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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교회와 성도
성경본문: 느헤미야 12: 40-43
40. 이에 감사 찬송하는 두 떼와 나와 민장의 절반은 하나님의 전에 섰고
41. 제사장 엘리아김과 마아세야와 미냐민과 미가야와 엘료에내와 스가랴와 하나냐는 다 나팔을 잡았고
42. 또 마아세야와 스마야와 엘르아살과 웃시와 여호하난과 말기야와 엘람과 에셀이 함께 있으며 노래하는 자는 크게 찬송하였는데 그 감독은 예스라히야라
43. 이 날에 무리가 크게 제사를 드리고 심히 즐거워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크게 즐거워하게 하셨음이라 부녀와 어린 아이도 즐거워 하였으므로 예루살렘의 즐거워하는 소리가 멀리 들렸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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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누구를 막론하고 가정과 직장과 교회에 속해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그 중에 어느 하나만을 선택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행복한 삶을 사는 사람은 가정이나, 직장이나 교회나 어디서든지 행복한 삶을 사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행복한 삶은 가정과 직장과 교회 중에 하나가 아니라 가정과 직장과 교회가 분리될 수 없는 균형적인 행복이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돈만 있으면 행복하게 되는 줄 알고 직장과 사업 때문에 가정을 소홀히 하거나, 가정을 핑계하고 교회를 소홀히 하는 것은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바로 알지 못하는 것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현실은 가정이나 직장이나 교회나 어느 한 쪽에 치우쳐 균형이 깨진 삶을 살기 때문에 가정이나 직장이나 교회 안에서 잘못된 인간관계로 말미암아 상처를 주고받는 불행한 삶을 살기가 쉬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받아야 할 축복은 사업에 성공하는 것만이 다가 아니라 행복한 가정과 더불어 행복한 교회생활을 하고 있는 것임을 깨닫고, 이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과연 행복한 교회 생활을 하는 성도가 어떤 사람인지 오늘 성경 말씀을 통해서 그 답을 찾아야 하겠습니다.
1. 하나님께 봉헌하는 사람들
세상 어느 민족보다 죄와 상처와 고난이 많은 민족이 있다면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을 받은 이스라엘 민족일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지정학적으로 강대국에 욱여 싸여 강대국의 침략을 받아 멸망을 당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죽임을 당하고, 포로로 끌려가서 노예가 되어 짐승처럼 살아야 했습니다.
그 같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무슨 즐거움과 기쁜 추억이 있었을까요? 아마도 기억조차 하기 싫은 아픈 상처뿐이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와 같은 이스라엘 민족을 특별히 사랑하셔서 강대국의 손에서부터 자유와 해방을 얻어 꿈에 그리던 예루살렘으로 무사히 귀환하게 하셨습니다. 얼마나 기쁨과 감격이 컸을까요?
그러나 그 기쁨도 잠깐 뿐이었습니다. 꿈에 그리던 예루살렘은 전쟁으로 폐허가 되어 오래 동안 방치한 상태였기 때문에 정착하기 어려웠습니다. 가장 시급한 것이 무너진 성벽을 재건하고 예루살렘을 회복하는 일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온갖 훼방과 고난을 무릅쓰고 52일 동안 한 손에는 병기를 들고 훼방하는 적을 방어하고 한 손에는 연장을 들고 밤낮을 가라지 않고 열심히 일하고 성을 쌓아 마침내 52 일 만에 성을 완공했다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루살렘 성이 완공되었다는 기쁨보다는 그동안 자나 깨나 죽도록 성을 쌓는 일에 전념하였기 때문에 육신적으로 매우 지쳐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무슨 기쁨과 행복이 있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성경 본문을 보게 되면 그와 같이 아픔과 상처뿐이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크게 기뻐하고 즐거워한 때가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느 12:43) “이 날에 무리가 큰 제사를 드리고 심히 즐거워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크게 즐거워하게 하셨음이라 부녀와 어린 아이도 즐거워하였으므로 예루살렘이 즐거워하는 소리가 멀리 들렸느니라“
1) 불과 한 절 안에 ‘즐거워’라는 말이 네 번이나 반복되고 있으며,
2) ‘심히, 크게, 멀리 들렸다’고 한 말씀처럼 큰 즐거움이며,
3) 한 두 사람이 아니라 어린아이들조차도 다 함께 즐거워하였으며,
4)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미완료로 지속적인 즐거움이며,
5) 그 주체가 이스라엘 백성이 아닌 하나님께서 주신 즐거움입니다.
우리 주변에 아무리 즐거운 일이 있다고 할지라도 그렇게 큰 즐거움은 보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물론 그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오늘 성경 본문에 나타난 기쁨과는 비교가 될 수 없는 기쁨들이라는 것입니다.
1) 예루살렘 성을 52 일이라는 단시일에 기적적으로 재건하였을 때이고,
2) 오랜 세월동안 중단되었던 제사를 하나님께 다시 드렸을 때이고,
3) 수문 앞 광장에서 에스라가 읽어주는 성경을 듣고 은혜를 받았을 때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무엇이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그와 같은 기쁨과 즐거움과 행복을 누리게 하였을까요?
그것이 바로 완공된 예루살렘 성벽을 하나님께 제물처럼 받혀 드리는 봉헌식 제사를 드렸을 때 하나님께서 내려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그와 같은 큰 기쁨을 이스라엘 온 백성들이 누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느 12:27) “예루살렘 성벽을 봉헌하게 되니 각처에서 레위 사람들을 찾아 예루살렘으로 데려다가 감사하며 노래하며 제금을 치며 비파와 수금을 타며 즐거이 봉헌식을 행하려 하매”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갖가지 고난을 감수하면서 예루살렘 성을 재건한 궁극적인 목적이 어디에 있는가를 나타내 보여주는 것입니다.
예루살렘 성을 재건한 목적이 자기들의 소유로 삼고 안일과 평안을 위해서가 아니라 궁극적으로 하나님께 봉헌하기 위한 것이었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예루살렘 성벽을 하나님께 봉헌한다고 해서 하나님이 그 성을 가져가시거나 세를 받으시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그렇다면 봉헌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이제부터 하나님께서 예루살렘 성의 주인이요, 왕이시오, 통치자가 되시고 그 예루살렘 성에 사는 자기들은 그 하나님의 통치에 절대 복종하며 살겠다는 헌신을 뜻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감사하는 마음으로 노래하며, 악기를 연주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예루살렘 성을 하나님께 올려 드리는 제사를 드렸을 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과거 어느 때도 경험한 적이 없는 큰 기쁨과 즐거움의 복을 부어주심으로 행복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되었습니다.
행복한 교회는 예배를 참석하는 성도들이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좀더 받겠다는 영적인 이기심으로 모이는 교회가 아니라 이미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를 깨닫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의 전인격을 올려 드리는 심정으로 예배를 드리는 성도들이 모인 교회인 것입니다.
(롬 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만일 우리가 그러한 마음으로 교회를 출석하고 예배를 드린다면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들이 드리는 예배를 기쁘게 받으시고, 또한 우리들에게 큰 기쁨과 즐거움의 복을 내려 주심으로 행복한 성도가 되고 행복한 교회가 되게 해 주실 것입니다.
(잠 8:17)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2. 서로 화합하는 사람들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는 일에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돌들을 서로 연결하여 쌓는 일이었습니다. 만일 돌과 돌 사이에 틈이 생기게 되면 적군이 쉽게 성을 무너뜨릴 것입니다.
그러나 성벽을 쌓는 돌을 서로 연결하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과 마음이 마치 성벽의 돌들처럼 서로 연합하여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만일 예루살렘 성을 재건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이 하나가 되지 못했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성벽을 재건하지 못하도록 훼방하던 산발랏과 도비야의 도전을 극복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서로 마음을 같이 하여 화합하는 일은 성벽을 재건할 때만이 아니라 재건된 성벽을 하나님께 봉헌하는 일에 있어서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예루살렘 성벽을 봉헌하는 일 역시 한 두 사람이 아니라 전 이스라엘이 백성들이 서로 하나가 합심하여 하나님을 찬양하고 각종 악기를 연주하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무리를 좌우편 두 그룹으로 나누어 성벽을 행진하는 일에 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가 되어 일사분란하게 협력하였습니다.
1) 이스라엘 각처에서 사람들이 모여 마을을 이룰 정도였습니다.
(28) “이에 노래하는 자들이 예루살렘 사방 들과 느도바 사람의 마을에서 모여들고 (29) 또 벧길갈과 게바와 아스마웻 들에서 모여들었으니 이 노래하는 자들은 자기들을 위하여 예루살렘 사방에 마을들을 이루었음이라”
물론 사람들이 각처에서 먹고 살기에 바빴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 성을 하나님께 봉헌하는 일을 위해 만사를 제쳐 놓고 다 예루살렘 한 곳으로 모였습니다.
2) 제사를 드리기에 앞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물론 성문과 성벽까지 정결하게 하였습니다.
(30)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몸을 정결하게 하고 또 백성과 성문과 성벽을 정결하게 하니라”
과거에 조상들은 형식적인 제사로만 만족하였으나 예루살렘 성벽을 봉헌하고자 하는 무리들은 제사의 형식보다 성결하게 하는 일을 보다 더 중요하게 여겼을 때 하나님이 그것을 기뻐하셨습니다.
3) 이스라엘 각처에서 모인 사람들의 수가 많아 한꺼번에 성을 돌수 없기 때문에 두 그룹으로 나누어 성을 돌았으나 두 그룹이 결국 하나님의 전 앞에서 함께 만났습니다.
(40) “이에 감사 찬송하는 두 무리가 하나님의 전에 섰고 또 나와 민장의 절반도 함께 하였고“
그와 같은 심정으로 서로 하나가 되어 하나님께 예루살렘 성을 봉헌하는 제사를 드리게 될 때 하나님께서 그 봉헌식에 참여한 자들의 마음속에 하나님께서 큰 기쁨을 부어주심으로 온 백성들이 즐겁게 하나님을 찬송하였을 때 그 소리가 멀리까지 들렸다고 하였습니다.
(43) “이 날에 무리가 큰 제사를 드리고 심히 즐거워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크게 즐거워하게 하셨음이라 부녀와 어린 아이도 즐거워하였으므로 예루살렘이 즐거워하는 소리가 멀리 들렸느니라”
하나님은 가족과 이웃과 교우들이 서로 하나가 되어 사랑하고 협력하여 일하는 것을 기뻐하시는 반면, 사탄은 정 반대로 잘 모이지 않게 하고 억지로라도 모이게 되면 서로 반목하고 분쟁하고 분열하게 하는 일을 해오고 있습니다.
그 결과 창조주 하나님과 그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인간과 불화하고 인간들끼리 반목하고 불화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와 같은 세상에 교회를 세우신 것은 교회를 통해서 사람들이 모이게 하시고, 모인 사람들이 예수 안에서 서로 사랑하고 협력하고 화합하는 가정과 사회와 국가와 교회를 축복하시기를 기뻐하십니다.
(시 133:1)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골 2:2) "이는 그들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확실한 이해의 모든 풍성함과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니"
오늘도 주님의 몸된 교회 안에서 그 같은 원리가 동일하게 적용되어져야만 합니다. 다시 말해서 한 교회 안에서 사람마다 맡은 직분이나 업무가 각기 다를 수 있습니다. 이를 테면 찬양대원과 주일학교 교사의 하는 일과 목사 장로 집사라는 직책이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무슨 직책이나 직분이든지 막론하고 그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한 공동 목표아래 서로 하나가 되어야만 합니다.
그러한 사람들이 모여 예배하는 교회가 바로, 분쟁과 갈등이 많은 현대 교회 가운데서 행복한 교회인 것입니다.
3. 주의 일에 충성하는 사람들
예루살렘을 완공하였으나 그것이 다가 아니라 예루살렘 성을 잘 유지 하는 일이 보다 더 중요하였습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각 계층의 사람들을 보다 더 많이 예루살렘 성안에 정착시켜 강대한 성읍이 되게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에 거주하는 것을 부담스럽게 생각하고 기피하였습니다.
느헤미야는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 지도자들이 솔선수범하고,
2) 제비 뽑힌 십분의 일과, 자원하는 사람들로 필요한 인력을 충원하여 각기 자기가 해야 할 일들을 분담하게 하였습니다.
오늘 성경 본문에 나오는 사람들의 이름이 바로 그와 같은 역할을 담당한 사람들입니다.
1) 제사장들과 형제의 지도자들
(7) “살루와 아목과 힐기야와 여다야니 이상은 예수아 때에 제사장들과 그들의 형제의 지도자들이었느니라”
2) 찬양하며 감사하는 자들
(24) “레위 족속의 지도자들은 하사뱌와 세레뱌와 갓미엘의 아들 예수아라 그들은 그들의 형제의 맞은편에 있어 하나님의 사람 다윗의 명령대로 순서를 따라 주를 찬양하며 감사하고“
(36) “그의 형제들인 스마야와 아사렐과 밀랄래와 길랄래와 마애와 느다넬과 유다와 하나니라 다 하나님의 사람 다윗의 악기를 잡았고 학사 에스라가 앞서서”
3) 성문을 지키는 문지기들(25절)
(25) “맛다냐와 박부갸와 오바댜와 므술람과 달몬과 악굽은 다 문지기로서 순서대로 문안의 곳간을 파수하였나니”
비록 성문을 여닫는 하찮은 일이지만 각자 맡겨진 일에 꾀를 부리지 않고 최선을 다하여 충성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45)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일과 결례의 일을 힘썼으며 노래하는 자들과 문지기들도 그러하여 모두 다윗과 그의 아들 솔로몬의 명령을 따라 행하였으니”
여기서 ‘힘썼다’는 말은 와우 계속 미완료 동사로서 지키고 보존하고 준수하는 일에 최선을 다했다는 뜻입니다.
놀라운 사실은 그와 같은 일들이 인간들이 보기에는 마땅히 해야만 하는 일이고 대수롭지 않은 일인 것 같은데도 그 일에 힘써 충성한 사람들이 누구인지 그 이름들을 성경에 기록해 놓았다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은 오늘도 주님의 몸된 교회에서 이름 없이 빛도 없이 묵묵히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해 충성하는 성도가 누구인지 다 아시고 착한 종이라고 칭찬하시며 또한 그 이름을 하늘 생명책에 기록해 놓으실 것을 믿어야 합니다.
(빌 4:3)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한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여인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외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주신 직분이나 직책은 수직적인 감투가 아니라 달란트 비유와 같이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이며 은사입니다.
달란트를 많이 받았느냐 적게 받았느냐가 아니라 하나님이 맡겨주신 직분의 높고 낮음이 아니라 작은 일에 얼마나 충성하였는가의 유무인 것입니다.
(마 25:23)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크고 작고, 높고 낮고를 막론하고 충성스러운 일꾼들이 많은 교회가 행복한 교회인 것입니다.
결 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비록 가정과 직장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상처를 받아 만신창이가 되었다고 할지라도 행복한 교회 생활을 할 수 있다면 치유와 회복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감사와 기쁨이 넘치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상처뿐 이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온갖 고난을 극복하며 52일 만에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여 하나님께 봉헌할 때 기쁨이 충만한 행복한 봉헌식이었다고 하였습니다. 그 비결은 하나님께서 그와 같은 복을 주셨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43) “이 날에 무리가 큰 제사를 드리고 심히 즐거워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크게 즐거워하게 하셨음이라 부녀와 어린 아이도 즐거워하였으므로 예루살렘이 즐거워하는 소리가 멀리 들렸느니라”
우리가 주일마다 이처럼 모여 하나님께 우리의 몸을 산제사로 드리는 신령과 진정의 예배를 통해 우리들도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은 큰 즐거움을 체험할 수 있다면 바로 행복한 교회, 행복한 성도의 축복을 받은 사람인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주님의 몸된 교회에 모여 하나님을 섬기고 서로를 섬겨야 합니다. 어느 민족보다 슬픈 일이 많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루살렘 성벽을 봉헌하면서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큰 기쁨과 즐거움을 누릴 수 있게 되었던 비결을 우리도 본받아야 하겠습니다.
1) 만사를 제쳐 놓고 주일마다 주의 전으로 모이고(28, 29).
2) 한 주간에 지은 죄를 회개함으로 몸과 마음을 정결하게 하고(30).
3) 즐거운 마음으로 감사 찬송하는 역동적인 예배를 드리며(38, 40, 46).
4)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섬기는 일이 각기 다를지라도 궁극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목적을 위해 하나가 되며(40, 42).
5) 내 지식이나 경험이나 고집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최우선으로 하고(44)
6)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깨달아 최선을 다해 힘써야 합니다(45).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변함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회개하는 자의 죄를 사해주시며, 병든 마음과 육체를 치유하시며, 어려운 문제를 극복하고 해결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시며, 슬픔이 기쁨이 되게 하시며, 절망이 소망이 되게 하시며, 죽음에서 영생으로 전환해 주시는 복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우리가 그 하나님께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은 믿음으로, 심정으로 예배를 드린다면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와 성도들에게도 동일한 기쁨과 감사가 넘치는 행복한 교회, 행복한 성도가 되는 복을 주실 것입니다.
(시 65:4) "주께서 택하시고 가까이 오게 하사 주의 뜰에 살게 하신 사람은 복이 있나이다 우리가 주의 집 곧 주의 성전의 아름다움으로 만족하리이다"
출처: 성경 벌레들 글쓴이: 성경 벌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