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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최일환 목사(장안중앙교회)설교 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최일환목사
행복한 인생을 만들려면
사도행전20:22~27
2002년 2월 17일 주일 낮예배 최일환 목사 설교
20:22 보라 이제 나는 心靈에 매임을 받아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저기서 무슨 일을 만날는지 알지 못하노라
20:23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證據하여 결박과 患難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20:24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使命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20:25 보라 내가 너희 중에 往來하며 하나님 나라를 傳播하였으나 지금은 너희가 다 내 얼굴을 다시 보지 못할 줄 아노라
20:26 그러므로 오늘 너희에게 證據하노니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내가 깨끗하니
20:27 이는 내가 꺼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다 너희에게 전하였음이라
설교:
새해 소망이 무엇입니까? 질문에 대체로 두가지 대답을 합니다. 온가족이 건강하기를 소원하고 행복하기를 소원합니다. 사람들은 행복을 위해 무엇이든지 하며 어떤 대가를 지불하고라도 얻으려 합니다. 그래서 요즘 "몸 만들기"라는 말이 유행합니다. 언젠가 어느 목사님이 유명한 여자 탤런트를 가까이 서 본 일이 있답니다. 그야말로 몸을 만들었다고 느껴지더랍니다. 다이어트로 체중을 조절하여 지방질은 쏙 빼고 눈썹은 뽑고 얼굴은 그렸더라랍니다. 다 보다 아름답게 꾸며서 인기를 유지하려는 몸부림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힘쓰고 애써도 안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행복입니다. 왜요? 인생의 주관자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기에 행복을 얻으려면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려야 합니다. 인생의 창조자요, 주관자요, 더 나아가 종말을 허락하시는 분이 하나님입니다.
그렇다면 행복한 인생을 만들어 가려면 무엇이 있어야 할까요?
오늘 봉독한 성경 말씀을 깊이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위대한 사도 바울이 전도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가면서 에베소 교회 장로들과 작별하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그의 신앙 간증을 들어보면 그가 어떤 생애를 살았는가를 보여줍니다. 한마디로 그는 후회 없는 행복한 생애를 살았던 것입니다.
어떻게? 후회 없는, 행복한 인생을 만들어 가려면 세 가지가 있어야 함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1. 성령에 지배받는 性稟이 있어야 합니다. (22절~23절)
복된 인생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성품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성품이 좋아야 복된 인생을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품은 어느 정도 내가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매 순간마다 부딪치는 문제들을 통해서 자기 성품을 만들어 갑니다.
그래서 어떤 유명한 철학자는 말하기를 "재능은 혼자서 배양하지만 성품은 세상 풍파에 시달리며 만들어진다"고 했습니다.
그 사람의 성품이 좋으냐 나쁘냐를 측정할 수 있는 것이 행동입니다. 행동은 그 사람의 성품의 열매입니다. 그래서 사람의 행동과 성품을 분리해서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성품이란 사람의 됨됨이입니다.
그런데 그런 자연인의 성품만으로는 아무리 좋아도 소용없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아 전적으로 타락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자연인의 성품이 아닌 중생한 성품이 필요합니다. 그러려면 성령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성령으로 다시 태어난 성품이 있어야 진정한 의미의 행복이 보장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바울을 보세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면 어떤 일이 닥칠지 뻔히 아는데 바울은 예루살렘의 길을 갑니다. 왜요? 성령에 이끌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령 하나님이 우리의 발걸음을 인도하시기에 환난이 있어도, 고난이 있어도 앞으로 가는 것입니다.
자연인의 성품이라면 해를 당할 것을 뻔히 알면서 왜 가겠습니까? 일반인들의 행동결정 기준은 이익이 되면 움직이고 손해가 되면 안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에 의해 지배받는 성품은 그렇지 않습니다. 아무리 큰 손해가 기다린다해도 그래도 성령이 인도하면 가는 것입니다. 내게 손해가 되든 이익이 되든 상관이 없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이 되면 순종하는 성품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쓰십니다. 왜냐하면 이런 사람의 성품은 훈련되어 있고 또 자기 감정을 절제 할 수 있기 때문에 쓰시기가 편합니다.
여호수아는 40년 동안을 변함없이 모세를 섬겼습니다. 모세는 聖者가 아닙니다. 그도 인간인지라 모시기 힘든 약점도 있습니다. 때로는 교만하고 실수도 저질렀습니다. 심지어 자기 가족들로부터 까지 비난과 불신을 받았습니다. 또 하나님의 명령에 거역한 적도 있습니다. 그래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수아는 단 한번도 모세를 拒逆하거나 背信하지 않고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시종(侍從) 노릇을 했습니다.
시종이란 副官 秘書 노릇을 한 것입니다. 찬송가 382장에도 "여호수아 본 받아 앞으로 가세!" 라고 찬송하는데 여호수아의 무엇을 본받을 것입니까? 여호수아의 그 온전한 성품을 본받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우리도 복된 인생의 경작자들이 되는 것입니다.
요즘은 IQ(지능지수)를 말하지 않습니다. EQ(감성지수)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단계 더 나아가야 MQ(도덕지수)를 말하고 SQ(영성지수)를 말합니다.
특히 우리 신앙인의 성품은 성령이 만들어갑니다. 그러기에 아무리 IQ가 좋아도 EQ가 좋아도 성령에 MQ나 sQ가 온전치 못하면 행복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려면 성령에 매여야만 합니다. 성령은 우리의 성품을 온전한 하나님의 성품으로 만들어 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참다운 행복을 만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행복한 인생을 만들려면
2. 꿈과 Vision 그리고 인생의 目標가 있어야 합니다.(24절~25절)
행복한 인생은 성령에 지배를 받는 상태에서 꿈과 비젼 그리고 더 나아가서 분명한 目標를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이 세가지는 조화가 이루어 져야 합니다. 아무리 훌륭한 Vision과 꿈이 있어도 구체적인 목표를 세우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렇다면 어떤 목표를 세워야 할까요? 목표설정에 몇가지 유의할 점이 있습니다.
1)목표가 확실해야 합니다. 2)목표는 시기적으로 적절해야 합니다. 3)목표는 성취 가능한 것이야 합니다. 그러려면 현실적이어야 합니다. 4)목표가 구체적이고 단순해야 합니다. 추상적인 목표는 측정이 불가능합니다. 예를 들어 "믿음의 성숙"이란 목표를 세웠다면 얼마만큼이 믿음의 성숙인지를 측정하기 어렵습니다. 그러기에 목표설정에는 아주 구체적이고 측정이 가능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서 전쟁을 위한 목표라면 어떤 고지(高地)를 어떻게 점령할 것인가? 어느 도시를 어떻게 공략하여 정복할 것인가를 분명히 정하고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서 공격해야 합니다.
인생의 목표에도 무엇을 얼마만큼, 어떻게, 언제까지 이룩할 것인가를 정해야 합니다. 비몽사몽간에 구름을 잡는 듯한 중얼거림은 안됩니다. 지금 꼴찌인데 내달에는 일등을 차지하겠다는 것은 무리입니다 차라리 다음달에는 30등안에, 그다음시험에는 20등안에, 그리고 내년 이맘때는 10등안에 들리라. 이런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목표가 있어야 한단 말입니다.
어떤 유명한 야구 선수가 "한방의 홈런 보다 여러 번의 안타가 팀의 승리를 가져온다"고 했습니다.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입니다. 태산도 계속 오르다보면 정복합니다.
5)목표를 머리 속으로 그리고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일이지만 이미 이루어놓은 듯이 바라보아야 합니다.
6)그리고 항상 자기 자신에게 긍정적인 말을 해야 합니다.
말이란 행동보다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기 자신에게 긍정적인 말을 하여 목표를 향해 힘을 집중하게 해야 합니다. 이미 목표를 달성한 자신의 모습을 연상하면서 말입니다. 부정적 생각과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목표 달성을 어렵게 합니다.
실례를 보세요.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하늘의 별을 보라"고 하셨습니다. 장차 네 자손이 별과 같이 번성하리라고 하셨어요. 그는 밤하늘의 별을 볼 때마다 그 꿈을 품었고 결국 그 약속대로 이루어지는 복을 누렸습니다.
여호수아는 가나안 정복이 목표입니다. 그래서 그 땅을 정탐하고 돌아오게 하십니다. 그리고 그 땅을 가슴에 품게 하십니다. 그것은 곧 하나님의 약속이요, 히브리 민족의 염원이기도 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여호수아를 부르신 목적입니다.
하나님은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으로 더불어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땅으로 가라"(수1:2)고 하셨습니다. 가나안 정복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 목표대로 움직였고 온갓 방해 세력을 물리칠 수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을 보세요. 그도 멋있는 인생의 목표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명령대로 땅 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목표가 있었기에 눈앞에 어려운 일이 닥쳐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기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다 죽는 것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24절과 25절을 다같이 읽어봅시다.
20:24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使命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20:25 보라 내가 너희 중에 往來하며 하나님 나라를 傳播하였으나 지금은 너희가 다 내 얼굴을 다시 보지 못할 줄 아노라
여러분의 사명은 무엇입니까?
수많은 사람들이 사명을 잃고 헤메고 살고 있습니다. 사명이 우리를 건강하게 만들고 사명이 우리에게 삶의 행복을 만들어줌을 잊지 마시기를 축원합니다. 사명을 놓으면 금방 병이 듭니다. 일을 놓으면 살맛이 안 납니다.
여러분의 주께로부터 받은 그 사명을 감당하는 분명한 목표 의식을 갖고 세우고 그것을 향해 전진하며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3. 탐심으로부터의 자유가 행복하게 만듭니다.(33절~35절)
인간을 불행하게 만드는 가장 무서운 요소가 탐심입니다. 이 탐심으로부터 자유를 누릴 수 있기만 하면 사람들은 진정한 행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왜 탐심이 문제가 될까요? 인간의 탐심은 모든 죄의 근원이 되고 있습니다. 인간이 범하는 모든 죄를 열거해 보세요. 거기에 탐심과 관계없는 것들이 있는가를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아무 것도 없습니다. 아니 단 하나도 없습니다.
하와가 에덴 동산에서 죄를 지을 때도 사단은 이 탐심을 하와의 맘속에 집어넣어 범죄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하게 만든 것입니다.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욕심 많은 부자가 천냥이 든 돈 보따리를 분실했습니다. 그는 그 보따리를 찾아주는 사람에게 반액인 500냥을 주겠다고 방을 붙였습니다. 어느 날 순진한 농부가 마침 보따리를 찾아 주었습니다. 이제 그 1000냥 중 500냥을 주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욕심 많은 부자는 반액인 500냥을 내어 주기가 아까웠습니다.
그러다가 부자는 생각 끝에 일을 꾸며댔습니다.
돈 보따리를 찾아다 준 시골농부에게 "네 이놈 그 보따리는 2천냥 든 보따리인데 천냥을 어디다 챙겨놓고 1000냥만 가져왔느냐?" 하면서 500냥을 안 주려고 했습니다. 서로가 다투다가 해결되지가 않아, 임금님에게까지 가서 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사연을 들은 임금님은 그 욕심쟁이 부자가 500냥을 안 주려고 하는 속 샘인 줄 알고 판결을 내렸습니다.
"여봐라 아직 2천냥 든 보따리는 나타나지 않았으니 나타날 때까지 기다릴 것이며, 천냥 보따리는 다른 전혀 보따리니 찾아온 농부가 갖도록 하라."
욕심이 잉태하면 결국 그 있는 것도 잃게 됨을 교훈하는 이야기입니다.
성도 여러분!
그러므로 사단의 교묘한 작전을 알아야 합니다. 인간에게 행복을 가져다주고 인간의 삶을 발전시켜주는 것이 탐심인 것처럼 위장을 합니다. 그래서 사람에게 적당한 탐심은 필수적인 요소인 것처럼 보이게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교묘한 위장입니다. 성경이 무엇이라 합니까? 누가복음12:15에는 "저희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 골로새서3:5에는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했습니다.
사도바울도 오늘 봉독하지는 않았으나 33절로 35절을 보면 재물의 탐심에서 자유를 누리고 선교사역을 감당한 것을 보게 합니다. 다같이 한번 읽겠습니다.
20:33 내가 아무의 은이나 금이나 의복을 탐하지 아니하였고
20:34 너희 아는 바에 이 손으로 나와 내 동행들의 쓰는 것을 당하여
20:35 범사에 너희에게 모본을 보였노니 곧 이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의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그렇습니다. 탐심에서 자유를 누려야 이런 고백을 할수 있고 그래야 인생을 행복하게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행복한 인생을 이루려면 그냥 되는 것이 아닙니다. 돈이 행복을 주는 것도 아니고 남이 만들어 주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만들어주신 본래의 성품을 회복하고 내게 부여하신 사명과 인생의 목표를 제대로 세우며 더 나아가 무서운 탐심을 벗어버리고 살 때 행복을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되는대로 사는 인생에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사람이 기본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됩니다. 동물들도 자기들만이 살아가는 법칙이 있습니다.
행복하기를 원합니까?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이 해답을 주시고 계십니다. 성경이 행복의 지침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