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45년 광복 이후 대한민국에서 100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한 사건/사고는 총 15건이다. 가장 많은 사망자를 낸 사고는 1995년 6월29일 서울 삼풍(三豐)백화점 붕괴사고로 502명이 사망했고 20명 실종, 937명이 부상당했다. 원인은 부실공사.
두 번째는 1953년 1월9일 창경호(昌景號) 침몰 사고다. 여수항에서 출발 부산항으로 향하던 길이 33.6m, 폭 6.15m, 무게 147t, 화물 최대 적재량 100t의 선박여객선 창경호가 밤 10시 20분경 부산광역시 서남쪽 8km 사하구 다대동 근해에서 왼쪽으로 급격히 기울며 밤 10시 40~50분 경 침몰했다. 생존자들은 높은 파도나 횡파에 의해 침몰되었다 주장했으나 과적이 침몰의 원인이라는 의견도 있다. 이 사고로 330명이 사망했다.
세 번째는 326명의 사망자를 낸 1970년 12월15일 남영호(南榮號) 침몰 사고이다. 부산~제주를 잇는 정기 페리호였던 남영호는 1970년 12월14일 17시경 제주 서귀항에서 출항했다 다음날인 15일 침몰했다. 남영호는 중량 362톤, 길이 43m, 폭 7.2m, 시속 15노트, 최대 정원이 321명, 최대 화물 적재량이 130톤인 철선으로, 사고 운항 때는 승객 318명과 선원 20명 등 338명을 태웠고 화물은 540톤이나 실어서 적재 허용량을 4배 이상 초과했다. 남영호는 15일 새벽 1시 15분, 전남 여수 동남쪽 28마일(약 52km) 떨어진 해상에서 돌풍이 우현 선체에 몰아쳐 갑판 위에 쌓아놓은 감귤 상자가 좌현 방향으로 쏟아지며 중심을 잃은 선체가 좌현으로 넘어가 침몰했다.
다음은 2014년의 세월호(歲月號) 침몰 사고다. 2014년 4월16일 인천에서 제주로 오가는 여객선 세월호가 전라남도 진도군 관매도 부근 해상(맹골수도)에서 침몰하면서 승객 299명 사망, 5명이 실종됐다. 세월호 침몰의 직접적 원인은 급격한 대각도 변침으로 배가 좌현으로 기울며 제대로 고박되지 않은 화물이 좌측으로 쏠려 선체의 복원성을 잃었기 때문으로 밝혀졌다.
1993년 10월10일의 서해훼리(ferry)호 침몰 사고 때는 292명이 사망했다. 선박 출항 당시 기상 여건이 매우 좋지 않았는데도 출항을 감행한 것과 무리한 기기 조작, 과적 및 승객 초과승선이 사고의 원인으로 분석됐다. 출항 당시 초당 10~14m로 부는 북서풍 때문에 높이가 무려 2~3m에 이르는 파도가 쳤다고 한다.
다음은 대한민국에서 발생하진 않았지만 피해자 대다수가 대한민국 국민이었던 대한항공 007편 격추사건이다. 1983년 9월1일 미국 뉴욕 존 F. 케네디 국제공항을 출발, 알래스카 앵커리지 국제공항을 거쳐 김포국제공항으로 비행하던 대한항공007편이 사할린 근처 모네론 섬 부근 상공에서 소련 방공군의 Su-15TM 요격기에 격추당해 추락했다. 대한항공 007편에는 총 246명의 승객과 23명의 승무원이 탑승하고 있었으며 모두 사망했다.
1997년 발생한 대한항공 801편 추락사고도 괌에서 발생했지만 피해자 대다수가 우리 국민이었다. 1997년 8월6일 오전 1시 43분경(현지 시각) 서울 김포국제공항발 대한항공 801편이 미국령 괌의 안토니오 B. 원 팻 국제공항으로의 접근 중 공항 바로 앞 언덕인 니미츠힐 밀림지대에 추락해 승객 254명 중 228명이 사망했다. 조종사들이 괌 공항의 비행기 유도 무선표지소(VOR) 위치를 착각한 것과 괌 공항 계기착륙장치의 활공각 유도 장치인 글라이드 슬롭 고장이 원인으로 추정된다.
여덟 번째는 2003년 2월18일 발생한 대구 지하철 방화 사고다. 뇌졸중으로 인한 반신불수와 심한 우울증을 앓던 김대한(당시 56세)이 자신의 신변을 비관하다 자살을 하기 위해 18일 오전 9시30분 경, 대구 송현역 근처 주유소에서 구입한 휘발유 2L를 소지한 채 송현역에서 지하철에 탑승했다. 9시 52분 경, 열차가 대구광역시 중구 중앙대로에 있는 중앙로역에 정차하는 순간, 김대한은 미리 들고 있던 석유 플라스틱 통에 불을 붙였다. 주변 승객들은 당황해하였고, 승객들이 그를 제지하려는 찰나, 불이 그의 옷에 옮겨붙자 놀란 김씨는 휘발유 통을 바닥에 던졌고, 불이 삽시간에 전동차 의자와 바닥 천장에 옮겨붙어 결국 수 초만에 큰 불이 나 192명 사망, 6명 실종, 부상 151명의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166명 사망(추락사 38명), 25명이 실종된 1971년 서울 대연각(大然閣) 호텔 화재사고가 아홉 번째다. 1971년 12월25일 오전 9시50분 경 호텔 1층 커피숍에서 프로판 가스 폭발로 화재가 발생했다. 불길의 시작과 동시에 계단을 막아 사람들이 내려오지 못했다. 빌딩 내부의 계단이 방화문이 없는 개방형이어서 유사시 비상구 역할을 하지 못하고 불이 번지는 통로 역할을 한 것이다. 엘리베이터 역시 불이 나자 작동이 멈췄고 비상계단도 별도로 없었으고 스프링클러 같은 소화장비도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21층의 대연각 호텔은 1시간 30분만에 건물 전체가 불길에 휩싸였는데, 불길이 빨리 번진 이유는 빌딩의 내장재가 가연성 물질로 가득했기 때문으로 드러났다.
열 번째는 1974년 YTL30호 침몰 사건이다. 1974년 2월22일 오전 11시 경상남도 충무(현재 통영) 앞바다에서 대한민국 해군의 항내 예인정(YTL)이 침몰, 해군과 해양경찰 전경 훈련병 159명이 사망했다. 이사건은 전시 아닌 평시 해난사고 중 세계 해군 사상 가장 큰 인명손실사건으로 기록되었다. 이날 사고는 해군신병 159기 및 이들과 함께 신병훈련을 받던 해경 11기 훈련병 316명이 해군 신병 훈련의 8주차 훈련일정으로 충무공 전적지 견학과 충렬사 참배를 하고 복귀하고자 YTL을 타고 모함인 전차상륙함 LST-815 '북한함'으로 이동하던 중, 갑자기 몰아닥친 파도를 피하려고 YTL이 급선회를 시도하다 균형을 잃고 전복, 침몰하면서 발생했다. 당시 통영에는 폭풍주의보가 내려졌었고, YTL의 정원 은 150명이었다.
가장 최근에 발생한 이태원 압사 사고가 156명으로 열한 번째다. 2022년 10월29일 오후 10시경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해밀톤호텔 서편 작은 골목에 핼러윈 축제를 즐기려는 인파가 몰리면서 압사 사고가 발생했다. 2022년 11월7일 현재 156명이 사망, 197명이 부상했다.
1963년 1월18일의 연호(燕號) 침몰 사건 때는 140명이 익사했다. 1963년 1월 18일 정오 무렵 영암군 해상에서 돌풍과 3m 가까이 되는 파도, 86명 정원의 여객선에 140여 명을 태운 데다 과적을 했을 걸로 추정되는 등 여러 원인으로 침몰했다.
다음은 2002년 4월15일 오전 11시45분경 중국국제항공(Air China) 소속 CCA129편 보잉 767-200ER 여객기가 김해국제공항에서 4.6km 떨어진 경상남도 김해시 지내동 동원아파트 뒤편의 돗대산(해발 380m) 기슭에 추락한 사고다. 사고기에는 한국인 136명과 중국인이 대부분인 외국인 19명 등 승객 155명과 승무원 12명 총 167명이 탑승하고 있었으며, 이 가운데 129명이 사망했다. 조종사 과실로 발생한 사고였으며 사고 여객기의 기장(우신루·吴新禄), 부기장 2명(가오리지·高立杰/후샹닝·侯向宁) 모두 보잉 767을 운항한 경험이 적거나 면장을 취득한지도 얼마 안된 초보 조종사들이었다.
열 네번째는 1987년 11월29일,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출발한 대한항공 보잉 707 여객기가 인도양 상공에서 실종된 사건으로, 통상 'KAL기 폭파 사건'이라고 불린다. 88 서울올림픽 개최를 방해하기 위해 북한 정권의 지령을 받고 일본인으로 위장한 특수공작원 김승일, 김현희 2인조가 액체 시한 폭탄으로 비행기를 폭파했다. 승객 95명, 승무원 20명 전원(115명) 사망했다.
마지막은 1995년 대구 지하철 공사장에서 발생한 가스폭발 사고다. 1995년 4월28일 오전 7시52분 대구광역시 달서구 상인동 대구 도시철도 1호선 상인역 공사 현장에서 도시가스 폭발 사고가 일어나 101명이 사망하고 202명이 다쳤다. 이 사고로 차량 150여 대, 건물 80여 채 파손의 약 540억 원 재산 피해도 발생했다. 대구 달서구 상인동 상인네거리에 들어설 예정으로 지반 공사 중이던 대구백화점 상인점 담당 인부가 실수로 가스관을 파손시켰고 이때 누출된 가스가 하수관을 통해 대구 지하철 1호선 상인역 공사장으로 유입되었다. 유입된 가스는 한동안 공사장에 고여 있다가 폭발을 일으켰다. 폭발 후 50m에 달하는 불기둥이 솟아오르고 400m에 달하는 건설 현장이 무너져 내렸다.
15건의 사건/사고 중 김영삼 정권 때 발생한 게 4건이다. 1993년 서해훼리호 침몰 사고(292명 사망), 1995년 대구 지하철 공사장 가스 폭발 사고(101명 사망),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502명 사망), 1997년 대한항공 801편 추락 사고(228명 사망). 이 밖에도 김영삼 정부 시기에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아 '사고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얻었다.
앞으로 이 땅에 이같은 불행한 사망사건사고는 없어져야...
- 2022.11.7, 조갑제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