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의 예언 4 (창49:18-21)
(요약)
하나님께서 예수 안에서 주신 은혜 감당법을 갓과 아셀과 납달리를 통해서 알게 된다. 갓은 군병의 축복을 받았다. 이처럼 성도는 선한싸움을 다 싸우고 천국을 침노하며 마귀를 대적하는 적극적인 신앙을 통해 충만함에 도달하게 된다. 아셀은 왕을 공궤하는 축복을 받았다. 이처럼 성도는 왕이신 예수님의 그 정권에 철저히 순복하고 매사를 하나님께 한다는 마음으로 살 때 은혜를 누리게 된다. 그리고 납달리는 자유와 목소리의 복을 받았다. 이처럼 성도는 예수 안에서 주신 자유를 믿을 뿐 아니라 노래할 때 그 풍성한 은혜를 누리게 된다.
(강해)
오늘은 야곱의 예언 네 번째 시간으로 갓과 아셀과 납달리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예수 안에서 주신 은혜를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계속하여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1. 갓은 군병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19절 “갓은 군대의 박격을 받으나 도리어 그 뒤를 추격하리로다” 이 말씀은 갓지파의 호전성과 용맹성에 대한 예언입니다. 갓지파는 가나안 땅 점령 후 가나안의 서안이 아니라 외지인 요단 동편에 기업을 얻었기 때문에 다른 지파에 비해서 자주 외적의 침범을 당했습니다. 때에 따라서는 기업을 지키기 위해서 공격을 감행했습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든 승리함으로써 이 예언은 적중했습니다(대상5:11-18, 12:8-15).
이것이 바로 우리 성도에게 주시는 십자가 군병의 축복입니다. 성도는 예수님의 군사로서 선한 싸움을 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천국은 침노하는 자가 빼앗는다 하셨는데 이것은 방해를 이기는 적극적인 믿음을 가리킵니다. 우리가 은혜 생활하려면 이 전사의 믿음을 가지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래서 6:10-11에 “종말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했습니다. 여기 전신갑주 입으라는 것은 군인이 되라는 말씀인데 그렇게 되면 주 안에서 살게 되고 능력 받아 강해지고 마귀를 능히 대적하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혈과 육에 대해 싸우지 말고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대해서 싸워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마귀 이기고 나니까 능력 받은 간증을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예수님도 광야에서 40일 동안 마귀의 시험을 받으셨는데 시험을 이기니까 능력이 임하셨습니다. 그래서 시험은 축복이 오는 전조현상입니다. 이번 동남아시아의 해일 때 갑자기 물이 빠지니까 어떤 학생이 이것은 해일이 오는 전조하고 하면서 피신해서 살았지 않습니까? 이처럼 시험을 이겨야 축복이 옵니다. 이것은 능력 받는 중요한 원리입니다. 이런 갓지파와 같은 군병의 신앙을 갖길 바랍니다.
2. 아셀은 왕을 공궤하는 복을 받았습니다.
20절 “아셀에게서 나는 식물은 기름진 것이라 그가 왕의 진수를 공궤하리로다” 아셀지파가 분배 받은 땅은 지중해 해변가 갈멜의 낮은 평야지대로 땅이 기름지고 물이 풍부해서 밀과 기름 등의 풍성한 수확을 거두는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곳 식물은 왕궁의 식량으로 조달되었습니다. 솔로몬도 원목을 공급한 두로왕 히람에게 이곳에서 소출되는 식량을 제공한 적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씨를 심으면서도 김을 매면서도 거름을 하면서도 수확을 하면서도 수확한 것을 가공하면서도 항상 머리에 떠나지 않았던 것은 우리가 왕을 섬기고 있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래서 최고의 양질미를 생산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무엇을 하든지 매사에 잊어서는 안 될 것이 우리는 왕이신 하나님을 섬기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그런 생각으로 최선을 다 할 때 하나님께서 풍성한 은혜로 갚아주십니다. 그래서 바울은 에베소에 있는 종인 성도들에게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여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여 단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 이는 각 사람이 무슨 선을 행하든지 종이나 자유하는 자나 주에게 그대로 받을 줄을 앎이니라”(엡6:5-8) 했습니다.
이 원리는 가정에서도(엡5:22) 이웃에게도 동일합니다. 이웃에게 한 것이 예수님께 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의인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을 보고 공궤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25:37-40) 하셨습니다. 우리에게 다스리는 은사를 주셨다고 그래서 아무리 권위가 넘치고 넘쳐도 자기가 섬겨야 할 사람에게까지 주관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절제로서 잘 다듬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나의 왕으로 섬기고 높이고 순종하고 그 정권에 복종해야합니다. 이 복종과 겸손이 있을 때 그곳에 성령이 임하고 그곳에 하나님 나라가 임하고 그곳에 영생이 충만하고 그곳에 능력이 임하고 그곳에 하나님이 친히 일하심이 나타납니다. 그 동안 구원의 하나님을 많이 강조했다면 이제는 이 왕으로 섬기는 훈련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그래서 주님의 이름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가 구원이라면 그리스도는 기름부음 받은 자 즉 왕입니다. 그리고 구원이 믿음으로라면 왕은 철저한 순복과 순종과 높임으로입니다. 그래서 철저히 순복하고 겸손하는 훈련이 필요해요.
3. 납달리가 받은 복은 자유의 복입니다.
21절 “납달리는 놓인 암사슴이라 아름다운 소리를 발하는도다” 놓인 암사슴 얼마나 자유롭고 기쁩니까? 이것을 말라기 선지자는 말4:2에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같이 뛰리라”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야생의 짐승을 붙잡았다가 놓으면 얼마나 재빨리 도망칩니까? 그런데 암사슴은 아름다운 소리까지 발한다고 했습니다. 이 소리가 동물학자들에 의하면 위험을 알리는 소리라고 합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어요. 그 자유는 죄에서 자유, 질고에서 자유, 저주에서 자유, 빈곤에서 자유, 세상 원리에서 자유, 불안과 공포와 죽음에서의 자유입니다. 요8:32에 예수님께서는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하셨습니다. 고후3:17에도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 갈4:31에도 “그런즉 형제들아 우리는 계집종의 자녀가 아니요 자유하는 여자의 자녀니라” 그리고 갈5:1에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하셨습니다.
이 예수 안에서 주신 은혜를 풍성히 누리려면 오늘 납달리에게서 배워야 합니다. 납달리처럼 자신을 모든 부자유에서 놓인 암사슴으로 믿고 믿음과 감사의 아름다운 소리를 발해야합니다. 이 자유를 노래하고 외쳐야 합니다. 왜 그럴까요? 진정한 구원은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기 때문입니다. 여기 구원이란 다른 말로 표현하면 자유입니다. 이 자유를 주님이 이루어 주셨음을 믿고 감사하시고 찬송하세요. 소리를 발하세요. 그래서 복음송의 “승리를 얻겠네.”를 “승리를 얻었네.”로 바꾼 것입니다. 이 진리에 굳게 서고 헛되이 믿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어떤 분이 자기는 49세인데 올해 자꾸 대형사고가 많이 나서 혹시 세상 말로 아홉 9에 걸려서 그런 것 아니냐고 웃음의 소리를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예수님의 보혈이 그런 세상 액운까지도 다 이기셨으니 아홉 9에 염려하지 마시고 감사하라고 했습니다. 이 자유의 복음에 서서 기쁜 소리를 발하는 것이 우리 성도의 모습입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는 예수 안에서 주신 은혜를 누리게 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이 다름 아닌 하나님의 열두 지파라는 사실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모두 갓처럼 그리스도 예수의 강한 군사가 되어 강한 믿음으로 신앙생활하십시다. 또 하나님을 나의 왕으로 모시고 그 앞에 철저히 순복하며 예배하십시다. 그리고 예수 안에서 자유 주셨음을 믿고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예수 안에서 주신 자유를 풍성히 누리시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