뜻의 ‘公’과 ‘옳다, 바르다, 평평하다’는 뜻의 ‘義’가 합친 단어인데, קדצ 을 ‘공의’로 번역한 것은 그 원뜻에 가까운 번역이라고 볼 수 있다. 잠언에서 이 단어가 사용된 경우를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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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David J . Reimer , “ קדצ ” in New International Dictionary Of Old Testament Theology & Exegesis,
vol. 3 . Willem A . VanGemeren ( ed .) ( Grand Rapids , MI : Zondervan , 1997), 757.
33) 아래의 정의들은 다음 책에서 재인용. Bruce K Waltke , “ Righteousness in Proverbs ,” Westminster
Theological Journal 70 (2008), 235.
34) Waltke , Ibid ., 236.
나로 말미암아 왕들이 치리하며 방백들이 공의를 세우며” (8:15) . 부귀 가 내게 있고 장구한 재물과 공의도 그러하니라 (8:18) . 불의의 재물은 무익하여도 공의는 죽음에서 건지느니라” (10:2) . 재물은 진노하시는 날에 무익하나 공의는 죽음에서 건지느니라” (11:4) . 완전한 자의 공의는 자기의 길을 곧게 하려니와 악한 자는 자기의 악으로 말미암아 넘어지리라 (11:5) . 정직한 자의 공의는 자기를 건지려니와 사악한 자는 자기의 악에 잡히리라 (11:6) . 악인의 삯은 허무하되 공의를 뿌린 자의 상은 확실하니라 (11:18) . 공의를 굳게 지키는 자는 생명에 이르고 악 을 따르는 자는 사망에 이르느니라 (11:19) . 공의로운 길에 생명이 있나니 그 길에는 사망이 없느니라 (12:28) . 공의는 행실이 정직한 자를 보호하고 악은 죄인을 패망하게 하느니라 (13:6) . 공의는 나라를 영화 롭게 하고 죄는 백성을 욕되게 하느니라 (14:34) . 악인의 길은 여호와 께서 미워하셔도 공의를 따라가는 자는 그가 사랑하시느니라 (15:9) . 적은 소득이 공의를 겸하면 많은 소득이 불의를 겸한 것보다 나으니라 (16:8) . 악을 행하는 것은 왕들이 미워할 바니 이는 그 보좌가 공의 로 말미암아 굳게 섬이니라 (16:12) . 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이라 공의로 운 길에서 얻으리라 (16:31) . 공의와 인자를 따라 구하는 자는 생명과 공의와 영광을 얻느니라” (21:21) . 너는 입을 열어 공의로 재판하여 곤고한 자와 궁핍한 자를 신원할지니라 (31:9) .
위의 관련 성구에서 보듯, 잠언에서 ה ק ָ ד ָ צ ְ / ק ד ֶ צ ֶ 가 나타나는 곳은 8장에 2회, 31장에 1회 나타나는 것을 제외하고는, 10:1-22:16 단락에서 주 로 나타난다. 이 부분은 375개의 격언으로 이루어진 ‘솔로몬의 잠언’의 첫 번째 단락으로서, 이 부분은 특정 주제로 분류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 나 10:1-15:33은 주로 반의적 평행법 (antithetical parallelism) 이, 16:1- 22:16은 동의적 평행법 (synonymous parallelism) 이 사용되고 있다는 점 에서 형태상의 동일성을 유지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또한 다양한 주 제를 산만하게 다루고 있는 듯 보임에도 불구하고, 주제 면에서 15:33- 16:9 단락은 ‘야웨 잠언’ (The Yahweh Proverbs) 을, 16:10-15 단락은 ‘왕권 잠언’ (Kingship Proverbs) 을 다루는 통일성도 보여준다. 35) 특히 반 르우벤 (Van Leeuwen) 은 16:1-22:16 부분을 ‘궁중 수집물’ (The Royal Collection) 이라고 부른다. 36) 10:1-22:16 부분에서 가장 빈번하게 반복되는 주제는 말 (거짓말, 말조심, 위증) , 부정직한 저울, 게으름, 하나님이 가증스럽게 여기는 바 등에 관한 것이다. 그런데 세속적이며, 타산적 성격이 강한 25-27 장의 솔로몬 잠언과 달리, 10:1-22:16의 솔로몬 잠언은 보다 긍정적이며 종교적인 색채를 띠고 있다. 37) 스코트 (Scott) 는 이 단락에서 야웨의 이름 을 부르고 세상과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도덕적 통치를 인정하는 것은 바 로 예언자의 영향력과 ‘경건’에 대한 지혜문학의 가르침이 합류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38) ‘솔로몬의 첫 번째 잠언’ 단락에서 ה ק ָ ד ָ צ ְ / ק ד ֶ צ ֶ 단어가 주로 사용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공의가 더욱 필요한 시대적 상황을 반향 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잠언에는 이사일의 (二詞一意, hendiadys) 형태형의 ט פ ָ ֗ ש ְ מ ִ וּ ֜ ק ד ֶ צ ֥ ֶ i (1:3; 2:9) 와 ט פ ֑ ָ ש ְ מ ִ וּ ה ק ֣ ָ ד ָ צ ְ i (21:3) 가 나타난다. 그런데 메소포타미아 문헌들 (아카드, 엘람, 우가릿 등) 에도 나타나는 이 형태는 기본적으로 신이 왕에게 부여한 특징이다.39) 이런 기본적 용례는 구약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시 33:5; 72:1-2; 삼하 8:15 등) . 그런데 구약에서 이 형태는 예언서 40) 와 역사서 41) 에도 나타나는데, 공히 실천적 행위 혹은 왕이 공적 영역에서 마땅히 행해야 할 바를 의미한다. 바인펠트 (Weinfeld) 는 ‘정의와 공의’는 공평함과 더불어 자비와 긍휼을 동반하는 사회적 이상임을 밝힌다. 그래서 성서에 서 ‘정의와 공의’는 가난한 자와 억압받는 자를 향한 구체적 행위로 구현된다. 바인펠트는 ט פ ָ ש ְ מ ִ ק ד ֶ צ ֶ 와 ה ק ֽ ָ ד ָ צ ְ וּ ט פ ֥ ָ ש ְ מ ִ 를 구분하는데, 앞의 형태는 ‘올바른 판단/판결’을, 뒤의 이사일의 형태는 ‘사회적 정의’ 개념을 의미한다 고 본다. 42) 즉 이사일의 형태는 단순히 올바르고 공평한 사법적인 정의/ 공의를 말하는 것을 넘어서서, 사회적 정의를 실천하라는 확장된 의미를 내포한다. 구약 안에서 ‘정의와 공의’라는 이사일의 형태의 용례를 고려할 때, 잠언의 목적을 말하는 서두에서부터 이 두 단어를 병치하는 것을 보다 확실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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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Heim 의 최근 연구는 10:1-22:16 단락이 통일된 조직을 갖추고 있음을 입증한다. Knut Martin Heim , Like Grapes of Gold Set in Silver: An Interpretation of Proverbial Clusters in Proverbs 10:1- 22:16 ( Walter De Gruyter Inc , 2001).
36) Raymond C . Van Leeuewen , “ The Book of Proverbs : Introduction , Commentary , and Reflec- tions ,” in The New Interpreter’s Bible vol. 5: Introduction to Wisdom Literature, Proverbs, Ecclesias- tes, Song of Songs, Wisdom, Sirach . Leander E . Kect et al . ( eds ) ( Nashville : Abingdon , 1997), 30. 37) R . B . Y . Scott , Proverbs, Ecclesiastes ( The Anchor Bible ; NY , NY : Doubleday , 1985), 17. 38) Scott , Ibid ., 17.
39) Moshe Weinfeld , “ Justice and Righteousness - ה ק ֽ ָ ד ָ צ ְ וּ ט פ ֥ ָ ש ְ מ ִ - The Expression and Its Meaning ,” in Justice and Righteousness : Biblical Themes and Their Influence , Henning Graf Reventlow and Yair Hoffman ( eds .) ( Sheffield , U . K : JSOT Press , 1992), 230.
40) 이희성은 이사야 56-59장의 ‘정의와 공의’ 용어 연구를 통하여, 이 용어들이 하나님의 언약에 충실한 삶, 인간의 실천적 행위와 더불어 하나님의 구원을 표현하는 경우가 있음을 제시하였다. “이사야 56-59에 나타난 정의와 공의: 주해적 접근을 통한 의미 해석,” 『성경과 신학』(2009), 109-141.
41) 역사서에서 통치자는 ‘모든 백성에게 정의와 공의’를 행할 것을 요구받는다. J . N . Oswalt , “ Justice and Righteousness ,” in Dictionary of the Old Testament: Historical Books Bill . T . Arnold and H . G . M . Williamson ( eds .) ( InterVarsity Press , 2005), 606-609.
지혜롭게, 공의롭게, 정의롭게, 정직하게 행할 일에 대하여 훈계를 받게 하며 (1:3) . 그런즉 네 공의와 정의와 정직 곧 모든 선한 길을 깨 달을 것이라 (2:9) . 나는 정의로운 길로 행하며 공의로운 길 가운데로 다니나니” (8:20) . 공의와 정의를 행하는 것은 제사 드리는 것보다 여 호와께서 기쁘게 여기시느니라 (21:3)
그런데 잠언은 ‘정의와 공의’를 ‘길’이라는 단어들과 연결하는데, ‘정의로운 길 ( ה ק ֥ ָ ד ָ צ ְ ־ח ר ַ א ֹ ֽ ) ’ ‘공의로운 길 ( ט פ ֽ ָ ש ְ מ ִ תוֹ ב ֥ י ת ִ נ ְ ) ’이라는 말로서 일상생활에 서 구현되어야 하는 이상이며,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라 고 선포한다. 나아가 잠언은 정의로운 길, 공의로운 길을 생명의 길과 동 일시한다.
공의를 굳게 지키는 자는 생명에 이르고 악을 따르는 자는 사망에 이 르느니라 (11:19) . 공의로운 길에 생명이 있나니 그 길에는 사망이 없느니라 (12: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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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Weinfeld , “ Justice and Righteousness ,” 236.
잠언은 ‘정의’와 ‘공의’라는 개념을 통해, 현실과 이상이라는 이분법 적 사고의 틀 안에서, ‘부와 가난’의 문제를 ‘계급 타파’나 ‘부의 재분배’라 는 관점에서 해결할 것을 제시하지 않는다. 또한 잠언은 하나님의 백성이 가야 할 길이 ‘깨끗한 부자’라는 유혹적인 메시지를 전하지도 않는다. 결국 잠언의 가르침은 정글 같은 현실 속에서 단순히 생존하는 법을 가르치는 처세술의 책도 아니며,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분노와 좌절을 주머니 속의 송곳처럼 숨기고 있는 사회 비판 서적도 아니다. 분명 잠언은 정경의 일부분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담보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현 실을 바라보고, 현실의 삶을 직시하는 현실적 가르침 속에서도 종말론적인 하나님의 법칙인 공의가 상식이 되는 세상을 이상으로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제적 고통이라는 현실 앞에서 이웃 사랑의 구체적 표현인 ‘공의’가 상식이 되고, 현실이 되는 세상이란 이상주의자의 이상으로 들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 6:31-33) 라고 말 씀하신다. 예수의 이 말씀은 바로 잠언의 정의와 공의의 길이 바로 생명 의 길이라는 말씀과 상통한다.
인과율을 청맹과니 같은 자들의 노랫소리라고 치부하는 자는 누구인 가? 성실히 일한 만큼 보상을 받는다는 원칙을 한갓 희망 사항으로 전락시키는 자는 누구인가? 악하고 불의한 자들이 응당히 받아야 할 대가를 받지 않고 버젓이 살아가도록 버려두는 자는 누구인가? 잠언은 인과율이 지켜지기 위해서는 반드시 ‘정의와 공의의 길’로 가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 그 길만이 모두가 사는, 생명의 길이라고 말한다. 부자가 되는 것이 사는 길이 아니요, 가난을 타파하는 것이 사는 길이 아니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 진리와 현실의 세속적 가치의 충돌이라는 모순 앞에 서 잠언은 지혜로운 개인이 가야 할 길은 ‘공의로운 길’이라고 가르친다. 즉, 잠언 안의 모순된 잠언들은 인과율에 기초한 세상에서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가 지혜로운 개인들의 일상에서 구현되고, 사회적 차원에서 실현되어야 한다는 종말론적 희망을 가르치고 있다.
Ⅳ. 맺는말
잠언은 모든 시대, 모든 세상을 관통하는 진리의 말씀을 담고 있는 책이 아니다. 잠언은 분명 현대인에게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가르침을 담고 있다. 예를 들어, “상하게 때리는 것이 악을 없이 하나니 매는 사람 속에 깊이 들어가느니라” (20:30) , “네가 네 아들에게 희망이 있은즉 그를 징계하되 죽일 마음은 두지 말지니라” (19:18) , “네가 그를 채찍으로 때리면 그의 영혼을 스올에서 구원하리라” (23:14) 와 같은 잠언은 인권을 최우선시하는 요즘 세상에 가히 문제가 될 만한 말씀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본 논문이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는 ‘가난과 부’라는 주제 역시 잠언에서 하나의 통일된, 일관성 있는 가르침으로 제시되지 않고 있다. 일견 모순된 것처럼 보이는 ‘가난과 부’에 대한 잠언들을 본 논문은 ‘잠언-반 잠언-종말론적 잠언’이라는 구조로 설명해보고자 하였다. 이 구조를 통 하여 잠언은 일상의 현실이 우리가 추구하는 이상적 가치관과 모순되게 돌아가는 것에 좌절하고, 한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라는 종 말론적 희망 안에서 구현되어야 함을 가르치고 있음을 제시하고자 하였다. 잠언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는 믿음 하에서 지 혜로운 삶을 추구할 것을 촉구한다.
잠언의 가르침은 오늘도 여전히 유효하며,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기를 원하는 종말론적 기독교인들이 이 세상에서 살아가기 위해 지녀야 할 가치를, 구체적인 세기 (細技) 를 가르치고 있다고 본다. 불가능한 이상이 현실이 되는 세상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이듯, 인과율이 세상에서 그대로 지켜지는 그 세상이 바로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위해 기독교인이 이루어야 하는 세상이라고 잠언은 가르치고 있다.
주제어
잠언, 종말론, 지혜, 가난과 부, 인과율
(Proverbs, Eschatology, Wisdom, Poverty and Wealth, Principle of Causa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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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초록
잠언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 (1:7) 이 되는 세상, 바로 종말론적 기대가 현실이 되는 세상을 지혜의 목적이요 목표라고 가르치고 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라는 선포는 바로 하나 님의 질서와 원칙이 현실이 되는 사회를 향한 갈망을 표현하는 것이다. 잠언은 한편으로 권력과 억압, 주인과 노예라는 차가운 정치적, 경제적, 계급적 ‘현실’을 묘사하고, 다른 한편으로 인과율이 적용되는 세상을 ‘이상’이라고 가르친다. 잠언의 가장 중요한 논제 중 하나인 ‘가난과 부’는 ‘청빈’한 그리스도인이나 ‘깨끗한 부자’ 그리스도인이 되라고 가르치는 것 이 아니라, 인과율이 적용되는 ‘종말론적 희망’을 설파하고 있음을 밝혀 보고자 한다. 본 논문이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는 ‘가난과 부’라는 주제는 잠언에서 하나의 통일된, 일관성 있는 가르침으로 제시되지 않고 있다. 본 논문은 일견 모순된 것처럼 보이는 ‘가난과 부’에 대한 잠언들을 ‘잠언-반잠언-종말론적 잠언’이라는 구조로 설명한다. 이 구조를 통하여 잠언은 일상의 현실이 이상적 가치관과 모순되는 것에 좌절하고, 한탄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라는 종말론적 희망 안에서 구현되어야 함을 가르치고 있음을 제시하고자 한다.
The Eschatological Wisdom on “Poverty and Wealth” of Proverbs
Yoon-Kyung Lee
Associate Professor, Old Testament Studies Ewha Womans University
Proverbs teaches about a world in which “The fear of the Lord is the beginning of knowledge” (1:7) , the world in which eschatological expectations would be realized. The proclamation “The fear of the Lord is the beginning of knowledge” is an expression of a strong desire for a society where God’s order and principles would become a reality. The book of Proverbs teaches both political, economic and hierarchical “reality” and the “ideal” of the law of causality. The theme of “poverty and wealth,” one of the most important Proverbial teachings, is neither about “pure but poor” Christians nor “clean but rich” Christians. This paper rather presents that the theme of “poverty and wealth” teaches an “eschatological hope” by which the law of causality would become a reality. The theme of “poverty and wealth” is not a unified, consistent teaching just like any other proverbial teaching. This paper examines the theme of “poverty and wealth” with a structure of “Proverbs-Counter-Proverbs- Eschatological Proverbs.” With this structure, this paper argues that the book of Proverbs teaches that humans should not remain frustrated by the fact that the reality of our daily life is contradictory to the ideal. Rather, through the teaching of the theme of “poverty and wealth” it teaches that the eschatological hope of divine justice and righteousness should come to realiz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