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가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이 최상이다.
모르면서 아는 체하는 것이 병이다.
병을 병으로 알아야만 병이 되지 않는다.
성인은 병이 없다.
병을 병으로 깨닫기에 병이 없는 것이다.
(71장)
1장과 맥이 바로 통하는 구절이다. 모름을 안다는 것, 내가 믿고 있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 비틀어 보는 것이 ‘최상’이라고 한다. 왜일까? 어쩌면 우리 삶이 늘 변하기 때문 아닐까. 늘 생동하며 변화하는 자연 안에서 우린 살아가기에, 무언가 확신하고 규정짓기보다는 물 흐르듯 그 안에서 노니며 웃으며 살아가는 게 할 수 있는 최선이 아닐까. 그런 삶의 자세를 말하는 것 같다. 내가 확신하는 것을 의심해보는 것, 내가 보는 것 말고도 보이지 않는 것이 같이 있음을 기억하는 것, <도덕경> 읽고 내 안에 장착하고 싶은 지혜다.
사람이 날 때 부드럽고 약하며, 죽을 때는 딱딱하고 굳는다.
풀과 나무도 살아 있을 때는 부드럽고 무르나,
죽을 때 마르고 딱딱하다.
(76장)
실로 그러하다. 어린 아이의 몸은 말랑말랑 부드럽고, 탄력이 있고, 어른의 몸은 딱딱하고 굳어있다. 몸만 그러랴. 마음도 그렇다. 아이들은 생각하는 데도, 사람을 대하는 데 있어서도 자유롭지만 어른은 자꾸 이것저것 재고 경직되게 사고하고 낯선이에게도 잘 다가가지 못한다. 몸의 차이가 마음에도 드러나나 보다. 관건은 어떻게 하면 딱딱함을 멀리하고 부드럽고 무른 걸 가까이 하느냐이겠다. 나 홀로 할 수는 없으니 그런 것들 가까이 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믿음이 있는 말은 아름답지 않고,
아름다운 말은 미덥지 않다.
좋은 사람은 어눌하고
달변가는 좋은 사람이 아니다.
(81장)
SNS, 인터넷, 미디어 세상을 떠도는 온갖 화려한 말들은 다 그때 뿐이다. 아름다운 말들은 넘쳐나나 실로 미더운 말은 별로 없다. 오히려 너무 빤하거나 낯익은 말이 삶의 진실을 담고 있는 경우가 많다.
‘철학’이나 ‘공부’로 검색하면 해외에서 수입해 온 철학자들의 각종 이론들을 가르치는 곳이 많다. 그런 모임들보다 담박하게 책 읽고 삶 나눌 수 있는 모임이 삶엔 훨씬 유익하다. 세상은 무얼 숨기려고 그렇게 갈수록 화려해지는 걸까, 끝내 빈곤과 허약은 감춰질 수 없다. 그럴수록 삶은 더욱 담박하게 살아야겠다.
첫댓글 도덕경에서 자주 언급했던 질박한 통나무 가 떠오르네요. 그 통나무 처럼 속은 꽉 차있되, 질박한 모습을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