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호국의 달 6월을 맞아 탈북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저들이 다시 북한으로 들어가 복음을 전하고 반체제 활동을 하도록 지원하는 목사님에 대한 글을 실어봅니다. 그분이나 탈북 작가 이지성씨는 그 일을 하고 싶지 않지만
북한의 동포들이 이대로 멸망을 향해가는 모습을 차마 볼 수 없어 목숨을 걸고 이일을 계속합니다. 그리고 자기들이 보낸 이들이 북한 땅에서 발각되어 순교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안타까워하고 있습니다.
순교 당할 것을 뻔히 알면서도 차마 외면할 수 없기에 그 길을 가는 것입니다. 왜 그들은 복음을 전하며 목숨을 거는 것일까요? 과연 오지랖이 넓기 때문일까요? 아래 손현보 목사님의 좌파와 우파 그리고 기독교에 대한 영상을 꼭 들어보세요.
‘세상이 감당치 못할 사람’
작가(이지성)님, 저는 북한내부에 반체제 조직을 만들고자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저는 그저 중국으로 도망쳐 나온 탈북인들에게 ‘성경이 말씀하시는 하나님’과 ‘자유민주주의’에 대해서 가르쳐주었을 뿐입니다.
그런데, 그들 중 일부가 ‘다시 북한으로 들어가서 반체제 활동을 하겠다.’고 하는 거였습니다. 저는 극구 반대했습니다. 제아무리 날고 긴다고 한들, 언젠가는 붙잡혀서 죽을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무조건 다시 들어가겠다는 것을 어떻게 막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그들의 영적, 정신적 지도자가 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북한 내부의 협력자들을 총동원하고, 활동자금을 지속적으로 보내서, 조직들이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물론, 지금 같으면 절대 불가능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때는 ‘고난의 행군’이 있었던 90년대 말이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제가 당시에 그들을 지도하고 지원했던 것은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그들의 신념과 용기에 전염되었기’ 때문입니다.
히 11 : 36 - 38 또 어떤 이들은 희롱과 채찍질 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험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에 죽는 것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 저희가 광야와 산중과 암혈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참으로 ‘그들은 자기 목숨을 버려 북한을 구하고자’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자신들이 북한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저는 말이 지도자였지, 사실 그들의 믿음에 전염되어 정신없이 이끌려갔을 뿐입니다. 저는 ‘그들이 가졌던 위대한 믿음’을 단 한 번도 가져본 적 없습니다.
그런데요, 작가님! 저는 그들을 막지 못했던 것을 후회합니다. 그들을 지도하고 지원했던 것도요. 그들 중 지금까지 살아있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다들 붙잡혀 잔혹한 고문을 받고 참혹하게 죽었습니다.
물론, 그들이 뿌린 씨앗들이 남아있어서, 반체제 조직들은 지금까지 비밀리에 유지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생명을 살리는 일을 사명으로 받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북한선교사 파송과 북한 반체제 조직 관리는 생명을 버리는 일입니다.
때문에, 제가 자랑할 게 하나도 없습니다. 저는 이 두 사역에 관해서는 ‘죄인의 위치에 있는 사람’입니다. (출처; 이지성의 1만 킬로미터, 이지성 / 소설가)
아시다시피, 우리말의 ‘괜찮다’는 ‘좋다’는 의미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괜찮다’는 ‘관계가 없다, 상관하지 않겠다.’는 뜻의 ‘관계하지 않다’의 준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관심을 갖지 않으면 피해볼 일이 없다’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요컨대, ‘무관심(無關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남의 일에 너무 관심이 많아서 탈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남의 일에 특별히 관심이 많은 사람’을 가리켜서 ‘오지랖이 넓은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말하자면, 작가 이지성 씨나 수퍼맨 목사는 ‘오지랖이 넓은 사람들’입니다.
그 두 사람은 지금 살해위협을 엄청나게 받고 있답니다. 물론, 그들이 북한동포에 대하여 관심을 끊으면, 다시 말해서 북한에 대하여 무관심하면, 죽임당할 위험에서 벗어날 수가 있을 겁니다.
북한동포들에게 잘못이 있다면, 그것은 북한 땅에서 태어났다는 것뿐입니다. 물론, 자신들의 뜻과는 전혀 상관없이 북한 땅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행스럽게도 남한 땅에 태어나서, 그 어떤 나라 사람들보다 뛰어난 문명과 문화의 혜택을 누리고 있습니다.
무관심도 죄(罪)에 속합니다. 북한에 대하여 관심을 갖는 것, 물론 그 한계가 분명합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상황 안에서 관심을 가질 수는 있을 겁니다. 북녘동포들에게 관심을 갖고, 그들의 해방을 위하여 함께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물맷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