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주변에는 나의 마누라를 포함해서 대부분의 여성들이
남편을 위해 적은 수입에도
가정을 위해 절약하고 자식들을 키우며 어렵게 살림을 꾸리며 살아 간다.
그리고 남편이 죽을 때 까지 헌신하는 여성들을 많이 본다.
남편이 치매나 뇌졸증으로 고생하는 뒷 수발을 몸소 실천하며 남편 뒷바라지에
몸과 마음을 바친 현모 양처들도 있다.
우리 사회에 여성들의 역할은 가정과 세상을 편안하고 안정되게 하는 마력을 가졌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최고 지도자들의 여인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러 있었다.
고대 중국이나 조선 시대에 왕들의 부인들이 왕의 통제에서 벗어나
국정에 깊숙히 개입하여 역사가 뒤 바뀐 사례가 많았고,
국정을 농락하는 사례가 있었다.
유럽에서도 그런 역사적인 일이 많았었다.그중 프랑스의 왕실 여인인 마리 앙투아네트와
조세핀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마리는 당시 프랑스의 적국인 오스트리아의 여황제의 15번째 딸인 막내 딸로서
프랑스와 오래된 전쟁과 앙숙 관계를 풀기 위해서
루이 15세가 천연두로 일찍 죽자 루이 16세와
14세에 정략 결혼을 했으며.18세에 대관식으로 왕비가 되었다.
마리는 평소 근검 절약하고 생활 태도가 똑바른 엄마의 교육을 받은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자유 분방하고,여러나라 언어에 능통하고,
음악과 예술을 좋아 했고,악기를 잘 타는 활달하고 사교적이며
화려한 성향이고, 모짜르트가 6세 때 궁중 공연하다 넘어지는 것을
이르켜 세우는 자상함으로 즉석에서 청혼을 받기도 했다 한다.
한편 남편 루이 16세는 그와 반대로 조용하고 사색하는 분위기였고.검소한 편이었다.
당시 왕족이나 귀족들은 재정 궁핍을 고려하지 않고,
무절제한 사치로 고가의 예술품을 수집하는 등,국고 손실에 큰 타격이었다.
다른 왕실에 비유하면 루이 부부는 왕실 돈을 그리 많이 쓰지 않았는 데도,
전임 왕가의 부패에 휩쓸려 소문은 좋지 않았다고 한다..
희고 고운 파부와 탐스러운 머리,늘씬한 체형과 그리고 복장과 머리 손질에
관심이 많았고 파리 여성들의 패션 유행에 기여했 으나,
적국 출신의 왕비라 하여 시민들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루이 아버지 루이 15세 애첩이 사려고 하다 너무 고가(200만프랑)여서
사지 못했 던 목걸이를 사기꾼이 마리에게 팔려다 사기 당한
추기경의 '목걸이 사건'이 터졌고, 빵을 달라고 폭동을 이르키는
여인들에게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지 '라고 해
분노를 샀고,세상 물정을 모르는 왕비가 사치와 허영에 몰두 한다는 과장 된
소문을 부풀려,혁명 세력들에게 혁명의 당위성을 주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런 불안한 국내 정세를 간파하고 루이는 마리와 수레로
오스트리아로 망명을 하다 잡혀 감옥에 투옥 되었고,
혁명 세력들에 의해 거름통 실은 수레에 실려 단두대에서
루이 16세 처럼 처형되었는 데, 이때 머리를 하늘로 처다 보게 해
떨어지는 칼날을 보게 했다 한다.그 때 나이 36세였다.
혁명 세력들은 그녀를 성적 스캔들의 주인공으로 만들었고,
그녀가 만족할 줄 모르는 성 도착증이고,조카와 동침을 했다는
뜬 소문 까지 퍼뜨려, 그녀를 괴롭혔다.
다른 역사가들은 그녀는 한편으로 루이가 지어준 별장에서 농촌 처럼 꾸민
정원에서 소박한 삶을 살았으며, 루이가 사냥 하다가 화살에 다친
농부를 친절하게 치료해 주고, 가난한 사람을 도왔으며,
사람들이 싫어하는 감자 꽃을 농민들을 배려하는 심정으로
머리에 꽂고 다니기도 했다 한다.
빈민 구제와 농경 생활에 관심이 많았고, 목걸이 스캔달과 성 스캔달은
모두 조작된 혁명 세력들의 농간이라고 역사 학자들은 말한다.
조세핀은 시민 혁명이 한창이던 때,
프랑스 군대의 포병장교 나폴레옹을 카페에서 만났고,
나폴레옹의 젊은 기상에, 반해 장래를 보고, 열 살 아래인 나폴레옹과 결혼했다
나폴레옹 26세 조세핀은 36세, 나폴레옹은 전 유럽을 통치하는
최초의 황제가 되었으나 조세핀을 통제하지 못했다고 술해 했다.
조세핀은 프랑스 군 장교와 결혼 후 애정 없이 아들 하나를 두고 이혼하고
사교계에서 정치인 들의 애인으로 활동하다가 나폴레옹을 만나
나폴레옹의 구애로 결혼, 황후가 된 여인이다.
이집트 원정 중 조세핀과 기병장교 대위 간의 불륜을 눈치 챈 나폴레옹은
이혼을 결심했으나 친척과 아들의 만류로 결혼 생활이 지속되었으나
애정은 점차 식어 갔고,다른 여성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ㅣ
황후가 된 후 사치는 극도에 달했고,드레스 900벌,장갑 1000켤레,
구두 500켤레 한 해에 장갑 985개와 신발 520개를 주문하기도 했다 한다.
그때 당시 파리 의상실과 보석상은 떼돈을 벌었다고 한다.
이혼 후에도 황후 칭호는 존속했으며,장미를 좋아 해 250종의 장미를 정원에 심었으며
51세에 페렴으로 죽었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루이와 사이는 성격 차이로 좋지 않았다. 그러나 검소한 삶이었으나
당시 전임 왕과 귀족들의 재정 파탄으로, 구설수에 하는 수 없이
정치의 희생물로 단두대에서 처형되었고,
조세핀은 황제의 명성을 등에 업고 화려한
사치 생활을 하다가 일찌기 사망하였다.
두 여인 모두 왕들은 제대로 통제를 못했으며,자의 든 타의 든
국민들의 원성의 대상이었다.
인간은 권좌에 오르면 절제를 잃어 버린 속성이 있나 보다.
돼지가 하늘을 못 보고, 주는 것 만 받아먹다가 죽을 때 하늘을 처다 본다고 한다,
단두대에서 하늘에서 떨어지는 단두대의 칼날을 보고,
천심의 무서움을 알라는 뜻이었을까.....
요즘 정치권에서 디올 빽 사건으로 말이 많다.
천심은 민심이라고 한다.
우리 살아서 '아끼지 말고 쓰다갑시다''.
''좋은 것 아끼지 마세요.옷장속에 들어 있는 새로운 옷
예쁜 옷 잔칫 날 간다고, 결혼식장 간다고,아끼지 마세요.
그러다그러다, 철지나면 헌 옷 되지요.
마음 또한 아끼지 마세요.마음 속에 들어 있는 사랑스런
마음, 정말로 좋은 사람 생기면, 준다고 아끼지 마세요.
그러다 그러다가 마음의 물기 마르면,노인이 되지요.
좋은 옷 있으면 생각 날 때 입고,좋은 음식 있으면
먹고싶을 때 먹고,좋은 음악 있으면, 듣고 싶을 때 들으세요.
더구나 좋은 사람 있으면, 마음 속에 숨겨 두지 말고
마음껏 좋아 하고, 마음 껏 그리워 하세요.
그리하여 때로는 얼굴 붉힐 일 ,눈물 글성일 일 있다 한 들
그게 무슨 대수 겠어요. 지금도 그 대 앞에 꽃이 있고,
좋은 사람이 있지 않나요 그 꽃을 미음껏 좋아 하고,
그 사람을 마음것 그리워 하세요.'' 나태주 시인의 시가 생각 납니다.
착하고 착한 우리 동창 형수씨들에게 마음껏 사랑하고, 있는 데로 베풀고,
말년에 조금이라도 편안 하도록, 작은 집과 정원이라도, 만들어
여생을 보내실 수 있도록 노력 합시다.
사랑해! 친구들! 한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