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證言)
박봉식(朴奉植) - 하나님과 함께 하는 생활
7. 지방 순회를 하면서
1 내가 부산교회에 있을 때 일이다. 이 목사님과 지승도 씨가 마산에 가서 전도를 하고 돌아왔다. 그때 나는 사진 판매를 하여 많은 돈을 모았는데, 한 푼도 안 쓰고 있었다. 그런데 이 목사님이 나보고 박 권사님은 밤낮으로 돈돈한다고 그래서 기분이 안 좋았다.
2 그리고 며칠 후 선생님이 서울로 오라고 해서 갔더니 다시 내려가라며 화를 내셨다. 그래서 “하나님, 선생님이 왜 저렇게 노하십니까?” 하고 기도를 드렸더니 이 목사도 말하지 않았느냐 하며 용서를 빌라고 했다.
3 돈 3만 원을 선생님 앞에 드리며 이것은 하나님 앞에 바칠 돈인데, 가지고 왔다고 했다. 내일부터 여기서 화장실 청소하고 부엌에서 밥하라고 해서 순종하게 되었다.
4 한 번은 선생님 탄신일이라 많은 식구들이 모였다. 음식도 여러 가지 했는데, 선생님께서 나는 절대로 주지 말라는 것이다. 3일째 되는 날 오늘은 주시겠지 생각했는데, 인절미를 들면서도 안 주는 것이다.
5 새벽 3시에 초콜릿이 한 판 들어왔는데 이것은 나를 갖다주라는 것이다. 그래서 속으로 나는 초콜릿은 먹지도 않는데 준다고 원망을 했다. 그 옆에 앉아 있던 김원필 선생이 그 과자와 다른 것과 바꿔 먹으면 되지 않느냐고 했다.
6 그다음 날 선생님이 나에게 돈을 35만 원을 주셨다. 무슨 돈이냐고 물어도 아무 대답도 않으시고 택시를 타고 신촌에 있는 연대 기숙사에 데려다주는 것이다. 나를 왜 여기다 데려다 놓느냐고 여쭈어도 아무 대답도 없으시고 냉수 한 그릇 떠오라고 해서 그것만 다 잡수시고 가셨다. 이튿날도 오셔서 냉수 한 그릇만 다 잡수시고는 가셨다. 며칠 간을 그렇게만 하셨다.
7 내가 기숙사에 와서 있은지 백일 만에 교회에 가서 선생님이 주신 돈 35만 원을 드리며 인사를 드렸다. 선생님은 그렇게 기뻐하시면서 일어나 춤을 덩실덩실 추시는 것이다. 그리고 하시는 말씀이, 백일 동안 있으면서 그 돈에서 남아도 안 되고 모자라도 안 된다는 것이었다.
8 또 너로 인해 그 학교를 찾아 세울 조건이 되고, 선생님도 그 기대 위에서 출발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선생님은 박봉식에게 기와집은 못 사줄망정 판잣집이라도 사주라고 하시며 기뻐하시는 것이었다.
9 본부교회에 있으면서 1966년도부터 3년 6개월 동안 지방 순회를 하게 되었다. 순회를 하면서 식구들에게 선생님 대접할 성미를 뜨게 하여 쌀을 모으기도 하였다.
10 내가 66살 나던 해 선생님께 이제는 나이가 많아 순회를 그만두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선생님은 아직 처녀 같다며 계속 순회하라고 하여 77세가 되어 그만두게 되었다.
11 나이가 많아질수록 일거리가 적어지는 것이 일반사회의 현상이지만, 뜻을 아는 우리는 보고만 있을 수 없다. 오히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으면 마음이 초조해지고 마음이 시들어지는 것 같다.
12 나는 지금도 수차에 걸쳐 철야 기도를 해왔다. 선생님께서 1955년도에 “철야를 계속하는 사람은 하늘에서 인정할 때가 온다”라고 하셨다. 특히 선생님께서 노인이라고 해서 기도만 하고 앉아 있으라는 법이 어디 있느냐고 하시면서 힘이 있는 한 뛰라고 하셨다. 안타까운 것은 전도를 하려고 말씀을 전해도 치아가 없으니 청년들이 알아듣지 못한다.
13 지나온 날을 돌이켜 보면 너무나 하늘의 은사 가운데 살아온 것 같다. 기독교인이 한국에 거의 없을 때 우리 가정을 부르신 것도 하나님의 은사였지만 만주에 우리 가족을 가게 한 것이나 만주에서 남한에 오게 한 것, 피난으로 부산까지 간 것도 모두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다.
14 또 한순간 한순간 어려울 때마다 하나님께서 사랑의 손길을 펴시어 인도하셨다. 지금도 뜻을 위해서라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하려고 한다.
첫댓글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