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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 사울의 종 시바가 답합니다. "요나단의 아들 하나가 있는데 다리 저는 자니이다... 그가 로드발 암미엘의 아들 마길의 집에 있나이다."
히브리어 의미: '로(Lo)'는 '없다(No)', '드발(Debar)'은 **'말씀/초장(Word/Pasture)'**입니다. 즉 로드발은 **"말씀이 없는 곳, 꼴(양식)이 없는 메마른 황무지"**라는 뜻입니다.
므비보셋의 실존: 그는 할아버지(사울)와 아버지(요나단)가 죽던 날, 유모가 안고 도망치다 떨어뜨려 두 발을 다 절게 되었습니다(삼하 4:4). 그는 언제 다윗의 칼날이 날아올지 몰라 두려움에 떨며 '로드발'이라는 영적 지옥에 숨어 살고 있었습니다.
Theological Lens: 이것이 바로 예수님을 만나기 전 **'우리의 영적 현주소'**입니다. 하나님과 원수 된 가문(아담의 후손)에서 태어나, 영적인 두 다리가 부러진 채, 말씀이 없는 세상(로드발)에서 심판의 두려움에 떨며 숨어 사는 존재. 그것이 바로 '나'입니다.
B. 죽은 개 같은 나를 (삼하 9:6-8)
만남: 다윗의 군대가 로드발을 덮쳤을 때 므비보셋은 죽음을 직감했을 것입니다. 다윗 앞에 엎드린 그에게 다윗이 말합니다.
"무서워하지 말라(Do not fear)... 내가 반드시 네 할아버지 사울의 모든 밭을 다 네게 도로 주겠고 또 너는 항상 내 상에서 떡을 먹을지니라."
반응: 므비보셋이 절하여 이르되 "이 종이 무엇이기에 왕께서 죽은 개 같은 나를 돌아보시나이까?"
이 고백은 기독교 신앙의 출발점입니다. 내가 왕의 식탁에 앉을 자격이 1%도 없는, 철저한 죄인('죽은 개')임을 인정할 때 비로소 은혜가 쏟아집니다.
C. "요나단으로 말미암아" (For Jonathan's Sake) (삼하 9:1, 7)
다윗이 이 엄청난 은혜를 베푼 이유가 무엇입니까? 므비보셋이 불쌍해서? 그가 착해서? 아닙니다. 성경은 정확히 못 박습니다. "요나단으로 말미암아."
과거 요나단과 맺었던 '언약(Covenant)' 때문입니다.
구속사적 알레고리: 하나님이 왜 우리 같은 죄인을 용서하시고 자녀 삼아 주십니까? 우리가 예뻐서가 아닙니다. 십자가에서 피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For Jesus' Sake)" 우리를 받아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칭의(Justification)의 핵심입니다!
3. 신학적 렌즈 (Theological Lens): 식탁보의 신학 (The Theology of the Tablecloth)
본문의 결론은 13절입니다.
"므비보셋이 항상 왕의 상에서 먹으므로 예루살렘에 우거하니라 그는 두 발을 다 절더라."
질문: 므비보셋이 다윗의 식탁에 앉았다고 해서 그의 절뚝거리는 다리가 고쳐졌습니까? 아닙니다. 여전히 두 발을 다 절었습니다.
은혜의 신비: 그러나 그가 왕자들과 함께 식탁에 앉았을 때, 그의 그 흉측하게 굽은 두 다리는 '왕의 식탁보' 아래로 완벽하게 가려졌습니다. 위에서 보면 그는 완벽한 '왕의 아들'입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은혜입니다. 예수 믿었다고 우리의 찌질한 성품, 연약함, 과거의 상처(절뚝거리는 다리)가 하루아침에 없어지지 않습니다. 여전히 우리는 절뚝거립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보혈이라는 '식탁보'**가 우리의 허물을 덮었기에, 하나님은 우리를 '완벽한 의인(왕의 자녀)'으로 대우하십니다. (롬 4:7 "그 불법이 사함을 받고 그 죄가 가리어짐을 받는 사람들은 복이 있고")
4. 목회적 적용 (Pastoral Point)
1. "우리 교회는 '로드발'을 향해 묻고 있습니까?"
목사님, 아름다운교회가 해야 할 가장 위대한 질문이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 주변에 은총을 베풀 남은 자가 어디 있느냐?" 끼리끼리 모여서 밥 먹는 것은 동호회입니다. 영적으로 두 다리를 저는 자들, 세상에서 실패하고 숨어 있는 자들을 수색하여 찾아내어 식탁에 앉히는 것, 이것이 교회의 사명입니다.
2. "자격을 묻지 않는 헤세드(Hesed)를 베푸십시오."
다윗은 므비보셋에게 충성 서약을 요구하거나 회개를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일방적으로 찾아가, 일방적으로 회복시켜 주었습니다. 목회 현장에서 성도들에게 '자격'을 따지지 마십시오. "네가 십일조를 이만큼 했으니, 봉사를 이만큼 했으니 은혜를 주겠다"는 것은 복음이 아닙니다. 일방적으로 쏟아붓는 것이 헤세드입니다.
3. "다리를 절어도 괜찮습니다. 왕의 식탁으로 나아오십시오."
성도들 중에는 자신의 과거의 죄, 지독한 가난, 깨어진 가정 때문에 교회 안에서도 고개를 숙이고(죽은 개처럼) 지내는 분들이 있습니다. 선포하십시오! "다리를 절어도 괜찮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 묻은 식탁보가 당신의 모든 수치를 덮었습니다. 당당히 왕의 자녀로 식사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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