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서 하나님이
불화살을 꺾으시고,
방패와 칼과 전쟁무기를 꺾으셨다.
[시편 76:3]
세계 곳곳이 전쟁의 포화 속에서 신음하고 있다.
팔레스틴, 우크라이나뿐 아니라 전쟁과 폭력으로 인한 약자들의 고통과 울부짖음이 가득하다.
불의한 자들이 승승장구하는 세상에 맞서 분노하지만 오히려 조롱당한다.
하나님을 믿고 따른다면 악에 대하여 항거하고, 비판하고, 분노하는 것이 당연하건만 그런 행위들조차도 하나님을 믿는다는 이들에 의해 비난받는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다.
믿고싶은 것만 믿는다.
그것을 하나님이라 칭할 뿐이지, 그들이 믿는 것은 하나님이 아니다.
그들의 하나님은 맘몬이다.
이런 이들에게 하나님의 승리는 절망이지만,
이런 현실에 부글부글 끓는 분노하던 이들에게는 기쁜소식이다.
하나님의 승리가 기쁨이 되는 삶, 이것이 바른 삶이다.
바른 삶을 사는 일은 '기억하는 일'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무엇을 기억해야할지에 대해 아삽은 다음 장에서 밝힌다.
'흘러간 세월을 회상하며(5,11), 되뇌이고(12)'는 중에 시인은 회복된다.
시편 76편은
불화살과 방패와 칼과 전쟁 무기로 압제하던 이들을 꺾으실 하나님을 찬양한다.
그리고 모든 민족들에게 이런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라고 한다.
예물을 드리라는 권고는 예배를 드리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배하는 행위는 '기억하는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무엇을 기억할 것인가? 지금 당하는 것과 같은 고난 속에서 어떻게 구원하셨는지,
무력으로 압제하던 이들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심판하셨으며,울부짖는 이들의 아우성을 어떻게 응답해주셨는지를 기억하는 것이다. 이 기억의 행위를 통해 하나님이 반드시 우리를 도우실 것이라는 믿음을 회복하는 것이다.
기억은 신앙에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우리가 발 딛고 살아가는 역사에 대한 기억도 중요하다.
왜곡되지 않은 기억, 그것만이 역사를 바로 세울 수 있다.
왜곡되지 않은 신앙, 그것만이 사람을 바로 세울 수 있다.
하나님은 전쟁을 싫어하시는 분(오경웅- 시편사색)이시다. 지금 팔레스틴에서 진행중인 전쟁은 명백한 '제노사이드'다. 하나님께서는 진노하실 것이며, 공의로 재판하실 것이다. 그날, 지금 슬퍼하는 이들이 웃을 것이고, 분노하는 자들이 하나님을 찬양할 것이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호흡을 끊어버리시는(12) 하나님으로 인해 두려움 속으로 빠져들어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