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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1-7
네 눈물을 보았노라 / 김상복 목사
일생을 살다보면 막다른 골목에 설 때가 있습니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탈출구가 없는 상황을 ‘사면초가’(四面楚歌)라고 하지요. 얼마 전에 카드 빚에서 도저히 헤어날 수 없어서 어린 두 아이와 함께 온 가족이 자살한 일이 있었습니다. 젊은 남편이 중풍에 걸려 쓰러지자 직장생활에 대한 생각도, 준비도 없던 아내는 어린 세 자녀를 쳐다보며 막막해 합니다. 직장에서 해고된 가장이 경기가 어려워 직장을 찾지 못하다가 한 곳에 희망을 걸고 있었는데, 걸려온 전화는 마지막 희망마저 끊어버립니다. 한 사업가가 토요일 12시까지 어음을 막아야 되는데 11시에 제게 전화를 합니다. “목사님, 12시가 지나면 제 사업은 끝장이 납니다. 그런데 아직도 길이 보이지 않습니다. 기도해 주십시오.” 그래서 전화로 같이 기도했습니다. 의사가 최후통첩을 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으니 이제 집으로 데려 가세요.” 그 가족의 절망감은 이루 말을 할 수 없지요. 이런 일들이 없기를 바라지만, 있습니다! 지난 주간에도 이런 일들이 우리 중에 있었을 것입니다.
히스기야 왕도 같은 경험을 했습니다. 선지자가 와서 말합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너는 이제 집을 정리하라. 네가 죽을 것이요 살지 못하리라.”
죽을 준비를 하라는 것입니다. 그는 절망감이 들었습니다.
이런 경우에 사람들은 여러 가지로 반응합니다.
어떤 사람은 혼자 고심하다가 우울증에 빠져 정신착란을 일으킵니다.
어떤 사람은 권력가나 재력가를 찾아가서 살려달라고 하소연합니다.
어떤 사람은 절망 가운데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어떤 사람은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돌리며 복수합니다.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은 복수를 위해 폭탄을 몸에 두르고 자폭하여 무고한 사람들까지 수십 수백 명씩 죽여 버립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반응합니까?
히스기야는 절망의 순간에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낯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하였습니다(2절).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진실과 전심으로 주 앞에 행하며...”(3절),
그가 어떻게 살아왔다고 고백하는 것입니까?
마음을 다해 주를 성실하게 섬겨왔고 주 앞에서 선하게 살려고 노력해 왔다는 것입니다.
“제가 왕이 되었을 때는 이 땅에 우상이 팽배하고 악이 성했지만 제가 우상을 제거하고 우리 백성으로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않았습니까? 제가 이사야와 함께 얼마나 노력을 했습니까? 하나님이 아시지 않습니까?”
여러분도 이와 같은 간증을 할 수 있습니까? 오늘 이 아침 제가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설령 우리가 연약해서 실수를 할지라도, 우리의 마음이 연약해서 결심한대로 다 하지 못할지라도, 우리도 하나님 앞에서 히스기야처럼 정성과 뜻과 힘과 목숨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키려고 노력했다고 고백할 수 있기 바랍니다.
“인생을 낭비하며 제 멋대로 허무하게 살아왔는데 이대로는 억울해서 죽을 수가 없습니다. 한번만 더 기회를 주십시오.” 라고 해서야 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 한 분 한 분의 마음속에 말씀해 주셔서 매일매일 신실하게 살다가 하나님이 언제 부르셔도 히스기야처럼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전후좌우가 꽉 막혀 있을 때도 한 곳은 남아있지요? 위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고개 들어 하나님을 쳐다보고 하나님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부르짖는 것입니다. 잠이 안 오면 교회에 와서 기도하십시오. 때때로 조용한 영아부 예배실이나 일본어 예배실에서 밤을 새워 기도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은 보지 못해도 하나님은 보십니다. 술을 마신다고 잊혀집니까? 몇 시간이 지나면 깨어나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계십니다! 히스기야의 하나님이 여러분과 저의 하나님인 것을 믿고 하나님께 나와서 부르짖으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시험당할 즈음에 피할 길을 주사 능히 감당하게 하십니다”(고전10:13).
우리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하나님은 해결하실 수 있습니다.
인간은 건강에도, 경제에도, 능력에도 한계가 있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그 한계상황을 뛰어 넘을 수 있는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이심을 기억하십시오!
그분에게 찾아 가십시오!
그분에게 부르짖으십시오!
그분 앞에서 눈물을 흘리십시오!
하나님은 해결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총이 나타납니다.
“너는 돌아가서 내 백성의 주권자 히스기야에게 이르기를 ‘왕의 조상 다윗의 하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하라”(5절).
아! 이 말씀이 우리에게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
하나님께서 “네 기도를 들었다, 네 눈물을 보았다” 말씀하십니다.
기도를 통해 악조건을 극복한 일이 기독교 역사에 한 두 번입니까? 여러분도 과거에 경험하셨고 지금도 경험하고 있습니다. 홀로 방황하지 말고, 사람 붙들고 하소연하지 말고 하나님을 붙드십시오.
하나님 앞에서 부르짖고 눈물 흘리며 기도할 때 하나님이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하시며 해결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히스기야에게 “네가 3일 후에 여호와의 전에 올라갈 것이다”(5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곧 예배하러 갈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인생의 문제가 하나님을 통해 해결되면 하나님께 예배하고 싶어집니다.
이 시간에 예배하러 오게 하신 하나님을 찬양하십시다.
병 고침 받아서 기뻐하는 것보다 오늘도 병나지 않고 건강한 것이 더 큰 기적입니다.
많은 돈을 들이고 어려움을 겪고 나서 하나님을 찾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감사하며 하나님의 은혜로 건강하게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아침에 침대에서 일어나려면 오장육부백체가 다 건강해야 합니다.
발목 하나라도 고장 나면 이 자리에 예배드리러 올 수 없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오신 것은 건강하다는 증거요, 하나님을 찾는 마음이 있다는 증거요,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증거요,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가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나 건강한 사람들이라고 다 예배를 드립니까?
건강하고 날씨 좋으니 주일에 골프 치러 가더군요.
그러나 우리는 몸도 마음도 영혼도 건강해서 예배드릴 수 있는 축복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드리십시다.
그리고 기도하십시오.
“하나님, 이 건강 이 축복 날마다 허락하옵소서. 주님의 교회가 열려 있을 때에, 함께 성도가 모여 예배드리는 주일에는 늘 주님의 교회에 와서 예배드릴 수 있는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
예배드리러 하나님의 전에 올라가는 것은 인생의 큰 축복입니다.
저는 새벽기도에 오시는 분들을 보고 감동합니다. 첫 번째 찬송을 드릴 때 참 감동이 됩니다. 기도하며 그 분들을 축복합니다. 일어날 수 없는 사람들도 있고, 일어났어도 오고 싶지 않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일어나고 싶어도 밤 1시까지 영화 보느라고 앉아 있다 보니까 새벽에 눈이 떠지지 않아요. 새벽기도를 하려면 밤 문화를 새벽 문화로 바꾸어야 합니다. 밤에 늦게까지 안 자면서 새벽기도를 할 수는 없어요. 새벽에 일어나 하나님 앞에서 첫 호흡으로 찬양하는 것은 보통 축복이 아닙니다.
저는 종종 병원에 심방 가서 이런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다음 주일에 주님의 전에서 예배할 수 있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 믿는 사람이 몸이 약해서, 병 때문에 주님의 전에서 예배를 드리지 못하는 것은 견딜 수 없습니다.
“언제 내가 병이 나아서 주님의 전에 가서 그 우렁찬 찬송을 들으며 함께 예배드릴까?” 여러분은 매일 새벽마다 기도하시며 하나님의 은총으로 사시기를 바랍니다.
눈물을 흘리며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나를 도와주십니다. “내가 네 날을 십 오년을 더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6절).
생명연장은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생명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
위대하신 하나님께서 우리 생각보다 더 큰 은혜를 우리의 삶에 부어주실 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나의 공동체까지 보호해 주십니다.
히스기야에게 “너와 이 성을 적의 손에서 구하여 주겠다” 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이 앗시리아 군대에 망하게 되었는데 하나님께서 히스기야의 기도와 눈물을 보시고 그의 생명을 늘려주셨을 뿐 아니라 그 공동체까지 구해 주셨습니다. 여러분의 눈물의 기도 때문에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족, 직장, 교회, 나라와 민족이 구원받게 되길 바랍니다.
요즘 뉴스를 들어보면 우리나라가 곧 망할 것 같습니다.
이북사람들이 제일 신나는 것이 무엇인줄 아십니까?
남한의 신문 방송을 매일 보며 “아, 남한이 곧 망하겠구나. 조금만 기다리자” 하는 것입니다.
제가 미국에 있을 때 북한에서 15년 동안 신문을 계속 우리 집에 보내주었습니다. 불온문서지요. 남한이 마치 내일 망할 것이고 북한이 당장 통일을 이룰 것처럼 보도하더군요. 그런데 그게 50년이 걸렸고 아직도 망하지 않았습니다.
요즘도 그렇지요.
어떻게 나라가 이 모양입니까?
하나님이 살려 주시겠나? 늘 불안하고 염려가 됩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계속 전진하는 거예요. GNP가 세계 10위권에 들어갑니다. 반도체 생산이 1등입니다. 축구시합하면 4등이고 유니버시아드를 하면 2등입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꼭 망할 것 같은데 안 망하는 거예요.
왜 그런가? 저는 믿습니다.
천이백만 하나님의 자녀들이 기도하고 통곡하고 눈물을 흘리며 부르짖기에 하나님께서 그 눈물을 보시고 이 백성을 불쌍히 여겨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앞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사회를 보면 망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하는 눈물을 보시고 이 백성을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계속 회개하고 기도하며 눈물을 흘려야 합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이나 다른 신을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서 눈물을 흘리겠습니까? 여러분과 제가 우리 가족과 교회와 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하나님 앞에 부르짖고 눈물을 흘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할 때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도 더 큰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우리가 해야 합니다. 우리가 할 일을 소홀히 하면서 하나님만 의지하려는 것은 믿는 사람의 도리가 아닙니다.
“이사야가 가로되 무화과 반죽을 가져오라 하매 무리가 가져다가 그 종처에 놓으니 나으니라”(7절)고 하였습니다.
무화과를 이겨서 상처에 붙이는 것까지는 내가 할 수 있습니다. 낫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오병이어로 5천명을 어떻게 먹이셨습니까? 어린 소년이 자기 점심으로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져왔다가 주님께 드렸습니다. 즉 자기의 일을 하니 예수님께서 손을 들어 축복하셔서 성인남자 5천명, 여자 5천명, 아이 5천명, 다 합해서 만 오천 명을 먹이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시간과 두뇌와 힘과 건강과 재능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받은 것을 하나님께 바쳐야 합니다.
제가 고 3 때 교회에서 학생회장을 하면서 보니까 친구들이 주님을 너무 열심히 섬기느라고 공부를 안 하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하나님께서 시험 잘 보게 해주시고 대학에 합격시켜 주시려면 우선 너희 머리에 들어간 것이 있어야 기억나게 해 주시지, 들어간 것이 없는데 어디에서 나오냐? 몇 달 있으면 시험이니 집에 가서 공부하자” 했더니 그 아이들이 “주님을 위해 일하고 있기 때문에 주님이 합격시켜 주실 거야” 하더군요. 그런데 그런 말 한 아이들은 다 떨어졌습니다. 저는 붙었습니다. 바쳐야지요. 주님께서 주신 능력, 건강, 시간, 모든 것 총동원해서 드리고 “손들어 축복하옵소서” 할 때 하나님의 기적이 나타나지, 아무 것도 안 하고 “하나님이여 나를 축복 해 주옵소서” 하는 것은 미신입니다. 다섯 달란트 주셨으면 그것 가지고 “즉시 나가” 장사하고, 두 달란트 주셨으면 그것 가지고 뛰어야 합니다. “우리 주인이 고약해서 내게 한 달란트밖에 안 주었어. 나는 안 해” 하는 것은 신자의 자세가 아닙니다. 내게 주신 것을 내 가족과 직장과 사업체와 교회를 위해서 하나님께 드리고 하나님의 축복을 기다리며 눈물로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은총을 주실 수 있습니다.
히스기야를 하나님의 전에 사흘 만에 올라가게 하시고, 생명을 15년 연장시켜 주시고, 아들을 낳게 하시고, 나라에 평화를 주셨습니다.
물에 빠진 베드로가 “살려 주소서” 부르짖었더니 예수님이 건져주셨습니다.
죽어가는 하인을 고쳐달라고 하소연한 주인에게 예수님이 “네 하인이 나았다”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병자에게 “네가 낫기를 원하느냐?”고 왜 물으십니까? 그 속에 믿음이 일어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주여, 낫기를 원합니다.” 그 믿음을 축복하시는 것입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으리라. 네가 이것을 믿느냐?” 마르다가 “주여 내가 믿나이다” 하며 자기의 마음을 드렸더니 죽은 나사로가 살아났습니다.
다윗과 엘리의 이야기를 아시지요?
하나님께서 그 둘에게 “네 아들이 죽을 것이다”라고 똑같은 말씀을 하셨는데 반응은 전혀 달랐습니다.
엘리 제사장은 “하나님이 내 아들 죽는다는데 무슨 수로 막나?” 하며 의자에 앉아 흔들거리다가 뒤로 자빠져 목이 부러져 죽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금식하고 베옷 입고 한 달 동안 울부짖으며 기도했습니다. 그 결과는 같았습니다. 엘리의 두 아들도 죽었고 다윗의 아들도 죽었습니다.
한 가지 다른 것은 다윗의 아들이 죽은 후에 솔로몬을 얻은 것입니다. 그 후손이 대대로 왕이 되었습니다. 시간은 걸렸지만 그 부르짖음과 통곡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솔로몬을 일으켜서 세계에서 가장 지혜로운 아들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가문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하게 하셨습니다.
여러분! 나태하면 안 됩니다.
실망하고 주저앉아 있으면 안 됩니다. 받은 능력과 시간과 재능을 하나님께 드리면서 “하나님, 축복하여 주옵소서” 눈물로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눈물을 보십니다.
히스기야는 하나님께 응답의 증거를 보여 달라고 구하였습니다(8절).
응답은 받았지만 사실인지 아닌지 불안하니 증거를 보여 달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양털 테스트’라고 합니다.
사사 기드온도 그랬지요. “하나님, 저를 통해 이스라엘을 구하신다고 하지만 저는 우리 가문에서 제일 작고 능력도 없으니 그 말씀을 믿을 수 없습니다. 증거를 보여 주십시오. 양털을 갖다 놓을 테니까 오늘 밤이 지나면 양털만 이슬에 젖게 해 보십시오.” 양털만 젖었지요. “양털만 마르게 하십시오” 했더니 양털만 말랐습니다. “내가 갖다 놓은 물과 죽을 태워 없애 주십시오” 했더니 타버렸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을 격려하시고 여러분에게 기대감과 소망을 주시고 여러분의 앞날을 보여주시는 하나님께서 그 증거를 보여주시지 않겠습니까?
믿음으로 하나님께 구하십시오.
절망 속에서 헤매지 않고 빛을 보여 달라고 구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가슴을 희망으로 채워주실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양재동에 있을 때 “하나님, 우리가 가야할 곳이 어딥니까?” 기도했더니 “갈 길이 있다. 믿음으로 기도했으니 내가 인도하리라”고 하셨습니다. 6개월 후에 권사님들이 찾아와서 “목사님, 하나님께 땅을 달라고 기도하겠습니다” 하시더군요. 저는 그것을 양털의 사인으로 보았습니다. 한 달 후에 이 땅이 나왔습니다. 그 때 예금해 놓은 돈은 한 푼도 없었지만 오늘은 우리가 이 성전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의 눈물을 보시고,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에게 증거를 보여주시면서 인도해 주셨습니다. 1차 공사가 끝났을 때에도 기도했더니 하나님께서 “이제 좀 쉬어라. 모두들 지쳤다” 하셨습니다. 2차 공사 시작할 때도 “하나님, 언제 다시 시작할까요?” 했더니 “올 가을부터 해라”하셨습니다. 그러자 권사님들께서 또 오셔서 “목사님, 이제 다시 건축을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가 기도하겠습니다” 하셨고, 젊은 집사님들이 찾아와서 “이제 시작해야 하지 않나요?” 하셨습니다.
물론 저는 하나님께 이미 듣고 있었지만 권사님들과 젊은 집사님들을 통해서 확인하였습니다. 그래서 장로님들께 말씀드리니 모두 환영하셔서 2차 공사를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지금 한참 진행 중이지요. 이제 내년 봄이 되면 본당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조금만 기다리십시오.
여러분도 어려운 문제들을 끌어안고 몸부림칠 때 하나님께 싸인을 보여 달라고 구하십시오.
싸인을 요구한 히스기야에게 하나님은 책망하시지 않고 “햇빛을 앞으로 19도 보내줄까, 뒤로 10도 돌려줄까?” 물으셨습니다.
히스기야가 “앞으로 가는 것은 쉬우니 뒤로 가게 해 주십시오”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합니다. 말이 안 되니까 하나님이지요. 그 날 히스기야는 응답을 얻었고, 사흘 후에 주의 전에 가서 예배를 드렸고, 15년을 더 살았고, 그 동안 아들까지 태어나서 자기의 왕위를 승계하게 됩니다.
여러분! 인생을 살다보면 우리의 능력을 넘어서는 문제들에 직면하게 됩니다.
그것이 건강이든지 가정이든지 직장이든지 사업체든지 인간관계나 어떤 문제든지 혼자 고민하고 괴로워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 나와서 눈물로 기도하십시오.
그래서 하나님으로부터 15년 생명연장을 받는 축복들이 있기를 바랍니다.
히스기야가 경험한 그 하나님이 여러분과 저의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히스기야 때나 예수님 때나 오늘이나 변하지 않으셨습니다.
영원토록 동일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정말 힘들면 눈물을 흘리면서라도 전심을 다해서 하나님께 간구하십시오.
하나님으로부터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는 음성을 들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