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식 사진작가
부산 지역 에서 활동한 한국을 대표하는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최민식은 1928년 3월 6일 황해도 연백에서 태어났습니다
1945년 평안남도 진남포 미쓰비시 기능자 양성소 기능 교육과 기능공으로
근무하였으며 미술에 관심이 있던 최민식은 군을 제대한 후 1955년 일본으로
밀항하여 도쿄 중앙미술학원에 입학하여 학업과 일을 병행하며,
도쿄의 헌책방에서 우연히 에드워드 스타이켄(Edward Steichen)의 사진집을 보고
인간 가족(The Family of Man)』을 접한 후 사진에 관심을 갖게 되어서
인간을 소재로 한 그의 사진에 지속적인 영향을 끼쳤다고 합니다.
1957년 도쿄 중앙미술학원 디자인과 2년 과정을 수료하고 카메라와 사진 관련 책을
들고 부산으로 돌아와 독학으로 사진을 공부하여, 1962년 가톨릭계의 한국자선회에서
사진을 담당하였고, 같은 해 타이완 국제 사진전에서 입선하였습니다
. 제1회 동아 사진 콘테스트 입선 이후 국내의 여러 사진 공모전에서 입상하였으며,
1966년 미국 US 카메라 사진 공모전 입선 및 프랑스 코냑 국제 사진전 시 명예상을
수상하는 등 외국에서 먼저 주목을 받았다고 합니다
1967년 『사진 연감(Photography Year Book)』에 ‘스타 사진작가’로 선정되었으며,
미국·독일·프랑스·일본 등 20여 개국 사진 공모전에서 220점 넘게 입상하였고,
미국·독일·프랑스·이탈리아 등 7개국에서 13회에 달하는 개인 초대전을 열었습니다
최민식은 회화적인 분위기의 살롱 사진을 멀리하고, 주로 힘없고 소외된 사람들의
남루한 일상을 연출하지 않은 스냅숏으로 찍었으며
인물이 중심이 되다 보니 주로 가까이 당겨 찍는 클로즈업 숏을 이용하면서
노인의 주름, 검댕이가 묻은 아이 얼굴, 누나에게 업힌 채 장사하는 엄마의 젖을
먹는 아이, 거리에서 구걸하는 거지와 길바닥에서 국수를 먹는 여자아이 등의 사진은
한국보다 외국에서 더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이러한 사진들은 외국의 원조를 받는 데도 도움이 되었는데, 근대화가 이루어지고
새마을 운동이 한창이던 시절에는 거지나 가난에 찌든 사진만 찍어 외국에
전시하는 그를 못마땅하게 여긴 박정희 정권의 박해를 받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최민식은 부산에 살면서 자갈치시장 을 주요 작업 무대로 삼았으며, 부산에서 생애
마지막 순간까지 작품 활동을 하면서 촬영 주요 무대인 자갈치시장과 거지, 부랑자 등
소외받거나 고통 받는 자들의 군상, 인간의 희로애락과 생로병사는 최민식 사진의
일관된 주제이자 소재였습니다.
1980년대에 들어서며 빈곤이 점차 사라지자, 최민식의 카메라는 인도와 네팔, 티베트
등지로 향하면서, 자신의 사진 철학이 민중의 참상을 기록하여 인권의 존엄성을
호소하고 현실의 구조적 모순을 고발하는 데 있다고 주장하면서 이러한 작업이
전 인류적 인간 탐구의 일환이라고 믿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가난하고 처절한 인간의 모습과 삶의 양상이라는 소재에 집중한 나머지,
달라지는 현실에 대한 비판과 반성을 하지 못하였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한국의 근대화 과정과 함께해 왔던 최민식의 사진이 인간 탐구에 매진한
결과이며 그의 카메라가 가난하고 소외된 인간들을 향해 있었다는 사실은
인정받아야 할 부분입니다
한편 1990년에서 1997년까지 부산 지역의 대학에서 사진을 강의하면서 최민식은
한국사진가협회 자문 위원, 한국문인협회 회원, 미국사진가협회[PPA] 회원으로
활동해 오다 2013년 2월 12일 향년 8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1999년 12월 중순에 시드니에서 만났던 최민식님의 아드님을 떠 올려 봅니다
부산에 계신 누님과 함께 시드니 방문길에 만난 최민식 아드님은 누님에게서
부산에서 사진작가로 유명하신 최민식 아드님이라는 소개만 받았습니다
시드니 방문길에 우리 가족과 함께 했었던 시간들과 가족사진촬영을 해주어서
늘 고마움을 간직하고 있었는데 부산 여행길에 연락처를 몰라서 언젠가 만나면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네요
살아 가면서 생각나는 분들중에 최민식 사진작가님의 아드님을 부산여행길에
만나 보고 싶습니다